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인간을 빼닮은 컴퓨터 속의 생명체

단백질합성효소 네트워크 연구단


연구단은 이미 3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나머지 일정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단백질합성효소 네트워크 연구단. 얼핏 들었을 때 감이 와닿지 않는 말이다. 단백질합성효소란 세포 안에서 인체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데 필요한 효소다. 그런데 ‘네트워크’(network)는 생물학보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나 어울릴 듯한 단어다. 더욱이 단백질합성효소를 영어로 표현하면 ARS(Aminoacyl-tRNA Synthetase), 즉 전화를 걸 때 자동으로 안내 방송이 나오는 음성자동응답시스템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 낯선 조어는 분명 생명 현상에 대한 연구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21세기 과학기술의 꽃으로 각광받는 생명공학의 한계를 과감히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려는 야심찬 계획의 산물이다.

20세기 과학의 방법론은 한마디로 끊임없이 작은 세계로 쪼개들어가며 분석하는 일이었다. 인간의 유전자 구조를 규명하고 있는 휴먼게놈프로젝트가 단적인 예다. 유전자를 구성하는 염기가 어떤 순서로 배열돼 있는지 밝힘으로써 인간 발생의 ‘기본 설계도’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예정보다 몇 년 앞선 2000년 경에 완성될 예정이라고 알려져 세계 과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고 생명의 신비가 속시원히 풀릴까요? 아닙니다. 문제는 네트워크, 즉 상호관계입니다. 수많은 유전자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며 단백질을 만드는지, 또 단백질들은 서로 어떤 신호를 주고받는지, 나아가서 생명체 안에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맺고 있는 관계가 무엇인지 알아야 비로소 생명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연구단을 이끄는 생물학과 김성훈 교수의 말이다.

김교수는 “휴먼게놈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쳐도 그 흔한 감기 하나 못고치는게 현실이다” 라며 현대 과학기술의 한계를 단적으로 지적한다. 수많은 생물학자가 배출되고, 그들의 연구 분야가 끊없이 깊어지는 만큼 과학이 다루는 시야 역시 한없이 좁아져 갔다. 이런 탓에 세포에 대한 분자수준의 연구는 많이 진척되고 있지만 정작 세포 하나의 생명현상에 대해 ‘거시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눈은 사라지고 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단백질합성효소 네트워크 연구단이 현재 시도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세포 안에서는 유전자의 정보에 맞춰 몸에 필요한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을 오차없이 진행되도록 관장하는 효소가 바로 ARS다. 여기에 이상이 생기면 생명체의 기능은 비정상적으로 변해 각종 질환이 발생한다.

'왕따' 당하지 않을까 우려도

인체 단백질은 2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다. 이에 맞춰 ARS 효소 역시 20개 존재한다. 현재까지 과학계의 주된 연구 방식은 20개 가운데 어느 하나를 굅이 있게 파고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김교수팀은 다르다. 20개 모두가 연구의 대상이다. 즉 이들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서로의 기능을 조절하며 균형을 이루는지가 주된 관심이다.

“효소들을 20명의 형제자매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제각기의 개성을 가지고 살지만 결국 조화롭게 한 가족을 이루고 있죠. 바로 그 원리를 알아내는 것이 연구의 목표입니다.”

서울대와 KIST, 그리고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분자생물학과 생화학을 전공한 그가 이런 네트워크 연구를 시작하려 했을 때 망설임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존의 주류를 이루는 연구방법과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다른 학자들로부터 ‘왕따’ 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지난 4월 발행된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는 특집으로 ‘복합 시스템-환원주의를 넘어서’를 게재했다. 과학 분야별로 기존의 분석적 방법을 탈피하고 종합적인 시각을 갖추겠다는 ‘선언’이었다.

연구 성과도 상당히 진척됐다. 한 예로 컴퓨터 모니터 안에서 진짜 세포와 똑같은 구조와 기능을 갖춘 ‘인공 세포’가 개발됐다. 키보드를 두드려 이 세포에 적절한 자극을 가하면 실제와 유사한 반응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실제와 똑같은 가상인간이 등장하리란 것도 꿈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이 일이 실현된다면 항암제나 항생물질을 새로 개발했을 때 생체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안전하게’ 알 수 있다.

김교수의 연구 계획은 작년 말부터 9년간 과학기술로부터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으로 선정돼 국내 다른 연구에 비해 적지 않은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 연구책임자 3명과 박사후연구원 3명, 석사급 연구원 6명, 박사과정생 4명, 그리고 석사과정생 3명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 3편의 논문을 권위있는 외국 저널에 발표했고, 올해 말부터 본격적인 연구성과를 내놓겠다는 이들의 열기에 'ARS 네트워크'란 말이 우리 귀에 익숙해질 날도 멀지 않은 듯 느껴진다.

199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해윤 기자
  • 김훈기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화학·화학공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