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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냄새의 조화

게맛살은 무늬만 게?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갓난 아기들에게 여러 가지 맛의 물질을 주고 그 때의 표정을 사진으로 찍은 예가 있다. 맛에 대한 느낌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기들의 표정으로 선호도를 짐작하는 실험이다.

인종에 관계없이 모든 아기들은 설탕물이나 글루탐산나트륨액(조미료에 쓰이는 아미노산인데 MSG로 알려져있다)을 주면 미소를 띠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쓴맛 또는 아주 짜거나 신맛을 내는 물질을 주면 찡그리며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 속담에 자기 입장 편한대로만 행동하는 세태를 나타내는 말로“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 속담은 사람들이 실제로 식품에 대해 보이는 경향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리 작은 단세포 생물이라도 생명유지를 위해 필요한 물질과 해로운 물질을 구별해내는 감각체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단순한 생명체에서는 세포와 외부 세계를 구별하는 세포막이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고등생물은 미각, 후각, 시각, 청각, 촉각 등으로 기능이 분화돼 감각체계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미각과 후각은 생명체가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영양소와 독성분을 구별해내기 위해 발달된 감각이다. 사람들은 모두 단맛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진화과정 중 숲에서 살 때 과일을 주식으로 삼던 흔적으로 해석된다. 쓴맛을 싫어하는 것은 대개의 독성 성분이 쓴맛을 가지므로 이를 기피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맛봉오리의 모식도


빛은 3원색, 맛은 5원미

맛은 혀 뿐만 아니라 입천장, 입바닥, 뺨의 안쪽 등 입안의 모든 부분과 인두, 후두, 후두개까지 포함하는 넓은 부위에서 인식된다. 일반적으로 비휘발성 물질은 맛으로, 휘발성 물질은 냄새로 인식되지만 식초 같은 물질은 맛과 함께 냄새로도 인식된다. 맛을 느끼는 주 감각기관은 혀에 존재하는 4종류의 맛꼭지와 그에 분포하는 맛봉오리다. 맛봉오리에는 맛세포가 있고, 맛세포의 윗쪽 끝에는 미세융모가 있다. 이 곳의 세포막에는 여러 가지 맛을 인식하는 맛 수용체가 있어 각각의 맛물질과 결합하면서 신경신호를 발생시켜 대뇌에서 맛을 인식하도록 한다.

빛에 빨강, 초록, 파랑의 3원색이 있듯이 맛에도 기본이 되는 원미(元味)라는 것이 존재한다. 어떤 맛이 원미가 되기 위해서는 딴 원미의 것과는 다른 맛수용체 부위가 존재해야 하고, 그 맛의 질이 딴 원미와 확실히 달라야하며, 또 여러 원미물질을 혼합하더라도 그 맛을 낼 수 없다는 3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설에 상응하는 다섯 가지 맛(五味)으로써 단맛, 쓴맛, 짠맛, 신맛, 매운맛을 일컬었고, 서양에서는 4원소설에 대응하는 4가지의 단맛, 쓴맛, 짠맛, 신맛을 기본미로 생각했다. 최근에는 단맛, 쓴맛, 짠맛, 신맛, 감칠맛(쉽게 말해 고기국물맛 같은 것으로, MSG를 먹었을 때 느끼는 맛이다)을 원미 조건에 맞는 5원미로 인정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원미 외에도 사람들은 매운맛, 떫은맛 등의 여러 가지의 '맛'을 느끼는데 이런 맛들은 원미처럼 맛수용체에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구강 내의 자유신경이나 혀의 점막 등에서 복합적으로 느끼는 감각이다.

예를 들어 매운맛은 구강내의 자유신경에서 느끼는 일종의 아픈 감각(痛覺)이다. 매운맛을 내는 음식들은 각기 다른 종류의 매운맛 성분들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고추는 캡사이신, 후추는 피페린, 겨자는 이소티오시아네이트, 생강은 진저론, 마늘은 알리신이라는 성분이 주로 매운맛을 낸다.

떫은맛은 폴리페놀이 많이 함유된 식품을 먹었을 때 그 성분이 혀의 점막 단백질과 강한 수소결합을 함으로써 점막이 수축되는 감각을 말한다. 홍차, 맥주, 포도주 등에 들어있는 탄닌이 대표적인 떫은맛 성분이다. 박하 등을 먹었을 때는 찬맛을 느끼는데, 이것은 박하성분이 침에 녹을 때 용해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냉각효과에 의해 혀의 점막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결과다.
 

(그림2) 후각기관


냄새 1만가지 이상 인식

냄새는 비강(鼻腔)의 뒤쪽 천장에 존재하는 약 1-2㎟넓이의 후각상피(嗅覺上皮)에서 인식된다. 이곳에 있는 후각세포의 끝에는 후각섬모가 존재하고 여기에 있는 냄새수용체에 의해 냄새 성분이 분류된다. 냄새는 맛에 비해 매우 낮은 농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사람은 약 1만여종의 다른 냄새 성분을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냄새에서도 원미에 상응하는 원취(元臭)를 찾으려는 시도가 계속 됐으나 냄새의 종류가 워낙 많아 아직까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원취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1만여종이나 되는 냄새는 그 많은 이름을 일일이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에 '찔레꽃 향' '사과 향' '된장국 냄새' 등과 같이 이미 알고 있는 사물의 이름을 붙여 냄새로 표현한다.

우리가 음식의 맛을 본다고 할 때는 맛과 냄새를 한꺼번에 느끼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미료나 향신료는 맛과 냄새에 함께 관여하는데 이를 표현해 풍미(風味, flavor) 또는 향미(香味)라고 하고, 풍미를 주기 위해 사용하는 물질을 풍미료라고 부른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현대적인 건축재료로 지어진 집, 온갖 소재의 옷이 현대 생활을 풍요롭게 하듯이, 식품도 다양한 재료와 형태로 만들어진 풍미료가 식생활을 즐겁게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많은 풍미료가 사용된다.

국을 끓일 때 꼭 쇠고기를 넣지 않고도 쇠고기맛을 내는 복합조미료를 포함해, 라면 스프에 들어있는 파, 마늘까지 그 종류와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그윽한 게향을 담고 있는 게맛살이 무늬만 게살이고 정작 생선살과 전분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누룽지 사탕에 누룽지는 들어 있을까.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바나나 우유에도 바나나는 없고, 바나나 향만 있다는데... 무늬나 그림으로 생색내면서 맛과 향의 조화를 빚어내는 풍미료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림3) 후각상피


천연의 깊은 맛에 도전

풍미료는 원료에 따라 크게 천연 풍미료와 합성 풍미료로 나뉘어진다. 천연 풍미료에 사용되는 축산물이나 해산물은 가압가열 반응기를 통해 용출된 내용물이 사용된다. 여기에 양념이 더해진 농축액('엑기스'라고도 함)이나 분말 상태의 것이 이용된다.

과일이나 채소류의 경우에는 갈거나 썰어서 건조한 것을 사용한다. 또 과일 등 식물원료를 증류하거나 용매로 추출해 기름 형태의 정유(精油)로 얻은 것을 수용액이나 유화물(乳化物), 그리고 미세캡슐의 분말 형태로 가공해 이용하기도 한다.

발효미생물이나 효소로 식품의 원료를 처리하면 발효 또는 효소분해 풍미료를 얻을 수 있다. 콩, 우유, 해산물 등에 미생물이나 효소를 처리해 아미노산이 많이 생성되도록 만든 풍미료들이 이에 해당되는데, 각종 복합조미료에 많이 이용된다.

또 당과 아미노산, 비타민 등의 원료를 혼합해 가열하면 구수한 향의 갈색물질을 형성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반응 풍미료는 불고기나 누룽지의 맛을 내는데 쓰인다.

합성 풍미료는 식품이 아닌 원료로부터 만들어진 것. 식품을 기체 크로마토그래피와 질량분석기로 성분 분석을 하면 어떤 물질들이 향에 관여하는지 알 수 있다. 이때 이들을 화학적인 방법으로 합성한 것이 합성풍미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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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전영한 기자
  • 이형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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