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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티드

초특급 킬러들의 무한특급액션

메디컬 평점★★★☆☆ 인간 한계에 대한 발칙한 도전

평범한 회사원 웨슬리(제임스 맥어보이 분)는 하루에도 수차례 안정제를 복용해야하는 심한 불안증 환자다. 이런 탓에 그는 상사에게 무시당하고 여자 친구와 바람난 동료에게는 삿대질 한번 못하는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웨슬리 앞에 매력적인 폭스(안젤리나 졸리 분)가 나타나고, 웨슬리는 초특급 킬러들의 숨 막히는 총격전에 휘말린다.
그리고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암살조직에서 일했던 최고의 킬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영화 ‘원티드’는 인간 한계를 초월한 초특급 킬러들의 이야기를 다룬 액션 판타지물이다. 웨슬리는 작은 충격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불안증을 앓고 있는데, 이 때문에 자신감을 잃은 채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웨슬리를 찾아온 암살조직은 그의 불안증이야말로 킬러의 본능이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발하라고 주문한다. 웨슬리의 아버지는 이런 본능에 의지해 최고의 킬러가 될 수 있었다는 것. 결국 웨슬리는 수십 년간 앓았던 병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킬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기로 결심한다. 과연 그는 아버지와 같은 초특급 킬러가 될 수 있을까?

심장이 1분에 400번 뛰면 초인?

주인공 웨슬리는 작은 충격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병을 앓고 있다. 이와 비슷한 병으로는 공황장애(panic disorder)가 있다. 공황장애는 발작이 일어나면 곧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놀라움을 느끼고, 그 때문에 스스로 당황하는 현상을 말한다.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은 발작 도중 호흡이 곤란하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흉부가 옥죄거나, 숨이 막히는 증세를 나타낸다. 흔히 이런 발작은 급작스럽게 일어나 수분 동안 지속됐다가 사라진다.

영화에선 주인공이 이런 증상을 겪을 때마다 약물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실제로는 항불안제 중 가장 빨리 작용하는 디아제팜계 약물도 먹은 뒤 30분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주인공의 행동은 무의미하다.

사실 영화에서 이런 옥에 티는 또 있다. 킬러 한 명이 고층 빌딩에서 총격을 당하는데, 상대 킬러는 건물 건너편에서 기관총을 쏘아대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이때부터 갑자기 킬러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귀에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고 눈앞이 어질어질하며 이마에선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른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는 멀리뛰기 선수처럼 도움닫기를 하며 유리창을 부수고 날아올라 권총 한 자루로 상대를 쓰러뜨린다. 심장이 빨리 뛰면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해 절대로 불가능하다. 심장박동은 심전도라는 기계가 심장에서 나오는 전기적 신호를 붙잡아 그래프로 표시해 나타낸다. 물론 동맥에서 직접 맥박을 재 심장박동수를 알 수도 있다.

정상적인 사람은 안정된 상태에서 심장박동수가 분당 50~90회다. 운동을 할 때는 심장박동수가 평소보다 2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심장이 무한정 빨리 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장박동은 일정 수준 이상 빨라지지 않는데, 이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면 심장이 혈액을 동맥으로 내보내는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가 공회전을 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따라서 부정맥이라는, 심장이 전기적으로 불규칙하게 뛰는 질병에 걸리면 심장이 분당 300~400회까지 뛰기도 하는데, 이때 맥박이 뛰지 않거나 약하게 뛰는 경우가 생긴다. 즉 물리적으로는 혈액이 순환하지 않은 채 심장의 전기신호만 살아있는 셈이다. 그냥 놔두면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제세동기로 부정맥을 제거하는 응급치료가 필요하다.

한편 영화에서 킬러가 느끼는 증상은 PSVT(발작성상심실성빈맥)라는 병으로 부정맥과 비슷하다. PSVT는 심장이 분당 160~240회 뛰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우며 호흡 곤란 증세를 나타낸다. 이 경우 환자가 바로 눕지 않으면 의식을 잃을 수 있다. 뇌동맥의 혈류량이 급격히 줄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처럼 뛰어다니다가는 불의의 객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멍 치료엔 산소가 특효
영화 중반, 웨슬리는 아버지를 죽인 킬러를 무찌를 힘을 기르기 위해 초특급 킬러의 본능을 일깨우는 특수 훈련을 받는다. 맨주먹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격투기부터 검술, 사격까지 고된 훈련 탓에 웨슬리의 몸에는 피멍이 마를 날이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치유를 촉진하는 욕탕에서 목욕을 하면 그의 상처는 씻은 듯이 낫는다.

덕분에 웨슬리는 빠른 시간 안에 초특급 킬러로 성장하고 마침내 아버지를 죽인 킬러를 찾는 임무까지 맡는다. 실제로 웨슬리처럼 상처가 빨리 나을 수 있을까?

몸이 둔탁한 물건에 부딪혔을 때 생기는 피멍은 피부 속 혈관이 찢어지면서 적혈구가 새어나와 피부에 머물러있는 현상이다. 이때 혈관이 빨리 복구되지 않으면 피가 많이 나와 멍이 커진다. 심한 경우에는 피부 밑에 피가 덩어리로 남아 있는 혈종이 생긴다.

흔히 피 속에 있는 혈소판은 찢어진 혈관에 붙어 지혈 작용을 하는데, 이때 칼슘이 혈소판의 결합을 촉진해 지혈을 돕는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피가 나는 부위에 오징어 뼈 가루를 뿌리는 민간요법이 있는데, 이는 오징어 뼈에 있는 칼슘이 지혈을 돕기 때문이다.

한편 외국의 유명한 운동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산소치료로 치유 기간을 단축했다는 뉴스가 가끔 나온다. 여기서 산소치료는 고압산소요법(HBO)을 말한다. 고압산소요법은 경기 중 멍이나 탈구, 부종, 골절이 생겼을 때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아직 정확한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고압산소요법이 혈액 순환이나 적혈구 응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상처 치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감염을 막는 일이다. 사람의 피부는 세균으로부터 인체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상처가 생긴 피부는 자동으로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온도와 습도, 영양분을 가진 배지가 된다. 따라서 감염을 예방하려면 주기적으로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

특히 피부에는 탄력섬유가 들어있어 상처가 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가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상처를 꿰매지 않고 방치하면 나중에 더 큰 상처가 남게 되므로 피부가 찢어지면 반드시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

피 한 방울이면 진짜 아버지 확인

영화 후반, 웨슬리는 초특급 킬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아버지를 죽인 킬러를 쫓아 숨 막히는 추격전을 벌인다. 그러나 상대는 웨슬리보다 실력이 좋은 초특급 킬러다. 웨슬리는 상대와의 실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상대는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웨슬리의 목숨을 구하면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비밀을 밝힌다. 자신이 웨슬리의 진짜 아버지라는 것. 상대방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고백에 웨슬리는 혼란스러워 한다.

‘내가 너의 진짜 아버지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친자 확인 문제는 고대 오이디푸스 신화에서부터 영화 ‘스타워즈’(1977년)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에게 고통을 주는 딜레마로 자주 등장하는 테마다. 하지만 앞으로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친자 확인 문제로 혼란스러워하는 설정이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다. 이제 피 한 방울이나 머리카락 한 가닥만으로도 손쉽게 친자 확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DNA 핑거프린팅’이라고 부른다.

사실 피 한 방울이나 머리카락 한 가닥에서는 DNA를 극소량밖에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NA 식별이 가능한 이유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이라는 기법으로 극소량의 DNA를 수천 배까지 증폭해 복제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케리 멀리스는 PCR을 고안한 공로로 1993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강석훈 전문의 >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2006년부터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방송된 SBS 의학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의 보조작가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의학회에서 건강정보심의위원회 실무위원을 맡아 잘못된 건강정보를 바로잡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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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훈 가정의학과 전문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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