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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구멍 황소바람

정용훈 기자의 물구나무과학

바늘구멍만한 틈새로 새어든 바람이 황소만큼 세고 맵다. 좁은 틈새로 드는 바람이 황소만큼 세고 맵다. 틈새로 드는 바람은 활쪽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보다 훨씬 세진다는 과학적인 원리가 우리 조상들의 속담속에 담겨있다.

밖에는 찬바람이 몰아치고 솜이불도 변변찮은 살림살이에 한겨울을 지내기는 험한 일이다. 이런 때 창호지 한 장으로 막은 창문의 틈ㅁ새로 바람이 새어들고 문풍지가 떨리면, 자식을 품은 부모의 가슴은 더욱 시름에 떤다.

문풍지 사이로 드는 바람에 얼굴을 가져가면 찬 기운이 살을 엔다. 바늘구멍만한 틈으로 새어 드는 바람끝은 왜 그리 시린걸까? 아마도 가난한 마음으로 맞는 바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문틈으로 새어드는 바람끝은 활짝 열린 창으로 드는 것보다 훨씬 세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과학자 베르누이는 통로가 좁은 곳을 통과하는 공기는 통로가 넓은 곳을 지나는 공기보다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공기뿐만 아니라 모든 유체에서 마찬가지다. 흔히 쓰는 물뿌리개는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넓은 곳을 통과하던 공기분자들은 갑자기 통로가 좁아지면 서로 먼저 통과하려고 아우성치게 된다. 이 때문에 그 속도가 빨라져 통로의 벽면에서는 압력이 줄어든다. 이 지점에 물통과 연결한 통로를 내주면 물은 압력이 낮은 곳으로 빨려 올라가게 된다. 물뿌리개 입구로 빨려 올라간 물은 통로를 통과하던 공기와 섞여 분무를 이루고 고루 뿌려진다.

창밖에서 불던 겨울바람은 문틈을 통과하면서 베르누이 원리에 의해 속도가 빨라진다. 바늘구멍만한 틈으로 불어온 바람이 좁은 통로를 통과하면서 황소만큼 세고 매워지는 것이다. 문틈에 난 바늘만한 구멍의 바람이 바깥 바람보다 더욱 시리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속담이나 금언에는 경험으로 터득한 생활의 지혜가 압축돼 있다. 이들은 대개 도덕이나 예절을 언급하고 있지만, 뒷면에 상당한 과학적 관찰과 분석을 토대로 한 것들이 많다. 그 중에서 농사와 관련된 속담들은 오늘날의 기상학적인 분석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제비가 날궂이 한다

‘마굿간 냄새가 고약하면 비가 온다’는 말이 있다. 냄새는 보통 공기중으로 퍼져 나가는데, 지표부근에 저기압이 형성돼 기류가 안정되면 냄새가 퍼지지 않고 낮게 깔린다. 저기압에서는 냄새뿐만 아니라 연기도 높이 퍼져나가지 못하고 낮게 깔린다. 사람들은 냄새를 통해 주변에 기류가 안정된 저기압이 형성돼 있다는 것과 이에 따라 곧 비가 오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던 것이다.

흔히 제비가 낮게 나는 것도 비올 징조로 여겼다. 일반적으로 비가 오려면 저기압이 형성돼 습도가 높아진다. 곤충들은 날개가 약해 습도가 높아지면 높게 날지 못한다. 또 습도가 높아 궂은 날씨가 예상되면 벌레들은 나뭇잎이나 풀숲에서 비를 피할 곳을 찾아 낮게 날아 다닌다.
제비가 낮게 나는 것은 이런 곤충들을 잡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를 ‘제비가 날궂이 한다’고 하는데, 지표부근의 습도변화와 동물의 습성에 대한 과학적인 관찰이 속담에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 말조심하라는 의미로 알려진 이 속담에도 실은 음파의 진행에 대한 과학적인 통찰이 숨어 있다.

파동은 밀도가 다른 매질을 통과할 때 밀도가 낮은 쪽에서 밀도가 높은 쪽으로 굴절된다. 낮 동안 지표면이 뜨거워지면 지면 부근의 공기밀도가 낮아진다. 이에 비해 상공의 공기는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고 밀도가 높은 상태에 있게 된다. 지면 부근에서 울려퍼진 음파는 자연히 공기밀도가 낮은 지면쪽에서 공기밀도가 높은 상공쪽으로 휘게 된다.

음파가 상공쪽으로 휜다는 것은 상공쪽으로 소리가 잘 퍼져 나간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낮에는 소리가 상공으로 퍼져, 지면 부근에서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새는 공중을 날고 있으므로 상공으로 퍼지는 낮말을 잘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밤에는 낮 동안 가열된 지표면이 쉽게 식어, 지면 부근의 온도가 상공의 온도보다 낮게 된다. 공기의 밀도는 낮과 반대로 지면 부근에서는 높고 상공에서는 상대적으로 낮다. 때문에 음파는 상공에서 지면쪽으로 휘게 된다.

상공에서 지면쪽으로 음파가 굴절되므로 밤에는 상공에서보다 지면 부근에서 소리가 더 잘 들리게 된다. 쥐는 지표면에서 생활하므로 지면쪽으로 굴절된 밤말을 잘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속담은 일상생활에서 얻은 지혜의 창고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자연에 대한 이해가 함께 담겨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과학은 자연을 지배하는 지식으로 생각하고 생활의 차원으로 내려오기 힘든 어려운 지식으로 여긴다. 그러나 기실 과학의 출발은 자연의 관찰이요, 그 지식의 대부분은 자연에 대한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어느 곳엔들 과학이 없겠는가?

늘 말을 조심하자. 밀도가 다른 공기층을 지나는 소리는, 말하는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휘어져 가버리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다. 속담에서 처신의 지혜뿐만 아니라 ‘등잔 밑’에 숨겨진 과학을 읽어보자. 생활의 모든 곳에 과학이 있다.
 

바늘구멍만한 틈새로 새어든 바람이 황소만큼 세고 맵다라는 걸 나타내는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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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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