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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정보통신

남한 KS코드까지 지원하는 단군 프로그램

북한에는 윈도용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있고, 세계를 제패한 바둑 프로그램이 있다. 지문을 읽어내는 소프트웨어가 있는가 하면, 항공교통을 통제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대체 북한의 컴퓨터정보기술은 어느 수준이며, 어떤 곳에서 이런 것들을 만들까.


해외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윈도 95용 '단군'


7천만 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을 앞당기고, 통일비용을 절약하고, 통일 후 예상되는 문제들을 사전에 방지하려면 남북통일에 대비한 정부의 정책 수립과 함께 활발한 민간교류가 필요하다. 특히 21세기 정보화사회를 목전에 두고 정보통신 분야는 통일 전·후의 정책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시급하게 됐다. 필자가 그동안 북한의 정보화에 관한 자료를 수집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북한 정보화 자료들은 주로 제3국에서 만난 북한을 방문했던 과학자를 통해 얻거나, 싱가포르의 국제전시회와 일본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또 국제학술대회에서 만난 북한 과학자와 면담 중에서 얻어낸 자료도 있고, 일본에서 내보내는 북한의 ‘조선중앙통신’, ‘금강산국제그룹’이나 ‘조선신보’ 웹사이트를 방문해 얻은 자료도 많다. 작년 4월에는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를 방문해 그곳 호텔에서 판매하고 있는 북한서적을 구매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통일원 자료실에 있는 북한 잡지와 통일원 웹사이트에 띄운 자료, 그리고 북한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북한’이 도움이 됐다.

김정일이 선물한 닌텐도 게임기

북한은 일찍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보였다. 1960년대 말 이미 ‘전진-5500’이라는 디지털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산업화는 이루지 못했다. 그후 1982년 8비트(bit) 개인용컴퓨터(PC) 시제품인 ‘봉화 4-1’을 제작했고, 현재는 16비트 PC를 생산하고 32비트의 공업화 달성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열악한 경제사정과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의 규제 등으로 하드웨어 부문은 그리 활발하지 못하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나름대로 많은 발전을 보였다. 1990년과 1995년에 각각 발간된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책자를 비교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1990년도 책자에 등장하는 컴퓨터 화면에는 ‘조선을 위하여’ 등의 문자만 보였지만, 1995년도 판에는 ‘여러가지 프로그람 만들기’라는 화면과 함께 건축 설계도까지 등장하고 있다. 또 1995년도 판의 ‘자동화 써클실’에는 조그만 로봇을 컴퓨터가 제어하는 것도 보여준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오락실에는 김정일이 어린이들을 위해 하사했다는 2백30대의 전자오락기 중 일부가 보이는데, 16비트 닌텐도게임기였다. 북한 어린이들은 이러한 전자오락을 통해 컴퓨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 정부는 국민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소프트웨어 기술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990년부터 매년 ‘전국 프로그람 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곳에 출품되는 제품은 그 질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고등중학교(남한의 고등학교) 학생이 입상할 경우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특전도 주어진다고 한다.

북한은 컴퓨터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김책공대, 김일성대학, 평성리과대, 평양전자계산기단과대 등 전국대학에서는 과거부터 컴퓨터 교육을 시켜왔고, 지금은 일부 고등중학교에서도 컴퓨터교육을 시키고 있다. 특히 평양 제1고등중학교에서는 과학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한 영재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컴퓨터 교육도 활발하다. 또한 ‘평양프로그람쎈터’(PIC)는 일본의 ‘오사카정보센터’(OIC)와 공동으로 ‘O&P 트레이닝센터’를 1996년 4월에 설립해 일반인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몰려와 다 수용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방으로 가면 컴퓨터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 나진·선봉 특구에 입주한 외국기업들은 그곳에서 컴퓨터 요원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은 나진·선봉지역에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있으며 중국의 연변과기대도 분교 설립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에서 소프트웨어를 연구 개발하는 주요기관으로는 평양프로그람쎈터 외에도 조선콤퓨터쎈터(KCC), 국가과학원, 김일성종합대학, 평성리과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전자계산기단과대학 및 은별(Silver Star) 콤퓨터기술연구소 등이 있다. 이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특징은 대부분 PC상에서 작동하는 응용프로그램이며, 특히 오락을 통해 교육시키는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종류도 다수 볼 수 있다. 최근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콤퓨터쎈터, 평양프로그람쎈터, 은별콤퓨터기술연구소의 제품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조선콤퓨터쎈터 연구원들이 설계프로그램을 이용해 문양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 웹브라우저도 개발

조선콤퓨터쎈터의 제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문식별시스템을 활용한 프로그램들이다. 수년전 북한은 이곳에서 개발한 지문식별시스템을 가지고 이집트 경찰청 입찰에 참가한 경험도 있다. 지문식별시스템을 이용한 것으로는 금빛말(Golden Horse)이라고 부르는 체질 분류 및 진단 체계, 은행예금자 확인기, 지문출입관리시스템 등이 있다.

또 이곳 제품으로는 고려전자의술체계와 같은 의료 프로그램, 사무경영소프트웨어와 상점 판매원용 PC-POS 지능출납체계 와 같은 사무자동화 프로그램, 날염 문양이나 주단 의장을 설계하는 설계지원 프로그램, 항공교통지휘시스템 등이 있다.

조선콤퓨터쎈터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기술명세서 등을 보면, 최신 정보처리기술을 많이 터득하고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들이 개발한 항공교통지휘시스템은 유사한 러시아 제품보다 우수하고 독일 제품보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한다. 또 1993년부터 평양 국제비행장에 도입돼 정상가동 중이라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그들이 개발한 POS(Point Of Sales) 시스템은 북한의 많은 백화점에서 사용되고 있다.

중국 연변에서 만난 한 조선콤퓨터쎈터의 연구원은 일본의 요청으로 인터넷 상의 웹브라우저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이 자유롭지 못할 텐데 어떻게 테스트하냐고 묻자, 인터넷을 모방한 LAN을 구축하고 거기서 하고 있다 했다. 북한 과학자들은 인터넷에 관해 매우 잘 알고 있는데도 국가정책으로 구현되지 못해 매우 답답하고 안타까울 것이나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다.

조선콤퓨터쎈터에서는 또한 대형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했다. 그중 하나인 ‘국내 콤퓨터 망에서의 발명 및 특허 자료검색체계’는 1996년 12월에 있었던 제7차 ‘전국 프로그람 경연대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국제개발기구(UNDP)의 지원을 받아 데이터베이스 개발과제를 수행한 경험이 바탕이 된 것이다.

인도와 소프트웨어 협력

평양프로그람쎈터(PIC)는 1986년에 창립됐다. 창립 당시 10명이었던 연구원은 이제 1백2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주로 20-30대의 청년들로 매우 유능한 듯하다. 1996년 9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컴덱스 아시아’에 PIC 전시장이 개설된 바 있는데, 3명의 PIC 연구원이 와서 제품에 대한 설명과 데모를 했다.

그중 책임자급인 백 실장은 평양전자계산기단과대학을 나와 평성리과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청년으로 매우 활발하고 능력이 있었다. 그는 싱가포르 외에도 일본, 러시아, 카자흐스탄, 인도 등 여러 곳에 다녀본 경험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3개월 간 체류한 것을 보아 북한이 인도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협력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평양프로그람쎈터는 평양 고려호텔, 대외보험총국, 평양시 피복총국, 남포항을 비롯해 1백여개 대상 기관에 경영프로그램, 기술준비프로그램 등 60여 종을 개발해 보급했다. 또 수십여건의 해외 프로그램을 주문받아 개발하기도 했다. ‘창덕’(MS-DOS 용, 윈도용 문서편집기)이나 ‘단군’(MS-DOS용, 윈도용, 매킨토시 OS용, UNIX 용) 등과 같은 일반 프로그램의 수출도 하고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영문판 윈도95에서 우리말 입출력을 할 수 있게 하는 전처리 프로그램인 단군이다. 이것은 북한의 국가코드는 물론 남한의 KS코드까지 지원하고 있다. 즉 남북한 양쪽에서 모두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에서는 한글을 입력할 때 한글 자모를 사용하는 일반방식은 물론, 발음에 따라 영자로 입력하는 발음식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영자타자에 익숙한 사람에게 편의를 주고 있다.

평양프로그람쎈터에서 개발돼 컴덱스 아시아에서 전시됐던 제품들로는 창덕과 단군 이외에도, 전자출판 및 인식 프로그램(인식률 95%), 2차원(‘들’) 및 3차원(‘산악’) 건축설계 지원체계, 그리고 데이터베이스관리체계(DBMS)인 ‘고향’과 노래방 기기인 ‘가라오케’ 등이 있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는 북한 공대 학생들. 북한은 현제 16비트 PC를 생산하고 32비트 공업화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바둑대회에서 우승한 은바둑

은별콤퓨터기술연구소는 1995년 설립됐으며, 연구원들의 평균 연령은 26세다. 조선중앙통신의 발표에 따르면 연구원들은 대부분 평양 제1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종합대학 등 유명 대학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이곳은 일본 기후에 지사를 두고 웹페이지를 통해 제품을 선전하고 있으며, 도쿄에 있는 북한자료 취급 전문서점에서도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필자가 구매해 시행해 본 이곳 제품은 모두 한장의 CD-ROM 안에 들어 있었고 윈도95 상에서 작동했다.

은바둑(Silver Baduk)은 1998년 8월 일본에서 열린 제4회 포스트배 세계 컴퓨터바둑대회에서 1등상을 획득한 바둑 프로그램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적용했으며, 컴퓨터와 인간의 대국, 인간과 인간의 대국(인터넷 이용)이 가능하다.

‘태권도’라는 프로그램은 기본자세와 기본동작 훈련, 응용, 체력단련, 특수기술, 호신술 등 다양한 태권도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우표’ 폴더 안에는 1946년부터 1996년까지 발행된 3천7백여종의 우표가 수록돼 있고, 연도별 주제별 등 다양한 검색기능이 있으며, 문자와 음성 설명, 확대기능을 갖추고 있다.

열악한 통신분야

북한의 통신분야는 남한에 비해 매우 열악한 상태이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이러한 격차가 크다. 하지만 북한에서 나오는 ‘과학의 세계’ 1996년 2월호에 실린 ‘과학 연구와 국제 정보 통신망―인터네트’와 ‘정보고속도로’를 읽어 보면 북한의 과학자들도 인터넷이나 초고속통신망에 관해 매우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면에서도 1993년에 이미 호주와 연결시험을 해 성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아직도 인터넷 도입이 안되고 있다.

북한 웹사이트로는 일본에서 내보내고 있는 ‘조선중앙통신’ 웹사이트와 ‘금강산국제그룹’이 만든 웹페이지가 있다. 조선중앙통신 웹사이트는 과학기술에 관한 내용은 많지 않으나 컴퓨터프로그램경연 등 정보통신과 관련된 기사는 가끔 볼 수 있다. 금강산국제그룹의 웹페이지는 주로 일본사람에게 북한 관광을 종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북한의 관광, 사업, 요리, 미인, 나진·선봉, 어린이, 질문과 대답 등의 난이 있으며, 음악을 듣고 비디오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화면이 작고 해상도가 좋지 않아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내용 중에는 북한의 과학기술이 남한보다 10년은 뒤떨어지고, 평양에서 전화선을 통해 일본의 인터넷과 연결하려 했으나 통신회선 속도가 느려서 할 수 없었다는 등 솔직함도 엿보인다. 인공위성 안테나 사진을 보여주면서 평양에 있는 보통강 국제호텔에서는 CNN, NHK, STAR TV를 볼 수 있다는 기사도 있다.

기타 북한 관련 웹사이트로 통일원이 만든 웹사이트와 폴 바커(Paul Bakker)씨의 북한 방문 웹사이트, 미국 산호세 머큐리지 기자의 북한 방문 웹사이트 등이 북한 정보를 제공한다.

북한의 정보화는 경제사정의 악화와 심각한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드웨어 부문은 국내자본의 부족과 외국 투자 유치의 부진으로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통신 분야는 국가가 주력해서 광통신 케이블을 구축하고 있으나 역시 자본의 부족과 기술적 문제에 봉착해서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다만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계속 많은 발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남한의 하드웨어 기술과 합치고 북의 이론적 연구와 남의 산업화 기술을 접목할 때 더욱 경쟁력 있는 연구개발이 되리라 본다. 특히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눈앞에 두고 남북한의 기술 격차를 줄이고 정보화사회의 조기 정착을 기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정보통신기술 분야의 남북 교류와 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져야만 한다.

실제로 1994년부터 3년간 계속해서 중국 연변에서 열린 ‘Korea 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에는 매년 20명 내외의 북한학자가 참석해 화기애애한 가운데 진지한 학술토론을 전개했다. 1996년에 이르러 남북과 중국 대표단은 정보처리용어 통일안, 자판배치 공동안, 우리글자 배열순서 공동안 및 부호계 공동안에 합의를 봄으로써 앞으로의 남북한 학술교류에 있어 매우 고무적인 하나의 이정표를 만들었다. 하루속히 남북한 컴퓨터기술자가 남북을 왕래하면서 기술교류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붓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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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박찬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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