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현대) 만국 공통언어로 부활

스포츠 입장권에서 외계인 메시지까지

현재 세계에는 약 3천개의 언어가 존재한다. 이 언어에 딸린 수많은 방언을 생각하면 그 수는 몇 곱절을 넘을 것이다. 일례로 인도에는 적어도 8백50여종류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언어의 종류가 많다는 말은 그만큼 언어권이 다른 사람끼리 의사소통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의미한다. 묘하게 이런 상황에서도 세계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국가 간의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증대되고 있고, 다른 나라를 여행하거나 외제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일이 빈번해진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는 일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현재 세계에서 문법 체계를 제대로 갖춘 언어는 1백여개 정도에 머문다. 나머지의 경우 언어체계가 정립되지 않아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배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세계에서 가장 보편화된 언어인 영어의 경우 3억명 정도가 자국어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멕시코 올림픽, 경기장 밖의 신화

제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몇가지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기는 어렵다(기록상으로 최대 28개 국어를 구사한 사람이 있다). 더욱이 자국어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떨까. 한 통계에 따르면 인류의 절반 정도가 글씨를 쓰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의사소통을 한꺼번에 가능하게 하는 만국의 공통언어가 새로 등장해야 한다. 바로 아이콘이 20세기에 다시 부활한 이유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자동차가 개발되면서 현대적인 아이콘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로 인한 교통사고가 발생하자 도로에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교통신호가 등장해야 했다. 사람이 안전하게 지나다닐 횡단보도, 다니기 위험한 지역 등을 간단한 그림 부호로 표시해 운전자와 통행인 모두에게 즉각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아이콘의 등장은 단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각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다른 나라에 수출될 때 제품의 기능에 대한 설명문이 점차 아이콘으로 변해 갔다. 특히 유럽의 경우 지리적으로는 매우 가깝지만 영어, 독어, 프랑스어 등 언어가 다양한 탓에 아이콘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한 예로 가전제품의 경우 기능의 종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변하는 탓에 그 설명을 일일이 글로 옮겨 적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한 그림으로 기능을 표시하면 되지 않겠는가.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아이콘이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된 사례는 1968년 멕시코에서 열린 제19회 올림픽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세계의 언어학자와 시각 디자이너들은 세계에 통용되는 시각 이미지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 효과적인 실험 대상이 멕시코 올림픽이었다.

경기는 멕시코 시티 시내와 주변 곳곳에서 분산돼 진행됐다. 따라서 외국인이 이곳에 왔을 때 제대로 목적지에 찾아갈 수 있도록 도시의 구석구석에 필요한 장치를 설치해야 했다. 도시 전체는 온갖 아이콘으로 가득 찼다. 교통 표지판, 대회장 주변의 방향표시, 안내 포스터, 지도, 입장권, 우표 등 눈에 띄는 거의 모든 표시물들이 그림으로 표현됐다.

한 예로 호텔에서 육상경기장으로 가는 길을 살펴보자. 자주빛 선을 쭉 따라가다 보면 네거리에서 빨간 줄이 십자로 교차된다. 빨간 줄은 육상경기장으로 가는 길임을 다른 안내 포스터를 보고 이미 숙지한 상태다.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빨간 선을 따라가면 경기장에 이른다. 경기장에는 사람의 발을 그려놓아 육상경기장임을 알려준다.

입장권을 보면 더욱 감탄이 나온다. 몇번 입구로 들어가 어느 좌석에 앉아야 할지가 그림으로 일목요연하게 표시돼 있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색맹이 아닌 한 글을 몰라도 전혀 불편을 못느낄 정도”라며 격찬했다. 현재 경제적으로 후진국이라 여겨지는 멕시코에서 이미 1960년대에 이런 시도를 했다는 점은 곰곰히 되새겨볼 만하다.

아이콘이 현대인들에게 친숙해진 또하나의 사례는 컴퓨터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컴퓨터로 작업을 하려면 도스 환경에서 명령어를 쳐넣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윈도 환경에서는 화면에 제각기의 기능을 나타내는 아이콘들이 등장한다. 명령어를 몰라도 아이콘으로 표시된 프로그램에 커서를 옮겨놓고 마우스로 클릭하면 프로그램이 간단히 열린다.

컴퓨터에 아이콘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4년 애플사에서 개발한 매킨토시 덕분이다. 이로부터 불과 20년도 채 안돼 컴퓨터 아이콘은 기술적으로 상당한 진보를 이루고 있다. 아이콘을 클릭했을 때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기 위해 소리를 내거나 모양이 바뀌는 아이콘이 개발되고 있다.


1979년 일본에서 비상구 아이콘을 모집하자 3천3백여 작품이 제출됐다. 그림은 1차로 추려진 8개 후보작. 팔과 다리의 각도, 다리 그림자의 유무에서 차이가 있다. 총 행사비용이 1억원 이상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애니메이션은 ‘바보 취급’ 의미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아이콘도 있다. E메일을 주고받거나 채팅을 할 때 키보드에 있는 몇가지 자판을 이용해 간단한 아이콘을 삽입하기도 한다. 얼굴 표정을 만드는 스마일리(smiley)다. 자신의 감정을 글로 모두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글 옆에 행복한 표정을 나타내는 : ) 표시 나 반대인 경우의 : <; 표시를 하곤 한다. 이 외에도 당황한 얼굴, 의심하는 얼굴 등 가지각색의 스마일리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아이콘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자 그 모양과 의미를 통일시킬 필요성이 대두됐다. 현재 국제표준기구(ISO)는 ‘그래픽심벌 기술평가위원회’분과를 마련해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아이콘을 표준화시키고 있다. 한국은 그 일부를 수용해 국내 제품에 반영시켜 KS 마크를 표시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나 복사기에 표시되는 각종 아이콘은 ISO에서 인증된 국제적인 통용 마크다.

하지만 난점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문화권마다 똑같은 아이콘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아이콘은 주로 영어권 사용자를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컴퓨터에서 프로그램을 실행시킬 때 작동시키는 아이콘으로 사람이 달리는 모습이 그려진 경우가 있다. 사람이 달린다는 말은 영어로 ‘run’이다. 이 말은 동시에 ‘프로그램을 실행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만이 아이콘의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이해가 된다 해도 풍습의 차이에 따라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다. 한 예로 일본의 후지제록스사는 복사기 신제품을 만들 때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복사기가 예열되는 동안 액정 화면에 예쁜 아가씨가 나와 인사를 하도록 만든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 복사기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미국에 수출됐을 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액정화면이 손상된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당시 그 지역 미국인은 애니메이션이 애들이나 보는 수준 낮은 작품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런데 사무실 복사기에 버젓이 만화가 나오니 자신을 ‘바보 취급’한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화가 난 나머지 액정 화면을 깨버렸다는 얘기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그림을 추구하는 일이 반드시 어린이 취향에 맞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아이콘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 특히 컴퓨터 화면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아이콘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의미를 전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인공은 원하는 자료를 뽑아내 읽고 필요한 정보를 알아냈다.


파이어니어 10호의 그림엽서

만일 가상공간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면 이런 일이 현실화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폭로’에서 주인공은 가상공간에서 실물과 똑같은 아이콘의 세계와 만난다. 안경을 끼고 보면 눈 앞에 실제와 똑같은 모양의 사무실 공간이 떠오른다. 주인공이 필요한 서류를 찾으려면 현실처럼 서랍과 서류철에 손을 대면 된다. 마치 고대의 동굴 벽화처럼 실물과 크기나 모양이 비슷한 아이콘들이다. 만일 이런 일이 실현된다면 수많은 컴퓨터 아이콘은 더이상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아이콘은 지구 밖 다른 외계 문명과의 접촉을 시도할 때도 사용된다. 지구에서 사용되는 글자가 외계인에게 의미를 전달할리 없는 것은 뻔하다. 그렇다면 그림이 훨씬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높여주지 않을까.

이런 취지에서 실제로 1972년 발사된 파이어니어 10호에는 외계인과 접촉할 경우를 대비한 그림엽서가 탑재돼 있었다. 두명의 남녀 모습을 비롯한 그림에 몇가지 지구에 관한 정보를 담았다.

하지만 과연 외계인이 이 그림을 보고 정보를 제대로 해독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PCS 액정화면에 사용되는 다양한 아이콘들. 통화가능지역(왼쪽 위)과 베터리 충전상태(오른쪽 위)를 제외하곤 사용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PCS사용 전화 걸고 받기에 한정 - 다양한 기능 알리는 아이콘 대부분 못알아봐

PCS 보급률이 높아지는 반면 PCS를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작년 말 산업자원부에서 발간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 프로세스 확립 및 툴 개발'(1998.12.31)에 따르면, PCS의 기능을 알리는 아이콘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용자가 거의 없었다.

연구원들은 16세-46세의 남녀 56명을 대상으로 국내 3개사 제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 조사했다. PCS를 켜면 액정 화면에 몇가지 아이콘이 뜬다. 연구원들은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아이콘 24개를 보여주고 기능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응답자가 맞춘 것은 이 가운데 세가지뿐이었다. 즉 안테나 옆에 전파 발산되는 그림이 통화가능 지역을 알린다는 점, 배터리의 충전이 필요한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였다. 나머지 아이콘의 경우 맞춘 사람은 50% 이하에 불과했다. 그만큼 휴대폰에 사용되는 아이콘이 국내 사용자에게 무척 낯설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예로 로밍(사용 중인 서비스 지역을 벗어나 다른 서비스로 통신을 할 때) 기능을 살펴보자. 3사는 각각 영어로 R, Rm 또는 로밍이라 표시했다. 그런데 56명중 1명만이 뜻을 이해했다. 영어 알파벳 R이 '다시'를 뜻하는 'Re'를 연상하게 했기 때문인지 재다이얼, 재발신, 되돌리기 등으로 답한 사람이 많았다.

또다른 예로 알람 기능을 살펴보자. 아이콘은 주로 시계로 표시돼 있다. 그러나 응답자들은 이것이 시계인 것은 알지만, 시계의 어떤 기능을 나타내는지 혼란스러워 했다. PCS 폴립이 닫혀있다는 의미인 자물쇠의 경우 대부분의 응답자가 '잠금'표시, 즉 평소 가지고 다닐 때 우연히 번호가 눌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라 생각했다.

PCS는 단지 전화를 걸고 받는 일 외에 조명조정, 시간, 잠금, 화면문자 등 상요자의 편의를 위한 다양한 기능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저 전화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상문


비상구 국제표준 아이콘 - 국가간 자존심 대결 양상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아이콘은 국가간의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정해진다. 화재와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때 탈출 비상구를 뜻하는 아이콘의 예를 보자. 1979년 일본에서 비상구 아이콘을 공모하자 무려 3천3백37가지의 후보작이 제출됐다. 5단계의 엄격한 심사(인지, 디자인, 심리, 조명, 연기 속에서의 가시성)를 거쳐 최종 선정된 작품이 1982년 부터 일본에서 사용됐는데, 일본은 이 아이콘을 국제표준기구(ISO)의 화재방지위원회에 제출했다. 위원회는 일본안과 옛소련안을 두고 고심하다 일본안에 호감을 보였다. 그러자 1983년 영국(C)과 프랑스(D)는 자존심을 걸고 새로운 안을 제출해 일본의 독주를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아이콘은 일본안이다. 비상구임을 좀더 확실히 알리기 위해 영어(EXIT)와 자국어(비상문), 그리고 화살표가 추가됐다.


이모티콘

키보드로 감정 표현하는 스마일리

컴퓨터 채팅이 활발해지자 간단히 키보드를 두드려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콘인 스마일리가 급증하고 있다. 현재 스마일리는 세계적으로 1천여개 이상이 사용되고 있으며, 다른 말로 감정(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인 이모티콘(emoticon)이라 불린다.


파이어니어 10호에 담긴 그림 엽서. 외계인이 우주선을 발견했을 경우에 대비해 지구에 관한 여러 정보를 담았다.


우주에 보내는 그림 메시지 - 남성이 든 오른손은 선의의 표시

외계인이 알아차릴 수 있는 기호는 무엇일까. 1972년 3월 발사된 파이어니어 10호에는 외계인과 접촉할 경우를 대비한 그림엽서가 담겨 있다. 파이어니어 10호는 1973년 12월 목성 탐사를 마쳤으며, 2백만년 후 황소자리 눈에 해당하는 알데바란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림엽서는 알루미늄면에 도금을 한 형태인데, 미국칼 세이건이 아이디어를 내고 당시 부인이던 린다가 그림을 그렸다.

그림 왼쪽 위에는 우주에 가장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수소원자를 표현했다. 중성수소가 내는 전파의 파장(21cm)을 길이의 단위로, 주기(14억2천만분의 1초)를 시간의 단위로 나타냄을 알려준다.

아래의 15개 방사선은 우리가 사는 은하계 속에서 전파를 발신하는 중성자별의 장소와 주기를 나타낸다.
오른쪽에는 남녀 나체상이 그려져 있는데, 남성은 선의의 표시로 오른손을 들고 있고, 여성 옆에는 평균신장이 2진법 숫자 1000으로 표시돼 있다. 1000은 10진법으로 8이다. 길이의 단위가 21cm이므로 21cm x 8 = 1백 68cm임을 알린다.

아래에는 파이어니어 10호의 행로를 표현했다. 왼쪽 끝의 원은 태양으로, 파이어니어가 지구를 출발해 목성과 토성 사이를 빠져나왔음을 표시했다. 행성 상하에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표시돼 있는데, 수성까지는 1010(10진법으로 10), 지구까지는 11010(10진법 26)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 진로 추천

  • 문화인류학
  • 심리학
  • 언어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