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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면 행복해지는 약

기분 좋아지는 약, 비아그라, 기억력증강제…

 

(그림1) 비아그라의 작용원리


비아그라가 나온 후 인터넷의 한 유머코너에는 곧이어 나올 익살스런 약들이 쏟아졌다. 이름하여 아내에게 칭찬 안하는 남편에게 듣는 칭찬 강화제, 구두쇠를 선물 광으로 바꿔주는 구매력 강화제, 클린턴 대통령처럼 섹스광의 성욕을 감퇴시키는 반-비아그라, 남에게 말 걸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잘 듣는 쑥스러움 제거제 등이 그것이다. 그야말로 사람의 습관과 태도까지 바꾸어 주는 약이다.

생활의약의 시대

그런데 이런 약들이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우리에게는 이미 성 능력을 강화시켜주는 약이 있고, 슬픔을 잊게 하는 약이 있고, 살을 빼주는 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소한 불편을 제거해주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약, 삶의 질을 개선하고 생활을 바꾸어주는 약, 밥먹듯이 먹어 행복을 지키는 생활의약(라이프스타일 약)의 시대가 이미 우리 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1자 미국의 ‘비지니스 위크’지는 비아그라가 나온 후 삶을 바꾸는 ‘생활의약의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했다. 전에는 약의 영역이 아니었던 생활의 곳곳에 약이 침투해 인간의 행복이 약으로 지배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탈모방지제, 기억력증강제, 노화방지제, 비만제거제, 콜레스테롤감소제, 주름살제거제, 혈색강화제 등 질병을 위해 꼭 필요한 약이 아니면서도 먹으면 행복해지는 약의 리스트는 점점 길어지고, 거실의 한구석은 이러한 약들이 점령해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비만제거제 한알, 식사하고 노화방지제 한알, 점심 먹고 기억력증강제 한알, 저녁에 발모제와 수면유도제 한알씩을 매일 먹는 생활이 지금 우리 앞에 있다. 그 중에서도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된 프로작과 발기부전치료제로 개발된 비아그라는 우리의 생활과 가치를 바꾸어가는 생활의약의 선두주자다.

비아그라와 프로작

미국의 화이저사가 비아그라를 내 놓은 후 세계는 온통 이 약의 열기로 들끓었다. 1950년대 말 개발된 피임제가 임신의 공포로부터 여성의 생활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과 같이 비아그라는 이제 남성들에게 성혁명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비아그라는 원래 심장병 치료를 목적으로 동맥을 팽창시켜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심장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약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혈관 확장 기능이 심장보다는 남성의 성기에서 더 큰 작용을 했다. 신체의 다른 부분에서는 동맥과 정맥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동맥이 팽창해도 부근의 정맥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지만, 좁은 곳에 동맥과 정맥이 밀집돼 있는 성기의 경우 동맥이 팽창하면 정맥이 이에 따라 압박을 받게 된다. 넓어진 동맥으로 유입되는 혈액이 많아지는 반면, 동맥에 눌린 정맥으로는 피가 잘 빠져나가지 못해 성기에 유입된 혈액이 고여있게 돼 발기가 유지되는 것이다.

의사들은 비아그라가 정상인에게는 효과가 없고, 심각한 발기부전의 치료제로 사용돼야 함을 강조하지만, 사람들은 이 약을 결코 질병 치료약으로만 놓아두지 않는다. 비아그라는 1개당 10달러를 웃도는 비싼 약이지만, 미국에서만 3천만명, 전세계적으로 1억5천만명의 남성이 이 약을 필요로 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는 비아그라를 구하려는 남성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공개적으로 시판되지 않는 곳에서는 밀수까지 성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내년 9월까지 시판될 것이라고 한다. 비아그라는 이미 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 있고 우리의 생활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 또한 생활의약의 선두에 서있다. 프로작은 1987년 미국에서 승인돼 시판에 들어갔다. 세로토닌은 신경세포간에 정보전달과정에 기능하는 물질인데, 우울증은 세로토닌이 균형있게 작용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프로작은 이 세로토닌을 통제해 우울증을 개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약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사소한 심리적인 우울증상까지 약으로 개선하려는 욕구들이 생겨났고, 프로작은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약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약 2천만명의 미국인이 투약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1996년 한해도 2천만건의 처방이 내려졌다. 삼성의료원 신경정신과 이동수박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30대 중반의 샐러리맨들이 생활의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로 프로작을 원기소나 비타민제를 먹듯이 상용할 정도로 이 약은 생활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

치료제가 상용약으로

강건일 박사(전 숙명여대 약대교수)는 “생활의약이 대체로 처음에는 심각한 질병치료를 위해 개발됐지만, 차츰 예방차원으로 약의 복용 범위가 확대되고, 부작용이 없으면 전에는 그리 필요치 않았던 일상생활의 사소한 불편을 제거하는 용도로까지 확대되면서 일상복용약이 되는 경로를 밟는다”고 말한다.

의학적인 기적으로까지 불리는 엘리-라일리(Eli-Lilly)사의 에비스타(Evista)도 그러한 약이다. 에비스타는 원래 뼈의 밀도를 높여 튼실하게 해주는 골다공증 치료제로 개발됐다. 그러나 이것이 심장병을 예방하고, 유방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발견되면서 폐경기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골다공증 하나만을 목표로 해도 2002년까지는 20억달러 판매는 무난하다고 들떠있는 제약사는, 만일 이러한 다양한 효능이 입증된다면, 1천8백만명으로 추산되는 골다공증 수요와 2천9백만의 잠재고객을 더 가질 것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폐경기 여성들이 이 약을 수시로 복용하고 골다공증은 물론, 유방암과 심장병에 위안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느 틈에 이 약은 갱년기 여성의 행복을 보장하는 신비의 명약이 될 태세다.
 

(그림2) 프로작의 작용원리


병원이 병을 만든다

물론 치료 목적의 약이 생활의약으로 일상화되는 것은, 가벼운 불편도 감수하지 않고 약을 먹는 쉬운 길을 택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심리적 불안이나 정력이 약하다고 느끼는 정도의 불안감을 채우기 위해 프로작을 복용하고 비아그라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만 있지 않다. 계명대 조병희교수(의료사회학)는 생활 의약이 유행하는 원인으로 사회적인 수요도 중요하지만, 그 수요가 외적인 자극에 의해 만들어진 면도 크다고 주장한다. 원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제약회사가 이러한 약을 생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병원과 제약회사는 일반인에게는 사치로운 서비스로 보일 수도 있는 사소한 불편에까지 의료행위를 확대하는 경향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는 이반 일리히가 그의 책 ‘병원이 병을 만든다’에서 주장한 관점과 상통한다. 의료화라는 관점에서 영역을 확대해가는 병원과 제약회사의 교묘한 선전과 의학적 권위에 눌려 일반인은 삶에서 불요불급하지 않은 곳까지 의료의 범위를 계속 넓혀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갱년기 증상의 경우, 전에는 폐경기와 맞물려 인간이 생물학적인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겪는 과정으로 심각한 의료행위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병원과 제약회사는 이것이 치유돼야 하고 치유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강요함으로써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행복 증진?

그렇다면 이러한 의료의 확대와 생활의약이 진정으로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단기적으로 행복증진에 기여한다’는 쪽이다. 비아그라의 경우 미국 상원의원이었던 밥 돌의 예에서 보듯이 가족화합과 생활의 활력을 증진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작은 일상적인 우울함을 달래주어 활력을 제공할 수 있으며, 대머리 치료제, 다이어트 약들도 단기적으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데 기여할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약은 무엇보다 안전성과 효능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 중에서 안전성의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강건일 박사는 “이러한 약들은 아직 어느 것도 장기적인 복용으로 생기는 부작용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하다”며 장기적인 복용으로 나타날 부작용에 우려를 표했다. 불의의 약화를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는 약의 부작용이 현실화됐을 때 단기적으로 맛보았던 행복감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복용 전보다도 더 불행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 각지에서 비아그라가 심장발작을 일으킨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미국에서만 수십 건이 보고돼 미 식품의약국(FDA)이 조사에 들어간 것은 이러한 부작용이 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멀쩡한 사람이 환자로

나아가 전문가들은 약 자체가 일으킬 생리적인 부작용과 함께 사회적 부작용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로작이 생활의약이 돼가면서 새로운 양태의 우울증 환자를 양산했다는 지적이 이를 입증한다. 약이 집중해야할 병적인 우울증을 넘어 우울한 성품에까지 약의 적용범위를 늘리면서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만들고 약을 상용하게 만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비아그라가 생리적인 부작용이 없다고 판명되더라도 약을 투여해서 갑자기 남아도는 성욕이 생겼을 때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약으로 인해 섹스 가능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면 이에 따른 사회문제가 나타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특히 미국과 달리 의약분업 등 엄격한 의료제도가 잘 구비되지 않고 의약품의 소비가 합리적으로 제어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통제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의사의 처방이 없으면 복용할 수 없는 비아그라를 전세계의 일반 남성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도 이 약이 일상적인 소비로 이어졌을 때 겪게 될 사회적인 혼란과 역기능을 미리부터 걱정하게 만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생활의약의 사회적인 부작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인간 주체성의 상실이다. 인간이 사소한 불편을 주체적인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외적인 도구(약)에 의지했을 때, 결과적으로 인간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불행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공상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우울한 기분을 개선하기 위해 상시로 복용하는 ‘소마’가 개개인의 정신적인 교감과 접촉을 가로막고 인간을 개별화하고 원자화시켜 결국에는 인간의 자아정체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빚어낸 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약으로 푸는 인간 관계

프로작은 초기에 우울증에 대해 좋은 효과를 보임으로써 우울증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켰다. 우울증은 복잡한 심리치료를 통해야 하는 복잡한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뇌화학적 약물로도 조정 가능한 증상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약에 의지해서 우울증상을 개선하려는 생각은 크게 퍼졌고,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심리치료나 자기노력 없이 누구나 손쉽게 알약 한개에 기대려고 하는 것이다. 이미 1994년 ‘프로작에 귀기울이기’(Listening to Prozac)를 쓴 피터 크래이머 박사는 “약의 충격이 사회의 정신력과 자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프로작이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와 교류해야 하는 사람들을 내성적으로 만든다고 꼬집었다.

비아그라 또한 주체성을 왜곡할 혐의가 짙다.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성문제를 풀어가기 보다 단번에 발기라는 신체적인 효능만을 믿고 문제를 회피한다면 부부의 정신적인 생활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보통 사람의 경우 비아그라로 인해 성기능에 대한 필요 없는 열등감을 자극하고 부부간의 성적인 모든 문제를 한알의 약으로 풀어버리려는 성급하고 천박한 생활습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병희 교수에 따르면, 관계 속에서 정치를 통해 사회와 자신을 개선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관계의 문제를 관계로 풀지 않고 약으로 풀어버리려고 할 때, 자아는 심각한 위협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상대에게 불쾌하면 상대를 설득하고 관계를 개선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불쾌감을 씻어주는 약에만 의지한다면 이는 인간을 더욱 소외시킨다는 것이다.

‘위생의 여신’과 ‘약의 여신’

그러나 계속해서 인간의 삶에 침투하는 약의 개발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은 너무나 큰 경제적 이득을 보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병을 앓는 소수보다 사소하게 불편한 다수, 약을 살만큼 충분히 부유하고 게으른 다수가 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들도 그 방향으로 움직임을 이미 보이고 있다.

케이크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한다는 콜레스테롤저하제, 좋은 헤어스타일를 가꾸어준다는 대머리치료제, 주근깨 없고 주름살 없는 예쁜 외모를 보장하는 미용약, 깼을 때 노곤한 느낌 없이 개운한 수면을 가능케 하는 수면제 등 듣기만 해도 얼마나 편안하고 환상적인 약인가.

서울대 황상익 교수(의사학)는 “의학적으로 완전히 인정할 만한 경우에 한해서 투약을 한다고 하지만 일상적인 불안감을 치유하는 용도로 일상복용이 이루어지면서 생활방식이 바뀌는 것은 막기 힘들다”고 인정한다. 생활의약의 시대는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등 생명과학의 발달에 기초하고, 약으로 생명의 질서와 기능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과, 더딘 길보다는 편리한 길을 좇으려는 인간의 타성이 합치된 거대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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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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