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말 FIFA(세계축구연맹)에 의해 발표된 국가별 축구 순위에 따르면, 한국 축구는 세계 20위이다. 브라질은 부동의 1위였고, 일본은 12위,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가 각각 4위, 25위, 36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FIFA의 국가별 축구 순위의 정확성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 우선 FIFA 랭킹은 국가대표팀의 경기 성적만으로 결정되고 청소년대표, 여자대표팀의 경기 결과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FIFA 랭킹은 각국 국가대표의 ▲월드컵 본선 대회 경기, ▲월드컵 지역 예선 경기, ▲대륙별 선수권대회 경기, ▲대륙별 선수권대회 예선 경기, ▲친선 경기에서의 성적을 기준으로 산출된다.
그런데 FIFA의 랭킹체계는 국가대표팀의 상비군 체제를 갖추고 출전한 경기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산출 점수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한 체계다. 때문에 일본의 경우, 지난 3월의 랭킹에서 9위를 차지해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10위권내에 진입하기도 했는데, 이는 1989년 일찌감치 2002년 월드컵 유치 준비위원회를 설립한 일본이 월드컵 본선대회에 진출하지 못하였던 약점을 의식해 착실하게 랭킹 관리를 해온 결과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FIFA 랭킹 20위는 한국 축구 경기력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 축구문화 및 시설 등을 총괄적으로 평가하면 우리 나라 등수는 더 떨어져야 하지만,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차원에서는 20위권 정도라고 생각된다.
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본선에 진출한 총 32개팀이 각 4팀씩 8개조로 나누어 조별 예선리그를 거쳐 각 조 1, 2위팀이 16강에 진출한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각 조에서 무조건 1, 2위를 해야만 16강에 진출하기 때문에 지난 미국 월드컵에서처럼 본선진출 24개팀에서 16강을 뽑던 것보다 한국팀 입장에서는 16강 진출이 더욱 어려워졌다.
축구공은 둥글다
물론 한국팀은 우리와 함께 E조에 속한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 평가에서 뒤지고 있다. 그러나 '축구공은 둥글다'는 표현처럼 축구 경기 결과는 FIFA 랭킹이나 전력 평가만으로 결판나지 않는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본선에서 북한은 예상을 뒤엎고 이탈리아를 1:0으로 제압해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월드컵 본선 16강에 올랐다. 옛소련에 3:0으로 패하고 칠레와 1:1 무승부를 기록했던 북한 팀은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예상을 뒤엎고 16강에 진출했다.
16강전에서도 포르투갈을 맞아 전반 22분 동안에 3골을 성공시켰으나, 포르투갈의 스트라이커 유세비오에게 4골을 내주며 5:3으로 역전패했다. 그러나 북한팀은 영국 리버풀 경기장의 5만명이 넘는 축구 팬들과 세계 축구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카메룬 돌풍이, 로저 밀러의 득점 후 코너 플랙을 잡고 보여준 람바다 엉덩이춤과 함께 세계 축구팬의 흥을 돋우었다. 카메룬은 아르헨티나, 루마니아를 1:0, 2:1로 꺾고 옛소련에게 0:4로 패해 2승 1패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전에서는 콜롬비아를 2:1로 꺾어 8강에 올라 잉글랜드에 2:3으로 패했다.
카메룬은 아프리카 특유의 유연한 몸과 스피드를 활용했고 러시아 출신인 니폼니시 감독의 전술적인 준비를 통해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역사의 한 부분을 하려하게 장식했다. 그후 니폼니시 감독은 카메룬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수여 받았고 1995년부터 한국 프로 축구팀인 부천 SK의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렇듯 축구경기의 승패는 단순한 전력비교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농구와 배구 같은 스포츠는 실력 차이가 나면 승패를 뒤집기가 어려우나 축구는 한 발로는 균형을 잡으면서 또 다른 한발로 공을 다루고 상대방과 동료선수들의 움직임까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경기결과의 예측이 쉽지 않다.
또한 축구 경기의 특성상 11명의 정신력, 팀웍 및 전술적인 준비 등 많은 변수가 승패에 작용하기 때문에 이변이 많이 일어난다.
학교 축구와 클럽 축구
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대회에서도 스페인(2:2 무), 독일(2:3 패), 볼리비아(0:0 무)와 경기 내용면에서는 좋은 경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첫경기 상대인 멕시코에 승리한다면 나머지 경기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역대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 대표팀은 초반부터 주눅이 들어 자신감 있는 경기를 보여주지 못했는데, 자신감을 갖고 과감한 경기운영을 한다면 1승1무1패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축구 경기력은 기술적, 체력적, 전술적, 심리적 요인 등에 의해 결정된다. 세계 일류 선수들과 우리 나라 선수들간에 패싱, 슈팅 등 개인 기술이나 체력적인 면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전술 운용에 있어서의 창의성이 우리 선수들이 뒤지는 부분이다.
이것은 '학교 축구'와 '클럽 축구'로 설명할 수 있는데 우리 나라는 학교 대표 선수 중심으로 선수육성이 이루어지는 반면 유럽이나 남미의 경우에는 클럽 중심으로 선수육성이 이루어진다. '클럽 축구'에서는 연령별로 선수들의 체력, 체격 및 기술 발달 단계에 맞추어 단계별로 선수를 육성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 축구'는 일단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 성적 및 경기 결과 중심의 지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단계적인 기술이나 창의성 개발을 위한 전술지도보다는 근시안적인 지도만 반복된다.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경기 결과가 무조건 차고 달리는 체력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유소년시기에 필요한 기술지도보다는 체력 위주의 트레이닝이 반복돼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많은 부상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클럽 축구'에서는 축구를 재미있게 배우며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자세를 육성하는 반면 '학교 축구'에서는 흥미보다는 결과 위주의 엄한 지도 방법 때문에 축구를 즐기기보다는 늘 부담스럽게 생각하게 하며 지도자의 눈치를 살피게 만든다.
지난 97년 말레이시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브라질에 10:3으로 참패를 당하였을 때 현지 전문가들이 우리 청소년 대표팀을 '생각 없는 로봇'으로 표현했다. 개인적인 기술과 체력은 좋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전술적인 창의성과 창조성이 결여됐기 때문에 이러한 지적이 나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선수들도 생각 없이 반복되는 훈련으로는 10년이 아니라 20년 동안 수업을 전폐하며 훈련을 계속해도 기술적, 전술적으로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중·고등학교 선수시절에 지도자에 의해 지적받은 단점들이 대학교이나 프로팀에 가서도 반복되는 선수들이 많은데, 이는 생각 없이 무의미하게 훈련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유럽형 남미형 한국형
흔히 세계 축구 스타일을 체력과 체격조건을 활용하기 위한 긴 패스로 측면돌파에 이은 센터링을 슈팅으로 연결하는 유럽스타일과 짧은 2:1 패스와 현란한 개인기로 중앙 돌파 공격 방법을 이용하는 남미 스타일로 구분한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전통적인 유럽과 남미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서로의 장점을 취해 경기 운영을 하는 추세이다.
유럽 스타일의 축구 종가 잉글랜드가 그 좋은 예인데 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탈락의 수모를 당한 후 전통적인 유럽 스타일의 장점과 남미 스타일의 장점을 취해 축구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미드필드 진영의 짧고 정확한 패스 연결과 과감한 개인돌파 및 공격가담이 활발해지면서 경기력이 급상승하고 있다. 남미 스타일의 대표격인 브라질은 4:4:2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남미 특유의 개인기에 유럽 스타일의 힘과 세기를 절묘하게 결합해 개인기에 의한 묘기가 살아나면서도 빠르고 힘찬 공수전환이 이루어지는 이른바, 자갈로 감독의 '아트 사커'를 창출해냈다.
그렇다면 한국 축구의 이상적인 스타일은 어떤 것일까? 최근 경기 상황을 분석해 보면 선수들의 체격 및 체력조건은 계속 향상돼 경기장 내에서의 선수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상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면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움직임이 요구돼 체력적인 부담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는 빠른 공격과 수비 전환을 통해 공격과 수비 때 수적 우위를 활용하는 축구의 기본원리인 '전원공격, 전원수비' 전술로 이어지면서 공격과, 수비에 최대한의 유연성을 보장하는 4:4:2와 3:5:2 시스템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축구의 장점은 부지런한 움직임과 공격수들의 빠른 스피드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팀의 이상적인 경기운영 방법은 전 경기장을 90분간 부지런히 뛸 수 있는 체력에 중점을 두고 수비 위주의 경기운영을 하면서 빠른 공수전환과 역습으로 득점기회를 노리는 경기운영 방법이다.
즉 최종 수비수와 최전방 포드의 폭을 최소화해 상대의 공격력을 우리 공격진에서 1차로 차단하고, 기회를 포착했을 때에는 수비수가 공격에까지 과감히 가담해 득점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형 실리 축구'의 완성을 위해서는 보완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수비의 경우, 지역방어와 동료 커버플레이 능력이 향상돼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대표팀은 상대공격수를 주로 1대1 대인 방어 형태로 수비를 해왔는데 대인방어는 체력소모가 심해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기 중반 이후에 많은 허점을 보여왔다.
그러므로 수비방법을 지역방어와 대인방어를 병행해야 한다. 위험지역이나 상대공격이 진행되는 곳에서는 적극적 대인방어를 시도하며, 반대편에서는 지역방어를 펼치는 신축성 있는 수비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공격의 경우에는 골 결정력과 공격수들의 수비력 강화가 필요하다. 월드컵 본선에서 기량이 뛰어난 팀과의 경기 때 득점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특히 한국 대표팀 스타일의 수비 위주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선 득점기회를 반드시 살릴 수 있는 골 결정력과 집중력을 지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