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서 혈관만큼 긴 통로가 있을까. 사람의 혈관을 모두 이으면 약 13만km나 된다. 지구를 두바퀴 반 정도 도는 거리다. 이 길다란 통로는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일까.
혈관은 혈액을 심장에서 몸 곳곳의 조직과 세포로 보내거나 반대로 심장으로 운반하는 통로다. 혈액에 포함된 각종 영양분, 호르몬, 산소를 공급하고 노폐물들을 배설기관으로 수송한다. 따라서 혈관의 어느 한곳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몸의 대사는 엉망이 되고, 심하면 사망하기에 이른다.
혈관의 종류에는 크게 동맥, 모세혈관, 정맥이 있다. 심장에서 나가는 것을 동맥, 심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정맥, 그리고 가늘게 가지를 치며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는 부위를 모세혈관이라 부른다. 가장 큰 것은 지름이 약 2cm인 대동맥(심장→온몸)이고 가장 작은 것은 지름이 약 0.01mm인 모세혈관이다.
피엉김이 문제
혈관은 일반적으로 내피세포로 구성된 안쪽막, 평활근세포와 탄성조직으로 된 두꺼운 중간막, 그리고 결합조직으로 된 바깥막의 3층으로 이뤄진다(그림).
심장, 판막, 혈관과 같은 순환기 계통에서 발생하는 질병은 세계적으로 성인 사망원인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 혈관과 관련된 질병이 가장 많다. 동맥경화, 협심증, 심근경색, 뇌종중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혈관은 수술이나 약물로 치료하기 어려울 때 또는 산업재해, 자동차사고,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혈관이 회복될 수 없도록 손상됐을 때 인공혈관이 필요하다.
이상적인 인공혈관이 도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많다. 꼬이지 말아야 하고 계속되는 수축과 팽창에 견디는 탄성과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 또 인체에 대한 독성이 없어야하고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특히 혈관 내면에서 혈액이 응고되지 않아야 한다.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인공혈관은 1952년 비닐온엔이란 고분자재료를 이용해 개발됐다. 현재 주로 사용하고 있는 대크론(Dacron, 의류용으로 사용되는 폴리에 스테르의 상품명)혈관은 1957년 개발됐으며, 다음해인 1958년 테플론(Teflon, 불소수지의 하나로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의 상품명) 혈관이 만들어졌다. 현재 임상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제품들이다.
인공혈관은 사용할 때 닥치는 가장 큰 어려움은 혈액이 굳어버려 구멍이 막히는 일이다. 자연혈관의 경우 안쪽에 있는 내피세포는 자체적으로 항응고물질을 분비해 혈관이 막히는 것을 방지한다. 하지만 인공혈관에 그런 세포가 있을 리 없다.
인공혈관을 자연혈관 중간 부위에 연결했을 때 자연혈관의 내피세포는 인공혈관쪽으로 자라나간다. 그러나 그 길이가 한정돼 있다. 1cm가 고작이다. 만일 5cm 길이의 인공혈관을 이식한다면 중간의 3cm 정도는 내피세포가 없는 공간이 돼버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혈관의 벽에 구멍을 많이 뚫는 방법이 사용된다. 이 구멍을 통해 주변의 영양분들이 들어와 내피세포의 발육을 촉진시킨다. 인공혈관 중간의 빈 공간이 내피세포로 메꿔질 수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뚫린 구멍들 때문에 혈관이 유영한 수축성을 지니게 된다.
인공혈관은 지름에 따라 대구경과 소구경으로 구분된다. 지름이 6mm이상인 경우를 대구경, 이보다 작은 경우를 소구경이라 부른다.
대구경 인공혈관의 경우 지름이 커서 혈액이 빨리 통과하기 때문에 혈액응고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벽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놓기 때문에 혈관이 막히는 일이 드물다.
탯줄도 활용
그러나 혈관을 이식한 초기에 이 구멍을 통해 혈액이 누출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인공혈관을 이식하기 직전에 혈관표면을 미리 환자의 혈액으로 응고시킴으로써 누출을 막는 방법이 사용됐다. 현재는 혈액단백질인 알부민, 조직의 한 성분인 콜라겐과 이를 변형시킨 젤라틴, 혈액응고성분인 피브린, 그리고 해초류에서 추출한 알긴산 등을 인공혈관 표면에 처리해 혈액 누출을 막고 있다.
이에 비해 소구경 인공혈관은 지름이 작고 혈액의 운동속도가 느리다. 그 결과 혈액이 쉽게 응고하고 혈관이 쉽게 막혀버리기 때문에 아직 사람에게 거의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소구경 혈관이 필요할 때 환자자신의 다리에 있는 특정한 정맥(복재정맥)의 일부를 절단시켜 이식하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성공률이 높은 방법이지만 환자 복재정맥의 양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혈관 개발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현재 상품화된 것으로 사람의 탯줄이나 시신, 동물로부터 얻은 생체조직을 화학적으로 처러힌 생체 인공혈관, 그리고 테플론 인공혈관이 있지만 아직 혈액의 응고나 면역반응을 일으킨다는 문제점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현재 국내에서는 4mm 이하의 미세혈관 개발에 많은 노력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