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의 눈물이 지난해 12월 3일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12월 10일 1부 오모계곡의 붉은 바람을 방영했다. 1월에는 2부 ‘사하라의 묵시록’(7일), 3부 ‘킬리만자로의 눈물’(14일), 에필로그(21일)를 방영한다. 이 글에는 제작진이 307일간 아프리카에 머무는 동안 직접 보고 듣고 느꼈던 아프리카, 방송에서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담았다. 본 기사는 제작진인 장형원 PD와 한학수 PD가 과학동아 독자들을 위해 구술했던 내용을 기자가 재구성했다.
“아호유~(에티오피아 수리 족 언어로 ‘안녕’이라는 뜻).”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아프리카에 발을 디딘 지 150일, 아직도 낯설고 어색하지만 간단한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다. ‘북극의 눈물’과 ‘아마존의 눈물’을 잇는 새 작품 ‘아프리카의 눈물’을 제작하기 위해 머나먼 이곳까지 왔다.
우리는 동부(에티오피아, 케냐)와 서부(말리, 니제르), 남부(모잠비크, 남아공)를 돌면서 아프리카의 현재를 봤다. 케냐에서는 살 곳을 잃어가는 동물과 사람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말리와 니제르에서는 점점 넓어지는 사하라를 직접 체험했다. 일터와 살 곳을 찾아 남아공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현지인에게 공격당하는 살벌한 현장도 만났다. 지금 아프리카는 지구의 기후가 변하면서 자연과 가족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곳은 점점 삭막해지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최고의 단백질 음료 ‘소피 주스’
아프리카 부족민들을 가까이에서 촬영하기는 쉽지 않았다. 콩이나 옥수수, 커피 또는 약간의 돈을 주고 촬영 허가를 겨우 받아냈다. 이슬람 문화권이라 외간 남자에게 얼굴을 보일 수 없어 카메라만 대면 얼굴을 돌리는 여인들을 찍는 것도 쉽지 않았다. 촬영 허가를 받으면 마을 귀퉁이에 텐트를 치고 머물렀다. 세수가 거의 불가능해 열흘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인스턴트 밥과 통조림으로 끼니 때우기를 며칠, 차를 타고 하루 걸려 읍내까지 나와야 겨우 몸을 씻거나 편히 잘 수 있었다. 그만큼 아프리카 부족민들의 생활은 원시적이었다.
불편함도 컸지만 자연과 함께 하는 행복도 큰 곳이었다. 그들은 휴대전화도 안 터지고 인터넷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았지만, 혈연관계로 맺어진 부족 단위로 생활하면서 가축과 가족처럼 살고 있었다. 이들은 오래전에는 가족마다 조와 수수를 키우거나 물고기를 잡고 가축을 키워 물물교환을 하면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다. 기후변화가 뜨거운 바람과 메마른 땅을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부족민들은 소를 가족으로 생각해 쉽게 죽이지 않는다. 가축을 잡아 고기를 얻는 것보다 우유를 짜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 에티오피아의 수리 족과 냥가톰 족은 건강한 소의 목에 화살로 구멍을 낸 다음 피를 뽑아 마신다. 물이 항상 부족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하루에 여자는 1번, 남자는 2~3번 마신다. 피를 많이 뽑지 않기 때문에 소가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이들은 소가 병이 들어서 죽기 직전이거나 특별한 축제가 열릴 때에만 소를 잡는다. 고기를 얇게 떠 바짝 말리면 겨울까지 버틸 수 있는 훌륭한 식량이 된다.
주술사는 소의 몸에서 굵고 기다란 장을 뽑아 점괘를 본다. 특별히 정해진 방법은 없다. 우리 민간신앙에서 쌀을 뿌려 점을 보는 것처럼, 주술사는 소 내장이 꼬인 모양이나 방향을 보고 적당한(?) 분석을 내놓는다. 소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가까운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이가 하얄수록, 입술 원반 넓을수록 미인
“와하와하와하, 시익, 시익.”
휘둥그레진 큰 눈과 위협적으로 드러난 이를 보니 야만적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니제르의 사하라 유목민인 풀라니 족은 매년 미남선발대회 ‘게레올’을 연다.
이 대회에 출전한 남자들은 저마다 큰 눈과 하얀 이, 잘 다듬어진 몸매를 자랑하며 ‘이 마을 최고 미남’인 듯 뽐낸다. 그러면 가장 어리고 예쁜 이웃마을 여자 2명이 각자 맘에 드는 남자 앞에 다가가 몸을 한번 만진다. 가장 많이 선택받은 사람이 올해의 미남으로 선정된다.
풀라니 족 남자들은 게레올에 나가기 위해 1년간 몸을 다듬는다. 몸에 좋은 허브를 먹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알제리에서 수입한 돌가루로 얼굴을 새빨갛게 칠하고 건전지 속 검은 가루(이산화망간)에 버터를 섞은 화장품으로 입술을 검게 바른다. 하얗고 고르게 난 치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눈 흰자와 치아가 하얘야 예쁘다고 생각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벌려 이를 드러낸다. 9월쯤 열리는 이 재미난 대회를 촬영하기 위해 우리는 지난해 3월부터 촬영 허가를 받는 것과 주인공을 섭외하는 일에 열을 올렸다. 대회 참가자들을 상대로 면접을 치렀다. 엄격한 심사 끝에 뽑힌 건 미소년인 이브라힘이었다. 그는 키가 190cm로 크고 늘씬한데다 외모가 귀엽고 친근했다. 게레올에 처음으로 출전한다는 점도 강점이었다. 지난 가뭄에 소 30~40마리를 모두 잃었다는 가슴 아픈 사연도 마음을 끌었다. 하지만 우승자는 근육이 탄탄한 드레바단바디였다. 그는 게레올에 몇 차례 출전했던 경험이 있는데다, 소 4마리를 팔아 장신구를 치렁치렁 둘렀다. 코가 뭉툭하고 귀여운 이브라힘과 달리 코가 얄팍하고 긴 것도 장점이었다. 풀라니 족 여인들은 남성의 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여인들도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수리 족 여인들은 결혼하기 직전, 입술에 구멍을 뚫어 원반을 끼운다. 처음엔 작게 뚫었다가 그 크기를 점점 넓히는데, 원반의 크기가 클수록 더욱 아름답다고 느끼기 때문에 결혼 지참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 손가락으로 입술을 활시위처럼 당겨 원반을 넣는 모습을 보면 ‘무겁지는 않을까, 저러다 입술이 끊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다행히 흙으로 얇게 빚은 원반은 보기보다 가볍다.
입술을 까맣게 문신하는 여인들도 있다. 풀라니 족은 입술과 잇몸을 까맣게 물들여 이를 더욱 하얗게 보이도록 한다. 바늘뭉치로 입술을 수백 번 두드리면서 숯검정으로 검게 물들인다. 시술이 막 끝난 입술을 보면 마치 커다란 도넛을 물고 있는 것처럼 퉁퉁 부어 있다. 그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아픔을 꾹 참는다. 이 고통을 이겨내야 진정한 풀라니 족 여인이 되기 때문이다. 무섭거나 아프다고 도망가는 여자는 평생 치욕적인 겁쟁이로 놀림을 받는다.
부족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외모를 꾸미는 사람들을 보며 촬영 내내 ‘모든 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문화에 따라 미의 기준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들의 눈에는 오히려 수술로 코를 높이거나 낮추고 얼굴을 갸름하게 만드는 문명인들이 잔인하게 보일 것이다.
아프리카의‘ 뜨겁고 검은’ 눈물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들이 일으키지 않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사하라 사막이 남쪽으로 1년에 약 2km씩 커지고 있고, 모래바람이 호수 바닥에 조금씩 쌓이면서 진흙 밭이 돼버렸다. 동물들은 늪처럼 변한 호수에 빠져 죽기도 한다.
가장 슬픈 장면은 아우군구 강 근처에서였다. 건기(5~6월)에 찾아오는 사막 코끼리들이 떼로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어린 녀석들만! 어린 코끼리들은 코가 짧아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물을 빨아들이지 못하고, 이동하는 무리에서 뒤처지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 체액이 밖으로 흐른 탓에, 눈물을 흘리며 죽은 것처럼 보였다. 시체가 썩어 머리가 뚫리거나 꼬리가 빠진 녀석들도 있었다.
케냐에서는 초식동물의 60~70%가 이상고온과 가뭄으로 죽었다.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살고 있는 맹수도 부족한 먹이와 고온을 이겨내지 못한다. 몇몇은 공원을 탈출해 민가로 침입했다. 온순한 코끼리도 생존의 위협을 받아 난폭해졌다.
밤새 옥수수 밭을 싹쓸이 하거나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그래서 근처에 살고 있는 마사이 족들은 소를 공격하는 사자를 독살하고, 농부들은 밤마다 교대로 밭을 감시한다. 손전등을 비추거나 공포탄을 쏴 코끼리들을 공원 쪽으로 보낸다.
가축들이 무더위와 가뭄으로 죽자, 사람들도 고통 속에 빠졌다. 먹을 게 없어 까끌까끌한 나뭇잎(야쿠하)까지 먹는다. 야쿠하는 너무 거칠고 맛이 써 어린이들이 먹으면 소화기관이 망가진다. 결국 만성적인 구토와 설사에 시달려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말라리아에 걸리기 쉽다고 하니 걱정이다.
물과 초지를 차지하기 위해 부족 간에 전투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에티오피아 냥가톰 족과 케냐 북부에 사는 투르카나 족 사이에 벌어진 전투와 긴장상황을 목격했다. 투르카나 족이 내전이 빈번한 수단과 소말리아에서 들여온 총을 들고 북쪽으로 올라왔다. 냥가톰 족도 가족과 가축을 지키기 위해 총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점점 큰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남아공으로 이주한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현지인들에게 공격 받는 경우도 잦아졌다. 어떤 이는 산 채로 불에 타죽었다. 우리는 이 싸움을 지켜보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이들이 왜 목숨 걸고 전쟁을 치르는가. 이들은 왜 물과 초지를 잃어버렸을까. 지구의 기후변화에 책임이 없는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느지막이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곳곳에 쓰레기 산이 쌓였다. 지금 당장은 먹고 사는 것, 편해지는 생활이 중요해 아무도 심각성이나 대책을 생각하지 않는다. 쓰레기 산이 높아지는 만큼 도시에는 빈민이 늘어나고, 부족들의 터전은 줄어든다. 우리를 향해 순박한 미소를 보내던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아호유~(에티오피아 수리 족 언어로 ‘안녕’이라는 뜻).”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아프리카에 발을 디딘 지 150일, 아직도 낯설고 어색하지만 간단한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다. ‘북극의 눈물’과 ‘아마존의 눈물’을 잇는 새 작품 ‘아프리카의 눈물’을 제작하기 위해 머나먼 이곳까지 왔다.
우리는 동부(에티오피아, 케냐)와 서부(말리, 니제르), 남부(모잠비크, 남아공)를 돌면서 아프리카의 현재를 봤다. 케냐에서는 살 곳을 잃어가는 동물과 사람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말리와 니제르에서는 점점 넓어지는 사하라를 직접 체험했다. 일터와 살 곳을 찾아 남아공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현지인에게 공격당하는 살벌한 현장도 만났다. 지금 아프리카는 지구의 기후가 변하면서 자연과 가족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곳은 점점 삭막해지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최고의 단백질 음료 ‘소피 주스’
아프리카 부족민들을 가까이에서 촬영하기는 쉽지 않았다. 콩이나 옥수수, 커피 또는 약간의 돈을 주고 촬영 허가를 겨우 받아냈다. 이슬람 문화권이라 외간 남자에게 얼굴을 보일 수 없어 카메라만 대면 얼굴을 돌리는 여인들을 찍는 것도 쉽지 않았다. 촬영 허가를 받으면 마을 귀퉁이에 텐트를 치고 머물렀다. 세수가 거의 불가능해 열흘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인스턴트 밥과 통조림으로 끼니 때우기를 며칠, 차를 타고 하루 걸려 읍내까지 나와야 겨우 몸을 씻거나 편히 잘 수 있었다. 그만큼 아프리카 부족민들의 생활은 원시적이었다.
불편함도 컸지만 자연과 함께 하는 행복도 큰 곳이었다. 그들은 휴대전화도 안 터지고 인터넷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았지만, 혈연관계로 맺어진 부족 단위로 생활하면서 가축과 가족처럼 살고 있었다. 이들은 오래전에는 가족마다 조와 수수를 키우거나 물고기를 잡고 가축을 키워 물물교환을 하면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다. 기후변화가 뜨거운 바람과 메마른 땅을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부족민들은 소를 가족으로 생각해 쉽게 죽이지 않는다. 가축을 잡아 고기를 얻는 것보다 우유를 짜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 에티오피아의 수리 족과 냥가톰 족은 건강한 소의 목에 화살로 구멍을 낸 다음 피를 뽑아 마신다. 물이 항상 부족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하루에 여자는 1번, 남자는 2~3번 마신다. 피를 많이 뽑지 않기 때문에 소가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이들은 소가 병이 들어서 죽기 직전이거나 특별한 축제가 열릴 때에만 소를 잡는다. 고기를 얇게 떠 바짝 말리면 겨울까지 버틸 수 있는 훌륭한 식량이 된다.
주술사는 소의 몸에서 굵고 기다란 장을 뽑아 점괘를 본다. 특별히 정해진 방법은 없다. 우리 민간신앙에서 쌀을 뿌려 점을 보는 것처럼, 주술사는 소 내장이 꼬인 모양이나 방향을 보고 적당한(?) 분석을 내놓는다. 소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가까운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이가 하얄수록, 입술 원반 넓을수록 미인
“와하와하와하, 시익, 시익.”
휘둥그레진 큰 눈과 위협적으로 드러난 이를 보니 야만적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니제르의 사하라 유목민인 풀라니 족은 매년 미남선발대회 ‘게레올’을 연다.
이 대회에 출전한 남자들은 저마다 큰 눈과 하얀 이, 잘 다듬어진 몸매를 자랑하며 ‘이 마을 최고 미남’인 듯 뽐낸다. 그러면 가장 어리고 예쁜 이웃마을 여자 2명이 각자 맘에 드는 남자 앞에 다가가 몸을 한번 만진다. 가장 많이 선택받은 사람이 올해의 미남으로 선정된다.
풀라니 족 남자들은 게레올에 나가기 위해 1년간 몸을 다듬는다. 몸에 좋은 허브를 먹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알제리에서 수입한 돌가루로 얼굴을 새빨갛게 칠하고 건전지 속 검은 가루(이산화망간)에 버터를 섞은 화장품으로 입술을 검게 바른다. 하얗고 고르게 난 치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눈 흰자와 치아가 하얘야 예쁘다고 생각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벌려 이를 드러낸다. 9월쯤 열리는 이 재미난 대회를 촬영하기 위해 우리는 지난해 3월부터 촬영 허가를 받는 것과 주인공을 섭외하는 일에 열을 올렸다. 대회 참가자들을 상대로 면접을 치렀다. 엄격한 심사 끝에 뽑힌 건 미소년인 이브라힘이었다. 그는 키가 190cm로 크고 늘씬한데다 외모가 귀엽고 친근했다. 게레올에 처음으로 출전한다는 점도 강점이었다. 지난 가뭄에 소 30~40마리를 모두 잃었다는 가슴 아픈 사연도 마음을 끌었다. 하지만 우승자는 근육이 탄탄한 드레바단바디였다. 그는 게레올에 몇 차례 출전했던 경험이 있는데다, 소 4마리를 팔아 장신구를 치렁치렁 둘렀다. 코가 뭉툭하고 귀여운 이브라힘과 달리 코가 얄팍하고 긴 것도 장점이었다. 풀라니 족 여인들은 남성의 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여인들도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수리 족 여인들은 결혼하기 직전, 입술에 구멍을 뚫어 원반을 끼운다. 처음엔 작게 뚫었다가 그 크기를 점점 넓히는데, 원반의 크기가 클수록 더욱 아름답다고 느끼기 때문에 결혼 지참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 손가락으로 입술을 활시위처럼 당겨 원반을 넣는 모습을 보면 ‘무겁지는 않을까, 저러다 입술이 끊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다행히 흙으로 얇게 빚은 원반은 보기보다 가볍다.
입술을 까맣게 문신하는 여인들도 있다. 풀라니 족은 입술과 잇몸을 까맣게 물들여 이를 더욱 하얗게 보이도록 한다. 바늘뭉치로 입술을 수백 번 두드리면서 숯검정으로 검게 물들인다. 시술이 막 끝난 입술을 보면 마치 커다란 도넛을 물고 있는 것처럼 퉁퉁 부어 있다. 그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아픔을 꾹 참는다. 이 고통을 이겨내야 진정한 풀라니 족 여인이 되기 때문이다. 무섭거나 아프다고 도망가는 여자는 평생 치욕적인 겁쟁이로 놀림을 받는다.
부족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외모를 꾸미는 사람들을 보며 촬영 내내 ‘모든 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문화에 따라 미의 기준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들의 눈에는 오히려 수술로 코를 높이거나 낮추고 얼굴을 갸름하게 만드는 문명인들이 잔인하게 보일 것이다.
아프리카의‘ 뜨겁고 검은’ 눈물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들이 일으키지 않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사하라 사막이 남쪽으로 1년에 약 2km씩 커지고 있고, 모래바람이 호수 바닥에 조금씩 쌓이면서 진흙 밭이 돼버렸다. 동물들은 늪처럼 변한 호수에 빠져 죽기도 한다.
가장 슬픈 장면은 아우군구 강 근처에서였다. 건기(5~6월)에 찾아오는 사막 코끼리들이 떼로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어린 녀석들만! 어린 코끼리들은 코가 짧아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물을 빨아들이지 못하고, 이동하는 무리에서 뒤처지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 체액이 밖으로 흐른 탓에, 눈물을 흘리며 죽은 것처럼 보였다. 시체가 썩어 머리가 뚫리거나 꼬리가 빠진 녀석들도 있었다.
케냐에서는 초식동물의 60~70%가 이상고온과 가뭄으로 죽었다.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살고 있는 맹수도 부족한 먹이와 고온을 이겨내지 못한다. 몇몇은 공원을 탈출해 민가로 침입했다. 온순한 코끼리도 생존의 위협을 받아 난폭해졌다.
밤새 옥수수 밭을 싹쓸이 하거나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그래서 근처에 살고 있는 마사이 족들은 소를 공격하는 사자를 독살하고, 농부들은 밤마다 교대로 밭을 감시한다. 손전등을 비추거나 공포탄을 쏴 코끼리들을 공원 쪽으로 보낸다.
가축들이 무더위와 가뭄으로 죽자, 사람들도 고통 속에 빠졌다. 먹을 게 없어 까끌까끌한 나뭇잎(야쿠하)까지 먹는다. 야쿠하는 너무 거칠고 맛이 써 어린이들이 먹으면 소화기관이 망가진다. 결국 만성적인 구토와 설사에 시달려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말라리아에 걸리기 쉽다고 하니 걱정이다.
물과 초지를 차지하기 위해 부족 간에 전투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에티오피아 냥가톰 족과 케냐 북부에 사는 투르카나 족 사이에 벌어진 전투와 긴장상황을 목격했다. 투르카나 족이 내전이 빈번한 수단과 소말리아에서 들여온 총을 들고 북쪽으로 올라왔다. 냥가톰 족도 가족과 가축을 지키기 위해 총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점점 큰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남아공으로 이주한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현지인들에게 공격 받는 경우도 잦아졌다. 어떤 이는 산 채로 불에 타죽었다. 우리는 이 싸움을 지켜보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이들이 왜 목숨 걸고 전쟁을 치르는가. 이들은 왜 물과 초지를 잃어버렸을까. 지구의 기후변화에 책임이 없는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느지막이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곳곳에 쓰레기 산이 쌓였다. 지금 당장은 먹고 사는 것, 편해지는 생활이 중요해 아무도 심각성이나 대책을 생각하지 않는다. 쓰레기 산이 높아지는 만큼 도시에는 빈민이 늘어나고, 부족들의 터전은 줄어든다. 우리를 향해 순박한 미소를 보내던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