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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병을 스스로 이겨내는 능력을 키운다

칼을 대지 않고 인공약물도 사양

만성간염에 시달리던 40대 여성 K씨는 최근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으라고 처방하지 않았다. 단지 등 부위에 어떤 약물을 바르는 것만으로 간단히 치료가 끝났다. 3-5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이런 치료를 20여회 받은 K씨는 의사로부터 간염 증세가 상당히 호전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도대체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K씨 등에 발라진 약물은 로즈메리라는 식물로부터 얻은 정유다. 로즈메리 정유는 오래 전부터 간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천연약물로 알려져 있다. 박성은씨(한의자연요법학회 부회장·진남한의원장)는 “로즈메리 정유를 다른 식물성 기름과 섞어 묽게 만든 후 9번째 흉추의 양쪽 부위에 바르자 만성간염 환자의 상태가 상당히 좋아졌다”고 말하고 “이 부위는 한의학에서 간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간수혈’이라는 자리”라고 설명한다.
 

천연의 식물은 자연요법에 사용되는 중요한 재료다.


미국인 3분의 1 자연요법 경험

K씨가 받은 치료는 방향요법(aroma-therapy)의 일종이다. 방향(芳香)이란 말은 식물의 정유에서 독특한 향내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일반인들로서는 단지 약물을 피부에 바르는 것만으로 장기 치료가 된다는 점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또는 혀 밑에 약물을 몇방울 떨어뜨리는 것만으로 치료가 된다면 어떨까.

하지만 우리에게 다소 낯선 이런 종류의 치료가 서양인들에게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수술이나 화학약제에 주로 의존하는 정통 의학과 달리 천연약물이나 음식, 색깔, 명상, 침술, 지압 등을 질병치료에 활용하는 ‘자연요법’(naturopathy) 분야가 학계나 일반인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93년 발표된 하버드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 전체의 3분의 1 정도가 매년 자연요법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또 미국의 보험회사들이 자연요법으로 치료받는 환자에 대해 보험비용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보험회사의 입장에서 볼 때 현대의 첨단 장비를 동원한 정통 의학에 비해 아무래도 치료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다. 산모가 산파의 도움을 얻어 집에서 분만하는 경우까지 보험료가 지급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자연요법에 대한 관심은 일반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기존의 의학대학과 구별되는 4년제 자연의학대학이 캐나다와 유럽에 설립돼 전문의료인들을 양성하고 있다. 손으로 척추를 비롯한 뼈부위를 지압함으로써 환자를 치료하는 카이로프랙틱의 경우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대학이 미국에 20여개 설립돼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은 자연요법의 과학적 타당성을 면밀히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요법은 기존의 의학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 오흥근씨(자연치료의학회 회장·오흥근신경과의원장)는 자연요법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인간의 자연치유력 또는 복원능력에 주목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현대 의학은 환자를 치료할 때 질병 부위에 관심을 집중한다. 예를 들어 암환자를 치료할 때 수술로 암세포를 제거하는 일이 1차적인 목표다.

이에 비해 자연요법은 몸이 암세포를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주변의 건강한 세포의 기능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는 면역체제를 강화시키면 치료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현대 의학도 사람이 자연치유력을 가진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자연치유력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자연요법은 기존의 의학이 갖는 이런 한계점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대체의학’(alternative medicine)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나친 기대는 금물

국내 의학계에서는 얼마 전부터 자연요법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한의사 1백68명으로 구성된 한의자연요법학회가 작년 10월 9일 창립됐고, 올해 1월 24일에는 개원의 1백여명이 모인 자연치료의학회가 만들어졌다. 현재까지 몇차례에 걸친 학술세미나를 통해 활발하게 정보를 교환하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환자의 입장에서 볼 때 최상의 치료책은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서 몸이 낫는 것이다. 몸에 ‘칼을 대지 않고’, 또 인공약물을 쓰지 않고 질병을 치료하는 자연요법의 등장은 바로 이런 점에서 환자에게 커다란 희소식으로 들린다.

하지만 자연요법 자체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것은 금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자연요법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치료된 사례가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요법이 에이즈나 암을 비롯해 현대 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난치병을 '시원스레' 치료하는 비법은 아니라는 의미다. 자연요법의 원리와 치료사례에 대해 충분한 연구가 진행될 때까지 의사와 환자 모두의 신중한 접근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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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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