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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주정거장의 어제와 오늘

살류트에서 미르까지

군사시설로, 우주실험실로, 우주 탐사기지로 우주정거장이 건설된지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살류트, 스카이랩, 미르 등 이름은 낯익지만 멀게만 느껴지던 우주정거장의 역사를 살펴보자.

우주는 오랜 옛날부터 인류에게 꿈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우리 민족도 달에 토끼가 살 것이라고 상상하며 우주에 대한 꿈을 지녀왔다. 그러나 이제 우주는 단지 동경의 대상으로 머물지 않고, 무한한 자원의 보고로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나아가 점차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개척해야 할 필수적인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인류가 현재까지 생존해온 지구와 달리 우주는 초저온 진공상태인데다가 무중력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지구표면에서 느끼는 중력의 1백만분의 1에 가까운 무중력상태에서 인간이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지가 우주 진출을 위한 첫번째 관문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유인우주선과 우주왕복선에서 얻은 경험은 인간이 무중력 우주공간에서 적응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또 우주정거장은 무중력상태의 적응이라는 초기 목표를 뛰어넘어 인류가 우주에서 영구 거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먼 우주 탐사를 위한 전진기지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려 했던 또다른 목적은 먼우주 탐사를 위한 전진기지 역할이다. 먼우주를 탐사하기 위해 지구에서 우주선을 발사한다면 지구중력 때문에 어마어마한 추진력을 가진 우주선이 필요하다. 당연히 이런 탐사우주선의 개발은 매우 비실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탐사우주선을 우주정거장에서 제작하는 것이 검토돼 왔다. 즉 우주왕복선이나 우주로켓을 이용해 탐사우주선의 부품을 우주정거장으로 운반한 다음 그곳에서 조립하는 것이다. 현재 개발 중인 국제우주정거장도 이런 개념 아래서 건설되고 있다.

먼우주를 탐사할 우주비행사의 교육과 선발도 우주정거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우주비행사의 교육은 지상에 마련한 모의 우주환경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우주정거장에서는 완벽한 우주환경 하에서 우주비행사를 교육할 수 있다.

우주공간의 특성을 잘 활용하면 지구에서 상상할 수 없는 신물질을 제조할 수 있다. 우주공간에서는 순도 1백%의 결정체를 만들 수 있고, 이를 이용해 반도체소자를 생산하거나 고순도의 의약품을 제조할 수 있다. 신물질을 제조하는데는 매우 높은 청정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우주공간은 적격이다. 실제로 일본은 지구에서 제작이 불가능한 지름 10μm의 완전한 형태를 갖춘 라텍스(우유처럼 흰 고무 수액) 구를 만드는데 성공한 바 있다.

우주정거장은 태양광발전소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무한한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우주공간에서 생산된 전력을 지구 상으로 보내는 개념이다. 아직 경제성이 없지만 앞으로 기술이 보다 축적되면 현실화될 것이라고 본다.

최초의 우주기지 살류트

지금까지 건설된 우주정거장에는 옛소련이 쏘아올린 살류트와 미르, 그리고 미국이 만든 스카이랩이 있다. 그리고 현재 미국, 러시아, 유럽우주기구(ESA), 일본 등 15개 나라가 참여한 국제우주정거장(ISS) 건설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그 첫번째 모듈에 대한 시험이 수행되고 있다.

최초의 우주정거장은 옛소련의 소유즈 우주비행체였다. 소유즈는 3백26일의 우주공간 체류기록을 세웠다. 그후 소유즈는 반영구적인 우주정거장인 살류트에 연결돼 우주비행사를 전송하거나 귀환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다. 살류트가 미르로 대체된 현재까지도 소유즈는 계속 그러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다만 소유즈 T15, 소유즈 TM1에서 TM26 등 그 명칭과 약간의 특성만 바뀌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우주정거장의 역사는 살류트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살류트는 1971년 4월에 무인으로 발사돼 2백60km 상공의 지구궤도에 진입했다. 살류트에 처음으로 승무원이 거주한 것은 그해 6월이었다. 소유즈 11호를 타고 올라갔던 조르지 도브로볼스키, 브라디슬라프 볼코프, 그리고 빅토르 파챠예프가 첫번째 살류트 승무원이 됐다. 그러나 이들은 우주정거장에서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는 도중 밸브가 열려 불운하게 생명을 잃었다. 그후 살류트는 2호(1973년), 3호(1974년)를 비롯해 7호(1982년)까지 발사됐다.

살류트의 특징은 접합모듈이 있어 다른 우주선과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뒤에 위치한 접합구에 다른 우주선들이 결합함으로써 총무게 26t, 총길이 23m의 거대한 우주정거장이 만들어졌다. 최초의 도킹은 1971년 4월 니콜라이 루카비슈니코프 외 2인에 의해 성공적으로 수행됐으며, 추후의 우주정거장 증식설계의 기본개념을 제공했다.

살류트 우주정거장에 필요한 물자는 프로그레스 페리를 통해 조달됐다. 살류트에서는 지금까지 86명의 우주비행사가 약 1천6백회의 실험과 관측을 수행했다. 특히 우주선 밖에서 태양전지판의 교체작업이 수행돼 우주선이 필요로 하는 전력을 반영구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살류트는 1985년 11월 최후의 승무원 바슈틴과 볼코프가 소유즈 T14 캡슐로 귀환하면서 그 임무를 마쳤다. 살류트는 차세대 우주정거장을 위한 시험용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1982년 발사된 살류트 7호


미국의 유일한 우주정거장 스카이랩

미국 최초의 우주정거장인 스카이랩은 1973년 5월 2단형 새턴V 로켓으로 발사돼 4백50km 상공의 지구궤도에 진입했다. 무게 13t, 지름 3m, 길이 5.7m의 원통형 구조으로 상단에 4개의 날개 모양을 가진 태양전지판을 갖추고 있었다.

스카이랩은 1980년까지 수많은 우주 관측과 우주환경에서의 적응실험 등을 수행했다. 특히 무중력상태에서의 인간활동에 대한 의학적 자료를 대량 확보했다. 정기적으로 승무원에 대한 소변검사 등을 실시하고, 우주에서 나타나는 인체의 변화, 예를 들어 심장박동의 변화를 세밀히 조사했다. 스카이랩은 임무 완료시점에서 궤도를 높여 계속 사용할 예정이었으나 궤도를 높여줄 우주왕복선이 마련되지 않아 용도폐기됐다. 1980년 7월 스카이랩은 지구대기권에 재돌입해 인도양에 가라앉았다. 스카이랩은 발사 초기부터 문제를 나타냈지만 국민들의 우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변화시킴으로써 차세대 우주정거장 건설에 원동력이 됐다.
 

1973년 발사된 스카이랩에는 9명의 우주비행사가 방문했다.


3세대 우주정거장 미르

살류트에 이어 옛소련이 야심작으로 내놓은 것이 제3세대 우주정거장인 미르다. 미르는 러시아어로 ‘평화’ 혹은 ‘세계’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86년 2월 러시아의 대표적인 우주로켓인 3단형 프로톤 SL13으로 발사돼 현재 지구 위 약 3백90km에 떠 있다.

미르는 살류트 우주정거장 기술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이전보다 발전된 대표적인 기술로는 지상기지와 언제라도 통신할 수 있도록 우주의 다른 정지궤도에 있는 통신위성과 위성중계를 통한 24시간 통신망을 구축한 일이다. 이에 따라 미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지상기지에 점검되고 지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또한 이전까지 사용하던 실리콘전지를 칼륨비소전지로 바꿔 에너지 변환효율을 높였다. 그리고 설계 초기부터 살류트의 구조를 발전시켜 모듈 형태를 취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실제로 설계자들은 2-3개의 살류트가 결합된 미르의 형상을 고안했던 적이 있다.

미르는 생활공간, 작업공간, 운송공간, 그리고 연결공간 등으로 구성된 총 8개의 모듈로 이뤄져 있다. 각 모듈의 명칭은 각각 미르 본체, 크반트 1호, 크반트 2호, 크리스털, 스펙터, 프리로다, 소유즈 TM, 그리고 프로그레스 M 등이다.(각각의 역할은 53쪽 참조).

모듈 중에서 가장 큰 것은 크반트 2호로 지름이 약 4.35m다. 가장 작은 것은 운송용 우주선으로 약 2.7m 정도다. 중량은 미르 코어가 약 21t으로 가장 무겁고, 운송용 우주선이 약 7t으로 가장 가볍다. 프리로다를 제외한 8개의 모듈에서는 총 16개의 태양전지판을 이용해 약 40kw 정도의 전력을 생산해 동력으로 사용한다.

맨 처음의 미르를 방문한 우주비행사는 레너드 키짐과 브라이미르 솔로뵤프였다. 이들은 미르에서 52일간 생활했다. 그후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계속적으로 우주비행사들이 방문해 임무를 교대했다.

미르의 연구활동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가 미소중력과학(microgravity science), 우주생명과학, 그리고 우주기술개발 등을 포함하는 연구다. 다른 하나는 지구와 우주 등을 관측하는 일이다.

미르에서는 우주비행사 자신들도 식물이나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실험대상이 된다. 중력이 생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는데 인간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우주생명과학 연구는 앞으로 인간이 우주에서 활동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미르에서는 우주비행사뿐 아니라 과학자들도 활동한다. 과학자들은 크반트 1호에 장착된 전자기장분광기와 X선방출검출기를 이용해 은하, 퀘이사, 중성자별 등과 같은 천체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미르의 역할은 미국과의 국제우주협력 프로그램인 미르-우주왕복선 계획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미르는 1995년 6월 미국의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와 처음으로 조우(도킹)한 이후 최근까지 7차례에 걸쳐 조우했다. 1998년에는 디스커버리호를 이용해 2차례의 조우가 더 이루어질 전망이다.

러시아 우주정거장과 미국 우주왕복선의 조우는 양국의 매우 다른 우주기술방식을 연결하는 시험적인 프로그램으로 앞으로 건설될 국제우주정거장의 초석이 될 것이다. 원래 우주왕복선의 개발 목적은 지구와 우주정거장 사이의 가교 역할이었다. 이는 미르-우주왕복선 계획을 통해 그 유용성이 입증됐으며, 현재까지 생명과학 등을 포함한 총 40여건의 실험이 수행됐다.

미르-우주왕복선 계획을 통해 이뤄진 주요활동을 보면, 먼저 1996년 3월에 있은 임무 76을 통해 미국은 미르에서 첫번째 우주유영을 수행했다. 이 밖에도 미국의 우주비행사를 보내 미르의 과학자료를 가져오는 일 등을 수행했다.
 

미르의 통신 안테나


현재까지의 우주정거장

초기 우주정거장은 도킹할 수 있는 포트가 하나뿐이었다. 제1세대 우주정거장은 이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도킹 포트가 하나뿐인 살류트 1호에서부터 5호까지는 유인우주선이 한번 도킹하면 다른 화물선이나 교체 승무원이 또 도킹할 수 없었다. 결국 살류트에 방문한 사람이 돌아와야 다른 승무원이 올라가는 체계였다. 또 연료와 음식을 공급하는 우주화물선이 도킹할 수 없기 때문에 장기 거주도 불가능했다.

제2세대 우주정거장인 살류트 6호와 7호에서는 도킹 포트가 하나 더 늘어 우주화물선이 도킹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제2세대 우주정거장에서는 장기 거주가 가능했다. 또한 제2세대 우주정거장은 외국 우주비행사에게 개방됐다. 최초로 방문한 외국 우주비행사는 예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블라디미르 레메크다. 그는 1978년 살류트 6호에 방문해 8일 동안 체류했다. 이어 살류트 6호에는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쿠바, 몽골, 베트남, 동독 등 사회주의 국가의 우주비행사들이 방문했다.

현재 유일한 우주정거장인 미르는 살류트 7호와 구조는 비슷하지만 도킹 포트를 66개나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르는 우주비행사가 거주하는 동안 우주화물선과 방문객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에다 우주 실험실을 갖출 수도 있다. 천체물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크반트와 신물질을 연구하는 크리스탈은 대표적인 우주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정거장 방문자들 중에는 겹치는 경우가 많다. 알렌산데르 빅토렌코는 4차례에 걸쳐 미를 방문했다. 또 미르 방문자에는 7차례에 걸쳐 도킹한 미국의 우주왕복선 승무원도 포함돼 있다.
 

우주정거장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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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진철 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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