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는 약 2백만-5백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됐으며, 이사벨라섬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화산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갈라파고스의 환경은 매우 다양하다. 돌과 선인장뿐인 황무지같은 섬도 있지만, 열대해역에 발달하는 홍수림(紅樹林, mangrove)이 있는 섬도 있다.
갈라파고스제도의 공식 명칭은 ‘콜론제도’이다. 이 이름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지 4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졌다. 갈라파고스의 섬들은 공식적으로 불리는 이름 외에도 1-2개의 이름을 더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산살바도르섬은 산티아고섬 또는 제임스섬으로도 불린다. 영국식 이름은 영국 해적들이 은신처로 쓰면서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갈라파고스제도는 1535년 파나마주교로 있던 스페인 출신의 프레이 토마스 데 베를랑가가 페루로 항해하던 중에 처음 발견했다. 당시 스페인 선원들은 이 섬을 ‘마법의 섬’이라는 뜻의 엔칸타다스(Encantadas)라고 불렀다.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은 이곳을 발견했을 때 큰 거북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스페인어로 거북을 갈라파고(galapago)라고 하는데, 갈라파고스제도는 한마디로 거북들의 섬이다.
처음 갈라파고스가 발견됐을 때는 무인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몇몇 섬에서 잉카시대의 도자기 파편이 발견되면서 원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하는 학자도 있다. 발견된 후 약 3백년 동안 갈라파고스는 스페인 포경선원이나 해적들이 항해 중에 식량을 얻기 위해 가끔 들렸고, 소수의 스페인 이주민들이 살았다. 그때만 해도 갈라파고스 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나라는 없었다.
그런데 1832년 에콰도르의 호세 비야밀 장군이 2백-3백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산타마리아섬을 개척하면서 갈라파고스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또 각 섬에는 스페인어로 된 이름을 붙였다. 현재 갈라파고스의 인구는 5개 섬에 약 1만5천명 정도. 주민들은 커피, 사탕수수 등을 재배하고 소, 돼지 등을 기르거나 어업을 하지만 주된 수입원은 관광이다.
갈라파고스는 1914년 파나마운하가 개통된 후부터 군사적으로 주목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이 발트라섬에 활주로를 건설하고 공군기지로 사용했다. 현재 발트라섬의 활주로는 갈라파고스를 찾는 관광객들의 관문이 되고 있다. 1985년에는 주도가 있는 산크리스토발섬에 새로운 공항이 세워졌다. 에콰도르 정부는 1959년 갈라파고스 국립공원청을 설립했고, 1964년에는 산타크루즈섬에 다윈연구소를 세워 갈라파고스의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 고립돼 한적했던 갈라파고스는 1835년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방문으로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1831년부터 1836년에 걸쳐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태평양의 여러 섬 등을 항해하면서 동식물을 관찰했다.
독자적인 진화
그는 5주 동안 갈라파고스에 머물면서 관찰한 생물상을 1845년 출판된 ‘비글호 항해기’에 기록했다. 또한 갈라파고스에서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생물진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1859년 ‘종의 기원’을 출판했다. 갈라파고스 제도를 ‘진화론의 섬’, ‘다윈 섬’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갈라파고스는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해류와 바람이 장벽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륙으로부터 동식물의 유입이 힘든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은 남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종과 비슷해 보이나, 독자적인 진화과정을 거쳐 이 섬의 고유종이 됐다. 갈라파고스에서만 서식하는 동물로는 코끼리거북(Geochelone elephantopus), 바다이구아나와 육지이구아나, 갈라파고스펭귄과 다윈방울새(finch; 참새과에 속하는 새) 등이 있다.
식물 중에도 고유종이 많다. 예를 들어 다윈이 산살바도르섬에서 채집한 71종의 콩과식물 중 38종은 이곳에서만 자생한다. 전체 생물종에 대한 고유종의 비율은 포유류, 조류, 파충류는 80% 이상, 고등식물은 약 40%로 높은 비율을 나타낸다. 또한 이웃한 섬들 사이에서조차 생물의 형태와 차이가 있다. 이것은 생물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해 다양한 형태의 종으로 분화하는 적응방산(adaptive radiation)의 결과이다.
갈라파고스에는 원주민이 없었기 때문에 생물들은 인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진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생물의 진화과정을 볼 수 있는 ‘야외 실험장’이라고 한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일대를 자세히 관찰한 결과 코끼리거북의 등껍질이 섬마다 차이가 있고 방울새의 부리형태가 먹이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보고 섬마다 다른 환경에 생물이 적응하고, 생존을 위해 경쟁한 결과 적자생존(適者生存)에 의해 형태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후일 진화론의 모태가 됐다.
열대 펭귄
갈라파고스에는 진귀한 동물들이 많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것은 체중이 2백kg에 달하는 거대한 코끼리거북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남획과 외부로부터 유입된 동물들과의 경쟁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했다. 코끼리거북은 번성기에 25만마리에 달했다고 하나 지금은 1만마리 정도로 줄어들었다.
바다이구아나는 바다에 사는 유일한 도마뱀이다. 이들은 용암바위가 있는 해변에 떼를 지어 산다. 물속에서는 다리를 몸에 붙이고 노처럼 생긴 꼬리를 이용해 헤엄친다. 이구아나도 다른 파충류와 마찬가지로 변온동물이므로 물속에 들어가면 체온이 낮아진다.
그래서 물밖으로 나오면 따뜻한 바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체온을 높인다. 이구아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뭍에서 보내고 먹이를 구할 때만 물속에 들어간다. 비록 용처럼 무섭게 생겼으나 물속이나 바위에 붙어있는 해조를 먹고사는 아주 순한 초식동물이다.
예전에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던 이구아나가 관광객이 늘어난 지금은 사람을 보면 도망간다고 한다.
갈라파고스펭귄(Spheniseus mendiculus)은 유일한 열대산 펭귄이다. 몸길이는 50cm 밖에 되지 않는다. 남극의 새라고 할 수 있는 펭귄이 적도에서 사는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이는 섬 주위를 흐르는 찬 페루해류를 따라 갈라파고스에 정착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13종의 다윈방울새(갈라파고스 핀치)는 갈라파고스의 여러 섬에 흩어져 산다. 다윈방울새는 주로 먹이의 종류에 따라 부리모양이 여러가지로 진화했다. 그래서 핀치의 부리모양은 진화론의 훌륭한 자료가 되고 있다.
갈라파고스에는 육상생물뿐 아니라 해양생물에도 고유종이 있다. 그러나 생물지리학적으로 보면 갈라파고스의 해양생물은 캘리포니아 반도에서 에콰도르 남부에 걸쳐 흔하게 볼 수 있는 종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최근 인도양과 서태평양에서 주로 서식하는 종들도 이곳에 정착하고 있는데, 빈번한 선박의 왕래로 유입된 것으로 생각된다.
바다는 육지보다 생물의 이동을 막는 장애물이 적다. 따라서 육상생물에 비해 해양생물은 고유종이 적다. 갈라파고스의 바다에는 갈라파고스 바다사자, 귀상어, 가오리 등이 살고 있으며, 바닷새로는 푸른발가마우지, 군함새 등이 있다.
갈라파고스 주변 해역은 심해의 찬 해수가 표층으로 올라오는 용승작용과, 남극에서 발원해 남아메리카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한류인 페루해류의 영향으로 수온이 15℃ 정도로 낮다. 그렇기 때문에 적도 바로 아래에 있으면서도 열대해역에서 볼 수 있는 산호초가 없다.
갈라파고스는 해수 온도가 낮은 까닭에 기온도 25℃ 이하로 낮다. 연 강수량도 1백mm 정도로 건조해 열대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자수가 자라지 않는다. 갈라파고스 주변 해역은 페루해류의 영향을 받는 냉수역과 파나마해류의 영향을 받는 온수역이 복잡하게 섞여 있어 장소에 따라 해양생물상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엘니뇨현상도 갈라파고스 해양생물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82년부터 1983년에 걸쳐 9개월 동안 계속된 엘니뇨현상으로 갈라파고스펭귄이나 작은날개가마우지의 먹이가 되는 어류가 표층에서 심층으로 이동했고, 바다이구아나의 먹이가 되는 해조류가 번식하지 못했다. 최근에도 엘니뇨현상이 심각해 갈라파고스 생물상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심해의 오아시스
1835년 다윈의 방문으로 갈라파고스는 진화론의 산실로서 생물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로부터 약 1백40년 후에 갈라파고스는 또 한번 생물학사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갈라파고스 주변의 심해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생물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주변에는 화산활동이 활발한 동태평양 해저산맥이 통과하고 있다. 1977년과 1979년 심해잠수정 앨빈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동북쪽 해저산맥의 균열부분을 조사하던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심해온천을 발견했다. 3백50℃가 넘는 고온의 물이 온천처럼 분출되고 있는 열수분출공이었다.
앨빈호가 수심 2천6백m까지 잠수하자 몸길이가 3m나 되는 관벌레, 축구공만한 크기의 조개, 게와 새우류 등이 보였다. 심해생물들은 표층에서 가라앉는 유기물을 먹고 살기 때문에, 먹이가 부족한 심해에는 생물이 많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지금까지 지배적이었다. 그러니 열수분출공 주변에서 다양한 생물군집이 발견된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후 계속된 조사로 열수분출공 주변에 어떻게 많은 생물들이 살 수 있는지에 관한 수수께끼가 풀렸다. 햇빛이 투과하는 표층해역에서는 식물의 광합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유기물에 의해 생태계가 유지된다. 하지만 빛이 없는 심해에서는 열수분출공에서 뿜어 나오는 황화수소 기체를 이용해 유기물을 합성하는 미생물이 생태계를 유지한다. 과학자들은 갈라파고스 해저의 오아시스가 다른 곳에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조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갈라파고스의 인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이들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또 최근 급증하는 관광객에 의한 생태계 파괴도 심각해지고 있다. 이미 5종의 쥐와 세 아종(亞種)의 거북이 멸종했으며, 다른 동물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때 산살바도르섬과 발트라섬에 많았던 육지이구아나는 거의 자취를 감췄고 다른 섬에서만 볼 수 있다.
야생동물의 숫자가 감소하는 것은 주민들이 마구잡이로 사냥하거나 외부에서 들여온 가축이나 애완동물 때문이다. 이런 유입종들은 토착종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먹이를 놓고 경쟁하며, 토착종을 잡아먹기도 한다. 갈라파고스국립공원청과 다윈연구소에서는 인간과 유입종에 의한 토착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것 같다.
갈라파고스는 인간의 손길이 비교적 적게 미치는 동식물의 천국이자 지구상의 유일한 ‘생물 진화의 실험장’이다. 또 열수분출공 주변에서 다양한 생물군집을 발견함으로써 지구생명 탄생의 신비를 풀 수 있는 해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 갈라파고스가 진화론과 열수분출공 이외에 우리에게 또 어떤 충격을 던져줄지 기대된다. 그리고 1백60여년 전 다윈이 이곳의 생물들을 보고 느꼈던 경이로움이 먼 훗날에도 전해질 수 있도록 생태계가 잘 보존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