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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의 계수나무와 옥토끼

 

오강


정월 대보름에는 쥐불놀이, 부럼 깨물기, 더위 팔기 등 전래의 민속놀이가 많다. 그 중에서도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동산 위로 오르는 대보름달을 맞는 달맞이다.

맑은 겨울 하늘에서 휘영청 밝은 달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지만, 유독 대보름달은 제일 먼저 바라보는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보름달은 우리에게 그 크기만큼 포근한 마력을 내품고 있다.

서양에서도 보름달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달을 음울한 느낌으로 대한 것 같다. 정신분석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달이 정신병과 관련돼 있다고 주장했다. 영어에서 달을 나타내는 형용사는 루나틱(Lunatic)인데, 이것은 '미치광이의'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늑대로 변한 남녀가 가축과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무서운 이야기는 서양 사람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

보름날은 살인사건 조심

미국의 정신의학자 아놀드 리버는 모든 천체 중에서 달이 유독 인간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마력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1972년 미국정신분석학회에 달이 실제로 인간을 비롯한 생물의 행동에 강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고했다.

보름달이 뜨는 날은 살인과 폭력, 자살 등이 다른 날에 비해 현저하게 많이 일어난다는 통계적인 증거를 제시한 것이다. 그는 달의 인력이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체내의 수분에도 영향을 미쳐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리버 이전에도 달이 인체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여러 방면에서 제기됐다. 그 중 28-30일인 여성의 월경주기는 삭망월과 같아 달이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꽤 널리 퍼진 생각이었다. 17세기 초 천문학자 케플러는 지구의 밀물과 썰물이 달과 관계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케플러는 자기력과 유사한 신비한 힘이 지구와 달 사이를 이어주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구의 정령과 달의 정령이 서로 통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중력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조석현상의 원인을 증명할 수 없었고, 갈릴레이는 이를 정신나간 점성술사의 헛소리라고 비난했다.

약초 찧는 옥토끼

셀 수 없이 많은 설화가 달과 관련돼 있는 것을 보면, 달은 참으로 인간의 정서에 특별히 호소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옛부터 달에는 계수나무와 옥토끼가 있다고 전해온다. 보름달에 보이는 거무스레한 얼룩이 계수나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 옥토끼 두 마리가 번갈아 떡방아를 찧는 모습이라고도 했다.

당나라 때 학자 단성식은 '유양잡저'에서 계수나무의 유래를 밝히고 있다. 옛날 중국에 오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신선술을 배웠으나 잘못해서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게 됐다. 달에는 큰 계수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오강은 달에 유배돼 계수나무를 도끼로 찍어 넘기는 노역을 해야했다.

그러나 오강이 계수나무를 찍을 때마다 그 곳에서는 새 살이 자라나서 나무는 영원히 쓰러지 않았다. 달에 지금도 계수나무가 있는 것은 오강이 아직 나무를 다 베지 못했기 때문이다.

달에 토끼가 있다는 이야기는 초나라 때 시인 굴원의 시 '천문'에 나온다. 굴원 이전에는 달에 사는 여신 서왕모를 보위하는 호랑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굴원이 시에서 호랑이를 토끼로 잘못 쓰면서 토끼로 변했다고 한다. 그 후로 달에는 옥토끼 두 마리가 서왕모가를 위해 불로초를 절구에 찧고 있다고 알려지게 됐다.

천상과 지상의 경계

계수나무나 옥토끼 이야기는 모두 달 표면이 거무스름한 모양을 보고 지어낸 이야기다. 오늘날 이것은 달 표면의 지형적인 굴곡 때문에 생긴 그림자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달을 망원경으로 자세히 볼 수 있게 된 후의 일이다. 옛날 사람들은 계수나무 형상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18세기 실학자인 홍대용의 '의산문답'에 제법 과학적인 설명이 있다. 허자가 달 위에 있는 검은 부분이 계수나무인가 묻자, 실옹은 이것이 거울 같은 달에 비친 지구의 그림자라고 설명했다.

기실 이 설명은 주자학을 만든 송대의 주희가 생각해낸 것이다. 태양이 네모난 땅을 비추어 땅의 그림자가 달에 계수나무를 만든다는 생각은, 지금 보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계수나무라고 설명하지 않고 물리적인 설명을 찾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착상이었다.

서양에서도 17세기 과학혁명 이전에는 달 표면에 지형적인 굴곡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고대부터 달은 신들이 사는 천상계와 인간이 사는 지상계를 구분짓는 경계였다. 때문에 달은 천상계의 물건을 닮아 미끈하고 둥글지만, 한편으로는 지상계의 물건을 닮아 표면에 추한 얼룩이 있다고 생각했다.

1609년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해 처음으로 달의 모습을 자세히 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달의 모습은 완전하고 미끈한 구가 아니라 곰보자국이 성성한 모습이었다. 갈릴레오는 달 표면에 나타난 그림자를 재보고, 그것들이 수km나 되는 커대한 산과 계곡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으로 달에도 지구와 같이 산과 계곡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그 후 인류는 달을 좀 더 잘 알기 위해 많은 장비를 동원하고 심지어 우주선을 보내 달을 탐사해왔다. 인류는 지금까지 14개의 우주선을 달 탐사를 위해 쏘아 올릴 정도로 달에게 마음을 빼앗겨 왔다. 이제 인류는 달에 설치한 반사경에 전파를 쏘아 달까지의 거리를 cm단위까지 정확히 알수 있게 됐다. 특히 1969년 7월 20일 인간은 달에 가 발자국을 남기고 달의 암석을 채취해 돌아왔다. 연이어 여러 사람이 달에 가보았고 달에는 계수나무가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됐다.

마음 속의 계수나무

그러나 우리가 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달에 물이 있는지, 달에 생명체가 사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달이 지구의 동반자가 된 내력에 대해서도 그렇다. 최근까지 달 생성에 관해 여러 가지 가설이 나왔으나 무엇 하나 흡족한 것이 없다. 미국과 옛소련이 경쟁하면서 수많은 탐사를 해왔지만, 현재까지 달의 25%만이 지도로 작성돼 있다. 여전히 달은 미지의 세계인 것이다.

지난달 발사된 달탐사 위성 루나프로스펙터에는 의미있는 한가지가 실려있다. 슈메이커-레비혜성을 발견한 행성과학자 슈메이커의 유해가 실려있는 것이다. 그는 평생 달에 닿고 싶어했던 사람이었다.

NASA에서는 그의 업적과 달에 대한 애정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그의 유해를 달에 뿌릴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왜 죽어서까지 달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오강의 도끼 같은 현대과학이 달을 아무리 파헤쳐도 사람들 마음 속의 계수나무는 베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998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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