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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도세력 없는 공백기의 게릴라성 호우

엘니료 라니냐 교체기

8월 초중순은 장마가 물러나며 따라온 무더위를 피해 강으로 바다로 피서 행렬이 이어지고, 해운대 바닷가에는 1백만의 인파가 몰렸다는 소식이 들려야 할 때다. 그러나 올해 여름은 어떠했는가. 사흘이 멀다하고 폭우로 인한 수재민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집안도 물난리에 쓸려 가는, 너나 할 것 없이 지겨운 폭우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폭우로 불어난 계곡에서 구조되는 지리산 등산객


여름 같지 않은 여름

올 여름은 한마디로 보통 여름이 아니다. 예년과 달리 찌는 듯한 무더위가 없다. 6월초부터 계속돼 온 기나긴 장마는 수은주를 올리지 못하고 농작물은 홍수와 냉해로 꺾이고 있다. 또한 사상 유래 없는 홍수는 4백여명의 인명을 앗아갔고, 재산 피해만도 2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폭우는 전국 각지를 떠돌며 게릴라식으로 쏟아 붓고 가옥과 가축들을 쓸어가 버렸다.

특히 올 여름의 비는 전국적인 규모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좁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들이붓듯이 쏟아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는 국지성 호우라는 점에서 전문가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하루 이틀 서울에서 내렸던 비는 충남북으로, 경상북부 지역으로, 다시 서울 경기 지역으로 변화무쌍하게 옮겨 다니면서 퍼붓듯이 내리고 도망쳐버린다.

7월31-8월1일 전북남원 지리산주변 시간당 최고 1백45mm 넘는 폭우. 8월 3-4일 서울 시간당 강수량 31년만에 최고 1백12mm의 폭우. 5-6일 경기북부지역 집중호우, 강화지역 최고 6백19mm, 파주 5백2mm, 연간 강수량의 절반에 해당. 8-9일 충남 일원 최고 3백77mm 집중 호우. 12-13일 충북 보은 지역 최고 4백7mm, 시간당 최고 95mm 폭우.

8월 한달 동안 굵직한 것만 모은 폭우 보고서다. 비는 한반도 각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사나흘 간격으로 집중호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매스컴의 보도가 없다면, 한 도시에서 일어나는 유래 없는 홍수가 옆 도시에서는 기척도 못 느낄 만큼 비는 국지적으로 집중되고 있다. 8월 5-6일 강화지역에 하룻동안 최고 6백19mm의 비가 내렸지만 인접한 인천지역에서는 1백59mm만이 내렸을 뿐이다. 또한 강화지역이 시간당 1백mm의 퍼붓듯 내리는 집중호우를 맞았던 그 시각 제주도에서는 불볕더위로 오랜만에 여름기운을 만끽하고 있었다.

북태평양고기압 힘 못써

글자 그대로 예년 같지 않은 우리나라의 요즘 날씨는 무엇 때문인가. 기상청관계자에 따르면 가장 주요한 원인은 해마다 우리나라에 찜통더위를 가져다주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7월말을 고비로 장마를 해소하며 동아시아 일대는 물론 만주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해가야할 북태평양 고기압이 왠일인지 올해는 맥을 못 추고 한반도의 허리까지 밖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 쪽에서 유입된 비구름이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우리나라 쪽으로 몰려오면서 엄청난 비를 뿌리고 있다.

기상청은 이미 지난 7월 28일 장마전선이 소멸하면서 올 여름 장마는 막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후로 한달여 동안 하루도 비가오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계속되는 비에 사람들은 치를 떨고 있다. 서울대 이동규교수(대기과학과)는 7월말에 장마가 끝났다는 기상청의 발표에 동의할 수 없다며, 8월 내내 중국, 한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강우대가 형성돼 있고, 이 강우대를 따라 장기간 비가 내리는 전형적인 장마철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계속되는 장마 속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7월말 며칠 동안 무더운 여름날씨를 보인 것은 장마가 약간의 휴지기를 거치고 계속된 때문으로 풀이했다.

강한 상승기류가 국지성 폭우로 돌변

그렇다면 중국, 한국, 일본에 걸친 강우대를 따라 비가 내리면서도, 7월말의 남원지역, 8월초의 경기 북부지역의 호우에서 보듯이 고작 반경 2-30km지역 내에 단시간에 폭우를 뿌리고 사라지는 국지성 호우의 정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연세대 이태용교수(천문대기학과)는 2가지 요인의 합작으로 치고 빠지는 게릴라성 호우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것은 대기의 불안정과 수증기의 공급이다. 경기북부, 지리산지역 등에 내린 국지적 호우는 비구름이 수km의 좁은 범위에 한정되고 1-2시간의 짧은 수명을 갖고 발생 소멸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양쯔강부근의 저기압을 비롯한 북서쪽에서 공급되는 수증기가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놓인 우리나라 상공의 불안정한 상태의 대기로 진입하면서 국지적으로 강한 상승기류를 타고 호우성 비구름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비구름은 좁은 지역에서 강한 상승기류를 타고 급격히 생성되기 때문에 단시간에 뿌리면서 소멸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위성사진에서도 불과 1시간 전까지 나타나지 않던 비구름이 갑자기 생겨나 폭우를 뿌리고 도망치듯 소멸하는 것으로 관측돼 기상청관계자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갑자기 생겼다가 사라지는 게릴라식 비구름이기 때문에 첨단분석장비가 부족한 기상청에서는 이의 활동을 예측하기가 이만저만 곤란한 것이 아니다.
 

(그림)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 기단의 종류와 현산


배후 범인은 역시 엘니뇨

기상청관계자들은 전세계적으로 발생하는 기상이변에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라며 거의 전지구적인 규모로 영향을 주는 엘니뇨 현상을 올 여름 우리나라 기상이변의 배후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올 여름 이상기후의 주요인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발달하지 못한 것. 이 북태평양고기압이 맥을 못추는 것은 보다 근본적으로 엘니뇨의 영향이다.

작년 겨울 최대에 이르렀던 엘니뇨는 올해 5-6월을 고비로 후퇴하고, 잇따르는 라니냐의 발생으로 전지구적인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엘니뇨는 동태평양 페루 연안의 해수 온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일컫는데, 온도가 높아진 해수가 서태평양에 몰리면서 서태평양 해수면이 상승하고 높은 온도를 유지하는 현상이다. 반면 라니냐는 태평양의 해수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엘니뇨와 반대의 현상이다.

평년 같으면 열대성 강우의 중심지가 인도네시아 근방으로 한정되고, 동아시아지역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발달해 한여름 날씨가 된다. 발달한 북태평양고기압은 북쪽의 찬 기단을 계속 밀어 올려 만주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면서 영향력이 커지면 남서쪽에서 오는 비구름의 공급이 어렵게 되고 장마가 소멸하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엘니뇨의 영향으로 열대성 강우지역이 북쪽으로 이동해 중국 남부지역에 형성됐다. 때문에 올 봄부터 인도네시아 등지는 건조해져 산불이 발생하는 반면, 양쯔강 지역에서는 홍수가 나고, 습기를 많이 머금은 공기가 우리나라 쪽으로 계속 밀려오면서 많은 비구름을 공급하고 있다.

주도세력 없는 조정 국면

서울대 이동규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기상이변은 한껏 높아졌던 태평양의 수온이 내려가고, 엘니뇨가 소멸하는 과정에서 평상의 기후를 되찾는 조정국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엘니뇨로 인해 해수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가 다시 낮아지는 과정에서 지구의 열분포가 달라졌다가, 다시 평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북태평양기단, 양쯔강기단, 오오츠크해 기단, 시베리아기단 등 우리나라 주변의 주요기단들이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덧붙여 이교수는 현재의 이상기후를 라니야와 연관짓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성급한 견해로 라니냐는 지금 발달 국면에 있어서 기상이변을 라니냐 때문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엘니뇨의 힘이 약해지더라도 라니냐가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올 여름 내내 우리나라는 집중호우의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대 이동규교수도 지구 전체의 에너지 분포가 정상상태로 가려는 과정에서 어느 한 세력이 주도하지 못하고 소강상태를 보이기 때문에,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걸쳐있는 강우대에 놓인 우리나라는 8월 중순까지 장마권에 묶여 있었다고 분석했다. 엘니뇨가 발생했을 때는 장마가 늦게 시작해서 늦게 끝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올해는 6월초에 일찍 시작된 예측불능의 기상상황이 전개됐다. 또한 끝났다는 장마는 끝나지 않고 약간의 휴지기를 거쳤다가 다시 국지성 호우를 유지하는 유래 없이 긴 우기가 계속돼 예상을 벗어났다. 과연 기후는 이토록 예측하기 어려운 것인가.

장마는 왜 생기나

여름철의 날씨를 좌우하는 북태평양기단은 온난다습한 기단이다. 겨울동안 하와이 방면으로 물러나 있다가 여름이 가까워짐에 따라 점차 서쪽으로 그 세력을 확장해서 6월말이 되면 한반도 남쪽 해상까지 올라온다. 반면 오오츠크해는 겨울동안 얼음으로 덮여있다가 봄이 되면 녹기 시작하고, 시베리아대륙으로부터 눈녹은 물이 흘러들어 대륙에 비해 10℃ 가량 온도가 낮다. 그러므로 오오츠크해기단은 차고 습한 기단이다. 북태평양기단과 오오츠크해기단은 온도차이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잘 섞이지 않고 대치한다. 두 기단의 경계를 전선이라고 한다.

여름철에는 우리나라 근처에 형성된 이 전선대를 서쪽에서 온 저기압이 이동해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날씨는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계속된다. 때문에 이를 장마전선이라고 한다. 장마전선은 북태평양기단의 세력이 약한 6월 중순에는 일본 남쪽에 있다가 북태평양기단의 세력이 강화됨에따라 점차 북상한다. 7월중순쯤 되면 한반도의 중부지방까지 북상한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오오츠크해기단의 세력이 약화돼 장마전선도 점차 약해진다. 7월하순에는 만주지역까지 북상해서 장마전선은 소멸하고, 본격적인 여름날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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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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