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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는 2개의 사슬을 구성하고 있는 염기들이 상보적으로 결합하는 이중나선 구조다. 염기인 아데닌(A)은 티민(T)과, 구아닌(G)은 시토신(C)과 각각 수소결합을 한다. 사슬 2개가 나선모양으로 단단하게 결합하고 있던 DNA는 RNA를 합성하는 효소가 도착하면 마치 지퍼가 열리듯이 이중나선 구조가 풀리기 시작한다. 이중나선이 풀린 부분은 2개의 단일사슬로 분리돼 하나의 RNA 사슬을 합성한다(전사).
RNA를 합성할 때 각 DNA 사슬은 상보적으로 결합하는 염기를 순서대로 찾아 잇는다. 그런데 이때 RNA에서 DNA의 아데닌과 결합하는 염기는 티민이 아니라 우라실(U)이다.
합성된 RNA는 핵 밖으로 나와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리보솜에 붙는다. RNA는 염기 3개 당 아미노산 1개씩 줄줄이 이어 붙여 펩티드 사슬, 즉 단백질을 만든다(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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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A의 꿈같은 변신
과학자들은 RNA가 유전 정보를 복사해 단백질을 만드는 기능 외에도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이 흥미롭게 생각하는 RNA의 능력 가운데 하나가 ‘효소처럼 특정 부위에 붙는 능력’이다.
효소는 단백질로 이뤄진 생체분자로 효소마다 달라붙을 수 있는 분자가 있는데, 이를 ‘표적분자’라고 한다. 침에 들어 있는 효소인 아밀라아제를 예로 들어보자. 아밀라아제는 밥에 들어 있는 녹말을 표적분자로 인식한 뒤 엿당으로 분해한다. 아밀라아제는 녹말이 아닌 단백질이나 지방은 분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1990년 미국 콜로라도대의 래리 골드 박사는 임의로 합성한 RNA도 효소처럼 표적분자와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뒤 미국 하버드 의대 잭 조스탁 박사는 이 분자에 ‘꼭 맞는’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aptus’와 ‘분자’를 뜻하는 라틴어 ‘mer’를 합쳐 ‘RNA 앱타머’(RNA aptamer)라고 이름을 붙였다.
골드 박사가 RNA 앱타머를 생산한 방식은 세포 안에서 RNA가 합성되는 방식과 다르다. 그는 100조 개가 넘는 RNA를 무작위로 합성한 뒤 암을 유발하는 단백질 같은 표적분자나 바이러스와 가장 잘 결합하는 것만 골라내는 ‘셀렉스’ 기술을 이용했다. 셀렉스를 10번 이상 반복하면 표적분자와 가장 잘 결합하는 RNA만 남는데 이것이 바로 RNA 앱타머다.
결국 표적분자와 잘 붙는 RNA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RNA 가운데 가장 적합한 RNA를 고르는 셈이다. 자물쇠와 열쇠에 비유하면 자물쇠에 꼭 들어맞는 단 하나의 열쇠를 찾기위해 무수히 많은 형태의 열쇠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때 셀렉스는 열쇠를 하나하나 자물쇠에 맞춰 어떤 열쇠가 자물쇠의 짝인지 고르는 역할을 한다.
RNA 앱타머는 표적물질과 어떤 방식으로 결합할까. 단국대 분자생물학과 정선주 교수는 “전사 과정에서 DNA의 염기와 RNA의 염기는 각각 수소 결합을 한다”며 “이처럼 RNA 앱타머도 단백질 같은 유기물이나 세균, 바이러스에 수소 결합으로 붙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RNA 앱타머의 능력은 몸에서 생성된 뒤 질병을 일으키는 항원과 결합해 제거하는 항체의 특성과 유사하다. 항체에는 항원을 알아보는 부위가 있어 아무리 닮았다 하더라도 특이성이 다른 항원은 인식하지 않는다. RNA 앱타머도 표적분자를 귀신같이 알아보는 능력이 있어 아무리 닮은 분자라도 표적분자가 아니면 절대 결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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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반응 유도하지 않는 치료제
항체와 닮은 RNA 앱타머도 항체처럼 몸속에 들어온 항원을 무력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정 교수는 “항체보다 RNA 앱타머가 질환을 치료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RNA 앱타머는 항체의 15 만큼 작아 활용하기 편하며, 표적분자가 당이나 단백질 같은 다른 물질과 결합하면 인식하지 못하는 항체와 달리 표적분자의 변장에도 속지 않는다.
게다가 항체를 치료제로 여러 번 쓰면 몸에서 내성이 생기지만 RNA 앱타머는 몸속에서 면역반응을 유도하지 않는다. 온도나 산도(pH) 같은 환경 변화에 민감해 쉽게 변성되는 단백질보다 핵산을 보존하기 쉽다는 점도 RNA 앱타머가 치료제로 더 적합한 이유로 꼽힌다.
핵산 중에서도 DNA가 아닌 RNA로 앱타머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 교수는 “DNA로도 앱타머를 만들 수 있지만 안정된 구조로 진화한 DNA보다는 RNA의 구조가 훨씬 다양하고 동적이며 표적분자에 결합하는 능력도 훨씬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RNA 앱타머를 이용하면 질환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주요 기능을 하는 인자의 경로를 억제시켜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릴 때 많이 하는 놀이 ‘얼음땡’에서 ‘얼음’을 외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것처럼, 질환을 유발하는 인자도 RNA 앱타머가 달라붙는 순간 비활성화된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개발된 치료용 RNA 앱타머가 바로 200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한 ‘매쿠진’이다. 나이가 들면 망막 신경에 있는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자라 시력 장애를 일으키는 ‘노인황반변성’이 발생할 수 있는데, 매쿠진은 혈관을 만드는 단백질에 달라붙어 비정상적인 혈관이 자라는 일을 막는다. 자물쇠를 열쇠로 잠그듯 표적분자의 기능을 잠가버리는 셈이다.
동국대 의생명공학부 김소연 교수는 “매쿠진이 개발된 뒤 여러 나라에서 RNA 앱타머를 이용한 치료제를 개발 중”이라며 “시중에서 RNA 앱타머 치료제를 쉽게 구입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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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A 앱타머로 대장암 완치 꿈꾼다
과학자들은 매쿠진이 노인황반변성을 치료하듯 RNA 앱타머가 암을 유발하는 인자에 결합해 암을 치료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 교수팀에서는 RNA 앱타머를 이용한 대장암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다. 정 교수팀은 대장암조직에서 암세포가 끝없이 분열하는 원인을 ‘베타카테닌’이라는 단백질에서 찾았다.
생명체에서 베타카테닌은 배아일 때 세포 핵 속에서 유전자 발현을 시작하는 ‘전사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성체일 때는 세포와 세포를 서로 끈끈하게 붙이는 연접조직에 있고 핵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대장암조직에서는 베타카테닌이 핵 안으로 들어가 전사를 시작한다. 세포 스스로 배아 세포인 것처럼 착각해 활발하게 분열하면서 암을 유발한다는 뜻이다.
정 교수팀은 베타카테닌의 경로를 막아 대장암을 억제하는 RNA 앱타머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그리고 베타카테닌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RNA 앱타머가 정말 대장암을 치료할 수 있는지 시험관에서(in vitro) 확인했다. 이 RNA 앱타머는 세포 안에서 베타카테닌이 축적되는 것을 방해하거나 핵 안으로 들어간 베타카테닌이 DNA에 붙는 것을 막았다. 그 결과 시험관에 들어 있던 대장암세포는 더 이상 증식하지 않았다.
정 교수는 “이 같은 결과는 RNA 앱타머로 베타카테닌의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앞으로 임상실험을 여러 번 거쳐 안전하고 확실하게 대장암을 치료하는 RNA 앱타머를 완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컴퓨터 자판을 한글모드로 지정한 다음 ‘RNA’를 입력하면 ‘꿈’이라는 단어가 된다. 정 교수가 RNA 앱타머로 대장암을 퇴치하겠다는 꿈을 이루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
다.
정선주 교수팀이 개발하고 있는 대장암 억제제 RNA 앱타머의 정확한 구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정 교수팀은 RNA의 염기 서열을 고려해 가장 안정된 입체 구조 2가지를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