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발견하기 어려워 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새의 알은 색상과 무늬가 천차만별입니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까치의 알은 청회색 바탕에 작고 어두운 반점 무늬가 있습니 다. 물가에서 자주 보이는 괭이갈매기의 알은 올리브색 바탕에 검은색에 가까운 반점 무늬가 있습니다. 비둘기는 하얗고 무늬 없는 알을, 제비는 하얗고 붉은 빛이 도는 바탕에 갈색 반점이 찍힌 알을 낳습니다.
새는 둥지에 알을 낳고 부화할 때까지 품습니다. 그러면서 온도를 유지시키고 포식자로부터 보호하죠. 이 때 알 껍질은 배아를 보호하는 역할도 하지만 외부와 기체를 교환하며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역할도 합니다. 생태학자들은 알 표면의 다양한 색상과 무늬가 가진 역할과 진화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많은 동물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잘 넘길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기존의 학자들은 알의 색상과 무늬가 포식자를 잘 피하는 쪽으로 진화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강변의 모래밭에 둥지를 짓는 종은 알의 색상과 무늬가 모래와 비슷할수록 위장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서는 생존과 번식의 균형을잘 잡아야 합니다. 번식 상대를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손을 기르는 데에 들이는 에너지가 개체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도록 줄타기를 잘 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유전자가 전혀 없는 새끼를 키울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새들은 자신의 알을 다른 새가 키우게 합니 다(탁란). 대표적으로 뻐꾸기가 다른 종의 둥지에, 붉은머리오 목눈이가 같은 종의 둥지에 알을 낳죠. 자신의 새끼를 잘 구분해 기르기 위해서는 다른 종이나 개체가 낳은 알을 알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알 표면의 색상과 무늬를 ‘인식’과 ‘구별’의 장치로 보기도 합니다.
이처럼 알은 새들이 진화한 결과물이자, 거대한 생태계의 일부분입니다. 알의 다양한 색상과 무늬의 역할을 찾기 위한 연구들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논문에 서는 이런 여러 가설을 정리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새매에서는 맞고, 맥시칸 제이에게는 아닌 것
알의 색상을 결정하는 색소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 다. 갈색은 프로토포르피린, 파란색은 빌리베르딘이라는 색소 에서 나옵니다. 같은 전구체에서 만들어지는 두 색소의 다양한 조합이 흰색, 파란색, 올리브색, 갈색처럼 다양한 배경색이 됩니다. 깨끗한 민무늬바탕에 다양한 색상의 반점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페인의 진화생태학자 후안 솔레르는 유럽에 사는 알락딱 새의 알을 통해 암컷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청록색 알의 색이 짙을수록 면역력이 우수하고 영양상태가 좋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수컷 알락딱새는 암컷의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 산란 기간 동안 둥지에 방문해 알의 색을 관찰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반면 알의 색상이 건강 상태와 연관이 없다는 의견도 꾸준히 있습니다.
칼슘이 부족한 토양이나 살충제의 영향을 받은 군집에서는 알이 얇아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새매 군집의 사례가잘 알려졌습니다. 1960년대 이후 새매의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든 이유를 찾던 생태학자들은 살충제 성분인 DDT를 그 원인 으로 지목했습니다. 살충제로 인해 알이 얇아지고, 부화하기 전에 쉽게 깨지면서 개체수가 급감했다는 것이죠.
이런 영향으로 얇아진 새매의 알을 다시 두껍게 하는 역할은 갈색을 내는 색소인 프로토포르피린이 합니다. 칼슘이 부족한 토양이나 살충제의 영향을 받은 군집에서는 반점이 더진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반점이 더 진해진 알은 다시 두꺼워졌습니다. 칼슘 부족과 살충제로 껍질이 얇아진 것을 보완하기 위한 적응의 결과라는 관점입니다.
물론 모든 종에서 색소가 이런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남미에 사는 멕시칸 제이의 알도 칼슘이 부족한 토양에서는 무늬가 도드라집니다. 하지만 새매의 알처럼 두께를 회복하지는 않습니다. 알의 색상과 무늬를 결정하는 색소의 역할이 모든 새에서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태계에서 발견한 한 가지 사례는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진리는 아닙니다. 논문의 저자는 생태계에서 발견된 특징들을 모든 종에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반점 분포가 알 표면의 수분 증발을 조절하거나, 색소가 그 자체로 항균 기능이 있다는 다양한 가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생태학은 다양성을 인정해 가는 과정
흔히 과학이라 하면 절대 진리를 찾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태학만큼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물리학, 수학처럼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이 중요하지만, 생태계에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생태계 속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한 논문 에서 하나의 가설에 대해 맞는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를 모두 소개하는 이유죠.
자연은 우리에게 꾸준히 질문거리를 던집니다. 진화라는 단어는 마치 발전하는 의미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화는 방향성이 없습니다. 매 순간에 가장 유리한 특성이 남은 결과가 현재일 뿐입니다. 생태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지식을 넓히는 것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마치 알 껍질의 역할과 특징이 모든 종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알을 보고 그 안에 움튼 생명을 생각합니다.
역경을 딛고 태어나는 새들, 하늘로 비상하는 새들을 보며 감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은 껍질도 이들이 치열하게 쌓아 온 진화와 노력의 산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나를 감싸던 알의 역할은 무엇이고, 내가 낳을 알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지 않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