빨간 사과, 노란 은행잎, 푸른 하늘, 이렇듯 눈을 뜨면 우리 눈앞에는 컬러의 자연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것도 빛이 있을 때 하는 말이다. 도대체 빛과 색은 어떤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일까.
눈을 뜨나 감으나 벗어날 수 없는 세계가 바로 색채의 세계다. 색채는 인간이 느끼는 감각으로 이를 통해 외부세계와 소통한다. 색채는 우리에게 직관적인 의미나 느낌과 직접 연결되는 아주 강렬한 메시지다. 색채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도 일상생활의 체험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색채는 어떤 이미지나 상징과 연결된 채 의식세계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같은 옷이 왜 다르게 보일까
우리가 색깔을 볼 수 있는 근원적인 이유는 가시광선 때문이다. 가시광선은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전파나 X선과 같은 전자기파의 일종으로 그 중 파장이 3백80nm - 7백80nm (1nm=${10}^{-9}$ m)에 해당한다(그림1).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은 이 영역의 빛만을 느낀다. 자외선 영역의 빛을 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눈의 수정체나 수정체낭이 회백색으로 탁해져 투명성을 잃는 백내장의 경우에 그 치료법으로 혼탁한 수정체를 꺼내는 외과적 수술을 한다. 수술 후에 환자는 자외선을 차단하던 수정체가 제거됐으므로 자외선 파장 영역의 빛을 볼 수 있게 된다.
주변에는 많은 광원들이 존재하는데, 광원들의 특성에 따라 같은 색이라도 다르게 보인다. 흔히 백열전구 아래서는 노랑, 주황, 빨강 등과 같은 따뜻한색계열의 색채가 아름답고 생생하게 살아난다. 반면 파랑이나 녹색과 같은 차가운색 계열의 색채는 칙칙해 보이면서 그 색채 고유의 시원한 느낌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이것은 고유의 색채를 띠고 있는 물체 표면과 광원의 관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란색의 물체는 약 5백50 nm 파장의 빛을 많이 반사하고 5백nm 이하의 빛은 흡수하는 특성이 있다.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그 물체가 노랗게 보인다.
이 물체를 백열전구 아래서 볼 때는 백열전구에서 풍부하게 방출되는 5백50 nm 이상의 장파장의 빛을 충분히 반사해 노랑색이 더욱 선명하고 뚜렷하게 보인다. 반면에 5백50 nm 이상의 분광복사가 거의 없는 형광등 아래서 노란색의 물체를 보면 형광등에서 풍부하게 방출되는 단파장의 빛(파랑, 초록 등)은 물체가 흡수해버리고 정작 잘 반사시키는 장파장의 빛(노랑, 주황, 빨강 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물체는 칙칙해지고 그 색채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죽어 보인다. 따라서 옷을 살 때는 옷가게의 조명이 무엇인가에 따라 색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을 감안해 옷을 골라야 한다.
정반사와 재복사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색이 있을까. 사람은 몇 개의 색을 구분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러한 질문과 대답은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색차를 인식하는 능력이 다르고 또 특정한 색채범위에서는 색차의 구별 능력이 세밀해지다가도 또 다른 색채 범위에서는 색채의 판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명의 세기와 분광특성, 관측자의 신체, 정신 상태 등의 변수가 작용한다.
따라서 색 자체의 범위보다, 색채를 발현시키는 방법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의미있다. 일반적으로 물체의 색은 외부의 빛이 도막층을 투과해 색료분자에 흡수됐다가 재복사하면서 고유의 분광특성에 따른 색채자극광선이 앞으로 나타난다. 또 도막과 공기의 경계면에서는 빛이 정반사하는데 이것이 반짝거림의 정체다. 이렇게 일반적인 물체의 색채는 재복사되는 색채와 반사되는 반짝거림의 조합으로 나타난다. 특히 이 반짝거림은 물체의 질감과 연관된다(그림2).
선글라스의 투과색, 나비의 간섭색
이외에도 빛의 투과에 의한 색채도 있다. 중세 고딕양식의 성당을 장식하는 스테인드 글래스 투과색의 대표적인 예이다. 선글라스도 투과색을 이용한 제품이다. 투과색이란 가시광선 중에 특정한 빛만 통과하기 때문에 생긴다.
일반적으로 색채는 반사, 투과, 그리고 광택(반짝거림) 등이 어우러져 다양한 색채와 질감을 나타낸다. 안료에 미세한 반사편을 혼합한 금속성 컬러는 자동차와 매니큐어 칼라 등에 쓰인다.
또 빛의 간섭에 의한 색채도 있다. 빛의 투과율을 높이기 위해 코팅한 안경렌즈는 무지개색으로 보인다. 이것은 코팅된 4-6층의 얇은 막에서 반사된 빛이 간섭을 일으킨 것이다(그림 3). 이것이 간섭색인데 나비의 현란한 색채들은 이러한 간섭색이 많다. 간섭색은 관찰 각도에 따라 색상이 변한다. 비온 날 고여있는 물위에 기름이 퍼져있는 경우 유막의 두께에 따른 간섭색이 나타나는 것은 손쉽게 볼 수 있다.
이밖에 유난히 채도가 높은 형광색이 있다. 형광색은 에너지가 높은 짧은 파장의 빛을 흡수해 그보다 긴 파장의 빛을 재복사하기 때문에 색상이 선명해진다. 예를 들어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을 흡수해 눈에 보이는 파란색을 재복사하는 경우, 이 색채는 물체에 비춰진 빛 중 파란색 파장대의 빛에 대한 물체의 분광반사(일반적인 색채)에다가 자외선의 형광효과에 의한 파란색대의 빛의 재복사(형광색채)가 합해져서 훨씬 선명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파란 형광색의 자외선에 대한 반사율은 150%다. 이는 보통 70-80%의 반사율을 보이는 일반 색채보다 훨씬 밝아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경우는 비춰진 파란색 파장대의 입사량보다 더 많은 재복사가 이루어져 마치 물체가 광원처럼 특정한 색채로 빛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러한 형광색은 눈에 잘 보이고 주의를 환기시키므로 구명조끼나 안전표시, 교통표시, 광고 등에 사용된다.
실내조명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형광등의 경우는 이러한 형광현상을 이용한 대표적인 예다. TV화면이나 컴퓨터 모니터로 사용되는 브라운관의 경우도 전자빔으로 여기(excitation)되는 형광체의 색채들을 이용한 제품이다.
이밖에도 특정한 색채를 집중적으로 보다가 시선을 옮겼을 때, 잔상효과에 의해 보색이 보이는 경우와 같은 눈의 착시현상에 의한 색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