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맛도 없어 보이는 젓갈을 김치에 넣지 않으면 뭔가 부족한 듯하다. 그이유는 바로 젓갈 속에 김치의 숙성을 도와주고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과 핵산이 풍부하기 때문. 해안생활과 어우러진 토기문화로 탄생한 우리 고유의 젓갈에 대해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세계 어느 나라를 다녀봐도 우리나라처럼 발효식품을 많이 먹는 나라는 드물다. 밥 한 그 릇에 따라붙는 반찬만 하더라도 김치, 된장찌개, 장국, 젓갈, 장아찌 등의 발효식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다양한 발효식품이 일상의 식생활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 은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전통문화의 역사적 배경에 근거한다.
고고학 발굴 유적에 따르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인류 생존역사는 50-60만년 전으로 올라간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주로 산 속에서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살았으나 후기 구석 기 시대로 오면 점차 강가나 바닷가에서 살게된다. 지금부터 약 1만년전 대한해협을 중심으 로한 한반도 남해안과 일본 큐슈 북해안에서는 인류 최고(最古)의 토기문화가 형성된다. 이 러한 토기문화와 바닷가의 생활이 찌개문화와 발효기술의 태동을 가져왔으리라 추측된다.
바닷가 생활에서 유래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농업이 시작되는 기원전 4천년까지 약 반만년동안 원시 토기시대가 있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해변가에서 채집한 조개와 해산물을 채소와 함께 뚝배기에 담아 바닷물로 간을 맞춘 찌개를 끓여 먹기도 하고 항아리에 저장해 구수한 맛이 나는 젓갈이나 장을 담궜을 것이다. 이것은 유럽의 원시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특유의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김이나 미역 등 해초를 먹고 해산물과 장을 섞어 토기에 끓이는 찌개를 일상 음식으로 먹는 것이 바로 원시토기시대부터 내려온 음식문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젓갈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농경시대 이전부터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에서 자리잡은 발효문화가 기원전 1천년경 한자가 개발되면서 중국문헌에 나타난다. 중국 최초의 시집인 시경(時經)이나 기원전 3-5세기에 쓰여진 중국어사전 이아(爾雅)에 이미 발효문화에 관한 문자들이 등장한다. 육장의 장(醬)은 원래 쇠고기 같은 고기를 잘게 썰어 간장과 함께 조린 육장(肉醬)을 가르키는 말이나, 점차 단백질 발효식품 전체를 뜻하게 됐고, 생선으로 담근 젓갈을 지(鮨), 고기로 담근 장을 해(醢)로 풀이하고 있다.
해산물 발효 천국
중국의 한문을 받아들여 우리 것을 기술하기 시작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삼국사기 신문 왕 3년(AD 683)의 기록 중 왕비의 폐백물품 목록을 보면 쌀, 술, 기름, 꿀, 장, 포, 젓갈, 식 해 등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식품들이 이미 상용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긍의 고 려도경에도 고려인들이 고하귀천을 가릴 것 없이 다양한 해산물을 발효시켜 먹는다고 기술 하고 있다.
16세기 유희춘의 미암일기나 임진왜란 중에 저술된 오희문의 쇄미록 등 조선시대의 문헌에 도 젓갈에 관한 글이 많이 나온다. 쇄미록에 나오는 젓갈의 종류를 보면 뱅어젓, 갈치젓, 웅 어젓, 고등어젓, 준치젓, 조기젓, 황어젓, 가재미젓, 연어젓, 대구젓, 게젓, 굴젓, 새우젓, 백하 젓, 고등어 알젓, 대구알젓, 창란젓, 아가미젓, 병어식해, 준치식해, 웅어식해, 열모기식해, 전 어식해, 식해김치 등 실로 다양한 수산발효식품들이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식해는 조선시대의 중기까지는 서울 사대부가에서 상용하던 식품이나 18세기 이후 이 지역 에서 자취를 감췄다. 현재는 함경도와 강원도의 특산품으로 알려져 있다. 식해는 절인 생선 과 밥, 고춧가루, 마늘 등을 함께 버무려 유산균 발효를 일으킨 것으로 부패하기 쉬운 생선 을 1개월 정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 식염 함량이 낮아(8% 수준) 한끼에 발효된 가 자미 한마리 정도를 먹을 수 있어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
아미노산과 핵산 풍부
곡물을 위주로 하는 우리의 음식에 빼놓을 수 없는 반찬거리가 된 젓갈. 이것은 수산업이 발달하면서 상품가치가 낮은 잡어들이나 내장, 알, 머리, 지느러미 부분들을 버리지 않고 소금에 절여 발효하는 것이 습관화된 것이다. 동남아에서는 수산발효기술이 주로 어간장을 만드는 것으로 발달한다. 기온이 높은 동남아 지역에서는 생선에 소금을 뿌리면 곧 액체의 장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간장과 된장을 먹는 우리나라에서는 어간장을 만드는 것보다 어체의 원 형을 그대로 살린 젓갈이 주류를 이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멸치젓과 새우젓인데 이들은 김 치를 만들 때 사용하는 부재료로 수요가 매우 크다. 남부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젓국도 김치 에 많이 사용된다. 이 또한 젓갈과 함께 젓국이 만들어지는 기후적인 요인 때문이다. 젓갈류 에는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 아미노산이나 핵산이 풍부하다. 이것은 김치를 발효시키는 미생 물의 먹이가 돼 김치의 숙성을 빠르게 하며 감칠맛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저염 젓갈
인천의 명소인 소래시장에 가보면 살아서 이리 저리 뛰는 새우에 소금을 붓고 버무려 독 에 넣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젓갈은 생선 대 식염의 무게를 3-4 대 1의 비율로 섞어 15℃내 외를 유지하면서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아두면 약 1-3개월 후에 먹을 수 있다. 젓갈의 맛을 결정하는 숙성은 크게 3가지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는 식염 농도, 둘째는 좋은 육질, 세째는 적당한 온도다. 식염 농도는 젓갈의 보존과 관련되면서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또 생선은 계절에 따라 저장된 지방질과 양이 다르므로 육질에 차이가 생긴다. 예를 들어 2 월에 생산되는 새우젓은 동하백젓이라 하는데 희고 깨끗하며, 3-4월에 생산되는 것은 어체 가 연하고 흰색을 띠는 것으로 풋젓이라고 부른다. 5월에 생산되는 오젓은 어체가 견고하지 못하고 붉은 빛을 나타내고, 상품으로 알려진 6월에 생산되는 육젓은 어체가 굵고 흰색 바 탕에 붉은 살이 섞여 있다. 10월에 생산되는 추젓은 어체가 가늘며 흰색을 띤다.
그리고 10-15℃의 숙성 온도는 젓갈이 잘 발효되도록 하는 적절한 온도다. 온도가 너무 낮 으면 발효가 잘 일어나지 않고, 너무 높아도 국물이 많이 생겨 맛이 떨어진다. 따라서 젓갈 을 많이 담그는 지역에서는 1년 내내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자연동굴을 젓갈의 숙성장소 로 이용한다. 식염에 절인 생선에서는 그 내장이나 몸에 들어 있는 프로테아제 등의 단백질 분해 효소와 내염성 미생물에 의해, 아미노산이나 핵산 등이 만들어진다. 또 이때 만들어지 는 휘발성 염기질소화합물에 의해 젓갈 특유의 입맛을 돋우는 냄새가 형성된다.
식염농도가 20% 이상이면 병원성 유해세균이나 부패균이 생육하지 못하므로 안전하게 저장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유통기간이 길어지고 장거리 수송 때문에 식염농도가 점점 높아져 맛 이 떨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또 건강상의 이유로 짠 음식을 기피하는 소비자들에 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 따라서 근래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냉장고에 저장하면서 유통 판매하는 저염젓갈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들 제품은 식염농도를 10% 내외로 낮추고 대신 우리 몸에 좋은 유기산, 소량의 알코올, 물엿 등을 가미해 맛과 저장성을 향상시킨 것 이다. 또 젓갈에 들어가는 고춧가루와 마늘은 항산화작용과 항균작용을 하고, 맛과 영양을 두루 갖춘 훌륭한 식품이 되게 한다.
젓갈과 식해로 알아본 발효의 기본 원리
젓갈과 식해는 모두 생선을 발효시킨 식품이지만 발효 생성물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구별된 다. 발효는 유기물(젓갈과 식해의 원료가 되는 생선)이 미생물의 무기호흡에 의해 분해되는 현상을 말한다.
젓갈의 경우에는 생선의 단백질이 미생물에 의해 가수분해 됨으로써 아미노산이나 핵산으로 분해된다. 즉 젓갈은 20%의 염분으로 몸에 해로운 미생물의 번식을 막은 상태에서 저장성 을 높이고 소화 흡수가 빠른 아미노산으로 분해된 것. 입맛을 돋구고 탄수화물을 주열량원 으로 하던 우리 조상들에게 중요한 반찬이 됐다.
식해는 생선에 밥(녹말)을 넣어 발효시킴으로써 아미노산과 핵산뿐 아니라 젖산과 같은 유기산을 만들도록 한다. 이런 발효를 젖산발효라고 한다. 젖산이 만들어지면 젖산을 분해하려는 유산균이 증가한다. 이는 정장작용에 필요한 유산균을 먹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