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행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

바람과의 두뇌 싸움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실현시킨 행글라이더와 패러글라이더는 항공공학과 유체역학 등 첨단과학이 녹아들어 있는 '과학 레포츠'다.

본능적으로 끊임없이 뭔가 색다른 것을 추구하려는 인간에게 하늘은 분명 매력적인 도전 공간이다. 비행기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인류는 수 없이 하늘을 날고자 시도해왔고, 그 부산물로 각양각색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과학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기 이전에 살던 조상들이 새 깃털을 몸에 달고 뛰어내리는가 하면, 대형 모자나 연(鳶) 등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동력을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바람에 몸을 맞기는 행글라이더의 등장은 이같은 시도의 완결판이라 할만하다. 오늘날 항공스포츠의 대표로 인정받고 있는 행글라이더는 1948년 NASA 전신인 NACA 연구원이었던 로갈로의 '공기팽창식 삼각날개(flexible delta wing)에 관한 이론' 을 바탕으로 등장했다. 연에 공학적인 개념을 도입해 낮은 속도의 비행 상황에서도 적응할 수 있도록 고안된 그의 연구는 원래 아폴로 우주선 캡슐 회수 방법을 연구하면서 내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애초의 효용으로는 채택되지 못한 대신, 일단의 연구자들에 의해 항공레포츠에 적용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으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을 거듭했다. 초창기에는 단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나는 것이 전부였지만 최근에는 더 높이, 또 더 멀리 나는 것은 물론 곡예를 하거나 기류를 타고 상공에서 장시간 머무르는 것도 가능해졌다.

첨단 과학이 녹아들어
 

(그림1)행글라이더 각부 명칭
 

이같은 변화는 단순히 행글라이더 비행자의 기술이 향상됐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항공공학과 유체역학 등 현대의 첨단과학이 그만큼 이 레포츠에 녹아들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행글라이더의 골격을 이루는 파이프는 대개 두랄루민이라 불리는 금속을 사용한다. 두랄루민은 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구리 망간 등을 섞어 항공기용 소재로 개발한 합금의 하나로,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매우 높다. 그리고 날개는 바람을 잘 투과하지 않으면서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비교적 둔감한 폴리에스테르계 섬유를 주로 사용한다. 처음 행글라이더가 만들어졌을 때 대나무와 나일론 천을 이용했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초창기에 사용되던 행글라이더는 날개의 부리각이 80-90도 정도로 벌어져 있으며 3.5 이하의 가로세로비에 날개가 유동성을 가진 이른바 '로갈로형'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부리각이 작으면 안정성은 좋은 반면 그만큼 속도가 느리다. 따라서 속도감을 즐기려는 모험가들은 점차 부리각의 크기를 1백10-1백20도로 크게 하고 가로 세로비도 5.5로 늘려나갔다.

부리각의 크기와 날개의 가로 세로비가 커지는 것은 과학적인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행글라이더는 새의 날개와 마찬가지로 윗면 앞부분은 완만한 언덕모양으로 부풀어 있고 다시 뒤쪽을 향해서 느릿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흘러들어온 공기는 날개 앞쪽 끝에서 각각 날개 위와 아래의 둘로 나뉘어져 통과한다. 그런데 행글라이더의 날개 위쪽은 아래쪽에 비해 표면의 길이가 길다.

여기서 알아둘 것이 유체역학의 기본 법칙중 하나인 베르누이의 정리다. 베르누이의 정리란 유체의 유속과 압력의 관계를 수량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간단히 말해 단위시간당 단위면적당 지나가는 기체의 양은 일정하다는 것을 이론으로 정립한 것이다. 모든 항공기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 이론은 행글라이더도 예외가 아니다. 즉 날개 위쪽을 통과하는 공기는 아래쪽을 통과하는 공기보다 같은 시간에 먼 거리를 빠른 속도로 통과한다.

행글라이더 날개의 모양에 의해 날개 위쪽의 압력은 낮아지고 이로 인해 날개를 끌어올기려는 힘이 발생한다. 이 힘이 양력이다. 그리고 날개를 따라 아래쪽으로 흘러들어가는 공기에 의해 날개가 기울어져 뒤쪽에 힘을 받는다. 이 힘을 항력이라고 부른다. 양력과 항력의 합이 공기력이고 이를 저항하는 힘은 중력이다. 글라이더가 아무런 동력 장치 없이도 공중에 뜨고 비행하며 다시 착륙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같은 제반 힘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림2)베르누이 정리
 

행글라이더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한편 행글라이더와 함께 항공스포츠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패러글라이딩은 최근들어 동호인수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인기 레포츠.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원래 패러글라이더는 낙하산(parachute)을 레포츠용으로 개량한 것이다. 그러나 낙하산과 패러글라이더는 공중에서 비행해 안전하게 착지하는 장치라는 점 외에는 전혀 별개의 물체다. 당연히 낙하산으로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없다. "낙하산은 카노피(canopy, 낙하산 지붕) 면적이 작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전진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항공교육단' 송재일 실장은 설명한다.

전체 형태를 파이프 프래임에 의해 지탱하는 행글라이더와 달리 패러글라이딩의 카노피는 공기 압력에 의해서만 유지되지만, 스피드면에서는 행글라이더에 뒤지지 않는다. 또한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카노피와 연결된 줄을 필요한 만큼 잡아당기면 되기 때문에 조종에 세밀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행글라이더와 패러글라이더 모두 사람이 추(錘)가 돼 무게중심을 어떻게 잡는가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행글라이더의 조정이 패러글라이더의 경우보다 더 힘이 든다. 행글라이더에 몸을 매단 비행자는 자신의 몸무게를 실어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조정간을 잡고 앞뒤 좌우로 움직임으로써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잡아야 한다.

조정간을 앞으로 밀면 행글라이더의 앞면이 들려 바람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체는 상승한다. 반대로 조정간을 뒤로 잡아당기면 앞면이 수그러지면서 바람 받는 날개 면적이 적어져 하강하게 된다. 물론 앞면으로 조정간을 계속 밀면 글라이더가 수직 상태를 이루어 결국 속도를 잃고 추락하거나 뒤집어지고 만다. 그러나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는 전문가들은 이같은 조정법을 이용해 기체를 3백60도 회전시키는 이른바 '윙 오버' 묘기를 부리기도 한다.

행글라이더를 타고 얼마만큼 높이, 또 멀리 비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바람의 상태에 달려 있다. 행글라이더는 바람을 안고 출발해서 역시 바람을 안고 착륙한다. 이는 여타의 항공스포츠는 물론 엔진 동력을 이용하는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하늘을 나는 탈 것이 맞바람을 맞는 이유는 간단하다. 양력을 받기 위해서다.

비행체를 향해 부는 바람을 정풍이라고 하고 그 반대를 배풍(背風)이라 하는데, 배풍으로는 비행체가 양력을 받지 못한다. 배풍을 맞아 비행하기 위해서는 바람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비행체가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고꾸라질 뿐이다.

항공스포츠 전문가 윤청씨(날개클럽 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행글라이딩을 즐길만한 활공장소가 그리 많지 않다. 경기도 양평의 유명산이나 지리산의 정령치, 전주의 경각산 등 대략 10여군데 정도에 불과하다. 군사상 많은 곳이 비행불가지역으로 지정돼 있다는 것이 한 이유가 되겠지만, 지형적 요인도 매우 크다는 것이다.

"중국의 황사가 매년 봄 우리나라를 덮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위도상 편서풍이 분다. 편서풍을 맞고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서쪽을 향해 선 적절한 고도의 산이 있어야 하며, 이 산이 불어오는 바람을 안아주기 위해서 병풍처럼 둘러 서 있어야 한다."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은 대안으로 도심에서의 비행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 이유는 빌딩 사이에서 발생한 강력한 상승기류 때문. 바람 외에는 아무런 동력이 없는 행글라이더는 하강하긴 쉬워도 저절로 올라가긴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상에서 이륙한 행글라이더가 긴 시간 비행하기 위해서는 상승기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상승기류는 햇빛에 의해 지면 온도가 상승하면 지면에 접해 있는 공기 온도도 상승해 공기 밀도가 작아지고, 이 공기가 주위 공기보다 가벼워질 때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태양열을 흡수하기 쉬운 장소는 그만큼 상승기류가 발생하기 쉽다.

도심의 빌딩 사이나 아스팔트 땅이 노출된 지표의 상공에는 강력한 상승기류가 발생해 동체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기 십상이다. 물론 충분한 고도를 확보한 채 벌판에서 도심으로 진입한다면 스릴 넘치는 비행을 즐길만 하겠지만, 전문가들은 "어지간한 실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선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온 몸으로 바람을 읽어라
 

행글라이딩보다 조종하기도 쉽고 배우기도 쉬운 패러글라이딩의 인기가 높다.
 

행글라이딩이나 패러글라이딩은 한마디로 바람과의 두뇌싸움이다. 이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바람을 제대로 읽고 그 속도에  맞추어 매 상황에 따라 적절한 비행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글라이더가 이륙하기 위한 이상적인 바람의 조건은 지상에 시속 45km 이내로 부는 상태. 물론 이 조건은 비행이나 착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략 시속 8-30km가 가장 적당하며, 지상에 시속 60km 이상의 바람이 불면 상공에 난기류가 발생할 소지가 있어 비행에 나서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눈이 오는 상태에서는 비행에 임하지만, 비가 오면 글라이더 날개의 무게가 늘어나기 때문에 비행하지 않는다.

한가지 유의할 점은 글라이더의 이륙을 위해서는 바람의 속도나 고도보다는 활공 장소의 경사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 곳이라도 일단 글라이더를 매고 초당 9m 정도의 속도로만 달려주면 이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장애물이 없는 15-45도 정도의 경사지를 최적으로 꼽힌다.

일단 공중에 떠오른 행글라이더의 비행속도는 '대기속도' 로 표현된다. 대기속도란 글라이더가 날아가는 속도에 정풍이 들어오는 속도를 더한 것이다. 예를 들어 행글라이더의 비행속도가 40km이고, 공중에 40km의 바람이 진행방향(정풍)으로 불고 있다면 지상에서 부는 '대지속도'로는 0이 되지만, 대기 속도는 80km로 표시된다. 전문가들은 "대기 속도는 행글라이더의 조종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계기에 의지하기 보다는 '몸으로' 바람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바람에 구애받지 않고 비행을 즐기기 위한 시도도 일반화되고 있다. 토잉(towing)이라해서 보트나 자동차, 또는 초경량 항공기 등에 글라이더를 연결해 이륙을 도와준 다음 줄을 놓아주는 것이다. 그러나 토잉 비행은 보통 비행에 비해 위험도가 높고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초보자가 시도할 만한 것은 못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6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필 기자

🎓️ 진로 추천

  • 항공·우주공학
  • 기계공학
  • 물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