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선 많은 논쟁이 있다. 주요 쟁점은 인규가 진화를 했는지 아닌지를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수께끼의 열쇠는 부서진 뼈화석뿐이다. 지금까지 이뤄진 인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논쟁을 정리해본다.
고인류학에서 인류는 “먼 옛날 공통조상으로부터 아프리카 유인원과 갈라져 나온 이후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오는 과정에서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는 두발로 걷는 모든 영장류"를 의미한다. 동물학에서는 두발로 걷는 영장류를 인류과라고 한다. 인류과는 이른 시기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과 늦은 시기의 호모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속하는 모든 영장류는 호미니드라고 부른다. 호미니드가 다른 영장류와 다른 점은 두발 걷기, 머리 크기, 어금니의 두꺼운 에나멜질, 그리고 월경주기를 본인 이외에는 알 수 없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두발 걷기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과 호모속의 특징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이른 시기의 호미니드)에는 7개의 종이 있으며, 호모속(늦은 시기의 호미니드)에도 7개의 종이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4백만년 전-5백만년 전부터 1백만년 전-70만년 전까지 아프리카 대륙에서만 발견된다. 이들은 두발로 걸었고 주로 식물성 음식을 먹었다. 로부스투스, 에티오피쿠스, 보이세이와 같은 ‘굳세보이는 형’(robust)에서 이런 특징이 뚜렷하다. 두꺼운 에나멜을 가진 옆니와 어금니, 두터운 아래턱, 그리고 옆머리힘살(tempolaris muscle)과 이 힘살이 머리에 걸리는 마루(crest)의 발달 등이 그 증거다.
오스트랄로피테사인스(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에 속한 것들)의 얼굴은 초기에는 앞으로 튀어나왔으나, 후기(굳세보이는 형)에 이르러서는 편평하고 접시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빨은 앞니에 비해 옆니와 어금니가 크다. 머리용량은 4백-5백30cc 정도. 머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얼굴을 지니고 있다. 키는 1-1.5m, 몸무게는 27-45kg 정도. 남녀 사이에 성에 따른 차이가 커서 남성이 여성보다 몸집이 크다.
호모속은 1758년 카를로스 린네가 살아있는 인류를 분류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했다. 호모는 2백50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자신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사인스와는 해부학적으로 여러 점에서 다르다. 머리 크기는 초기에는 5백30cc 정도, 현생인류는 2천cc에 이른다. 키와 몸무게가 증가했고 남녀 사이의 성에 따른 차이가 줄어들었다. 이빨을 포함해 음식을 씹는 머리뼈의 구조가 오스트랄로피테사인스에 비해 축소됐다. 일반적으로 몸의 근육이 축소되고 머리뼈는 얇아졌다.
현생인류인 슬기사람(호모 사피엔스)에 오면 이런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현생인류의 눈두덩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머리뼈도 얇아졌다. 이빨과 턱도 크게 줄어들고, 수직을 이루며 편평해진 얼굴에 코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턱끝이 잘 발달한 비교적 얇은 턱을 지니고 있다. 짧은 머리뼈에 큰 두뇌, 그리고 높은 앞이마가 특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징은 문화와 언어를 가졌다는 점이다. 현생인류는 언어를 통해 의사를 소통하며 문화를 계승했다. 오늘날 현생인류는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이런 다양성의 차이는 생물학상 분류에서 별 의미가 없다.
인류의 진화가계도는 완성되지 않아
1925년 레이몬드 다트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화석을 발견한 후 지금까지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많은 이론들이 있었다. 이 이론들은 크게 오스트랄로피테사인스가 인류의 직접조상이라는 설과, 우리의 먼 조상은 인류(호모)속의 한 종으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설로 나뉜다. 그러나 아직까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의 한 종이 인류의 조상이라는 가설이 지지를 받고 있다.
대부분의 고인류학자들은 인류 기원을 호미니드(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과 호모속을 통칭) 화석을 바탕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류, 살아있는 침팬지, 그리고 고릴라같은 호미노이드(인류와 비슷한 동물)의 유전적 관계를 규명하는 것 역시 방법 중의 하나다. 핵산DNA 교배연구는 인류와 침팬지가 유전상 98% 이상 닮았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지난 한세기 동안 인류와 아프리카 유인원 사이의 유사성은 전통적인 비교해부학의 연구방법에 의해 밝혀졌다. 또 최근에 발달한 분자생물학의 연구로 인해 더욱 정확하게 설명되고 있다.
마이오세(2천만년 전-5백만년 전) 호미노이드와 오늘날 살고 있는 유인원이나 인류와의 진화 관계는 아직 만족스런 성과가 없다. 1천2백만년 전부터 5백만년 전 사이에 살던 호미노이드 화석이 별로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가설이 있지만 현재 아나멘시스를 일단 가장 오래된 인류의 조상으로, 그리고 아파렌시스를 직접조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라미두스의 연구성과에 따라 자리가 바뀔 수도 있다. 인류 진화가계도는 아직 통일된 것이 없다. 그 이유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인류의 직접 조상은 누구?
아프리카누스에 대한 논쟁은 진화상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아프리카누스는 아파렌시스가 지역적으로 분리된 아종인지, 아니면 아파렌시스가 가장 이른 호미니드의 직접조상인지 하는 점도 논쟁의 대상이었다. 한때 가장 이른 호미니드로 알려진 아파렌시스는 지금은 아나멘시스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
또다른 논쟁은 아프리카누스가 호모의 직접 조상인가 하는 점이다. 일부 학자들은 아프리카누스의 원시적인 머리뼈 구조는 아파렌시스와 보이세이에서 나타난다고 보고, 아프리카누스를 이들의 중간단계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누스가 ‘굳세보이는 형’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호모의 조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근거가 되는 ‘굳세보이는 형’의 해부학상 특징은 옆니가 어금니화되며 송곳니 뒤에 자리한 이빨들이 커지고, 더불어 아래턱이 두터워지고 굳세보이는 것들이다.
아프리카누스와 로부스투스는 모두 남아프리카 유적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아프리카누스는 잡식성이고 로부스투스는 초식성이다. 결국 각기 다른 생태 서식지에서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아마도 두 종이 살았던 연대가 확실하지 않아 같은 시기와 지역에서 살았을 것으로 가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아프리카 유적에 대한 새로운 연대측정에 따르면 가장 이른 시기의 로부스투스는 가장 늦은 시기의 아프리카누스보다 최소한 50만년 늦게 나타난다.
일단의 학자들은 아프리카누스가 로부스투스의 조상이며, 로부스투스로부터 보이세이가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이 가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얼굴구조를 기능적으로 비교해 얻은 결과다. 아프리카누스에서 로부스투스, 그리고 보이세이로 계속해서 진화가 진행됐다는 가설은 로부스투스의 특징인 굳세보이는 턱의 구조가 아프리카누스에서 이미 보이기 때문이다.
1985년에 투르카나호수 서쪽에서 2백50만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에티오피쿠스(WT-17000)화석이 발견되기 전까지 위의 가설들은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에티오피쿠스는 보이세이의 조상으로 가늠된다. 에티오피쿠스는 보이세이보다 더 굳세보이는 얼굴과 더 큰 이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로부스투스는 늦은시기의 보이세이와 해부학상 특징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그래서 로부스투스는 에티오피쿠스의 후손으로 보고 있다. 로부스투스는 2백50만년 전의 에티오피쿠스로터 진화했고 에티오피쿠스는 동아프리카에서 살던 아파렌시스로부터 진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는 남아프리카에서 살던 아프리카누스로부터 독자적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에티오피쿠스는 굳세보이고 커다란 이빨을 지니고 있는 등 여러 면에서 로부스투스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얼굴은 아프리카누스보다는 아파렌시스를 닮았다.
오스트랄로피테사인스는 ‘인간성’을 지니고 있을까.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호모로 진화해 갔다는 주장은 대부분의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류의 진화에 관한 전통적인 견해는 호모속 중에서 손쓴사람(호모 하빌리스)이 곧선사람(호모 에렉투스)으로, 그리고 이어 슬기사람(호모 사피엔스)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로이 제기된 인류진화 가계도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새로운 인류진화 가계도
1990년대 중반 전통적인 인류진화가계도와 다른 새로운 가설이 발표됐다. 여기에도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종과의 관계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빨과 턱의 구조를 보아 더 원시적인 아나멘시스가 아파렌시스의 조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만일 아파렌시스가 아나멘시스와 같은 시기에 살았다면 4백만년 전의 인류진화가계도는 더욱 복잡해지는데, 아파렌시스와 아나멘시스는 서로 갈라져서 얼마 동안을 함께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누스는 로부스투스 계열의 주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점은 로부스투스의 단일조상으로 자리할 뿐 호모의 조상으로 볼 수 없다. 에티오피쿠스는 아파렌시스와 많은 원시적인 특징을 나누어 지니고 있으며, 동아프리카에서 진화한 보이세이의 조상으로 자리한다. 아프리카누스는 진화상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고, 보이세이와 로부스투스는 에티오피쿠스로부터 진화했다는 주장도 있다.
인류속의 경우 먼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와 가장 이른시기의 호모를 연결해 줄 중간단계(2백만-3백만년 전)의 화석이 거의 없다는 점을 해결해야 한다. 또올두바이 골짜기에서 출토된 손쓴사람이 곧선사람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전통적인 가설이다. 그러나 손쓴사람과 곧선사람은 현생인류인 슬기사람으로의 진화에 별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점차 받아들여진다. 호모 루돌펜시스가 그 자리를 대신해 호모 에르가스터로 진화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호모 에르가스터는 곧선사람과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공통조상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주장과, 호모 에르가스터는 곧선사람으로, 곧선사람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 이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 네안데르탈 사람을 슬기사람인 현생인류의 아종인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아닌 독립된 종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로 구분해야 하며, 네안데르탈 사람은 슬기사람에게 유전인자를 전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더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슬기사람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부터 진화해 왔으며 네안데르탈사람 또한 이들로부터 진화했다고 가늠된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해부학상 슬기사람과 네안데르탈 사람의 공통조상이 된다.
미래의 인류는-호모 컴퓨터렌시스?
“호미니드의 조상들이 어떻게 ‘인류’라는 존재로 되었을까”는 계속적인 연구 대상이다. 많은 생물학상, 그리고 환경 요인들이 현생인류의 유전적 특징을 결정하는데 작용했다. 이런 요인들은 플라이오세(5백만년 전-2백만년 전)부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인류를 영장류와 구분하는 특징은 두발 걷기, 송곳니의 축소, 확대된 두뇌, 감추어진 월경주기, 어린아이를 오랜기간 돌봄, 주거지, 음식 분배, 언어 능력, 사바나에 적응하는 식생, 사냥과 음식 얻기에서의 협동체제, 연모의 사용, 바깥으로 향한 엄지손가락, 그리고 노동의 분화 등을 들 수 있다.
위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인류는 아나멘시스(또는 라미두스)로부터 우리 자신인 슬기사람으로까지 진화해 왔다. 앞으로 우리는 더 분화가 일어나 '호모 컴퓨터렌시스'(Homo computerensis)같은 종으로 진화해 갈 것인가.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적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더 이상 재생산이란 면에서 고립되지 않았으며, 집단 내에서 분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필요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교통수단의 발달로 지구촌에서의 교류가 아주 활발해 지구상의 인류는 한 종으로 동일화되고 있다. 인류에게 분화가 일어나려면 우주 식민지처럼 고립된 환경이 요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