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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1세기 비트혁명, 생물과 무생물 경계 허문다

 

CPU


40년대를 풍미한 천재 과학자들이 남긴 유산은 실로 대단하다. 이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똑똑한 기계'의 양산되면서 인간은 상당 부분 '몸 쓰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뿐인가. 마샬 맥루한에 의해 '지구촌'이란 단어가 등장한 지 30년 만에 인간의 감각은 우주까지 확장됐다.
화성에 도착한 패스파인더호가 보낸 정보가 불과 4-5분 만에 8천만km를 날아 지구에 닿고, 이는 즉시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세상이다.

샤논과 위너의 통신과 제어, 그리고 폰 노이만의 컴퓨터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꿈조차 꾸지 못한 채 여전히 신화 속을 헤메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바야흐로 통신과 기계지능(컴퓨터)의 결합이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연구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계승될 것인가. 이 순간 우리의 관심을 다가올 미래로 돌려보자.


IBM 연구소가 개발한 PAN(personal area network). 사람의 몸을 이용해 악수만으로도 정보를 주고받는 획기적인 장치다. 이는 컴퓨터와 사람을 하나로 결합하려는 시도 가운데 하나다.


'개 만도 못한 컴퓨터'

PC혁명을 몰고온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사인 인텔의 회장이자 공동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내놓은 '무어의 법칙'은 지난 반세기동안 진행돼온 정보기술혁명을 극적으로 설명하는 예로 자주 등장한다. "CPU에 내장된 칩 밀도는 매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 이론은 새로운 기술과 이에 바탕한 제품의 제조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경험으로 증명되고 있다.

이를 테면 78년 발표된 인텔 8088칩의 트랜지스터 숫자는 2만6천개, 95년 발표된 펜티엄 프로의 경우 5백50만개에 달한다. 2백배 이상의 성장이다. 또한 회로와 회로 사이의 선폭은 78년 3미크론(${10}^{-6}$m)에서 95년에 0.35미크론으로 줄었다.

머리카락 한 올이 1백미크론 쯤 되니, 이보다 2백85배나 좁은 간격에 촘촘히 회로를 새겨넣을 수 있는 기술로 발전한 것이다. 더욱이 이 기술은 앞으로 2011년경이면 0.07미크론까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듯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음에도 지금의 컴퓨터에 대해 연구자들이 품고 있는 불만은 대단하다. 심지어 빌 게이츠의 핵심 참모 노릇을 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그룹 부사장 네이던 마이어볼트 박사는 "만약 내게 '똑똑한' 컴퓨터 한 대만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오늘날의 컴퓨터는 개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혹평할 정도다.

도대체 현대 문명의 총아로 지목받는 컴퓨터가 이른바 '디지털 프론티어들'로부터 '손봐야 할 물건'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8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PC가 성장하면서 그 연구대상인 컴퓨터가 과연 제대로 된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정밀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한 경제 잡지는 지난해 여름 최첨단의 컴퓨터 과학 연구소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2012년의 컴퓨터를 이해하기 위한 어휘'란 기사를 실었다. 독자라면 어떤 단어들이 우리의 미래 컴퓨터 환경에서 중요하다고 꼽겠는가. 윈도? 펜티엄? 아니면 가상현실이나 음성인식기술?

실리콘 지능 가진 나노 로봇

다소 엉뚱하게 보이겠지만, 이 잡지가 꼽은 용어 가운데 4각형 컴퓨터에 사로잡힌 우리가 평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컴퓨터 용어는 인터페이스와 실시간(real time) 등에 불과하다.

오히려 컴퓨터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복잡 적응계, 창발성, 되먹임 등 '복잡성 과학'의 핵심 어휘와 인공생명, 풀러렌, 나노테크놀러지 등이 미래 컴퓨터환경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다. 과연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된 풀러렌 튜브.


현재 우리가 편리함에 감탄하며 향유하고 있는 컴퓨터의 상당한 개념은 이미 70년대 말에 등장했다. 이를 테면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의 윈도나 마우스, 레이저 프린터, 근거리 통신망(LAN) 등은 79년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PARC) 연구진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 것들이다.
이들 '20년 전 사고의 발현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기계에 기초한, '기계만의 기계'라는 점이다. 그러나 21세기를 향한 컴퓨터 과학에게 컴퓨터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하나의 도구일 뿐이며, 또한 그 자체가 생명이다.

이같은 분위기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곳은 '복잡성 과학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산타페연구소다. 이곳에는 인공생명의 산파인 크리스 랭턴을 비롯, 수많은 컴퓨터 과학자와 생물학자들이 자리를 틀고 있다. 이들은 기계와 생물의 경계를 부수고자 한다. 생명이 컴퓨터이며, 컴퓨터가 생명인 것이다. '복잡성 과학'이 21세기의 컴퓨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생명이란 궁극적으로 물질이 아닌, 정보'라는 믿음을 가진 이들은 생물학이 컴퓨터공학과 매우 유사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컴퓨터 정보의 기초 단위인 비트는 정보의 DNA라 할 수 있으며,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정보를 DNA에 저장하고 있다는 것이 이같은 사고의 출발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시스템'은 충분한 복잡성과 더불어 확실한 수준의 자율과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연구자들은 기계가 우리와 비슷하게 과제를 수행할 수 있으며, 또 스스로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이들에게 살아 있는 생물의 특질을 이동시키거나 '마음'을 운반하는 방법, 즉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곧장 전기적 신호로 바꾸려는 시도 등은 그리 허황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상상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실현이 가능한 것이다. 풀러렌이니 나노니 하는 연구는 그래서 필요하다.

나노 기술은 인류가 앓고 있는 환경, 의료 등의 각종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최첨단 연구분야다. 분자 크기 안에 1조개의 컴퓨터가 담긴 정교한 나노로봇이 몸 속으로 들어가 암세포와 싸움을 벌이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오염물질을 수거해 대체연료의 생산에 투입하는 등, 공상과학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나노 기술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 탄소 동소체인 풀러렌은 이 나노로봇의 소재로 가장 각광받고 있는 화학물질이다.

물론 이 연구는 진행 중이며 지금까지 뚜렷한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상의 과학'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 위험한 사고이든 아니든, 여하간 우리 미래의 한 부분이란 점이다. "나는 실리콘 지능이 결국 사람의 그것과 구별이 힘들 만큼 진화할 것으로 확신한다." 무어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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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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