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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약주는 곰팡이: 페니실린의 후예들

항생제에서 불치병 치료제까지

 

최초로 항생제를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1929년 어느날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은 병원성 미생물을 연구하던 중 우연히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미생물을 배양한 접시에 푸른곰팡이가 떨어져 있었는데, 그 주위에 다른 병원균이 전혀 자라지 못했다.

당시까지 푸른곰팡이는 빵이나 떡에 피어 못먹게 만드는 천덕꾸러기로 여겨지고 있었다. 플레밍은 푸른곰팡이가 병원균이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어떤 물질을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했다. 세계 최초로 항생제(다른 미생물이나 세포의 기능을 저해하는 물질) 페니실린을 찾아낸 순간이었다. 페니실린이란 말은 푸른곰팡이의 학명(Penicillium)을 딴 이름이다.

페니실린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부상병들의 목숨을 건졌다. 영국의 처칠 수상의 폐렴을 치료한 약품으로도 유명하다.
 

고지혈증 치료제 로바스타틴을 만드는 곰팡이의 전자현미경 사진


황금을 벌어들이는 마이다스의 손

곰팡이는 한편으로 인간에게 해를 주지만 많은 곰팡이들은 항생제를 비롯한 의약품을 만드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푸른곰팡이에 이어 발견된 항생제 생산 곰팡이 제2인자(Cephalosporium acremonium)는 페니실린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세팔로스포린을 생산한다. 현재 이 두가지 항생물질은 연 매출 1백억달러에 이르는 거대 품목으로 떠올랐다. 전세계 항생물질 판매량의 60%를 차지하는 규모다. 현재까지 알려진 항생제 종류는 1천여종에 달한다.

또 동맥경화와 같이 혈관 내에 콜레스테롤이 싸여 혈액의 흐름을 억제하는 고지혈증의 경우 이를 치료하고 예방하는 약제(로바스틴, 심바스타틴, 프라바스타틴)를 곰팡이가 생산해낸다. 매년 약 60억달러가 팔리는 고부가가치 약품이다.

한편 '20세기 신비의 약'이라 불리는 면역억제제(사이클로스포린)도 곰팡이가 생산한다. 신장, 간, 심장, 각막, 그리고 골수 등의 장기를 이식할 때 인체에서는 외부의 장기를 거부하는 면역작용이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장기 이식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 인체의 면역작용을 억제해야 하는데, 여기에 사용되는 약제가 바로 사이클로스포린이다. 연 매출 15억달러의 거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약품이다.

물론 장기이식을 하기 전 기증받는 사람의 조직에 장기가 거부반응을 일으키는지 확인하는 일은 필수다. 하지만 1백%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수술을 마친 후 환자는 평생 동안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곰팡이로부터 의약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먼저 특정 효과가 있는 물질을 생산하는 곰팡이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항생제를 찾는 경우 보통 흙에서 분리한 곰팡이 중에서 미생물의 생육을 억제하는 물질을 분비하는 곰팡이를 분리해야 한다. 이때 미생물학, 생물학, 화학, 약학, 생화학, 의학 등 많은 관련 분야가 동원돼 약품으로서의 가능성을 평가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합격' 판정을 받은 곰팡이가 곧바로 산업에 응용되는 것은 아니다. 곰팡이가 생산하는 물질의 양은 극미하기 때문에 경제성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가지, 즉 곰팡이의 생산능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과 곰팡이가 자라는 환경을 최적화시키는 방법이다.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곰팡이의 관련 유전자를 변화시켜야 한다. 화학 약제를 처리해 인위적으로 곰팡이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그 중에는 특정 물질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만들어내는 돌연변이체가 생기게 마련이다. 푸른곰팡이 돌연변이체의 경우 정상에 비해 1만3천배나 많은 페니실린을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곰팡이의 유전자에 직접 조작을 가해 곰팡이를 개량화시키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한편 곰팡이 배양 환경을 최적화시키는 일이 만만치 않다. 영양분(탄소, 질소, 미량원소)과 산소, 적당한 온도, 수소이온농도(pH)를 적절하게 맞추는 일이 필수적이다. 이 중 어느 하나의 조건이라도 잘못 설정되면 기껏 어렵게 찾아낸 곰팡이를 모두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특히 다른 곰팡이가 같이 자라 기존의 곰팡이를 '오염'시키는 일을 막는 것이 큰 일이다. 그래서 수시로 배양기를 살균하고 이곳에 공기를 보내는 통로에 필터를 장치함으로써 오염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최종적으로 곰팡이가 생산하는 물질을 분리하고 정제하면 순수한 약품을 얻을 수 있다.
 

(그림)곰팡이 형질전환 원리^사람 세포로부터 DNA를 분리한 후 호르몬이나 생리조절물질을 만드는 특정 부위를 절단한다. 이 부위를 곰팡이로부터 얻은 DNA에 접합시킨 후 이를 곰팡이 세포에 이식한다. 형질이 전환된 곰팡이는 호르몬이나 생리조절물질을 만들어낸다.


악조건에서 버티는 생존 수단

최근에는 곰팡이가 직접 만들어내는 물질에 만족하지 않고 곰팡이에 첨단 유전공학 기법을 가해 사람에게 필요한 물질을 생산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즉 인체에서 아주 미량으로 만들어지는 호르몬이나 성장인자, 그리고 생리조절물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곰팡이의 유전자에 인위적으로 결합시켜 곰팡이가 그런 물질들을 생산하게 하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의 대상이 되는 곰팡이로는 주로 효모가 이용된다.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되는 인슐린, 에이즈 치료제, 에이즈 백신, 간염 백신, 말라리아 백신과 같이 수많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사용되는 약제를 효모로부터 생산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곰팡이는 왜 인간에게 유용한 약제를 만드는 것일까. 엄밀히 말하면 이 질문은 인간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산물이다. 곰팡이가 자신을 위해 만드는 물질 중에서 사람들이 유용한 물질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곰팡이는 그런 물질을 왜 만드는 것일까. 아직 확실한 학설은 없지만 항생물질의 경우 곰팡이가 영양분 부족과 같은 어려운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생존수단으로 이런 물질을 만드는 것 같다. 먹이가 모자른 상황에서 다른 미생물과 생존경쟁을 벌이다 보면 다른 미생물을 죽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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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최병택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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