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복제소 영롱이와 유전자 조작 슈퍼벼

어미의 세포 하나로 우량 젖소가 복제됐다. 또 농약이나 병충해에 잘 견디는 '강한' 벼와 고추가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됐다. 첨단 생명공학이 만들어낸 각종 음식이 우리의 식탁을 지배할 날이 멀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젖소를 복제하고 유전자 조작으로 작물을 대량생산하기 앞서 이들이 인간과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영롱이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세포를 제공한 어미소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점이 확인됐다.


사건 1

1999년 2월 12일 오후 5시 30분 경기도 화성군의 한 목장에서 국내 최초로 복제송아지 ‘영롱’(young-long)이가 태어났다. 영롱이의 산파역은 서울대 수의학과 생명공학연구실 황우석교수팀이 맡았다. 연구팀은 과학기술부 G -7프로젝트 ‘신기능생물소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 10월부터 본격적인 실험에 착수, 올해 2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음을 알렸다.

영롱이는 최초의 복제동물 돌리와 유사한 방법으로 태어났다(밀레니엄북스 3권 ‘생명코드 AGCT’(아카데미서적) 참조). 암소와 숫소의 교배 없이 암소의 체세포 하나로 송아지가 탄생한 것이다. 어미소는 모두 3마리다. 우선 품종이 우수한 암소의 자궁세포를 얻었다. 또다른 암소로부터 난자를 채취해 유전물질을 지닌 핵을 제거했다. 이 ‘비어있는’ 난자에 자궁세포를 넣은 후 전기충격을 가해 난자와 자궁세포를 융합시켰다. 그 결과 자궁세포의 유전물질을 갖춘 새로운 난자가 만들어졌다. 이 난자는 인큐베이터에서 7-8일간 배양된 후 배반포기(blastocyst stage)까지 성장했다. 연구팀이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한 시점이다. 영롱이는 작년 5월 13일 자궁에 이식된 이후 2백75일만에 출산됐다.


2월12일 경기도의 한 목장에서 태어난 영롱이


사건 2

1999년 2월 10일 유전자를 변형(조작)시킨 농산물이 국내에서 처음 개발됐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과학기술원 생물자원부 황영수박사팀은 1990년 초부터 국내에서 소비량이 많은 8개 농작물(벼, 고추, 배추, 양배추, 담배, 토마토, 오이, 들깨) 19종의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실험을 수행해 왔다. 이 가운데 현재 벼, 고추, 배추, 들깨 등 4가지는 개발이 완료돼 상품화가 임박한 단계다.

이 벼는 제초제를 뿌려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제초제에 강한 유전자를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표적인 제초제 바스타를 살포해도 피와 앵미와 같은 잡초만 제거될 뿐이다(과학동아 98년 12월호 ‘유전자조작식품 먹어도 되나’ 참조).

고추는 병균이 침입해도 역병에 걸리지 않고 잎사귀가 푸른 빛을 유지했다. 배추는 토양박테리아(Bt)가 가지는 살충유전자를 지닌 탓에 곤충이 함부로 얼씬거리지 못한다. 들깻잎은 노화방지와 두뇌발달 촉진에 효과가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을 일반 들깻잎보다 10% 이상 더 함유했다.

기술은 세계 수준

1999년 2월 한국 생명공학의 수준을 한단계 높인 두가지 사건이 벌어졌다. 세계 과학계에서 첨단 테마로 인식되는 복제동물과 유전자조작 농작물이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만들어졌다.

영롱이가 태어남으로써 한국은 영국(양), 일본(소), 뉴질랜드(소), 그리고 미국(쥐)에 이어 5번째로 동물복제에 성공한 나라가 된다. 젖소로서는 세계 최초다.

영롱이는 보통 젖소보다 ‘성능’이 월등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전물질을 제공한 어미소의 품종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이 어미소는 연간 우유생산량이 1만8천kg으로 보통 젖소의 3배에 달한다. 또 각종 질병에 대한 내성이 뛰어나다. 55만마리 중에서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최종 선발된 5마리가 실험에 사용됐다.

하지만 제아무리 우량의 소라도 흠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자궁세포 하나에 미세하나마 질병의 조짐이나 유전적인 결함이 존재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 자궁세포에 대한 유전자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이상한 조짐을 조금이라도 보이는 세포는 모두 제거됐다. 세계적으로 처음 시도된 검증과정이었다.

유전자변형 농작물 역시 세계적인 수준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외국의 유전자변형 기술은 병충해에 강한 작물을 개발하는 전통적 단계에서 인체에 유용한 성분을 작물에 배양하는 단계로 바뀌는 추세다. 이른바 특정 기능을 갖춘 기능성 농작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번에 개발된 품종 가운데 혈압을 낮춰주는 토마토나 오메가3 지방산이 강화된 들깻잎은 미래형 농산물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김성훈 농림부장관은 “이 연구로 한국이 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세계 3대 농업기술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젖소와 농작물 두가지에 또다른 공통점이 발견된다. 정부가 빠른 시일 내에 ‘대량’으로 이들을 전국에 확산시킬 계획이라는 점이다.

우선 젖소의 경우를 살펴보자. 황우석교수는 “3년 이내에 젖소와 한우의 복제 수정란을 2천두 이상 전국 농가에 무료로 보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실 현재 영롱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복제된 수정란은 이미 80여개에 달한다. 여기에는 젖소 외에도 한우가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대리모에 성공적으로 이식된 것은 25마리다. 올해 3월경 영롱이에 이어 고품질 한우가 태어날 예정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우량종을 보급하는 일이 과연 인간과 자연에 이익만을 제공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당장은 맛좋고 영양가 높은 우량종이 농민이나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지 모른다. 그러나 멀지 않은 장래에 전국에 우량종만이 생존하고 있을 상황을 가정해보자. 각 우량종은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쌍둥이들이기 때문에 생물종의 다양성은 지극히 한정될 것이다. 만일 젖소 한 종에 치명적인 질병이라도 발생한다면 전국의 모든 젖소 중에서 살아남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된다. 더러는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어 웬만한 질병에도 견디는 개체가 있어야 ‘종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이 얘기는 다양한 시나리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런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전검토가 필수다. 영국의 로슬린연구소가 우리보다 몇년 앞서 복제동물을 만들었지만, 이를 대량으로 보급하기 보다 질병치료용으로 소량만을 만들고 있는 신중한 모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피를 응고시키는 단백질 생산 유전자를 사람에게서 추출해 양(몰리와 폴리)의 젖 생산 유전자에 이식시킨 경우다.

더욱이 우리는 이제 겨우 한마리가 태어난데 불과하다. 이 송아지가 제대로 성장하는지, 생식력이 떨어지지는 않는지 충분히 연구한 후에 ‘전국적 보급’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역병에 걸려 시들어버린 보통 고추(왼쪽)와 역병에 강한 내성을 지녀 푸른 빛을 유지하는 고추(오른쪽). 농촌진흥청은 이 외에도 7가지 작물의 유전자를 조작해  '강한' 품종을 개발했다.


다시 불붙은 안전성 논쟁

유전자변형 작물 역시 전국적인 재배를 서두르고 있는 분위기다. 농림부는 우선 벼와 고추를 올해 전국 주요 표본지역에서 현장재배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판명되면 2000-2001년 중 이들 품종의 씨앗을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유전자변형 작물이 건강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대답은 1-2년 내에 얻어지기 어렵다. 실제로 외국에서 유전자변형 작물이나 가공품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은, 1994년 미국 몬샌토사가 처음 유전자를 변형시켜 ‘무르지 않는 토마토’를 개발한 이후 현재까지 계속 치열하게 진행중이다. 농업진흥청이 발표한 이틀 후인 2월 12일 영국에서 날아든 소식은 이런 세계적인 분위기를 단적으로 대변해준다.

작년 8월 영국 로웨트 연구소의 푸스타이 교수팀은 병충해에 견딜수 있도록 유전자를 변형시킨 감자를 실험용 쥐에게 1백10일 간 먹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쥐의 면역체계가 파괴되는 부작용이 일어났다. 미국으로부터 유전자를 변형시킨 콩과 옥수수를 상당량 수입하던 영국은 금새 공포 분위기로 들끓었다. 유전자가 변형된 곡물을 결코 안심하고 먹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로웨트 연구소장이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실험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푸스타이 교수가 잘못된 실험결과를 가지고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다는 책임을 물어 그를 해고시켰다.

하지만 상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2월 12일 유럽 13개국의 과학자 20명은 푸스타이 교수의 연구결과를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그의 복직을 요구했다. 로웨트 연구소장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유럽의 과학자들이 수개월 동안 조사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유럽의 일부 환경단체들은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영국의 블레어 총리에게 사적으로 미국산 유전자변형 농산물 수입을 지지해달라며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푸스타이 교수의 연구결과는 영국 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건을 무마시키느라 푸스타이 교수의 실험이 잘못됐다고 다시 발표했다는 설명이다.

사건의 뒷얘기야 어쨌든 유럽 과학자들의 이번 발표는 유전자변형 농산물이 사람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알려준다. 다만 쥐가 질병에 걸린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변형된 유전자 때문인지는 명확치 않은 상태다.

하지만 한국의 정부는 이런 분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은 듯하다. 일례로 이 안건에 대한 국제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2월 15일부터 23일까지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는 생명공학안전성의정서 제정을 위한 제6차 실무회의가 열렸다. 세계 1백75개국이 참여해 유전자변형 농작물이나 식품을 국제적으로 교류할 때 파생되는 경제성과 부작용에 대한 논의의 장이었다.

2월 초 정부는 이 회의에 대한 준비모임을 수차례 열었다. 그 가운데 외교통상부가 주관한 한 모임에서 해프닝이 벌어졌다. 모임의 이름은 ‘생명공학안전성의 국제적 논의동향에 관한 세미나-생명공학안전성 의정서를 중심으로’였다. 정부의 관련부처 직원과 기업계 인사, 그리고 시민단체 대표들이 참여했다.

‘왕따’ 당한 시민단체

그런데 논의의 내용은 주로 ‘경제성’에 관한 것이었다. 한 예로 만일 한국이 유전자변형 농산물을 외국에 ‘수출’할 경우 그런 농산물임을 표시하는 것이 좋은지, 표시한다면 그곳에서 잘 안팔려 경제적으로 얼마나 불이익이 닥칠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한국이 어느새 수출국의 입장에 선 느낌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수입되는 콩과 옥수수의 상당량이 유전자변형 농산물임이 밝혀져 국내에서 불안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들의 안전성이 제대로 확보됐는지에 대한 의구심 역시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준비모임에서는 이 농산물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시민단체 대표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아프리카 후진국에서나 하는 얘기”라고 한마디로 무시하며 당장 외국에 내다파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왕따’를 당한 시민단체 대표들은 제대로 얘기를 꺼내지도 못한 채 돌아가야 했다.

복제소와 유전자변형 작물의 개발은 결코 ‘한국 생명공학이 이룬 개가’의 측면에서만 인식돼서는 안된다. 이들이 제공하는 우유와 고기, 그리고 쌀을 먹는 사람은 바로 국민 전체다. 당장의 경제적 이익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람의 건강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보다 많은 과학적 검토가 필요하다.

199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 농업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