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기본입자인 쿼크의 존재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995년 미국 페르미가속기연구소에서 톱쿼크가 발견됨으로써 6개의 쿼크가 자연에 존재하며 그들은 상당히 다른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1962년 머레이 겔만이 제안했던 쿼크모델이 드디어 완성된 것이다(겔만이 쿼크모델을 제안할 때 3개의 쿼크만 사용했다).
실험적으로 양성자가 쿼크로 이뤄졌다는 것은 1967년 미국 스탠포드선형가속기센터가 2백억eV(전자볼트)의 전자를 양성자에 충돌시키는 실험에서 처음 확인했다. 현재 물리학자들이 이해하고 있는 바로는 1세대의 업쿼크와 다운쿼크, 2세대의 스트렌지쿼크와 참쿼크, 3세대의 바틈쿼크와 톱쿼크 등 6개의 쿼크가 우주의 모든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3개의 쿼크가 합쳐지면 중입자(baryon)라는 입자가 된다. 양성자는 이 중입자들 중 가장 가벼운 것이다. 쿼크와 반쿼크가 합쳐지면 중간자(meson)라는 입자가 된다. 이들 중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유가와 히데키가 1935년 예측해 1949년 노벨상을 탔던 파이(π) 중간자이다.
3가지 색을 지닌 쿼크
여기서 쿼크의 성질을 잠시 알아보기로 하자. 이 그림은 쿼크와 물질을 이루는 경입자(lepton, 전자와 같은 입자들)의 성질을 나타낸 것이다. 쿼크의 특이한 성질은 이들이 분수전하를 가진다는 것이다. 즉 전자 전하량의 3분의 1 또는 3분의 2의 크기를 갖고 있다.
분수전하를 가진다는 것 외에도, 쿼크가 경입자와 다른 점은 색이 있다는 것이다. 쿼크는 3가지 다른 색, 즉 빨강, 파랑, 녹색을 띨 수 있다. 이에 따라 양성자와 중간자와 같은 입자들은 무색투명한 색이 된다. 양성자를 이루는 3개의 쿼크들은 각각 빨강, 파랑, 녹색을 띠고 있다. 빛의 삼원색을 합치면 무색투명해지는 것과 같이 이들을 합치면 무색투명해진다.
더 신비로운 것은 쿼크들이 각자의 색을 가지고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중입자 또는 중간자 내부에서 색이 없는 조합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이를 '쿼크의 유폐'라고 부른다. 결국 자유롭게 혼자 돌아 다니는 쿼크를 볼 수 없다는 것이 현재 물리학의 결론이다.
또한 쿼크의 질량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가벼운 업쿼크는 전자의 10배 정도이고, 가장 무거운 톱쿼크는 금(Au) 원자 하나의 질량에 맞먹는다. 다시 말해 톱쿼크의 질량은 업쿼크의 질량보다 3만6천배나 크다. 기본입자인 쿼크들의 질량이 왜 이렇게 다양할까 하는 것은 질량의 근원 문제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의문점이다.
한편 6개의 쿼크들 중에서 양성자와 중성자의 주 구성성분이며, 현재 우주물질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업쿼크와 다운쿼크다. 나머지 4개의 쿼크들은 입자가속기나 우주선 입자를 통해서 생성되고,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살다가 업쿼크나 다운쿼크로 붕괴해 버린다.
물질과 반물질의 대칭성
이렇게 말하면 4개의 쿼크들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그 존재의 의미를 물을 수 있다. 이들의 존재는 현재 우주가 왜 반물질이 아닌 물질로만 이뤄졌는가 하는 매우 중대한 의문에 대해 결정적인 열쇠가 될 수 있다. 반물질과 물질 사이의 대칭성은 'CP 대칭성'이라고 한다. 이는 공간을 반전시키고 입자의 전하를 반대 부호로 바꾸어 주는 것에 대한 대칭성이다.
이 대칭성이 미약하게나마 깨져 있다면, 왜 현재의 우주가 물질들로만(반물질이 아닌) 이루졌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쿼크가 2개씩 쌍으로 3세대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러한 설명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쿼크들 사이에는 섞임현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통해 다른 세대로의 붕괴가 가능하게 된다. 만약 쿼크가 2개 또는 4개만 있다면 이러한 섞임은 완전히 실수들로만 구성된 행렬에 의해 기술될 것이다. 이럴 경우 CP 대칭성은 완전히 보존된다.
CP 대칭성이 깨지려면 최소한 하나의 복소수가 행렬에 포함돼야 한다. 이를 위해 최소한 3개의 세대가 필요하게 된다. 물론 3개 이상의 세대가 있어도 CP 대칭성은 깨진다. 물리학자들이 그동안 입자가속기 실험을 통해 3세대 이상의 쿼크를 찾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해 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4세대의 쿼크들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자연은 아마 가장 적은 노력으로 모든 현상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자연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만들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만들지도 않은 듯하다.
1999년 초부터는 미국의 스탠포드가속기연구소(SLAC)와 일본의 고에너지물리학연구소(KEK)에서 B-공장이라고 불리는 전자-양전자 가속기가 가동될 예정이다. 3세대의 바톰쿼크로 이뤄져 있는 B-중간자라는 입자들을 수억개 만들어내 이들이 붕괴할 때 발생하는 CP 대칭성이 깨지는 현상을 관측하려는 실험들이다.
B-중간자의 붕괴에서 CP 대칭성이 관측될 가능성은 현재 입자물리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비록 6개의 쿼크가 모두 발견됐지만 이들의 성질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많이 진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쿼크가 더 작은 새로운 입자들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질량의 근원을 푸는 힉스입자
현재 유럽핵물리연구소(CERN)에서는 페르미연구소의 가속기보다 7배나 에너지가 높은 양성자 가속기를 건설 중이다. 또한 미국, 일본, 독일에서도 각자 또는 국제협력을 통해 1조eV의 전자-양전자 가속기를 건설하려고 한다. 그 목적은 힉스입자라고하는 새로운 입자를 찾는 데 있다.
톱쿼크를 찾았지만 아직도 더 찾아야 할 입자가 남아 있다는 것인가? 원래 힉스는 한 물리학자의 이름이다. 힉스입자의 기원을 찾으려면 몇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물리학에서 힘의 통일은 가장 중요한 명제 중 하나다. 물리학자들은 모든 힘들이 궁극적으로 하나의 기본원리로 이해돼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지금은 잘 알려졌지만, 전자기력과 약력이 통합된 것은 1960년대 말 스티븐 와인버그와 압두스 살람이라는 물리학자들에 의해서다. 두 사람은 셸던 글래쇼와 공동으로 이 공적으로 197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 두 힘을 통합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전자기력이 질량이 없는 광자에 의해 매개되는 반면, 약력은 질량이 있는 입자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이다. 그 질량은 그때까지 알려진 어떤 입자보다 무거웠다(8백억eV 정도로 양성자가 80개 있는 것과 같은 질량이다).
이론을 전개하다 보면, 질량이 없는 입자들만 사용할 경우 두 힘을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기술할 수 있으나 약력을 매개하는 입자의 질량을 자연스럽게 도입할 방법이 없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 힉스가 1964년에 제안한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라는 것이다.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 어떤 현상인지 쉽게 이해하기 위해 원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수저가 원탁에 빙둘러 놓여졌을 경우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왼쪽의 것이나 오른쪽의 것이나 대칭이므로 어떤 것을 사용해도 된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 왼쪽 수저를 집어서 사용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왼쪽 수저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대칭성이 깨진 것이다.
이와 같이 힉스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매우 간단하다. 즉 축퇴돼 있는 진공의 대칭성이 깨지면서 그 결과로 약력을 매개하는 입자에 질량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입자가 하나 더 생긴다. 이 입자가 힉스입자다.
현재까지의 실험에 의해 약력을 매개하는 보존(boson, 힘을 매개하는 입자로 전자기력의 경우 광자가 보존이다)인 W입자와 Z입자들은 모두 발견됐을 뿐 아니라 그 질량도 매우 정밀하게 측정돼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의 근원이 되는 힉스입자는 발견되지 않았고, 그 질량이 얼마인지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태까지의 실험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힉스입자의 질량은 수백억eV부터 수조eV 사이의 값을 가지리라고 예상된다.
힉스입자는 입자물리의 표준모형의 감초와도 같다. 한약에서 감초가 들어가지 않으면 약의 조제가 끝나지 않는 것처럼, 힉스입자의 성질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이 최종 검증을 끝냈다고 말할 수 없다.
힉스입자의 가장 중요한 성질은 이들이 입자들과 반응할 때 그 세기는 입자들의 질량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힉스입자와의 이러한 결합이 질량의 근원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힉스입자는 자연계의 모든 입자들이 질량을 갖게 하는 기묘한 입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힉스입자를 이해하면 질량의 근원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물리학자들은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