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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옥신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독성물질

세계인의 식탁에 긴급 적신호가 울렸다. 6월 초 벨기에 정부는 자국산 돼지고기와 닭고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독성물질'로 알려진 다이옥신이 다량 포함됐다고 밝혔다. 곧이어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육류 역시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한국을 비롯해 이들로부터 고기를 수입한 세계 각국이 '다이옥신 공포'에 휩싸였다. 다이옥신은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우리 주변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


다이옥신의 공포


① 다이옥신이란 무엇인가 - 무색무취의 치명적 화학물질

다이옥신(dioxin)이란 용어는 이 물질이 가지는 화학 구조에 맞춰 만들어진 말이지만 이미 우리에게는 귀에 익은 보통명사처럼 자리잡았다. '다이'라는 말이 '죽다'는 뜻의 영어 '다이' (die)처럼 들릴 만큼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다. 극소량으로도 생식기능과 면역기능을 파괴하고 암을 유발하며 성격장애를 일으킨다고 알려진 치명적인 물질이다.

다이옥신의 종류는 한가지가 아니다. 비슷한 화학구조를 가진 2백여개의 화합물을 통칭해서 일컫는다(그림). 6개의 탄소(C)가 정육각형으로 결합한 벤젠고리 2개가 있고, 그 사이에서 산소(O)가 다리를 놓은 형태가 기본구조다. 단지 강력한 살균과 소독 능력이 있는 염소(Cl)가 벤젠고리의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종류가 구분된다.

다이옥신은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하며, 냄새와 색깔이 없다. 또 물에는 녹지 않고 기름과 친한 지용성 물질이다.

② 어디서 발생하나 - 화학공장.소각장.농약등 다양

다이옥신은 산업문명이 낳은 피할 수 없는 물질이다. 염소가 함유된 유기화합물을 다루는 수많은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목재를 보존하거나 종이제품을 표백하는 과정, 석탄이나 석유를 정제하는 과정, 각종 금속을 제련하는 과정, 탄소 전극을 생산하는 과정 등 다양한 발생원이 존재한다. 화학물질을 합성하는 공장은 두말할 나위 없다.

최근에는 쓰레기(특히 산업폐기물)를 태울 때 다이옥신이 많이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국내외적으로 소각장이 다이옥신을 발생시키는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 예로 올해 3월 말 일본의 한 쓰레기 소각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장암과 심한 피부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농약도 무시할 수 없다.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현재 고엽제로 인한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할 수 있다. 당시 미군이 게릴라가 숨은 지역의 삼림을 고사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대량 살포한 고엽제에 고농도의 다이옥신이 포함돼 있었다.

그렇다면 다이옥신은 공기, 토양, 강이나 바다 어디서나 발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지구에 사는 한 다이옥신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우리는 누구나 매일 약간씩의 다이옥신을 ‘섭취’하며 살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어진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의 돼지고기 매장. '벨기에산 고기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무색하다.


③ 사람에게 유입되는 경로는? - 90% 이상이 음식물 통해 침입

다이옥신은 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사람에게 침입할까. 미국 환경보호청은 자국인의 경우 체내 다이옥신의 90% 이상이 음식을 통해 들어온다고 밝혔다.

특히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물고기와 같은 육류와 이로부터 가공된 치즈나 우유 등의 제품이 다이옥신을 인체에 옮기는 주범이다. 이에 비해 야채나 과일, 곡물, 그리고 음료를 통한 이동은 무시할 정도로 적다고 한다.

이번 벨기에산 육류 파동이 세계를 놀라게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벨기에에서 가축의 사료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름을 제공하는 업체가 엉뚱하게 다이옥신이 다량으로 포함된 공업용 기름을 사료회사에 공급해버린 것이다.

이 오염된 사료는 벨기에뿐 아니라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수백여 농장으로 퍼졌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이들로부터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수입했다.

국내의 경우 다이옥신에 심하게 오염된 돼지고기 8천9백50t 가운데 5천8백여t이 이미 시중에 유통된 사실이 드러났다. 돼지고기가 국산인지 수입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일반인들로서는 평소 즐기던 삼겹살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닭고기도 마찬가지 양상을 낳았다.

수입산 고기를 많이 쓰는 햄버거 체인점을 비롯해 피자점, 양식 레스토랑 역시 불똥을 피할 수 없었다. 오염된 닭이 낳은 계란을 원료로 만든 상당량의 유럽산 초콜릿과 비스켓에 대해서도 판매금지령이 내려지고 있다. 또 국내 일부 컵라면회사가 네덜란드산 계란가공품을 수프제작용으로 수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이제는 출출할 때 즐겨 찾는 컵라면마저 멀리 하게 됐다.

④ 인체에 위험한 양은 얼마인가 - 기준치 국가마다 천차만별

어느 정도의 다이옥신이 몸에 쌓이면 위험한 것일까. 세계보건기구는 다이옥신의 '1일 섭취 안전치'를 몸무게 1kg당 14pg(피코그램(pg)은 1조분의 1g, ${10}^{-12}$g)으로 설정했다. 즉 체중 60kg의 성인이라면 하루에 60-2백40pg의 범위를 넘는 다이옥신을 섭취하면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허용치는 국가나 기구마다 천차만별이다(표). 한국의 경우 아직 독자적으로 마련한 규제치가 없다.

다이옥신의 양에 대한 규제는 음식에 대해서도 이뤄진다. 이번 벨기에산 육류 파동의 경우 유럽연합이 허용하고 있는 기준(1g당 1-3pg)에 비해 다이옥신의 양이 수백-수천배에 달했다. 산술적으로 따져보면 성인이 삼겹살 반근(3백g)을 먹었을 때 세계보건기구의 안전치를 넘어선다.


(표)국가기구별 다이옥신 허용치


모유에 의해 아기에게 전달되는 다이옥신의 양도 문제다. 작년 9월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는 서울과 인천에 거주하는 산모 10명의 모유를 분석한 결과 모유지방 1g에서 평균 18pg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 모유가 아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정해지는 안전치를 살펴볼 때 안심할 수 있는 값이 아니다. 즉 아기가 이 모유를 매일 먹는 경우 몸무게 1kg당 하루 평균 무려 52pg의 다이옥신이 쌓인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양이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단지 쥐나 원숭이를 비롯한 실험동물에 대해 치사량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실험용 쥐에 1ng(나노그램(ng)은 10억분의 1g, 즉 1ng은 1천pg)만 투여해도 즉시 사망한다는 결과가 있다.

⑤ 어떤 위험이 초래되는가 - 몸의 기능 무차별 공격, 심하면 발암 가능성

다이옥신의 위험이 최초로 밝혀진 계기는 1949년 미국 몬산토사의 제초제 제작공장이 폭발한 사건이었다. 당시 제초제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오랜 기간 피부병 등으로 고생하자 다이옥신에 대한 독성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재 세계보건기구는 다이옥신을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한 상태다.

하지만 체내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지는 아직 명확치 않다. 단지 다이옥신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어떤 증상들이 많이 나타나는지에 대한 연구가 주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다이옥신의 양을 표현하는 수치는 일반인에게 도무지 감이 와닿지 않는 미미한 값이다. 이 정도의 극소량이 어떻게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일까.

인체에서도 이처럼 적은 양으로 몸의 기능을 조절하는 물질이 있다. 호르몬이다. 호르몬이란 생물의 성장, 생식, 행동을 비롯한 전반적인 생리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다. 호르몬이 혈액을 타고 목표지점에 도착해 세포를 자극하면 몸에 필요한 생리작용이 시작된다.

다이옥신은 바로 호르몬의 역할을 방해한다. 예를 들어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의 작용을 억제함으로써 배란이나 임신과 같은 여성 고유의 생식기능을 막아버린다. 마치 자신이 진짜 호르몬인 것처럼 몸 안에서 휘젓고 다닌 결과다. 그래서 다이옥신을 비롯한 각종 유해화학물질을 환경에서 유입된 가짜 호르몬이라는 의미에서 ‘환경호르몬’이라 부르기도 한다(과학동아 98년 7월호 ‘환경호르몬 공포’ 참조).

현재까지 알려진 인체 호르몬의 종류는 1백여종에 달한다. 만일 이 수많은 호르몬의 작용을 몸 곳곳에서 방해한다면 신체의 기능이 온전할리 없다. 무차별적으로 몸의 생리기능을 억제할 뿐 아니라 심한 경우 암을 일으킬 수도 있는 요주의 물질이다.

다이옥신은 몸 안에 들어오면 호르몬처럼 혈액을 타고 돌아다닌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호르몬은 도달해야 할 목표 지점이 있다. 이에 비해 다이옥신은 조건에 맞는 곳이면 어디든 붙어버린다. 바로 지방 성분이다.

다이옥신은 물에 녹지 않는 지용성 물질이다. 그래서 몸 안에 지방이 싸여 있는 곳에 달라붙어 차곡차곡 쌓인다. 물론 우리의 몸은 다이옥신과 같은 외부의 침입자를 분해시키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다이옥신의 양을 절반으로 줄어들게 만드는데 보통 10여년이 걸린다고 한다. 일단 몸에 들어오면 좀처럼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몸에서 다이옥신이 사라지는 속도가 다르다.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지방의 양이다. 같은 양의 다이옥신이 몸에 들어왔다 해도 지방질이 많은 비만한 사람에게 아무래도 다이옥신이 안착할 기회가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몸의 군살을 빼는 다이어트가 다이옥신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인 셈이다.

⑥ 대책은 무엇인가 - 기름기 제거하고 고기 먹을 것

유럽산 육류와 가공품만 피하면 안심해도 좋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어쩌면 다이옥신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많은 음식물에 포함돼 있을지 모른다. 한 예로 얼마 전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미국에서 수입된 돼지고기도 다이옥신에 심하게 오염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미국산 축산물의 오염도는 일반적 수준이라고 해명했지만, 과연 그럴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수입산을 제외한 국산이라면 안심할 수 있을까. 역시 장담할 수 없다. 현재 국내에서는 1만여개가 넘는 소각시설이 다이옥신에 대한 별다른 규제 없이 가동되고 있다. 또 한국은 ‘국제 농약 시험장’이라 불릴 만큼 숱한 외국 농약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내 식품에 어느 정도의 다이옥신이 포함돼 있는지 제대로 측정한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유럽산 육류만 피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국가 차원에서 다이옥신을 비롯한 각종 유해화학물이 음식 어디에 어느 정도 함유돼 있는지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다. 아울러 일반인들은 다이옥신의 위험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속시원한 해법이 없다. 사실 오랜 기간 동안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물질이 어느 한순간 사라질 수 있는 묘책이란 있을 수 없다.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생활 속의 실천지침’은 주로 음식조절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마디로 다이옥신이 농축된 지방을 피하라는 것. 즉 육류에 붙어있는 지방조직은 가능한 한 제거하고 생선은 내장이나 아가미, 껍질과 같이 지방이 많은 부위를 되도록 먹지 말아야 한다.

또 가급적 저지방 음식을 섭취하고, 야채와 육류를 골고루 먹을 것을 권장한다. 어찌보면 일반적인 다이어트 전략을 소개하는 것과 비슷하다.

담배를 끊는 것도 빠지지 않는 권고 사항이다. 담배 연기에서 적지 않은 다이옥신이 검출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8일 국립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교토대의 한 연구팀이 담배 한갑을 피울 때 평균 1.8pg의 다이옥신이 연기와 함께 배출된다고 밝혔다. 국내 흡연자의 경우 1인당 하루 평균 담배소비량은 1.12갑이다. 그렇다면 흡연자들은 매일 2.106pg의 다이옥신을 배출하고 있는 셈이다.

199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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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조사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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