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놀사건 이후 깨끗한 물을 먹어야겠다는 사람들의 열망은 오염된 강을 되살리는 쪽이 아니라 정수기나 생수를 찾는 방향으로 파행의 길을 걷고 있다. 국가정책도 상수원을 지키는 것보다 첨단 처리 기술을 도입하는 쪽에 비중을 두고 있다. 강물은 더러워도 당장 마시는 물은 깨끗하게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4천년 전 고대 인도의 성전(聖典)에도 마시는 물에 대한 신(神)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신은 인간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더러운 물은 끓이거나 햇볕을 쪼이고 뜨거운 구리조각을 일곱번 담근 후, 질그룻에 한참 담아 두었다가 식혀서 먹어야 한다.'
뜨거운 구리조각을 일곱번 담그는 것이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살균과 침전을 거치는 과정은 지금의 과학적인 지식으로 보아도 아주 그럴 듯한 정수과정이다.
염소처리로 병원성 미생물을 없앤 수돗물을 먹게 된 요즈음에는 실감이 잘 안나는 이야기이지만,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 등 수인성 전염병이 만연하던 금세기 초까지만 해도 물에 의한 질병으로 죽는 사망률은 10만명당 1백, 2백명에 달했다. 19세기 말까지도 사람들은 고열과 복통의 원인을 알지 못했다. 1854년 영국인 전염병 학자인 존 스노 박사에 의해 콜레라가 수인성 질병이라는 것이 밝혀지기까지 서양 사람들은 이런 병에 걸리는 이유가 더러운 공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수돗물을 검사할 충분한 자료가 없다
이제는 물을 분석하는 방법이 고도로 발달해서 몇 억분의 1정도가 들어있는 화학물질도 쉽게 검출할 수 있게 되었고, 음용수중에서 확인된 오염물질도 약 7백50가지나 된다. 요즈음은 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트리할로메탄이 어떻게 생긴 물질인지는 잘 몰라도 정수과정에서 생기는 발암물질이라는 것쯤은 일반인도 상식으로 알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우리가 마시는 물이 과연 안전한가 하는 것인데, 그 대답은 아직 마셔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돗물에 대한 검사가 세계보건기구(WHO)나 선진국에서 정하고 있는 음용수 수질기준 항목을 모두 분석하지 않고 있는 한, 실제로는 수돗물이 과연 마실 만한가를 판단할 충분한 자료가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환경오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높아질수록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오히려 더 커졌다는 것은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깨닫게 된다. 생수를 사먹거나 물통을 들고 약수터에 줄을 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고, 물 색깔이 벌겋지 않거나 냄새가 나지 않더라도 수도 꼭지에 정수기를 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수돗물을 먹는 사람들은 누구나 물속에 들어 있을지도 모를 어떤 오염물질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온 국민의 뇌리 속에 깊게 뿌리 내리게 된 데는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이 큰 계기가 되었다. 오염된 강물이 염소처리되는 과정에서 강한 악취를 내는 클로로페놀이 생겼기 때문에 수돗물의 오염은 쉽게 탐지될 수 있었고, 대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더불어 여론의 파장은 다른 환경오염문제에 비해서 크게 증폭되었다.
1986년 11월 1일 라인강에서도 사상 유래 없는 하천 오염 사건이 발생했는데, 우리나라의 페놀 오염사고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대조적이다. 라인강 오염사고는 스위스의 바젤시 부근에 위치한 공업지역에 있는 90× 50m 크기의 화학물질 창고 화재가 원인이었다. 이 창고에는 농약, 유기용매, 염료 등 1천3백t 이상의 각종 화학물질이 적재되어 있었는데, 화재 진압을 위해 사용한 소방용수가 강으로 흘러들어 6백㎞에 달하는 라인강 중하류가 크게 오염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32종류의 살충제와 농약이 라인강에 방출되자 저서생물과 어류들이 대량 폐사하였고 북해로 유입되는 라인강의 하구에서 몇 주간 계속 오염물질들이 측정, 발견되었다. 라인강은 서독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의 약 1천2백만명의 주요 식수원이기 때문에 이 사건은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되었다.
강은 모든 사람 가슴 속을 흐른다
라인강 오염이 우리나라의 상황과 달랐던 점은 지난 10년 동안 라인강 주변 국가들이 강을 살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그 결과 수질이 매년 놀랍게 향상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법적인 규제와 자발적인 참여로써 공장폐수와 각종 오수의 유입량을 꾸준히 감소시켜 왔고 과학적인 유역관리로 비점원(non-point source) 오염을 크게 줄여 오던 각국에서는 강이 다시 오염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 자신의 식수가 오염되는 문제보다 다시 강이 죽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컸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라인강의 자정작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놀라웠다. 라인강 오염사건은 체르노빌 사고가 반핵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했듯이, 요즈음 유럽의 환경운동을 한 발짝 더 진보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페놀 사건 이후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깨끗한 물을 먹어야겠다는 사람들의 열망은 오염된 강을 되살리는 쪽이 아니라 정수기나 생수를 찾는 방향으로 파행의 길을 걷고 있다. 국가의 정책도 상수원을 지키는 것보다 첨단 처리 기술을 도입하는 쪽에 비중을 두고 있다. 강물은 더러워도 당장 마시는 물은 깨끗하게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다. 팔당 댐 이북 상수원 보호지역에는 올해 들어 눈에 띄게 식당이나 호텔이 늘어났고, 얼마 전에는 무더기로 허가해 준 골프장의 도산 위기를 이유로 골프장 오염방지 기준을 완화해 주기로 결정했다는 우울한 소식도 있었다.
강은 그 강에서 사는 모든 사람의 가슴 속을 흐른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사람들은 라인강을 되살리는 두 번째 기적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죽은 후에도 영원히 그 자리를 운명처럼 흘러갈 우리의 강,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모든 사람의 가슴 속을 흐르고 있는 우리의 강을 되살리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두번째 기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