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톡’
"기자님 안녕하세요! 저희가 이번에
물수제비 기계를 다 만들기는 했는데요…."
불길했습니다. 모바일 메신저 알람으로 뜬 메시지 첫 문장에 ‘는데요’라니. 분명 그 뒤에 좋지 않은 말이 붙을 게 뻔했습니다. 메시지를 클릭해 마저 열어봤습니다.
"장마가 길어져서 저수지에서
물수제비 기계 시연하기에는 위험해
일정을 미루게 됐습니다.
아이템을 변경해도 될까요…?"
맞습니다. 이 메시지를 받은 8월 초는 뉴스에 연일 장마와 홍수 소식이 전해질 때였습니다. 메이커 잭키 님이 7월에 땀을 뻘뻘 흘리며 완성한 물수제비 기계가 손가락 시린 11월호에 소개되는 이유죠. 산 넘고 물 넘고 계절까지 넘어 드디어 물수제비 기계가 강가로 나갔습니다.
속도, 회전, 입사각… 물수제비 3가지 조건
8월 말, 물수제비 기계가 기억 너머로 잊혀져 갈 때쯤 유튜버 사물궁이 님의 도발이 잭키 님을 다시 움직이게 했습니다. 과학기술 지식을 소개하는 사물궁이 님의 도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요. 과학동아 8월호에 소개됐던 ‘토마토주스 기계’도 사물궁이 님의 ‘이건 긱블이 만들어 주겠죠’라는 한마디 말에서 시작됐습니다.
이번엔 물수제비가 생기는 원리를 영상으로 소개하며 긱블을 소환했습니다. 먼저 물수제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부터 잠깐 알아볼까요.
누구나 한 번쯤 납작한 돌을 잔잔한 수면 위에 날려 ‘통, 통’ 튕겨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물에 빠지지 않고 수면에서 돌을 튕기는 것을 물수제비라고 합니다.
사물궁이 님은 ‘어떻게 하면 물수제비가 잘 만들어지는지’ 연구한 리데릭 보퀘트 프랑스 리옹1대 물리학과 교수를 소개했습니다. 보퀘트 교수는 돌이 날아가는 속도와 회전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근거로 돌이 날아가는 속도와 회전수로 돌이 튕길 수 있는 횟수를 계산한 방정식을 만들어 2003년 국제학술지 ‘미국물리학저널’에 게재했습니다. 정말 외우고 싶진 않게 생겼지만 수학적으로는 꽤(?) 간단해 보이는 방정식입니다. doi: 10.1119/1.1519232
보퀘트 교수는 이후 직접 실험까지 감행했습니다. 알루미늄 원반을 자동으로 발사하는 장치를 만든 것이죠. 원반이 수조의 수면에 부딪히는 순간을 고속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했습니다.
반복된 실험 끝에 그는 알루미늄 원반이 물 위에서 가장 잘 튕기는 조건을 찾았습니다. ‘둥글고 납작하며 지름이 5cm인 돌’이 ‘초속 2.6m 이상의 속도’로 ‘수면과 20도의 각도를 유지할 때’였죠. 20도보다 작은 각도에서는 돌이 수면과 너무 많이 접촉해서 운동에너지가 감소해 잘 튕기지 않았습니다. 또 20도보다 큰 각도에서는 돌이 튕기는 각도가 점점 커지면서 물에 가라앉았고, 45도보다 큰 각도에서는 물속에 바로 잠겼습니다. doi: 10.1017/S0022112005006373
보퀘트 교수 이야기를 한창 하던 사물궁이 님이 뜬금 긱블을 소환합니다.
“긱블에서 최고의 물수제비 기계를 만들어 주겠죠?”
돌멩이 던지는 사람 팔 모사
유튜브 각이 나왔다 싶은 긱블의 잭키 님은 저번처럼 마지 못하는 척하며 도발에 응했습니다. 보퀘트 교수의 연구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물수제비 기계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돌이 수면과 맞닿을 때의 ‘입사각’입니다.
물론 보퀘트 교수가 20도라는 답을 주기는 했지만, 그건 모를 일입니다. 보퀘트 교수의 실험 환경과 긱블이 물수제비를 날릴 강가는 여러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죠. 실제 강가에서 몇 도의 각으로 날려야 가장 잘 튕길지 예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입사각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기계를 설계했습니다. 사람의 팔 동작을 생각하면서 말이죠. 사람이 돌을 던질 때 입사각에 영향을 끼치는 건 크게 세 개의 관절입니다. 팔 전체를 움직이는 어깨 관절, 아래 팔을 움직이는 팔꿈치 관절, 그리고 손목 관절이죠.
잭키 님은 어깨 관절과 팔꿈치 관절이 결정하는 팔 전체의 각도를 상하 조정 장치와 좌우 조정 장치 둘로 나눠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손목 관절과 비슷하게 돌멩이의 입사각을 조정하는 부위도 따로 만들었죠. 이들 장치는 레이저 가공을 의뢰해 주문 제작한 뒤, 잭키 님이 용접으로 이어붙였습니다.
다음은 회전력입니다. 물수제비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돌멩이는 그냥 앞으로만 발사돼선 안 됩니다. 강하게 회전하면서 앞으로 날아가야 하죠. 사람이 공을 던질 때도 회전력이 발생합니다. 공이 손가락을 타고 빠져나가는 순간에 자연스럽게 회전이 걸립니다.
잭키 님은 돌멩이의 회전을 높이기 위해 손가락과 유사한 거치대를 만들었습니다. 납작한 돌멩이가 딱 들어갈 만한 얇은 두께의 상자입니다. 직육면체 상자의 네 개 옆면 중 한 면만 막혀 있어서 옆에서 보면 마치 ‘ㄷ’ 모양으로 생겼습니다.
거치대 한쪽 끝을 고정하고 힘차게 돌리면 돌멩이는 어떻게 될까요. 돌멩이와 맞닿은 상자면의 수직 방향으로 수직항력이 생기고, 이와 동시에 원운동을 하는 돌멩이가 관성력에 의해 바깥 방향으로 나아가려고도 합니다. 두 가지 힘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돌멩이는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회전수를 최대로 높이기 위해서는 역회전으로 회전수가 줄어드는 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잭키 님은 거치대를 돌리는 데 래칫이라는 기어를 이용했습니다. 래칫 기어의 톱니 모양은 마치 상어의 등지느러미처럼 생겼는데요. 톱니에 막대기를 걸쳐놓으면 래칫은 한쪽으로만 회전하고 그 반대 방향으로는 회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역회전하면 안 되는 기계에 많이 사용합니다. 잭키 님은 돌멩이 거치대가 잠깐의 역회전도 하지 않도록 거치대 고정축에 래칫 장치를 장착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돌멩이를 구할 차례입니다. 보퀘트 교수의 연구결과에서도 항상 돌멩이가 둥글고 납작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죠. 돌멩이를 구하러 나갈 수도 있겠지만, 잭키 님은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돌멩이를 만드는 건 아니고, 돌멩이 역할을 할 덩어리를 말이죠.
재료는 찰흙입니다. 틀까지 만들어서 크기와 모양이 같은 찰흙 덩어리를 114개나 찍어냈습니다. 입사각을 바꿔가며 계속 던져 볼 심산이었죠. 분명 물수제비 기계가 처음부터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참고로 여러 번 물속에 던질 거라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찰흙을 사용했습니다. 이 정도면 환경부 장관상쯤은 받겠네요.
자, 이제 던져볼 시간! 물수제비 기계를 끌고 근처 강가로 향했습니다. 받침대를 멋지게 펼치고, 그 위에 앉아 포즈도 잡아봤습니다. 입사각은 대충 어림잡아 맞췄습니다. 첫 번째 찰흙 덩어리를 장전하고 잭키 님이 힘차게 돌립니다.
‘피융~, 퐁포롱퐁퐁퐁퐁퐁퐁퐁퐁퐁퐁…’
돌멩이는 셀 수 없이 여러 번 튕기며 긱블의 촬영 카메라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강을 건넜습니다.
“우와, 저기 끝까지 가네요.”
좋아하는 건지, 안 좋아하는 건지 모를 잭키 님의 탄성이 나왔습니다.
한 발 더 발사해봤습니다. 똑같이 엄청나게 튕기며 강을 건넜습니다. 대성공에 잭키 님이 시무룩해졌습니다. 고난과 역경이 있어야 성취감도 있는 건데, 처음부터 대성공이니 맥이 빠집니다. 이제 남은 찰흙은 112발. 이거 다 쏘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결과는 더이상 좋아질 게 없습니다. 잭키 님께 맛난 실패를 제공해주실 분은 유튜브 긱블 채널에 댓글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보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