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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작년보다 거의 열배나 더 몰려든 것 같았다. 5년 전 이 전시회가 처음 열렸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머리가 좀 돈 인간들 아니야? ‘지금은 쓸모 없는 그러나 백년 후 쓸모 있을 발명 전시회’가 뭔 헛소리야?

그러나 발명가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그 동안 남의 눈치 때문에 말도 꺼내지 못했던 온갖 발명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영구기관, 구름 위의 집, 질병 자동 치료기, 꿈 선택 장치 따위는 오히려 평범한 축에 속했다.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발명들, 이를테면 영화 자동 작성기 같은 것들이 수두룩했다.

시간이 흐르자 호기심에 한두번 와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점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인기에 불을 지른 것은 모 기업이었다. 은밀히 전시장을 둘러본 그 회사 간부가 전시된 발명의 상당수를 사들였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소문 덕분에 그 기업은 백년 앞을 내다보는 회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희원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느긋하게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도 평범한 관람객 같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세심하게 전시품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신기해 할 때도 그의 표정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하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희원은 한 부스 앞에 멈춰 섰다. 발명품의 작동 원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좁은 공간에서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글쎄 타임머신은 여기 출품할 수 없는 거라니까요. 그건 백년 내엔 불가능해요. 101년 후라면 몰라도.”

“내가 일년 빨리 출품한 게 불만인 모양이군요. 그럼 당신 건 말이나 되는 거요? 평행우주를 넘나드는 방법이라니? 그건 천년이 지나도 불가능한 거요.”

“그건 당신 판단이죠. 첫 해엔 영구기관도 출품되었잖아요. 산삼 속성 재배기도 당신 작품이라죠?”

“내 발명들은 모두 가능한 거요. 문제는 현대에는 몇가지 핵심적인 것들을 구할 수 없다는 거지. 새로운 연료나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 회로 같은 거 말이오. 그런 것들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내 발명들은 전 세계를 주름잡게 될 거요.”

그때 희원이 끼어들었다.

"도중에 실례입니다만, 제가 보기엔 두 분의 발명 모두 여기에 출품되기에 충분합니다. 과학의 발전 속도는 정말 놀라울 지경이거든요. 빛보다 빠른 게 있다면 아마 그걸 겁니다.”

그러자 그들이 항의했다.

“무슨 소립니까? 빛보다 빠른 건 많아요. 내 발명품 중에는 그걸 응용한 게 여럿 있어요.”

“나도 마찬가지요.”

희원은 즉시 사과를 했다.

“물론입니다. 제 말은 지금 기준으로 볼 때 그렇다는 거죠.”

그러자 그들도 수긍했다. 희원은 그들이 내어준 의자에 앉았다. 사실 돌아다니느라 좀 지쳐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오셨수? 그냥 구경하러 온 사람은 아닌 듯 한데?”

“잘 보셨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부터 정확히 105년 후의 세계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희원 같은 사람들을 가끔 만난 모양이었다.

“그럼 혹시 영석이라는 사람 압니까? 103년 뒤에서 왔다고 했는데. 나보고 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조르더군요. 아주 중요한 일이라나요. 난 거절했어요. 물론 내가 유명인사이긴 하지만 지금 대통령은 날 잘 모르거든요. 백년 뒤라면 또 몰라도.”

“글쎄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긴 하지만, 아마 딴 사람일 겁니다. 그 친구는 멀미가 심해서 시간여행이라면 치를 떨거든요. 아마 딴 우주에서 온 사람이겠죠.”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나 물어봅시다. 우리 발명은 언제쯤 이용할 수 있게 됩니까?”

“음… 솔직히 말씀드리죠. 두분 것뿐 아니라 여기 전시된 발명들은 80년쯤 지나면 대개 제품으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요?”

“제품 수명이 너무 짧다는 게 문제죠. 예를 들어 저 타임머신은 출시된 지 일주일만에 구형 모델이 돼요. 누군가 새로운 원리를 이용한 타임머신을 내놓거든요.”

그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희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원래 발전이란 가속도가 붙는 거 아니겠습니까. 뭐 하루만에 고물이 되는 발명품들도 수두룩하거든요. 그것보다야 낫죠.”

그들의 어깨가 축 처졌다. 갑자기 전시물들이 백년이나 지난 낡은 것들로 보였다. 희원은 너무 낙심할 것 없다고 위로하면서 그들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물론 명함이죠. 한번 보세요.”

거기에는 ‘언젠가 존재했던 그러나 흔적조차 없는 것들을 위한 박물관’이란 글씨와 함께 ‘계약담당자 지희원’이란 이름이 써 있었다.

“그게 제 직함입니다. 전 역사에 아주 잠깐 존재했던 것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우리 박물관에만 전시하겠다는 계약을 맺는 게 제 일이죠.”

그러자 두사람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한사람이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누굴 놀리는 거요. 그럼 내 발명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만큼 하찮단 말이오?”

“뭔가 오해를 하신 모양이군요. 흔적이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흔적도 없다는 얘기죠. 우리 박물관은 가상 박물관입니다. 그러니까 실물을 놓는 게 아니란 말이죠. 전시할 게 너무 많아서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흔적이란 .”

희원은 장황하게 설명했다. 마냥 듣고 있던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자 희원은 빙그레 웃으며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럼 계약서를 읽어보시죠.”

두사람은 계약서를 읽었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조항이 많았다. 한참을 읽던 두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앞으로 발명할 것까지 모두 포함시킨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이 전시회에 출품하는 것들 모두. 문제는 전혀 없어요. 어차피 제품의 수명이 끝난 다음에 박물관에 전시되는 거니까요.”

“그런데 얼마나 줄 겁니까?”

“그게… 약간 문제가 있어요.”

둘은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희원을 쳐다보았다.

"당장 드리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아요. 우선 돈이나 금을 미래에서 이리로 가져올 수가 없거든요. 그러면 커다란 혼란이 일어나요. 더구나 이게 우리 우주에만 영향을 끼치면 모르겠는데 딴 평행우주에도 예기치 않은 영향이 …”

“그래서 한 마디로 줄이면, 박물관에 그냥 달라, 이런 말 아니오?”

“아니죠. 우리 박물관에서 구입하겠다는 겁니다. 다만 대금은 나중에 그것이 전시될 때 드리겠다는 거죠.”

“그럼 우리가 죽은 다음에 지불하겠다는 거요?”

“무슨 말씀을. 질병 자동 치료기가 있지 않습니까.”

두사람은 잠시 의논했다. 사실 나쁠 건 없었다. 고물이 된 다음에 박물관에 전시된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닌가. 둘은 계약하기로 마음먹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희원은 계약서를 가방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이제 끝났군요. 저도 드디어 휴가를 갈 수 있겠네요.”

“딴 사람들은요?”

“이미 다 계약했죠. 우리 박물관에서만 사람을 보낸 게 아니거든요. 물론 제가 가장 실적이 좋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희원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그들도 일어나서 배웅을 했다. 그러다가 한명이 문득 생각난 듯 질문했다.

“그런데 제 타임머신 말인데요. 혹시 거기 빠진 핵심 부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네? 무슨 부품이요?”

희원은 무슨 말이냐며 눈을 깜박였다.

“제 타임머신을 작동시키는 부품 말입니다. 전 정말 그걸 보고 싶습니다만.”

“무슨 말이죠? 저게 작동하다니요?”

희원의 말에 이번엔 두 사람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쓸 수 있게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전시된 것들도 그렇고요.”

“뭔가 오해하신 모양이군요. 저는 단지 제품으로 나온다고 말했을 뿐인데요?”

“그게 그 말 아니에요?”

그러자 희원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보세요. 그렇게 실제로 쓸 수 있는 거면 내가 왜 찾아다니겠어요? 아무거나 하나 사서 전시하면 그만이지. 이 전시회에 나온 건 대부분 백년이 지나도 쓸모 없어요. 천년이라면 또 모를까.”

“그럼 제품이란 말은…”

“아, 그거요? 백년 뒤에는 그렇게 기발한 상상물들을 보는 게 유행하거든요. 말 그대로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남지 않을 수 있어요. 아까 제가 말했을텐데 못 들으신 모양이군요.”

그들은 희원이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둘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저 작자가 정말 미래에서 오긴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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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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