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4. 바퀴벌레의 지혜터득한 로보로치

곤충로봇

곤충이 가지고 있는 인간보다 나은 능력을 구현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복잡한 신경계를 가진 사람과 달리 단순한 명령 반응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자체로 완벽한 이들 곤충을 로봇으로 만든다면 우리는 기계에 대한 정의를 새로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조물주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 인간을 기계적으로 흉내내는 것이 목표인 로봇공학은 생체모방의 결정판이라 할만하다. 20세기 초반 한 극작가의 머리 속에서 태어난 로봇은 이후 학교와 기업의 연구실에서 수많은 보모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을 거듭, 오늘날 산업사회를 지탱하는 한 축이 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개발된 로봇들은 대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일정한 작업을 고속으로 수행하는 산업용 로봇이 대부분. 애당초 무대에 섰을 때의 개념과 형태는 만화영화 속에서나 찾을 수 있을 뿐이고, 우리가 만나는 로봇은 기껏 ‘외팔이’ 정도다. 이 분야에 상당한 기술을 확보했다고 자부하는 지금까지도 사람처럼 유연하고 민감한 구동장치나 센서의 개발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인간 대신 다른 생물을 흉내내는 것은 어떨까. ‘막히면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복잡하기 그지 없는 인간을 모방하는데서 장애물을 만난 연구자들은 다른 생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요즘 이들 연구자들의 시선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곤충에게 모아졌다.

수가 많은 만큼 다양한 생김새를 갖고 있는 곤충이지만, 연구자들이 주목한 것은 외형이 아니라 곤충만이 가지고 있는, 인간이 흉내내지 못하는 독특한 기술이었다. 우리가 늘상 만나는 미물인 파리만 해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사람보다 낫다. 게다가 이들은 재빠른 비상은 물론, 급속력을 내기도 하며, 공중에서 정지한 채 몸을 1백80도 회전시키거나 천장에 몸을 거꾸로 돌려 안착할 수도 있다. 사람이 만들어낸 그 어떤 날들도 이 만큼의 능력을 구사하지는 못한다.

로봇 연구자들이 곤충을 주목한 또 한가지 이유는 이들이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포유류인 인간은 뇌 한 부분에만도 수백억개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다. 반면 곤충은 일반적으로 1만개에서 많아야 1백만개의 신경 세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같은 단순함은 상대적으로 그만큼 조정이 쉽다는 말이기도 하다.

옆 사람의 등을 찰싹 때려보라. 아마도 그는 상황에 따라 즐거워하거나 놀라거나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곤충은 대체로 주어진 자극에 대해 한가지로 반응한다. 사람과 달리 매우 간단한 명령반응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특정한 자극을 주었을 때 곤충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곤충 로봇이 인간 모방 로봇 연구가 부딪친 장벽을 허물며 새로운 쓸모를 개척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단순함에서 배운다

일본 도쿄대학의 로봇공학자인 아사오 시모야마 교수의 관심은 산업용 파이프 등의 안쪽에 들어가 유연하면서도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마이크로머신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4년 전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기 위한 연구에 착수한 그는 이내 방향을 돌리고 말았다.

공학적 접근방법으로 그가 시간을 쏟아부은 연구가 자연에서는 이미 완벽하게 설계된 완성품으로 나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완성품이란 다름 아닌 곤충들. 이들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그 어떤 미소 기계보다도 세련되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모야마는 곤충의 신경계를 자극하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츠쿠바 대학의 곤충신경학자들과 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연구진은 바퀴벌레를 모델로 삼아 자극에 반응하는 곤충의 메커니즘을 기계적으로 구현해내기 위한 연구에 돌입했다.

허다한 곤충을 놔두고 굳이 바퀴벌레를 선택한 것은 지금까지 이 곤충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바퀴벌레는 비록 인간 생활에 백해무익한 존재이긴 하지만, 어떤 지형에서도 기어다니며 무엇이든 먹을 뿐 아니라 곤충 중에서도 비교적 긴 수명(3개월 이상 최고 1년)을 가지고 있어 연구 대상으로 제격이었다. 연구진은 연구의 성패가 생물 바퀴벌레의 신경 시스템을 얼마나 제대로 모방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들은 바퀴벌레가 움직일 때 더듬이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 신호를 측정해내는 개가를 올렸고, 이 신호를 인공적으로 재생할 수 있는 회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축소해 몸체에 탑재한 생체공학 바퀴벌레 ‘로보로치’를 탄생시켰다. 로보로치란 로봇(robot)과 바퀴벌레(cock-roach)를 합성한 이름.

최근 그 모습을 드러낸 이 로봇의 신경시스템에 얇은 전극을 이용해 전기적인 자극을 주면 명령에 따라 좌우로 돌거나 앞으로 돌진한다. 이는 생물 바퀴벌레에게 동일한 자극을 주었을 때의 반응과 같은 것이다.

이들의 연구에는 곤충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분(受粉)작용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을 찾던 일본 농무성이 5백만 달러를 지원했다. 로봇 곤충이 어느날 한떼의 곤충을 몰고와 가루받이를 하거나, 해충들을 꾀어내 동반자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시모야마 교수가 만든 바퀴벌레 로봇 로보로치.


페로몬 응용으로 얻는 이득

곤충로봇을 구현하고자 하는 학자들에게 곤충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분비하는 화학물질인 페로몬도 중요한 연구 테마다. 비행하면서 춤을 춤으로써 의사를 전달하는 꿀벌처럼 특이한 경우도 있지만, 페로몬은 가장 일반적인 곤충의 의사소통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곤충들이 분비하는 페로몬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이를 인공적으로 흉내내거나 조절할 수 있다면, 이를 응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엄청나다. 무엇보다 화훼산업이나 농업 등 직간접적으로 곤충과 관련을 맺고 있는 산업은 일대 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얻은 곤충의 감각기관에 대한 지식을 공학에 적용한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능의 센서를 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가스누출 경보기는 페로몬의 단일 분자에 반응할 수 있는 곤충의 감각기관에 비하면 훨씬 뒤진 시스템이다. 만약 곤충의 감각기관이 기능을 수행하는 메커니즘을 흉내낼 수 있다면 향후 마이크로머신의 인공 코에 적용함으로써 지금의 가스누출 경보기를 대신할 수 있다.

누에나방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짝짓기철에 암컷 뒤를 좇는 수컷의 움직임은 눈(目)이 아니라 암컷이 내뿜는 페로몬에 의해 이루어진다. 수컷은 자신의 두 촉수로 페로몬 냄새를 받아들인 다음 날개와 다리 근육에 그 신호를 전달한다. 이때 오른쪽 촉수가 냄새를 포착하면, 이는 나방이 오른쪽으로 돌라는 신호를 발사한다. 곤충은 항시 이 냄새에 따라 방향을 바꾼다.

이를 토대로 일본의 곤충로봇 학자들은 페로몬에 의해 자극받았을 때 머리에 달린 촉수가 근육에 보내는 전기적 신호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나방의 촉수 뉴런에 전극을 달아 신호를 증폭시켰다. 그리고 다음에는 페로몬을 제거한 뒤 전극을 통해 근육에 전기적 신호를 보내보았다. 그러자 나방은 이 인공 자극에도 페로몬에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하며 같은 방향으로 돌았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근육이 아닌 왼쪽 안테나에만 전기적 자극을 가했을 때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오른쪽 안테나에만 자극을 주자 이들은 왼쪽으로 돌았으며, 왼쪽 안테나에만 자극을 주자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도는 등 갈팡질팡했던 것이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연구자들은 인공 자극이 냄새에 반응하는 뉴런보다 나방의 탈출 메커니즘을 활성화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곤충이 위험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행동은 운동과 압력에 반응하는 기계 감각 뉴런에 의해 촉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결과와 함께 연구진은 더듬이만을 자극한다면 비록 나방의 비행 방향을 통제하는 것은 힘들지만, 걸음거리는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페로몬의 공학적 적용을 위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들은 조만간 이를 기술적으로 응용하기 위한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한다.
 

곤충의 겹눈은 척추동물의 눈과 전혀 다르다. 이 구조를 흉내낼 수 있다면 현재의 로봇비전 시스템은 크게 달라진다.


곤충 눈 달고 첩보전 투입

곤충 로봇에 매달리고 있는 상당수 연구자들은 “자연의 정교한 디자인을 원형으로 하는 총체적인 마이크로머신이나 나노로봇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이들의 연구가 실현된다면 살아 있는 곤충의 신경계를 만지작거려 인간의 명령에 반응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쓰임새는 가히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더듬이와 함께 곤충의 대표적 감각기관 가운데 하나인 눈을 생각해보자. 파리의 눈은 7백50개에 달하는 얇은 렌즈가 벌집 모양으로 모여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각각은 보는 범위가 정해져 있다. 만약 장애물 사이를 피해다녀야 하는 로봇에게 파리 눈을 모델화해 장착한다면, 현재의 로봇에 장착된 비전(vision)장치 구성물인 CCD카메라나 대형 컴퓨터는 더 이상 필요없어진다. 또한 이 장치를 단 비행로봇이 첩보전에 투입된다면 상당한 수확을 거둘 게 분명하다.

특히 생물체의 구성단위인 분자처럼 작동하는 기계인 나노(10-9) 크기 로봇의 현실화는 현재 인류가 앓고 있는 상당수 중병을 일거에 격퇴할 수 있는 길을 연다. 즉 이들을 대기중에 뿌려놓으면 이산화탄소를 먹고 산소와 탄소를 배출함으로써 온실효과를 해결할 수 있으며, 감기 바이러스나 암세포를 잡아먹고 스스로는 산화하는 분자기구로 활용할 수 있다. 생체모방공학을 이르는 또다른 이름인 ‘스마트 물질’은 나노테크놀러지 전도사 에릭 드렉슬러가 만든 용어이기도 하다.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해온 곤충은 생존에 필요한 메커니즘과 구조를 가진 완벽체다. 물론 여기서 연구자들이 취하고자 하는 것은 곤충 그 자체가 아니라 이들의 생물학적 습성이나 각 부분의 구조 등 일부분이다. 또 비록 곤충의 생물학적 특성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해도 작동 메커니즘은 생물체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사실 본격적인 의미의 곤충로봇은 단순히 모양과 크기가 곤충처럼 생겼다 해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에너지 효율과 자율운동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곤충의 성질을 그대로 따르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기계의 작동원리와 전혀 달라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9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필 기자

🎓️ 진로 추천

  • 기계공학
  • 전자공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