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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물리학과 김제완 교수

대한민국 과학기술상(과학상)수상자


과학시술상(과학상)ㅒ수상한 김


물질의 근본을 좇는 입자물리학자 김제완 교수는 중성미자 연구를 계속하면서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이라면 장소와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할 계획이다.

물질을 한없이 쪼개면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 분자, 원자, 원자핵과 전자, 쿼크와 렙톤? 입자물리학자들은 물질을 쪼개고 쪼개 물질의 궁극구조를 밝히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한꺼풀씩 물질의 본 모습이 드러남에 따라 인류는 수많은 혜택을 누려왔다. 분자나 원자구조가 밝혀짐에 따라 인간에게 유용한 새로운 물질들이 속속 탄생했고, 원자핵이 붕괴되면서 방출되는 엄청난 에너지와 각종 방사선은 에너지혁명과 의료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컴퓨터를 비롯 모든 가전제품도 전자의 발견이 이루어낸 커다란 혜택 중의 하나다. 쿼크와 렙톤도 이에 못지 않은 대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 물리학과 김제완 교수(58)는 '물질의 근본은 무엇일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다. 지금 막 껍질을 벗고 있는 쿼크라 불리는 소립자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그것이 인류에게 어떤 혜택을 가져다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입자물리학자다. 그는 올해 과학의 날에 대한민국과학기술상 중 과학상을 수상했다.

국민학교 졸업 이후 첫 상

그의 수상 이유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렵다. 쿼크로 이루어진 중(重)입자의 성질을 규명하는 연구와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남긴 중성자별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neutrino)를 연구한 공로가 과학상의 수상 이유다.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책상 앞에서 여러 색깔의 사인펜으로 초신성도 그리고 중성자별도 그려놓고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일반 사람들에게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학문의 최첨단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 일반대중들을 위해서 따로 시간을 내서 과학 대중화에 투자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는 최근 대중과학서인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여기에는 빛소립자 쿼크 반물질 블랙홀 암흑물질 초신성 등 현대 물리학과 우주론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가지 난제들이 아주 알기 쉽게 소개돼 있다.

-상 받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상 받으신 기분이 어떻습니까.

"고맙습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이후 상이라고는 한번도 받아보질 못해서 조금은 얼떨떨합니다. 하도 오랫동안 남이 상받는 것만 구경하다 보니까 어떤 때는 나도 한번 받아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잘나서 상을 받았다기보다는 주위에서 많이 도와준 덕택이지요.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상 한번 받지 못했다는데 호기심이 끌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물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과학상 수상자로서 과학자의 어린 시절이 어떠했을까라는 궁금증도 풀 겸. "제가 농잠(農蠶)학교를 다녔다면 쉽게 이해하시겠습니까.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6·25사변을 만나 상주에 있는 농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누에 치는 방법을 가르치는 잠과와 농과가 있었는데 저는 두과 모두 별 흥미가 없었어요. 자연히 성적이 놓을 리가 없었지요. 60명 중에 40등 정도의 성적을 유지한 걸로 기억합니다. 단 수학 하나는 잘했습니다. 수학경시대회는 빠짐없이 참가했으니까요. 물론 거기서도 입상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형과 함께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누가 빨리 수학문제를 푸는가가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김교수의 형(김제필)은 현재 서울대 수학과 교수다. 김교수 연구실 바로 윗방이 형의 연구실이라고 한다. 그런 성적으로 어떻게 서울대에, 그것도 수재들만 모인다는 물리학과에 입학했느냐고 묻자 "운이 좋았다"고 웃어넘긴다. 한참 뜸을 들이고서는 "수학은 자신 있었고 영어도 그런대로 주워 섬겼기 때문에 입시 준비를 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고 말한다.

-특별히 물리학과를 택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입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일본 도쿄에서 장사를 하는 분이 집에 들르셨습니다. 뭐 읽고 싶은 책이 없냐고 해서 당시 한창 인기가 있었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유가와 히데키가 쓴 책을 사다 달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책 두권이 왔는데 하나는 정말 어려운 '장(場)의 양자론'이란 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극미의 세계'라는 수필집이었습니다. 장의 양자론은 읽다가 어려워서 포기했지만 수필집을 단숨에 읽고 아주 작은 물질의 세계를 다루는 물리학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유가와는, 자연은 아주 복잡한 곡선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를 아주 작게 분해하면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직선의 세계로 바꿀 수 있다는 소립자의 기본 철학을 수필집에서 설파했고, 수학을 좋아했던 어린 학생은 이 책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 것이다.

농잠학교 시절에 비교하면 대학시절은 매우 행복했다고 한다. 서로 토론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고 비록 원조물자지만 돌려가며 읽을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간직한고 있는 슬레이터의 '이론물리학입문' 역시 원조물자임을 증명하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몇분 되지는 않았지만 선생님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신 김철수 선생님이 외국 학회지에 기고할 논문을 쓰고 계시는 모습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어요."


중성미자를 통해본 태양의모습. 92년 5월에 개최된 국제천제물리학에서 발표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

당시 동료로는 지금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김정욱교수를 비롯 남상부 김재관 교수 등 쟁쟁한 멤버들이 버티고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언 잉크를 찍어바르며 공부하던 세미나 친구들이 모두 유학길에 올라 한때는 외톨이가 되기도 했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1년 후에는 김교수도 청운의 뜻을 품고 애틀란타의 애모리대학으로 갔으나 그곳에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없음을 깨닫고 곧바로 입자물리학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콜롬비아 대학으로 옮겼다. 60년대 초반 그곳에는 23명의 교수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 11명이나 되는 곳. 원자핵의 크기를 잰 라비를 비롯 타운스 와인버그 킹 등이 포진하고 있다.

-유학 시절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었습니까. 혹시 키가 작아서(김교수는 유난히 키가 작다)…

"어렸을 때야 키도 작고 힘도 없었으니까 행세를 못했지만 유학가서는 키가 작아 곤란을 겪은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국내에서는 자신 있었던 수학 실력이 딸려 고생했지요. 브롱크스를 비롯 뉴욕의 명문고 출신들은 어찌나 수학을 잘하는지, '펄펄 난다'는 표현은 그럴 때 쓰는 것임을 실감했습니다."

김교수는 1967년 중입자 중 전기적 성질을 띤 이타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취득한 후 일리노이 대학으로 옮겨 연구조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저는 입자물리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오기로 결심을 한 후에는 이론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국내에서는 실험을 할 수 있는 가속기 등이 전무했지요."

지금도 이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김교수의 설명이다. 국내의 입자물리학이 이론쪽으로는 국제적 수준에 접근하고 있지만 실험쪽은 투자의 부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막 실험쪽을 하고 들어오는 유능한 연구인력도 많고 국내에서도 새싹들이 쑥쑥 성장하고 있는데 선배로서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이 말을 하는 동안 김교수의 얼굴에는 어두움이 완연했다. 자신이 전공을 바꾸는 수모를 겪었으면서도 아직까지 기반도 마련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를 괴롭히고 있는 듯했다.

-미국 텍사스에 설립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SSC(초전도거대가속기)의 한국측 대표를 맡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그 일을 앞장서서 하는 이유도 바로 우리나라의 입자물리 실험분야에 좋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4천만 달러 정도를 투자하면 10년 동안 2백명에 가까운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아직까지 투자 재원이 확보되지 않아 고민입니다."

이론만 비대한 국내 입자물리학

SSC는 80억달러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국제공동거대프로젝트. 물론 이 프로젝트가 당장 인류에게 눈에 보이는 선물을 선사하지는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지금의 전자혁명에 버금가는 또다른 혁명을 가져다 줄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이 김교수의 주장이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지금 막 태어난 아이에게 장차 커서 무엇이 되겠느냐고 묻는 것은 너무 성급하지 않느냐"고 답한다.

-이번 과학상 수상 이유는 초신성 관련된 연구가 나오던데 천문학쪽으로 전공을 바꾸시기라도 했습니까.

"아, 그거는요. 제가 초신성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초신성이 폭발하면 무게에 따라 중성자별을 남기기도 하는데, 이때 중성자별의 엄청난 에너지가 중성미자라는 특수한 형태로 방출됩니다. 중성미자로 방출되는 에너지는 빛으로 방출하는 에너지의 백배나 되지요. 이 중성미자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중성미자는 빛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물질과 상호작용도 안하므로 우리들이 전혀 느낄 수 없는 입자입니다. 따라서 중성미자를 통해 우주를 볼 수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보를 입수할 수 있습니다." 김교수는 국제학회에서 보고된 중성미자를 통해 본 태양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중성미자 연구가 활성화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태양 내부의 모습도 알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도 수십억개의 중성미자가 우리 몸을 통과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김교수가 중성미자 연구를 하게 된 동기는 1978년 친구인 김정욱 교수의 도움으로 1년동안 존스홉킨스 대학에 객원교수로 가면서부터. 1960년대 말부터 확인된 약작용(중성미자도 약작용을 함)과 전자기작용의 통일이 이루어지면, 1860년대의 전자기력의 통일에 이은 또하나의 쾌거가 이루어진다. 맥스웰의 전자기력 통일은 오늘날의 전기통신혁명을 가능케 했다.


DSC 건설사업에 한국측을 대표해 김교수가 서명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모두 과학자

-물리학을 지망하는 후학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지요.

"저를 포함해서 우리 학생들이 한가지 단점이 있어요. 과제가 주어지면 기가 막히게 문제를 풀어가는데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는데는 아주 약합니다. 아마 입시제도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래더만이 한 말 중에 어린이들은 모두 과학자인데 학교만 들어가면 과학자의 소질을 잃어버린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고정화된 틀 속에서 손에 쥐어주는 교육만을 시키는 학교 교육을 비꼰 말이지요. 지금 우리가 바로 그건 것 같습니다. 기초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그 틀을 과감히 깰 필요가 있어요."

요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추세는 과거와는 달리, 우수한 학생들이 물리학을 회피하고 대우가 좋은 금융이나 비즈니스쪽으로 몰리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런 경향이 나타나지 않고 있어 다행이지만, 하루빨리 입시제도가 바뀌어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 김교수의 바람이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들을 소개해주시지요.

"학문의 세계가 나이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60이 다가오니까 이제 어느 정도 정리할 시간이 된 것 같기도 하군요. 중성미자에 대한 연구를 더 해볼 예정이구요. 아까 이야기했던 일천한 국내 입자물리학실험 분야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설 생각입니다. 후학들에게 빚을 갚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또하나 제가 공부한 분야를 일반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겠습니다."

사실 김교수는 그동안 대중매체에서 어떤 일을 부탁해도 그것이 자기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일이라면 거부하지 않았다. 원고집필은 물론 TV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고 호킹 박사를 비롯 유명한 석학들이 우리나라를 찾아 대중강연을 할 때도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좇아다녔다.

언제인가는 기자가 찾아가 양자역학이 어려워 잘 이해가 안된다고 하자 "처음부터 모른다고 하지말고 우선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일부터 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대중한테 과학을 전달하는 일이라면 시골 국민학교라도 달려가겠다는 것이 현재 김교수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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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정경택 기자
  • 김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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