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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손은 약손

전용훈기자의 물구나무과학

아이들의 배앓이는 엄마의 사랑이 아쉬울 때 나타난다. 어른들의 사소한 질병도 마찬가지. 몸이 아픈 당신의 옆사람에게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면, 그의 병은 곧 나을 것이다.

어머니 무릎을 베고 있던 소년은 갑자기 아랫배가 아팠다. 칭얼대며 모두에게 아픔을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하루종일 일없이 또래들과 몰려다니고, 오이서리 같은 나쁜 짓을 해서 벌받는다는 손윗 형제들의 핀잔뿐이었다. 이런 때 어머니는 콩깍지 같이 까실한 손마디가 배꼽에 느껴지도록 소년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엄마 손은 약손, 애기배는 똥배”.

소년이 속으로 ‘엄마 손으로 정말 아픈 배가 나아질까?’ 하는데, 신기하게도 얼마쯤 쓰다듬자 배는 점점 편해졌다. 이윽고 소년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먼 동네 위를 쏜살같이 흐르는 별똥별을 따라가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소년의 배가 나은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엄마 손의 약효를 경험하면서 자랐다. 효과 좋은 상비약이 사용되는 지금도 어머니들은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약보다 먼저 ‘엄마 손은 약손’을 처방하고 있다.

심리치료의 일종

약보다 먼저인 엄마 손의 치료효과는 과학적인 견지에서 여러 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이것은 위약효과(플라시보효과)에 기인한다. 약 모양으로 만든 비스켓을 복통에 듣는 영약으로 알고 먹은 사람이 아픔이 없어지는 일이 많다. 약이 실제적인 효과가 없어도 ‘약을 먹으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가벼운 질병을 앓는 장병들에게 투여되는 약들 중 이러한 위약이 많다.

흔히 아이들은 어른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자신을 늘 보호해 주는 할머니나 어머니는 아이들이 가장 믿고 따르는 대상이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당연히 엄마 손이 고통을 없애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이것이 배앓이를 멎게 하는 것이다.

이는 미개사회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주술적인 치료와 상통한다. 치료약이 변변치 않은 사회에서는 주문을 외우거나, 금기를 제시하는 주술사의 치료가 질병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는, 어지럼증이 있을 때 피를 뽑는 치료와 더불어 ‘닭우는 소리를 내라’는 등의 주술치료 사례가 많이 나온다. 일반인들은 주술사가 신탁을 받은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런 믿음을 지닌 사람에게 주술사의 주술행위는 물리적인 치료효과가 전혀 없는 것일지라도 효과를 발휘하는 좋은 위약이 되는 것이다.

또 배를 쓰다듬어 실질적인 치료효과가 나타나는 것일수도 있다. 운동을 하다 휴식할 때 갑자기 얼음을 먹으면 배가 아픈 것처럼, 아이들이 배가 아픈 것은 낮에 찬 것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일 수 있다. 흔히 배가 차가워진 상태에서는 소화기의 기능이 저하된다. 한의서에는 뜨거운 음식 다음에 찬 음식을 먹는 것은 괜찮지만, 찬 음식 다음에 뜨거운 음식을 먹는 것은 금하고 있다. 배가 차가워지면 탈이 난다는 것을 오랜 옛날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따뜻한 손길로 배 부위를 온화하게 하는 것은 실질적인 치료효과를 발휘한다. 손으로 따뜻한 온기를 전해줘 배를 따뜻하게 해주면 차가운 상태에 놓여있는 배가 안정돼 배앓이가 치료되는 것이다.

엄마의 기 받아 아픔 사라져

배를 쓰다듬어 주면 자연히 내장이 자극돼 장운동이 활발해지고 배아픔이 사라진다. 한의학에서는 흔히 위와 장이 약한 사람에게 배 부위를 둥글게 마사지하는 운동을 권한다. 배꼽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동심원을 그리면서 배를 꾹꾹 눌러주면서 쓸어주면 장운동이 활발해져 변비가 사라지고 변이 노랗게 변하는 효험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더불어 아랫배의 살이 빠지는 효과도 있다. 엄마 손뿐 아니라 모든 손이 약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기를 주고받는 것이 치료효과로 나타난다는 주장도 엄마 손의 효능을 설명해 준다. 아이들의 배앓이는 신체에 익숙하지 않은 기운이 유입돼 생기는 것이다. 배를 쓸 때 어머니의 기가 자식에게 전달되면, 복부의 막힌 기운이 소통돼 아픔이 사라진다. 잠잘 때 두 손을 깍지껴서 윗배에 올려놓고 잠을 자는 습관을 들이면 손바닥의 기가 배에 전해져 뱃속을 풀어 줘 몸에 아주 좋다.

엄마 손의 약효는 ‘사랑 확인 이론’으로도 설명된다. 영국의 저명한 동물행동학자 데스먼드 모리스는 사람들의 사랑 확인 절차가 동물의 털손질 행위에서 발전된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동물은 서로 털손질을 해 주면서 질병에 감염되는 것을 막는다. 그런데 인간은 털손질 행위를 서로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방법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인간은 서로의 몸을 손질해 주면서 깨끗이 하는 것과 더불어 서로의 친근함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랑을 확인하는 배앓이

사람들이 겪는 아픔을 심각한 ‘질병’과 사소한 ‘불편함’ 정도로 구분해 보면, 배앓이는 사소한 불편함에 속한다. 복통, 감기, 몸살 등 사소한 감염과 질병은 심각한 질병이 나타나려는 초기단계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사소한 불편함들은 혈육의 유대를 매개해주고 강화해주는‘털손질 욕구’와 훨씬 더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배앓이 같은 증상은 정말로 신체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쓰다듬는 행위에서 느껴지는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육체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환자가 옆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싶어할 때 이러한 불편함이 나타나는 것이다. 기침과 감기, 독감, 두통, 복통, 뾰루지, 편도선염 등이 대개 ‘사랑확인’을 유인하는 흔한 질병이다. 이들 증상은 의사나 친척 및 친구들의 보살핌 행위를 유인한다. 그래서 환자에게 주위 사람들의 우호적인 동정심과 보살핌이 전해지면, 대개 이것으로 병이 낫는 것이다.

아이의 배앓이가 생기는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엄마의 사랑이 아쉬울 때 많이 나타난다. 아마도 소년은 또래들과 헤어질 때 느꼈던 아쉬움을 보상할만한 식구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신의 옆 사람이 사소한 질병으로 아프면, 그는 당신에게서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때 당신이 자식을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뜻한 마음을 그에게 전해주면, 그의 병은 곧 나을 것이다.
 

엄마손은 약손이라는 걸 나타내는 삽화.
 

199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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