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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제비의 자식 사랑 부부사랑

바야흐로 꽃피는 시절, 강남에서 온 제비가 집안에 찾아들 때다. 세상 인심은 부귀를 좇지만 제비는 가난한 집을 등지지 않고 해로운 곤충만 먹으며 사람을 가까이 하는 길한 새다. 제비는 천적이 너무 많아 이를 피해서 집안으로 들어와 사람에게 의지하게 됐다고 한다. 제비의 집은 참새나 할미새 등 다른 새는 물론 쥐, 뱀 등의 표적이 된다. 흥부네 집에서 한 마리만 남기고 새끼들을 죄다 잡아먹은 것도 구렁이였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제비가 집안 깊숙이 집을 지으면 오히려 좋아했다. 제비가 처마 깊숙히 들어오는 것은 사람에게 경계심을 덜 느낀다는 것이고 그만큼 집안의 인심이 후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목숨 걸고 전해준 봄소식

우리나라에서 여름을 난 제비는 소위 ‘강남’이라는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살던 제비가 가장 많이 겨울을 나는 곳은 인도차이나(타이)지역이라고 한다. 이들의 하루 이동거리는 2백-6백km 정도인데, 단숨에 목적지까지 이동해 가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체력이 부치거나 경험이 미숙한 녀석들은 중간 지점에서 쉬거나 먹이를 먹고 이동한다. 우리나라의 남서해안이나 동남아의 작은 섬에서 쉬어 가는 제비 떼를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봄이면 찾아오는 제비를 봄소식을 전하는 친근한 전령으로 여기지만, 제비들의 여행은 실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을 지내던 제비들은 겨울이 다가와 먹을만한 벌레들이 줄어들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어차피 굶어 죽을 바에야 죽음을 각오하고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것이다. 강남에서 우리나라로 이동해 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제비들이 떼지어 지내면서 그곳의 생활여건이 한계에 달하고 우리나라 지방에 봄이 오면 새로운 먹이가 많아지므로 또다시 목숨을 걸고 이동한다. 그러나 오가는 도중 이들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도중에 센바람을 만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지쳐 죽거나, 비바람이라도 친다면 떼죽음을 당하기 일쑤다. 인공위성을 이용해 관측한 결과 우리나라를 떠난 제비들이 따뜻한 강남의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달하는 경우는 전체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머리 좋은 흥부네 제비

목적지까지는 경험이 많은 이들이 지난번에 갔던 길을 기억하고 무리를 이끄는 것으로 알려졌다. 낮에 이동할 때는 태양을 이용해 방향을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밤에는 별이나 달이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제비는 한 번 찾은 집을 다시 찾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목표지역을 찾아가서 예전에 살았던 집안에 다시 찾아드는 수효는 매우 적다. 경희대 조류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에 머물렀던 집으로 다시 찾아오는 비율은 어미 새가 5%, 새끼 새가 약 1% 정도라고 한다. 이동 도중 많은 수가 죽고 방향을 못 잡아 목표지점에서 이탈해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끼 때 다리를 다쳤다가 흥부의 도움을 입고 성장해 이듬해에 보은의 박씨를 물고 찾아온 제비는 1%을 가능성을 실현한 매우 머리 좋고 정성스런 제비였던 셈이다.

옛 속담에 “제비가 어르면 비가 온다”고 했다. 이는 제비의 습성과 관련된 것으로 매우 과학적인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다는 것은 지면에 바싹 붙어 날면서 사람 곁을 스치고 다니는 것을 말한다. 제비의 먹이가 되는 날개미 같은 곤충들은 습도가 높고 흐린 날이면 날개가 무거워져 지면 가까이로 내려온다. 또 빗방울이라도 들라치면 풀숲이나 나뭇잎에 숨기 위해 지면으로 내려온다. 이런 때 제비는 지면 가까이 내려온 곤충을 잡기 위해 낮게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비가 어르는 것은 주변에 저기압이 형성돼 있고 습도가 높은 상태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지표이며, 곧 비가 올 징조인 것이다. 날렵한 사람을 가리켜 ‘물찬 제비’라고 하는데, 제비가 수면 가까이 있는 곤충을 사냥하면서 물을 스치는 재빠른 행동에서 비롯된 말이다.

꼬리 깃털로 비행조절

제비는 땅 위나 나뭇잎에 붙어 있는 벌레나 곤충보다는 주로 공중으로 다니는 곤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몸놀림이 재빠르다. 이들의 비행 속도는 최고 시속 2백50km에 이르고 평균 시속은 50km 정도다. 이들은 날렵한 고속비행에 적당한 유선형의 몸을 가지고 있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몸매가 미끈한 사람을 제비 같다고 하는 것도 제비의 유선형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끝이 두갈래로 갈라진 꼬리 깃털은 비행기의 뒷날개처럼 정교하고 미세한 비행을 조정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꼬리를 잘라버린 제비들은 비행능력이 떨어져 먹이를 구하는데 드는 시간이 보통 때보다 월등히 많이 걸리는 것으로 관찰됐다.

제비는 짝짓기할 때 암컷이 수컷을 고른다. 암컷 제비가 수컷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꼬리의 모양이다. 일단 수컷의 꼬리가 길수록 암컷이 좋아한다. 또한 꼬리의 길이 못지 않게 좌우대칭도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다. 꼬리가 길면서도 대칭을 이뤄 날렵하게 보일수록 잘 나가는 제비인 셈이다. 비행능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꼬리 깃털이기 때문에 암컷들은 이것을 보고 얼마나 생존력이 있고 자식들을 잘 먹일 수 있는 수컷인지를 판별하는 것이다. 우수한 새끼를 낳으려는 본능적 행동으로도 해석된다.

알은 주로 암컷이 품지만 수컷이 가끔 교대해주기도 하며, 또한 부화한 새끼를 키우는데 있어서도 부부는 완전히 협동한다. 새끼를 키울 때는 어마어마한 양의 곤충을 잡아 먹여야 하므로 부부가 잘 협동해야 한다. 암수가 교대로 쉬지 않고 새끼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는데, 보통 2-3분에 한 번 꼴로 하루 5백여회 이상 들락거린다. 교원대 박시룡교수는 “한번에 물어온 곤충은 평균 18마리로 새끼를 키우는 3주 동안 약 15만마리의 곤충을 잡아 먹인다”고 밝혔다. 16시간 동안 무려 6백33번의 먹이를 물어다 준 경우도 있다고 한다. 1분30초에 한 번 꼴로 하루 최고 7천마리의 곤충을 잡아온 셈이다.

부부 금실의 상징

제비는 이렇게 많은 곤충을 쉬지 않고 사냥해 먹여야 하므로 부부가 금실 좋게 협동하지 않으면 자식을 옳게 키울 수가 없다. 카바레 등지에서 유부녀들을 꼬시는 남자들을 제비족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외모가 미끈하고 말쑥해서 붙인 말일 뿐 생활의 관점에서 보면 제비에게는 아주 모욕적인 말이다. 제비는 매우 헌신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동물이다. 기러기, 원앙과 함께 부부금실을 상징하는 동물로 제비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는 흔히 남자가 여자를 고르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한번 고른 여자는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양 소홀하게 대하고 금방 부부 사이에 금실이 깨지는 것을 본다. 꼬리가 미끈한, 소위 잘 나가는 수컷 제비도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식을 키울 때 아내와 협동하고 헌신하는데, 그렇게 잘 나가지도 못하는 남자들이 여자를 소홀히 대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만일 사람 사이에서도 여자가 주도적으로 남자를 고르고, 생활력과 헌신성을 기준으로 고른다면, 훨씬 금실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자신이 여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 선택됐다고 생각하는 남성이라면 어떻게 헌신적이 되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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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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