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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산능력

무산소 등정, 못오를 곳이 없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 8천8백48m의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합으로써 인간의 고산능력 한계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인간은 아직도 고산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맹렬한 추위와 산소부족이라는 극한의 고산환경에서 인체는 어떠한 능력을 발휘할까.

지구상에서 인류가 생활하는 지역은 해발 2천m 이하에 분포한다. 그러나 안데스산맥의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해발 5천5백m 부근에서 생활하기도 하며,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해발 6천m의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신체 능력만으로 다다를 수 있는 한계 높이는 어느 정도 일까?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


불가능의 영역 에베레스트

대체로 해발 3천m 높이까지는 인간이 적응하기에 무리가 없지만 그 이상 높은 곳에서는 신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등산가의 경우 자주 고산환경에 접하면서 적응의 한계를 조금씩 높여가면 점점 높은 곳에 적응할 수 있게 된다.

‘고산’이라는 말은 지역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 한라산 등을 고산이라 하지만, 히말라야 지역에서는 5천m 이상 돼야 고산이라 할 수 있다. 등산가들은 흔히 3천m 이상의 산악지대를 고산이라 일컫는다. 생태학적인 의미에서는 나무가 없어지는, 즉 녹색이 사라져가는 지점부터 고산지역이라고 본다. 고산지대에서는 나무 대신 이끼, 돌, 눈, 얼음 등으로 산이 형성되며 산소는 희박해진다. 인간이 이런 환경에 노출될 경우 고산병이 찾아와 신체는 많은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의학적으로 볼 때 인간이 에베레스트 정상(해발 8천8백48m)에 산소없이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1953년 영국인 등산가가 산소마스크를 사용하면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이래 1977년 우리나라 고상돈 대원이 오르기까지 에베레스트 등정에는 모든 등반가가 산소를 사용해 오를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후반까지도 많은 의사와 등반가들 사이에서 에베레스트에 산소없이 등반하는 것은 불가능으로 여겨졌다.

1978년 가을 이탈리아 산악인 라인홀드 메스너와 오스트리아 산악인 피터 하벨라는 산소마스크의 도움없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정하는데 성공했다. 지금껏 불가능의 영역으로 알려졌던 지상의 가장 높은 곳을 무산소로 정복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인간의 등정한계가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다시 묻게 됐고, 인간 스스로가 인간자신의 한계를 알 수 없다고 토로하게 됐다. 그 후 여러 산악인들은 차례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을 시도했고, 마침내 1993년에는 우리나라의 산악인으로는 처음으로 박영석씨가 산소를 쓰지않고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표1)고산지대에 노출시 폐포가스농도와 동맥혈 포화도 및 대기온도(℃)


고도가 높아질수록 모세혈관 증가

인간에게 고산등정은 왜 힘들고 어려운가? 그것은 바로 고산지대에서는 자연환경이 인간의 생존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고 인체가 이러한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기는 약80%의 질소와 약 20%의 산소로 구성돼 있으며 대기권은 지상 1백20km까지 계속된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소가 필요한데, 문제는 산소가 체내에서 만들어지지 않고, 또 이를 체내에 오랫동안 축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산소는 순간순간 우리가 사용한 만큼 외부에서 공급되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것이다. 대개의 포유동물도 인간과 비슷해 4분 이상 호흡을 멈추면 생명을 지속하기 힘들다.

체내에 공급된 산소는 폐에서 혈관으로 흘러들어 혈액의 적혈구에 함유된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신체의 각 부분을 구성하는 세포로 옮겨진다. 이렇게 세포에 운반된 산소는 세포내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만드는데 쓰이게 된다. 산소를 사용해 에너지를 생성하면서 우리 몸은 이산화탄소(CO₂)를 밖으로 배출하게 되는데, 이것은 산소와 반대로 이동해 폐를 통해 대기로 방출된다.

고산등반의 경우 고도를 높임에 따라 폐포내 산소분압, 이산화탄소 분압, 동맥혈의 산소포화도 등이 보통상태와 현격하게 달라진다. 해수면(해발 0m)에서 동맥혈은 97%가 포화돼 있고 나머지 3%는 혈장에 녹아있다. 혈액에 산소가 녹아든 양을 측정한 것이 동맥혈 산소포화도다. 대기중에 산소가 충분해 산소분압이 높은 저지대에서는 동맥혈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만 고산지대에서는 산소가 부족해 폐포내 산소압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동맥혈에 산소가 잘 녹아들어가지 못한다.

일상생활에서 동맥혈 포화도가 60% 이하면 자력으로는 거의 생존하기 힘들며 인공호흡을 해주어야 한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대기중의 산소분압은 서서히 떨어지게 되고 이에 따라 동맥혈 포화도도 떨어지게 된다. 한마디로 인체가 이용할 수 있는 산소가 부족해져 생존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림1)산소와 이산화탄소의 순환


고소순응이 생존력의 관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허영호씨.


그러나 인체는 어느 정도의 불리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고산지대에 노출되면 몸은 스스로 고산지대에 적응하려는 생리적 반응이 일어난다. 이러한 과정을 고소순응(accli-matization)이라 한다.

이런 과정은 호흡 증가, 혈액내 헤모글로빈 증가, 폐확산 용적증가, 조직의 미세혈관증가로 나타나 최종적으로 세포의 산소이용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일단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 노출되면, 이에 적응하기 위해 뇌의 호흡 중추가 호흡을 평상시보다 65%까지 증가시킨다. 이러한 상태가 장기간 계속되면 평소의 3-7배까지 호흡이 증가하기도 한다.

혈액내 헤모글로빈은 매우 서서히 증가하게 되는데,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도 처음 2-3주까지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한달 이상 체류하게 되면 헤모글로빈은 보통 때의 약 50%까지 증가한다. 산소가 부족하면 폐의 맨 윗부분까지 말초혈관이 공급돼 혈액이 더 많은 산소를 공급받도록 신체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결국 이러한 신체의 모든 반응들은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조직의 산소이용도를 높여 생체가 살아남기 위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고산지대에 적응하는 반응은 모든 과정이 천천히 진행되므로 갑자기 고도를 높이면 몸은 적응불능의 병적상태에 빠지게 돼 심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
고소순응 과정은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지만 대개는 몇주간 소요된다. 고소순응이 잘 이루어지는 사람은 고산에서 등반활동을 잘 할 수 있다.

고산등반시 산소마스크를 사용하면 등반의 속도를 높일 수 있고, 밤에 자는 동안에 추위를 덜 느껴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등반가들은 자신의 힘과 체력으로 자연과 싸워야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무산소 등정을 시도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아직 8천8백48m 보다 높은 곳은 없다. 인간은 오로지 신체적인 능력만으로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랐다. 인간은 신이 창조한 자연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림2)대기의 구성^고도가 높아질수록 대기중에 산소분압이 낮아지고 동멱혈 산소포화도도 낮아진다.
 

199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윤건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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