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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미래지진을 찾아 바다 밑을 들추다

인도양 해저 4000m 시추탐사일지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지표는 전체 지구표면의 약 3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끊임없이 출렁이며 인간의 도전을 유혹하는 검푸른 바다로 덮여있다. 바다 밑 지표는 어떤 모양이고 어떤 물질로 돼 있을까. 태고의 비밀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K-IODP)와 26개국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국제공동해양탐사프로그램(IODP, International Ocean Discovery Program)시추연구선에 탑승한 지구과학자의 탐사일지를 지금 공개한다.


국제공동해양탐사프로그램(IODP)의 시추연구선을 타기 위해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로 날아가는 내내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해양지구과학 연구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지만, 바다에서 두 달 동안이나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답답한 마음은 호텔에서 같은 처지에 있는 승선 과학자들을 만나자 이내 풀어졌다. 총 35명으로 구성된 시추탐사대는 승선 하루 전인 6일, 콜롬보에 있는 시나몬그랜드호텔에 집결했다. 3분의 1은 미국에서, 3분의 1은 유럽에서, 나머지 3분 의 1은 일본, 중국, 인도, 호주, 브라질, 인도네시아 그리고 한국에서 모인 다국적 팀이었다. 20대 중반의 대학원생부터 은퇴한 70대 교수까지 있었고, 고생물학, 퇴적학, 구조지질학, 지구물리학, 수리지질학, 해양지질학, 지구화학, 암석역학 등 전공도 다양했다. 시추선에 두 번째 승선하는 나에겐 반가운 얼굴들도 대여섯명 정도 됐다. 독일 브레멘대에서 온 안드레는 그 동안 딸이 한 명 늘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콜롬보항으로 향했다. 시추연구선 위의 높은 시추탑을 보니 드디어 탐사를 시작한다는 실감이 났다. 사다리를 타고 배에 오르면서도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시추선에 오르면 마치 군대에입대한 것처럼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개인 휴대폰과 컴퓨터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고, 카카오톡, 문자와 같은 SNS도 완전 차단된다. 외부와의 모든 통신을 인공위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통신 시스템을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간단한 승선 절차를 마친 뒤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었다. 두 평 남짓한 공간을 두 명이 나눠쓰는데, 룸메이트는 브라질에서 온 퇴적학 교수로 시추선은 처음이라고 했다. 덕분에 이것저것 아는 체하며 고참이 신참 대하듯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번에 승선한 배는 조디레졸루션(JOIDES Resolution), 흔히 JR이라는 약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IODP의 시추연구선이었다. 1978년 미국에서 건조돼 40년 가까이 전세계 해저를 시추해 온 베테랑 선박. 내가 참가한 연구는 ‘Expedition 362’로 IODP 프로그램의 250번째 탐사였다(2000년대 초에 또 하나의 IODP 소속 시추선이 일본에서 취역했고 유럽연합 소속의 시추선을 포함해 현재 총 세 대의 시추선이 운영된다).

JR의 길이는 147m, 폭은 21m이고 해수면으로부터 시추탑의 높이가 62m에 달했다. 무엇보다 길이가 9km나 되는 시추파이프를 싣고 있어 수심이 4000m가 넘는 바다에서도 시추가 가능하다. 배는 총 6층으로 선두 쪽에는 선실, 실험실, 시추시설 등이 있고 맨 후미의 엔진실 위에는 헬리콥터 이착륙장이 있었다. 승무원과 과학자를 100명 넘게 태울 수 있다.


8월 9일 콜롬보항을 출발해 드디어 시추현장에 도착했다. 3일 밤낮을 달려온 이곳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단에서 서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인도양 한 복판, SUMA-11C지점(동경 91°36’, 북위 3°2’, 수심 약 4.2km)이었다. 이곳은 대표적 지진대 중의 하나인 ‘순다 해구(Sunda Trench)’에서 서쪽으로 약 250km 떨어져 있다. 지진은 주로 두 개의 지각판이 서로 부딪히는 곳에서 많이 발생한다. 순다 해구는 미얀마 지각판과 인도-호주 지각판이 만나는 경계로, 미얀마의 서해안과 안다만-니코바 제도 및 수마트라 섬의 서안을 따라 남북으로 수천 km 연장된다. 이곳에서는 매년 45~60mm 속도로 북북동진하는 인도-호주 지각판이 미얀마 지각판 하부로 섭입하면서 두 판의 경계 부근에서 수많은 지진이 발생한다.

여러 지진대 중에 순다 해구를 선택한 이유는 2004년 12월 26일에 발생한 수마트라 지진 때문이었다. 당시 수마트라 섬 북쪽 안다만-니코바 제도의 해저 지각에서 규모 9.15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강력한 해일(쓰나미)을 일으켰고 이 해일은 인도양 전 해안을 덮쳐 30만 여 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다. 눈에 보이지않고 통제할 수도 없는 엄청난 힘이 지각에 숨어 있다가 폭발했다는 사실은 전세계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 넣었다. 과연 이런 힘이 지각의 어느 위치에 모이고, 어떤 작용이 지진의 뇌관을 건드릴까 알아내기 위해 이번 시추탐사대가 결성됐다.

보통 큰 지진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는 지하 수십 혹은 수백 km의 심부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대규모 해일을 동반하는 대지진은 특이하게도 지진이 천부(얕은 부위)에서 발생한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수마트라 대지진 역시 그랬다.

깊이가 10~20km인 퇴적층은 강도가 약해 많은 에너지를 축적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떻게 큰 지진이 발생할수 있는지 많은 과학자들이 궁금해했다.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지진이 발생한 지점의 암석샘플을 채취해 물성을 측정하고 실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하지만 해저지각을 10km 이상 시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탐사대가 순다 지진대로부터 수백 km 떨어진 ‘섭입 예정’인 해저 퇴적물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이곳에 쌓인 두께가 약 1.5km인 퇴적층이 북북동 방향으로 이동해 수백만 년 뒤에 미얀마 지각판 하부로 섭입하면서 큰 지진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 해양 퇴적물의 퇴적환경과 암석의 종류 등을 파악하고, 섭입 전 퇴적물의 물리화학적 성질이 이동과 섭입과정에서 어떻게 변할지를 알아내는 것이 이번 탐사의 주된 목표다. 미래의 지진을 들여다보는 셈이다.

“코어온데크(core on deck)” 확성기 방송이 나오자,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던 시추탐사대원들이 일제히 ‘코어 데크(core deck)’에 모였다. 수심 4200m의 해저에서 채취한 암석 샘플을 처음으로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어선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려고 갑판으로 몰려가는 어부의 심정이 이와 같을까. 비장한 표정으로 안전모와 보안경을 착용한 여러 명의 연구자들이 길이 9m의 긴 실린더를 어깨에 메고 와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코어 시추는 시추 파이프를 이용해 원통형 암석샘플을 획득하는 기술로 시추선의 기본이다. 암석의 강도에 따라 쓰는 방법이 다양하다. 보통 원통형 시추 파이프 끝에 주변 암석을 갈아 없앨 수 있는 네 개의 비트(톱날과 유사하다)를 달고, 파이프를 회전시켜 가운데 원통형 암석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갈아 없애는 기술을 쓴다. 강도가 약한 퇴적층이나 시추 깊이가 깊지 않을 때는 파이프를 유압으로 눌러 시추하기도 한다. 우리가 채취한 첫 번째 암석 샘플은 길이가 7.76m로 시추가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해저 지각을 9m 팔 때마다 코어를 배 위로 올리는데 회수율이 50%가 채 안 될 때도 많다.

이번 시추는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얻어낸 결실이었다. 시추 엔지니어들은 어제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지름이 30cm, 길이가 19m나 되는 긴 파이프 약 200개를 시추탑에 연결해 해저에 닿을 때까지 계속 내렸다. 새벽 0시 50분쯤 첫 번째 시추를 시도했으나 파도와 해류 때문에 시추 파이프가 계속 흔들려 자리를 잡지 못했다. 배가 파도에 흔들릴 때마다 파이프 끝에 암석을 뚫는 드릴이 움직여서 한 지점에 고정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다의 거대한 스케일을 고려하면 수심 4000m 바다에서 얇은 철사를 땅에 박는 식이랄까. 결국 20m씩 위치를 바꿔 가며 파이프를 올렸다 다시 내리기를 네 번 반복했다. 그리고 오전 7시 10분 다섯 번째 시도에서야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렵게 채취한 암석 샘플 실린더에 레이저로 표식을 하고 바코드를 붙여 고유번호를 부여했다. 코어 각각의 물성을 측정하고 보관용과 샘플용으로 반을 나눴다. 그리고 코어 테이블에 순서대로 정렬했다. 그러면 퇴적학자들과 구조지질학자들이 와서 분석하고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엔 샘플용은 샘플로 만들고(탐사대원들이 후속연구를 위해 자신의 연구실로 가져가기 위해 신청한 샘플들이다), 보관용은 일본 샘플보관소에 영구 보관하기 위해 밀봉했다.

1만t이 넘는 JR은 바다에 떠있는 자체로도 하루에 수백만 원의 경비가 발생한다. 시추 중에는 배가 파도나 해류에 흔들리거나 떠내려가면 안 된다. JR은 인공위성으로부터 위치 신호를 받고, 배에 설치된 12개의 프로펠러 추진기로 위치를 조절해 시추 자리를 지킬 수 있게 설계됐다.

탐사대원들과 승무원은 1일 2교대로 하루에 12시간씩 주말도 없이 연구와 시추를 계속한다. 피로가 쌓일만도 한데, 다들 열정적이다.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코어를 관찰하고 분석해서 자연환경의 긴 역사를 퍼즐 맞추듯 맞춰가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전공이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다보니 지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오전 12시와 오후 12시의 근무교대 시간에는 모든 과학자가 어울려 열띤 토론을 벌이며 연구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

험프 데이(Hump Day). 탐사기간의 꼭 반이 되는 날을 축하하기 위해 댄스파티가 열렸다. 문화생활을 위해 마련된 영화관에 미러볼 조명을 달고, 저녁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꼬박 4시간을 겨드랑이에 땀띠가 나도록 흔들어댔다. 중간에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음악이 나오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들 나만 쳐다보며 말 달리는 시늉을 했다. 시추선은 ‘드라이 존(Dry Zone)’이라 불리며 알코올 반입이 일절 금지돼 있다. 술도 없이 광란의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두 달동안 연구만 하며 지낸다고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근무 이외의 12시간 동안에는 체육관에서 운동도 할 수 있고 갑판에 나가 일광욕을 하면서 독서를 즐기기도한다. DVD를 대출해 영화관에서 영화를 시청할 수도있다. 며칠 뒤 10일엔 연날리기 경연대회가 열리고 23일엔 ‘JR’s Got Talent’, 10월 4일엔 유방암 주의 걷기대회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이 계획돼 있다. 연구 외에도 많은 추억거리가 쌓일 것 같다.

탐사의 막바지다. 주변에 열정을 불태우던 동료들도 이제는 좀 빨리 끝났으면 할 정도로 지쳐있다. 시추를 조기에 종료하기 위해서는 퇴적층의 하부에 있는 기저암이 코어에 나와야 한다. 기저암은 퇴적암의 아래에 있는 화성기원 암석으로, 더 이상 퇴적암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첫번째 시추는 성공적이었다. 지하 1250m 지점을 기준으로 상부는 히말라야산맥 기원의 선상지 퇴적암, 하부는 심해저 퇴적암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냈고, 1415m의 깊이에서 고맙게도 현무암(화성기원 암석)이 발견되면서 1420m 깊이까지 시추를 진행한 뒤 종료했다.

그러나 40km 떨어진 지점에서 진행한 두 번째 시추는 시추기 브레이크가 고장 나 일정이 많이 지연됐다. 시간상 기저암까지 시추하는 것은 무리고, 심해저 퇴적층 중에 화산재가 섞여있는 지층이 나오면 약 30m 정도만 더 시추하고 끝내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화산재를 포함한 지층은 상부의 퇴적암과 물성이 많이 다르다. 즉 퇴적환경이 중간에 달라졌다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탐사대원들은 이것이 1400~1500m 깊이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하루하루를 애타게 기다려 왔다. 9월 30일에는 시추를 종료해야 10월 1일에는 물리검층을 끝내고 탐사 마지막 날인 10월 8일까지 싱가포르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 지층이 빨리 나오도록 고사라도 지낼 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바랐건만 기다리던 암석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시추매니저는 1500m 지점에서 시추 종료를 선언했고 다들 허탈해했다.


아침 일찍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이 끝나자 모두들 배 위로 올라가 우리를 태우러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이 순간을 위해 두 달을 배 안에서 견뎠기에 만감이 교차했다. 오늘은 배에서 내리지만, 우리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각자 가져간 암석 샘플로 연구를 진행해 2년 뒤 일본 시마네현에서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쯤이면 수마트라 지진의 비밀이 한두 개쯤은 밝혀져 있으리라.

지난 가을 경주에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해 우리나라도 그 어느 때보다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크다. 일단 지진이 발생한 후에는 피해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예보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언젠가는 이런 미래지진도 볼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낙숫물이 주춧돌에 구멍을 뚫는다’는 신념으로 우리의 도전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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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송인선 책임연구원
  • 사진

    IODP EXP 362 Science Party
  • 에디터

    이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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