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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냐, 우유냐

부모와 아기의 보이지 않는 갈등

'98동아·LG국제만화페스티벌 카툰 부분 대상을 받은 정현정 작 '무제'
 

부모와 아기의 보이지 않는 갈등

아기가 이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음식은 사랑, 안정감, 따스함이 가미된 모유이다. 어머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운반되는 음식이므로 옛날 여인들은 모유로 아기를 기르는 것을 당연시했다. 그러나 현대여성들은 모유 대신 유아용 조유를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한다. 모유로 자식을 기르는 여인들 역시 젖을 얼른 떼기 위해 갈등을 느낀다.

젖 주는 동안 임신 어려워

모유를 먹이는 기간은 아기의 건강과 직결된다. 젖을 오래 먹은 아기일수록 위장병, 호흡기 질환, 당뇨병, 심장병과 같은 질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특히 출산 후 최초의 6개월이 아기의 영양과 면역기능의 발달에 있어 나중의 6개월보다 중요하다.

아이의 면역계는 다섯살까지 완전히 발달하지 않기 때문에 모유에 들어 있는 어머니의 항체가 신생아의 면역기능을 보완해준다. 5-6살까지 젖을 먹이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그러나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기간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1940년대 이전에 64개의 사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모유를 먹이는 기간은 평균 2.8년이었다. 물론 4-5살까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사회가 적지 않다. 선진국일수록 3-4살이 되기 전에 대부분 젖을 뗀다.

이유 시기는 순전히 어머니의 입장에서 결정된다. 아기와 상의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유 시기가 일방적으로 결정되므로 세명의 당사자인 어머니, 아기, 아버지 사이에 이해의 갈등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 진화생물학의 입장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행동이 개체의 번식 성공도(reproductive success)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고 보고, 그 행동을 자연선택 개념에 입각하여 설명한다. 번식 성공도는 어떤 개체에서 살아남는 자손의 수를 뜻한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로빈 베이커는 1998년에 아내와 함께 펴낸 '아기 전쟁'(Baby Wars)에서 이유 시기를 놓고 부모와 아기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관계의 갈등을 흥미롭게 풀이했다.

베어커에 따르면, 모유는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연선택이 여자가 젖을 주는 동안 임신 가능성이 낮게끔 어머니의 신체를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모유를 먹이는 여자가 출산 후 월경을 시작하는 데는 6개월 이상 걸린다.

젖을 먹이면서 첫번째 맞는 월경에서 임신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이어서 세번의 생리주기 동안 임신할 확률은 50% 미만이다. 젖을 주는 동안에 임신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젖을 먹이지 않을 때보다 높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한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다음에 다음 아이를 임신하게 되므로 여자로서는 두 아이를 동시에 돌보는 고역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자의 번식 성공도는 가령 먼 거리를 걸을 때 한 아이가 제 힘으로 뒤따라오도록 성장시키기 전까지 다른 아이를 임신시키지 않는 상황에서 극대화된다. 요컨대 여자의 번식 성공도를 높이기 위해 자연선택은 여자가 젖을 주는 동안 임신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이유 시기를 둘러싸고 어머니, 아기, 그리고 아버지 사이에 이해의 갈등이 생긴다. 아버지는 아이가 자신의 혈육인지 확신하는 정도에 따라 태도가 변한다.


이유 시기 놓고 이해 충돌

베어커는 모유 먹이는 일과 임신의 상관관계에서 볼 때 이유 시기를 결정하는 문제는 어머니, 아기, 아버지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먼저 아기의 경우, 어머니가 자기에게 젖을 주는 동안에는 아우를 갖지 못하므로 가급적이면 오랫동안 모유를 먹고 싶어한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곧바로 동생이 생기면 영양분이 좋은 어머니의 젖을 나누어 먹어야 하고 부모의 보살핌이 분산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두개의 갈림길에서 타협책을 찾는다. 현재 아기에게 젖을 조금밖에 주지 않으면 아기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아기에게 너무 오랫동안 젖을 주면 어머니 자신의 건강을 해칠 염려가 있고 임신할 기회가 줄어든다.

어머니는 두가지의 극단적인 경우를 피하면서 적정 시기에 이유를 결정한다. 이유 시기 결정에 있어 아기가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측면이 농후하지만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생존에 관련된 문제이다. 따라서 이유 시기를 놓고 아기와 어머니 사이에 예상되는 이해의 충돌은 어머니에게 너무 불공평한 것이므로 결코 실제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어머니의 결정이 최종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아버지가 개입되면, 삼자 사이에 발생하는 이해의 갈등은 양상이 달라진다. 아이가 자신의 핏줄이라는 확신을 갖는 정도에 따라 아버지의 태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아기가 자신의 씨라고 믿는 남편은 아내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젖을 먹이기를 바란다. 아버지와 아기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아기가 혹시 자신의 혈통이 아닐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아버지는 아내가 젖을 빨리 떼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아내의 사랑을 독점하는 아기에게 질투를 느낌과 아울러 하루 빨리 자신의 자식을 임신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아기는 젖 먹이는 일을 놓고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러나 삼자 간의 이해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므로 해결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여자는 출산 후 몸매 관리에 커다란 관심을 가진다. 임신 후반기에 배와 넓적다리, 엉덩이에 축적된 지방을 빼야 하기 때문이다. 모유를 먹이면 임신 전의 체중과 몸매를 되찾는데 도움이 된다.


모유 먹이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

오늘날의 어머니들은 이유 시기의 결정 못지 않게 중요한 또하나의 문제를 안고 있다. 출산 직후 아기에게 모유를 먹일지 말지 선택해야 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생모가 무조건 모유를 먹였다. 기껏해야 유일한 대안은 유모였다.

그러나 유아용 조유가 등장하면서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어머니들이 젖 먹이는 일을 언제 끝내야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했으나 오늘날의 어머니들은 이와 맞먹는 비중으로 젖 먹이는 일을 시작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게 된 것이다.

유아용 조유는 모유보다 성능이 뒤떨어진다. 어머니의 젖에는 항체가 있으므로 조유보다 모유를 먹인 아이들이 질병에 덜 감염된다. '아기 전쟁'에 따르면, 조유로 기른 아이들에게 6개월간 소요된 보건비용이 6만8천달러인데 비해 모유로 키운 똑같은 수의 아이에 대해서는 단지 4천달러 밖에 들지 않았다. 의료시설이 불충분한 브라질에서는 조유를 먹인 아이들이 모유로 자란 아이들보다 사망 가능성이 14배 높게 나타났다.

모유가 조유보다 아기에게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여성들은 조유를 포기하지 않는다. 영국의 경우, 1990년에 산모의 63%가 출산 직후 모유를 먹였으나 2주일 뒤에는 50%, 6주일 지나서는 39%로 감소하였으며 9개월 이상 먹인 어머니는 10%에 불과했다.

모유 사용 비율이 낮아진 까닭은 유아용 조유의 출현을 계기로 모유를 먹이는 행위에 대해 사회적 압력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조유에 대한 상업적 선전이 대대적으로 시작됨과 동시에 모유로 키우는 어머니들을 겨냥한 압력은 두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수십년 전 유럽과 미국에서 젖 먹이는 일을 비위생적이라고 몰아세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중 앞에서 젖 먹이는 여자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에서 젖가슴을 내놓고 모유를 먹이는 여자들은 역겨움을 느끼거나 숙녀인 체하는 사람들로부터 음식점이나 공원 등에서 쫓겨났으며 공연(公然) 외설죄로 체포하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미국의 일부 주정부에서는 모유 먹이는 일에 대한 대중의 적대감이 지나치게 완강해서 여러 사람 앞에서 젖 먹이는 일이 공연외설죄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는 법률을 제정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꽤 자란 아이를 모유로 기른 어머니들은 어린이 성농락(sexual abuse)으로 고소되기에 이르렀다. 15살 이하 어린이의 신체 일부에 5살 위인 사람이 성적 쾌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접촉시키는 행위를 일러 어린이 성농락이라 한다. 예컨대 미네소타주의 어느 어머니는 여러 사람 앞에서 여섯살 된 아이에게 젖을 먹인 이유로 성농락 혐의를 받았다. 아이의 실제 나이가 세살로 밝혀짐에 따라 고소는 기각되었다.
모유 먹이기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자연선택의 시각에서 음미해보면 흥미로운 해석이 도출된다. 남녀 공히 모유 먹이는 여자를 괴롭힘으로써 이득을 얻는다는 것이다. 남성 쪽에서 보면 모유 먹이는 여자가 적을수록 유리하다. 임신시킬 수 있는 여자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여성 쪽 역시 자신의 번식 성공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여자의 모유 사용을 싫어한다. 모유로 기른 아기가 조유로 기른 아기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요컨대 모유 먹이기에 대한 사회적 압력과 조유를 선호하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자연선택의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왜 현대여성은 모유를 싫어하나

물론 많은 여자들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압력을 의식해서 조유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아기 입장에서는 모유가 조유보다 당연히 좋지만,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모유 먹이는 일이 반드시 유리할 수만은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베이커가 '아기 전쟁'에서 어머니로부터 모유를 찾아먹는 것을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최초로 겪는 전쟁에 비유한 까닭이다.

현대 여성이 모유 먹이는 일을 기피하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 이유는 아기가 젖은 입으로 빨거나 물어뜯을 때 젖꼭지가 얼얼해지고, 갈라지며, 피를 흘리거나 염증이 생기기 때문이다. 젖꼭지는 발과 엇비슷하다. 사람의 발은 본래 몇시간이고 자갈밭을 달릴 수 있을만큼 단단했으나 양말과 구두의 보호를 받은 뒤부터 기능이 저하되어 맨 땅에서는 쉽사리 금이 가고 피를 흘린다.

젖꼭지 역시 노출된 채 햇볕과 비바람을 잘 견뎌냈으나 사람이 옷을 걸치게 되면서부터 금새 갈라지고 통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젖꼭지가 모유 먹이는 일에 부적합하게 된 것은 자연선택의 진화과정에서 비롯된 착오가 아니라, 옷을 입는 관습이 빚어낸 역기능이라 할 수 있다.

현대여성이 모유를 기피하는 두번째 이유는 사회활동에 제약을 가하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들은 출산 후 곧바로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조유를 선택한다. 어머니의 경제능력은 번식 성공도를 높이는데 기여한다. 여자가 모유를 먹이는 시간에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들인다면 결국 아기의 성장 환경을 개선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날 여성들이 모유를 먹이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이유는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모유보다 조유를 선호하도록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모유를 먹일 때 발생하는 신체적 및 경제적 불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가지 이유만으로도 조유를 먹이는 여자들이 어머니 행세를 할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되었다. 그러나 조유를 선택할 경우 모유를 먹임으로써 여자가 얻게 되는 이득을 포기해야 한다.

허리/엉덩이 비율의 의미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 두가지 측면에서 어머니에게 이익이 된다. 첫째, 모유를 먹이는 어머니는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 아이에게 젖을 먹인 기간이 길수록 유방암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둘째, 모유를 먹이지 않으면 임신 전의 체중과 몸매를 되찾기 어렵게 된다.

출산한 여자의 최대 관심사는 임신 후반기에 배, 넓적다리, 엉덩이에 축적된 지방이다. 특히 배에 살이 붙으면 허리가 굵어지면서 엉덩이 치수에 대한 허리 치수의 비율(WHR)이 바뀐다.

건강한 남자의 허리/엉덩이 비율은 0.85-095인 반면에 건강한 여자는 0.67-0.80이다. 사춘기 전에는 남자와 여자가 비슷한 비율을 나타내지만 사춘기부터 차이가 난다. 소년들은 엉덩이의 지방이 빠져나가면서 허리/엉덩이 비율이 높아지지만, 소녀들은 여성 호르몬의 분비로 하체, 특히 엉덩이와 넓적다리에 지방이 늘어나므로 허리/엉덩이 비율이 낮아진다.

여자의 허리/엉덩이 비율은 몸매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단서이다. 인도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인 데벤드라 싱은 여자의 허리/엉덩이 비율을 연구하여 모든 남자들이 큰 엉덩이에 잘록한 허리를 가진 여체를 본능적으로 좋아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문화에 따라 여체의 매력에 대한 기준은 제각각이다. 식량이 모자란 문화권에서는 통통하게 살찐 여자가 부귀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풍족한 사회에서는 가냘픈 여자일수록 식도락을 즐기는 상류계층으로 대접받는다.

싱은 이와 같이 여자의 몸크기에 대한 남자의 선호가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몸매에 대한 선호임을 발견했다. 가령 미스 아메리카는 1980년대가 1940년대보다 두배 가량 가냘플 정도로 갈수록 말라깽이가 되어가지만 허리/엉덩이 비율은 결코 0.68-0.72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플레이보이' 잡지의 중앙에 접지로 소개되는 여자들의 나체 역시 정확하게 0.7의 허리/엉덩이 비율을 나타냈다. 남자들은 0.7의 여자가 0.8보다 매력적이고, 0.8의 여자가 0.9보다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허리/엉덩이 비율이 낮은 여자일수록 남자들이 좋아한다.

한국 표준과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여성(25-50살)의 평균 가슴-허리-엉덩이 크기는 34-28-36인치이다. 허리/엉덩이 비율은 0.78이다. 한국 여성의 몸매가 그렇게 볼 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허리/엉덩이 비율이 낮은 여자는 대부분 생식능력이 우수하다. 허리가 잘록한 여자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원활하여 임신 가능성이 높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리/엉덩이 비율이 높은 여자는 임신이 쉽게 되지 않는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되어 허리가 굵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리/엉덩이 비율이 높은 여자가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테스토스테론이 가장 많이 분비될 때 임신한 여자는 딸보다 아들을 낳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허리/엉덩이 비율이 낮은 여자들이 임신을 잘 하고 매력적이긴 하지만 굵은 허리로 말미암아 허리/엉덩이 비율이 높은 여자들도 아들을 선호하는 사회에서는 인기가 높다는 것이다.

임신은 허리와 엉덩이의 크기를 극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임신 후반기에 배와 엉덩이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은 출산 후 산모가 제대로 먹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려는 자연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인식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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