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가장 작은’ 입자를 발견하기 위해 건설된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가속기가 지하 깊숙히 묻혀 있는 곳이다. 서울 여의도만한 이곳에 세계 각국에서 모인 7천여명의 과학자들이 시간을 잊고 몰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2005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거대강입자가속기(LHC) 프로젝트다.
1954년 설립된 CERN은 세계 최대 규모의 입자물리연구소로, 미국의 페르미연구소와 쌍벽을 이루는 유럽물리학의 자존심이다. 처음에는 유럽 12개국이 창립 멤버로 시작했지만, 현재의 회원국은 모두 19개국. 지금까지 이곳에서는 5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됐다. 한 연구소에서 이만한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하요새의 전기자동차
이번 출장은 한국기자 1명을 CERN에서 초청함에 따라 이뤄졌다. 9월 10일 제네바공항 근처 프랑스 쪽에 잡은 숙소에서 출발, 스위스와 프랑스 접경지역에 자리잡은 CERN을 향하는 길에는 한가로운 전원풍경이 펼쳐지고 멀리 눈 덮인 알프스가 보였다. 이를 중심으로 병풍처럼 높은 산맥이 둘러쳐 있었는데, 쥐라산맥이라고 했다. 공룡의 시대였던 쥐라기의 바로 그 ’쥐라’였다. 생각해 보니 쥐라기는 이 산맥이 형성되던 시기와 같았다.
20여분쯤 달렸을까.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위스 쪽에 있는 CERN의 정문에 도착했다. CERN은 전체 면적의 5분의 1은 스위스에, 나머지는 프랑스에 위치해 있다. 그러다보니 공항에서 숙소로, 숙소에서 CERN을 찾아오는 길이 스위스 땅인지 프랑스 땅인지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스위스는 수십개의 칸톤으로 이뤄진 연방국가다. 그런데 찾아간 날은 마침 제네바 칸톤의 휴일. 연구소 안은 워낙 넓기도 했지만 휴일이라 더욱 한산해 보였다. 띄엄띄엄 여기저기 낮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CERN 내부 안내는 영국 출신의 홍보담당자인 닐 칼더가 수고해 주었다. 그의 승용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다시 프랑스쪽에 있는 ‘델피’에 도착했다. 델피는 CERN에 있는 네곳의 가속기 컨트롤센터 가운데 하나다. CERN이 현재 가동하고 있는 가속기는 둘레가 27km로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모두 지하 깊숙이 묻혀있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어느 곳을 가속기 터널이 지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CERN에서 새로 추진중인 거대강입자충돌가속기는 현재 운영중인 가속기 설비를 완전히 들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설비로 건설된다. 가속기를 교체하는 이유는 에너지를 훨씬 높여 양성자를 더 빠른 속도로 돌리기 위한 것.
델피지역에 도착하자 칼더는 승용차를 탄 채로 무인 검색기에 신분증을 댔다. 그러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지하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시 한번 신분을 확인했다.
땅속으로 향하는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컨트롤센터 지하로 내려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순간 눈앞엔 4층 높이의 거대한 지하 시설물이 펼쳐졌다. 지금 서있는 곳은 지하 1백m 지점. 30층 이상 되는 건물의 꼭대기에서 1층까지 엘리베이터로 내려온 셈이다.
말 그대로 이곳은 거대한 ‘지하요새’였다. 사람 키의 몇배가 넘는 거대한 드럼통 모양의 시설물이 눈에 띄었다. 칼더는 “이곳은 가는 튜브를 타고 달려온 양성자들 사이에 서로 충돌이 이뤄지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거의 빛의 속도로 달려온 양성자들은 이곳에서 매초 수억번씩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 수많은 충돌에서 생기는 에너지나 궤적에 대한 데이터는 자세한 분석을 위해 수천 가닥의 전송선을 타고 컨트롤센터로 보내진다.
지하요새에는 1인승 전기자동차도 여러대 눈에 띄었다. 터널을 통해 지하로 이동, 다음 컨트롤센터까지의 거리는 6km 이상. 걸어서 한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자동차가 필요할 법도 했다. 건물을 빠져 나오면서 문득 007영화의 촬영장소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닐 칼더는 “헐리웃에서도 간혹 연락이 온다”고 답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상업영화를 찍은 적은 없다고 한다.
물리학자와 결혼하지 말라
다시 본부 건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닐 칼더에게 “CERN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느냐”고 물었더니,“물리학자와는 결혼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며 웃는다. 그만큼 괴팍하다는 뜻일까.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채 연구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나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국내의 연구소도 마찬가지지만 CERN의 분위기는 무척 자유로웠다. 자유로움에서 창의적인 발상이 나온다는 진리는 이역만리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됐다. 격식이라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양복 정장에 넥타이를 맨 사람은 연구소 전체에 단 두사람. 소장과 취재 때문에 찾아온 필자 뿐이었다.
‘작은 도시’처럼 연구소 안에는 여행사 레스토랑 우체국 은행 등 필요한 건 모두 있었다. 다만 각 건물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가 불편할 정도다.
CERN을 유명하게 한 것은 입자물리 연구만은 아니다. 오늘날 전세계인들이 정보여행을 즐기는 월드 와이드 웹(WWW) 기술이 여기서 나왔다. 월드 와이드 웹은 수천명 이상의 과학자가 있는 CERN 내부의 연구 성과를 서로 쉽게 교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물론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지만 CERN의 규모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월드 와이드 웹은 현재 인터넷과 같은 말로 쓰일 정도로 보편화됐지만, 아직도 CERN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월드 와이드 웹을 개발했던 반백(半白)의 마이크 샌달은 멀리 한국에서 기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 뭉치의 서류를 준비했다. 카페테리아에서 한시간이 넘도록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샌달은 인터넷에 지나친 상업성을 부여하지 말고 초창기의 순수함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을 말했다.
워낙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보니 CERN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우선 여가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소모임이 만들어져 있다. 매주 발간되는 소식지에는 모임의 장소와 시간, 활동을 알리는 게시물이 빽빽하게 나와 있었다.
프랑스 월드컵 때도 그랬다. 연구에만 몰두하고 스포츠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것같은 과학자들도 이때는 저마다 자신의 나라를 응원하느라 열심이었다. CMS 계획의 책임자인 미셀 니그라는 “연구소 내의 모든 모니터에서 축구를 중계했으며, 회의실마다 사람들이 모여 방송을 시청했을 정도”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미셀 니그라는 CERN에서 소장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 그러나 그의 차는 티코보다 작은 영국 로버사에서 만든 ‘미니’라는 승용차였다. ‘미스터 빈’이라는 코메디물에 등장하는 바로 그 차다. 언뜻 보기에도 출고된 지 20년은 넘어 보였다. 뒷자리에 타려면 요가를 하듯 몸을 구부려야 할 정도로 작았다. 연구소장급쯤 되면 일단 고급 승용차를 먼저 마련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했다.
한국인도 참여
CERN에 근무하는 7천여명 과학자들 가운데 자랑스런 한국인들이 몇명 끼어 있었다. 2005년 완성될 가속기에 핵심 부품으로 쓰일 검출기를 제작한 고려대 박성근교수팀이 바로 그들이다. 혹시 문제는 없을까. 이들은 검출기를 시험 가동하느라 교대로 24시간 눈을 떼지 않았다. 이들은 그토록 열정을 쏟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미지의 입자 ‘힉스’ 때문이었다.
일반인들은 상식적으로 모든 물질은 질량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의 기본 모델을 전제로 물질을 쪼개 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질량을 갖고 있지 않은 입자가 나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64년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힉스는 질량을 부여해주는 미지의 입자가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 입자는 그의 이름을 따 ‘힉스’라고 이름 붙여졌다. 힉스는 현대 물리학의 기본 모델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찾아야하는 궁극적인 입자인 셈이다.
박교수는 “힉스는 매우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확인할 수 없다”며 “거대한 가속기를 이용해 양성자를 빠른 속도로 충돌시켜 태초의 환경을 재현하는 것이 힉스를 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