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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쿼터스 세상 앞당기는 증강현실

현실세상보다 더 큰 세상 그린다

“바로 저 곳이 리글리 빌딩이군.”

2015년 미국 시카고. 도시정보제공시스템 ‘시티뷰어’의 안경렌즈 너머로 보이는 건물을 보고 과학동아 김증강 기자가 중얼거렸다.

세계적인 껌 회사인 리글리에서 최근 탈모방지 껌을 개발했다고 해 취재하러 왔다. 길눈이 어두워 새로운 곳에 가는 일을 두려워하던 김 기자는 큰 맘먹고 증강현실 도시정보제공시스템 ‘시티뷰어’를 구입했다. 시티뷰어는 안경 형태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으로 눈앞에 보이는 실제 광경 위에 건물의 정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길도 안내해준다.

그때 시티뷰어 화면 창 한쪽에 근방의 분위기 좋은 재즈바 정보가 뜬다. 취재를 끝낸 뒤 재즈를 들으며 시원한 맥주를 마실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가볍다.

신기술이 생활 속에 자리 잡은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가상으로 꾸몄다.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안경 속에 펼쳐지는 정보 세상.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증강현실’기술이 그 답이다.
 

유비쿼터스 세상 앞당기는 증강현실


‘지능 공간’과 ‘궁합’ 맞아

증강현실? 현실을 증강한다니 무슨 말일까.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기술은 컴퓨터가 만드는 3차원 그래픽을 현실공간에 실시간으로 합성해 보여주는 기술이다.

가상현실이 컴퓨터로 현실을 통째로 모방해 만든 디지털 현실이라면, 증강현실은 컴퓨터가 만든 가상현실과 사람이 사는 현실공간을 이음매가 드러나지 않도록 혼합한 현실이다. 따라서 가상현실보다 현실감 있는 정보를 실제현실에 덧씌운다는 뜻에서 ‘증강’된 현실이다.

증강현실기술은 실생활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TV에서 축구경기를 중계 방송할 때 잔디 구장 바닥에 점수나 선수 정보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여주는 기술이 대표적인 예다. 또 바닥에 쏜 영상을 발로 밟으면 그에 따라 내용이 바뀌는 대형 쇼핑몰의 광고 영상에도 증강현실기술이 적용됐다.

최근 이 같은 기술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증강현실이 앞으로 다가올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과 ‘궁합’이 잘 맞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 환경에서는 컴퓨터 본체와 각종 가전기기, 그리고 이들을 잇는 복잡한 선이나 입력장치를 모두 감추거나 통합해 사용자에게는 드러나지 않게 하면서 사용자의 요구에 지능적으로 반응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장치들이 감춰져 있는 공간을 ‘지능공간’이라고 부른다.

증강현실 기술이 생활 속에 스며든 미래의 지능공간을 상상해보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천, 아니 수만 개의 센서가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분석해 사용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현실에 덧씌워 보여준다. 이 같은 현실이 증강현실이 그리는 미래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렸을 때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증강현실기술을 이용한 중계로 즐겁게 했다.지난 6월 마이크로소프트사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모니터를 테이블처럼 눕혀 사용하는 ‘서피스’컴퓨터를 발표했다.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예다.


3D 컴퓨터 그래픽의 모니터 탈출!

증강현실기술은 1968년 미국 유타대의 이반 서덜랜드가 개발한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머리 부분 탑재형 디스플레이, Head Mounted Display, HMD)에서 출발한다. 두 개의 소형 브라운관 모니터(CRT)가 쌍안경의 접안 부분에 장착돼 있고 CRT 바로 위에는 소형 비디오카메라가 달려있다. 카메라를 통해 들어온 영상에 컴퓨터 그래픽을 덧씌워 눈앞에 보여주는 최초의 증강현실 장치였지만 너무 무거워 천장에 매단 채 사용했다.

그 뒤 CRT모니터는 가벼운 LCD모니터로 바뀌고 카메라나 수많은 센서도 가벼워져 헬멧크기로 작아졌다. 1990년 미국 보잉사의 엔지니어 톰 커델은 수만 가지에 이르는 부품을 이용해 항공기를 조립할 때 부품의 위치를 HMD의 화면을 통해 항공기의 적정한 위치에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장치를 개발했다. 그는 이 연구를 발표한 논문에서 ‘증강현실’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그리고 컴퓨터와 디스플레이 기술이 급속히 발전한 덕분에 다양한 3D 그래픽이 모니터 밖으로 튀어나왔다.

2002년 일본 소니사가 개발한 ‘증강표면’(Aug-mented Surface) 시스템은 컴퓨터 모니터 속의 ‘내용물’을 통째로 꺼내놓은 경우다.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을 책상 위에 쏴 손가락으로 바탕화면의 아이콘을 움직이고 파일을 정리할 수 있다. MS사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모니터를 테이블 위에 옮겨 놓은 듯한 장치를 개발했다.

프랑스 국립정보화·자동화연구소(INRIA)에서 쓰는 수술용 증강현실 시스템 덕분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내장이 ‘세상으로 탈출했다’.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MRI)나 컴퓨터단층 촬영장치(CT)로 간 같은 몸 속 장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한 뒤 환자의 몸에 투사하면 절개하지 않고도 ‘속사정’을 볼 수 있다. 만약 수술을 앞둔 환자가 숨을 쉬며 배를 씰룩거려도 이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수술을 할 때 정확한 절개 위치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증강현실기술은 컴퓨터 게임 속 괴물까지 현실로 불러냈다. 2002년 남호주대에서 개발한 ‘AR퀘이크’는 기존의 1인칭 슈팅게임인 ‘퀘이크’를 현실을 배경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게임이다. HMD를 쓰고 실제 골목 사이를 누비면 건물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3D 괴물을 향해 총을 쏘며 싸우는 스릴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 국립정보화자동화연구소에서 개발한 증강현실수술장비.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환자의 장기가 몸에 그대로 겹쳐 보인다.


증강현실, 모바일과 GPS를 만나다

21세기 들어 증강현실기술은 새로운 파트너를 만났다. 특히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는 증강현실기술을 끌어안으며 유비쿼터스 세상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미국 해군연구소와 컬럼비아대가 2004년에 함께 개발한 MARS(Mobile Augmented Reality Systems)는 GPS로 받은 지도정보를 현실공간에 덧씌워 HMD를 통해 보여주는 장치다. 넓은 캠퍼스에 처음 온 사람에게 학교 건물들의 용도나 역사를 증강현실로 보여주고 목적지까지 길도 안내한다. 이를 관광지의 안내 시스템에 활용하면 훌륭한 여행가이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HMD를 이용한 증강현실장치는 몰입감이 좋은데 반해 무거운 노트북 컴퓨터를 배낭처럼 지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증강현실기술을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PDA나 휴대전화와 융합하는 전략을 개발하고 있다.

핀란드의 세계적 이동통신 회사 노키아가 개발한 ‘폰가이드’(PhoneGuide) 시스템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박물관 안내 시스템이다. 휴대전화에 장착된 카메라로 박물관의 전시품을 촬영하면 전시품에 대한 정보가 화면에 자동으로 덧씌워 나타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대의 연구팀은 ‘보이지 않는 기차’(Invisible Train)라는, PDA를 이용한 증강현실 게임을 개발했다. 나무로 만든 실제 기차선로 모형을 PDA의 카메라를 통해 보면 가상의 기차가 선로 위에 나타난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각 PDA 화면에 나타난 아이콘을 클릭해 기차의 속도와 선로의 방향을 조정해 기차가 충돌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새로운 파트너를 만난 모바일 증강현실은 이제 기술을 누가 사용하며 언제, 왜, 그리고 어떻게 활용하는지까지 고려하는 ‘맥락인지형 모바일 증강현실’(CAMAR)로 다시 한번 변신을 꾀하고 있다. 같은 지능공간 안에 있더라도 증강현실장치를 사용하는 사람이나 맥락이 다르면 제공되는 서비스도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 때문이다. 광주과학기술원 유비쿼터스가상현실 연구실(U-VR)이 정통부 프론티어 사업인 유비쿼터스 컴퓨팅 과제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CAMAR카피어’는 맥락인지형 모바일 증강현실 기기의 대표적인 예다. 사진기에 붙여 사용하는 CAMAR카피어는 사진을 찍을 당시의 시간이나 장소 같은 정보를 GPS를 통해 얻어 자동으로 함께 기록할 뿐만 아니라 찍은 사람과 찍힌 사람이 누구인지도 함께 기록하는 장치다.

예를 들어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고 하자. 첨성대와 불국사, 그리고 석굴암을 들러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친구들과 각자 CAMAR카피어에 저장된 사진을 증강현실 지도 위에 재생시켜 본다. 친구들이 찍은 사진을 모아 지도 위에 지역별로 구분해서 보니 여행을 다시 하는 기분이다.

증강현실은 가상현실과 실제세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하지만 세상에 감춰진 정보를 끄집어내 그 위에 덧칠하는 증강현실은 어쩌면 실제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키아의‘폰가이드’. 카메라로 박물관의 전시품을 촬영하면 전시품에 대한 정보를 화면에 자동으로 덧씌워 보여주는 모바일 증강현실 장치다.

‘보이지 않는 기차’(Invisible Train)는 PDA를 이용해 기차들의 충돌을 막는 증강현실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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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안형준 기자
  • 우운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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