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신비 고고학으로 치장한 백인 우월주의 스타게이트

고대 문명의 기원을 찾아서

서양인들은 오랫동안 동양의 문화에 대해 ‘신비’라는 수식어를 붙여 왔다. 그것은 서양인들이 처음 동양의 문명을 접했을 때 느꼈던 낯설음에 대한 경배일 수도 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3천년간 번성했던 고대 오리엔트 문명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유럽이 통일된 후 서양 문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 인도와 중국의 문물은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그들의 문화에 풍성한 문화적 씨앗을 제공했다. 콜롬부스는 미지의 땅 인도를 향해 목숨을 건 탐험 길을 올랐을 정도로, 서양인들은 동양에 대해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환상은 탐욕스럽다. 그들에게 동양은 그들의 위기를 극복해 줄 신세계이자 문화적 보고이면서 약탈과 침략의 대상이다. 그들이 동양에 대해 ‘신비’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 데는 그들의 탐욕스런 제국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속셈이 숨어 있다.

예컨대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보면, 교묘하게 숨겨진 미국의 제국주의적 편견을 읽을 수 있다.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은 제 1편 ‘레이더스’는 고고학자인 인디아나 존스 박사가 나치들에 맞서 ‘남미의 보석’과 ‘중동의 성궤’를 찾으면서 벌이는 모험담이다. 그러나 남미나 중동의 보물을 발굴해서 미국 박물관에 갖다 놓든, 독일 박물관에 갖다 놓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똑같은 도둑질일 뿐이다. 제 2편 ‘인디아나 존스’ 역시 무대가 중국과 티벳으로 바뀌었을 뿐, 서양인들의 약탈이 신나는 모험으로 미화되어 있다.

영화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의 눈에 비친 동양은 보물이 숨겨져 있는 환상과 모험의 장소일 뿐이다. 서구인들은 끈질긴 탐색과 추적을 통해 보물을 찾아내고 약탈해 간다. 그것이 바로 콜롬부스의 꿈이 아니었던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편견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사진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인 '인디아나 존스와 마지막 성전'.


외계로 통하는 문

SF 영화광인 롤랜드 에머리히는 이집트의 고대 문명에 대한 지식과 SF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영화 ‘스타게이트’(Star Gate)를 완성했다. 이 영화는 3천년 전 이미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으며, 그 후 서양 문명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아직까지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고대 이집트 문명이 이집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외계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가상의 역사적 사건으로 시작된다. 1928년, 이집트의 ‘기자’에서 고대 이집트 시대의 유물이 발견된다. 이때 커다랗고 둥근 문이 하나 발견되는데, 미국의 과학자들과 국방부는 지금까지 이 문에 대해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문의 용도와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연구하고 있는 언어학자 잭슨 박사가 이 연구에 합류하면서 문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진다. 이 문은 ‘스타게이트’(star gate)라고 불리는 것인데, 먼 우주와 통해 있어서 순간이동이 가능하다. 몇 명의 군인들과 잭슨 박사는 스타게이트 너머 세계를 탐사하기 위해 스타게이트를 관통한다.

실제로 1922년 하워드 카터에 의해 이집트 제 18 왕조 파라오인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견됐다. 이 발견은 20세기에 가장 두드러진 고고학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 속에서 발견된 화려한 무덤 장식과 부장품들을 통해 이집트 전성기의 문화를 가늠하는 계기가 됐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와 유사한 형상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이를 보건대 우리는 영화가 이 발견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스타게이트’는 역사적인 사실과 고고학적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스타게이트’가 실제로 발견되었다는 보고는 없지만 말이다.

탐사팀이 스타게이트를 통해 다다른 곳은 사막과 같은 우주의 다른 행성. 그곳에선 사람들이 문자도 없이 이집트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다. 거기서 탐사팀은 이집트 문명이 어떻게 탄생됐는지 비석을 통해 알게 된다.

1만년 전, 멸망해 가는 먼 별에서 한 생명이 탈출해서, 생명으로 충만한 지구에 도달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바로 태양신 ‘라’(La). 그는 한 소년의 몸에 들어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게 된다. ‘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지도자가 되었고, 스타게이트를 통해 사람들을 이 행성으로 데리고 와서 광물을 캐게 했다. 이 별의 광물은 기술의 초석이면서, 영생을 가능케 하는 신기의 광물이다. 그러나 지구에서 반란이 일어나 스타게이트가 묻혀버리고 만다.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없게된 태양신 ‘라’는 또 다른 반란이 두려워 문자를 없애고 이 행성에서 인간들 위에 군림하며 살고 있었다. 이것이 이집트 문명의 진상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라고 여겨오던 고대 이집트 문명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시체가 썩지 않는다면 그 영혼도 저승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시체를 미라로 만들고 죽은 자의 집인 분묘도 정비했다. 신분과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내세에 자신들이 지니고 갈 유용한 장식물을 수집했으며, 자신들의 무덤에 최대한 관심을 쏟았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이집트 유물들이 대개 고대의 무덤과 결부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집트인들은 왜 내세에 그토록 집착하였을까? 영화는 이집트인들이 꿈꾸었던 내세가 바로 스타게이트 너머 우주의 다른 행성이라고 말한다. 사후 세계를 보고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물을 건너 사후세계에 도달했다고 증언한다. 영화에서 스타게이트를 통과할 때 물을 지나는 것은 스타게이트 너머의 행성이 이집트인들의 내세임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그곳에는 그들이 떠받들던 태양신 ‘라’의 형상을 한 외계인이 살고 있으며, 여러 동물 신들이 그를 수호하고 있다. 영화는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막강한 절대권력을 갖게 된 것은 그가 고도의 과학기술과 초능력을 가진 외계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태양신 ‘라’는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를 쓰고 있다. 영화에서 태양신 ‘라’를 수호하는 수호병들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묘지의 신 ‘아누비스’와 매의 형상을 한 왕권의 수호신 ‘호루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들의 복장은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점이다. 영화는 이집트인들의 태양신 ‘라’와 여러 동물신들에 대한 종교적 신앙이 외계인에 의해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스타게이트 너머 행성에 도착하니 거대한 피라미드가 우뚝 솟아 있다. 태양신 ‘라’가 그곳에서 살고 있다. 현재 불가사의로 남아 있는 피라미드 역시 외계인이 지어 놓은 것일까? 피라미드는 평균 2t의 돌이 2백30만개나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무거운 석재들을 어떻게 필요한 높이까지 운반하였는지는 아직까지 의문에 싸여 있다. 많은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나름대로 설명되고 있지만, 확실한 해답을 알고 있지는 못한 형편이다. 바늘 하나도 들어갈 틈이 없다는 정교한 건축법도 불가사의다. 죽은 시체가 썩지 않고 탈수만 된다고 해서 피라미드를 우주 에너지가 모이는 곳이라고 추정하는 정도다. ‘스타게이트’는 이 모든 점들에 대해 고도의 문명을 가진 외계인이 건축한 것이라는 해답을 제시한다.
 

스타게이트 포스터. 투팅카멘의 황금마스크에서 영감을 얻었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SF매니아들에게는 은근한 인기를 얻고 있다.


고대문명의 건설자는 누구일까

우주인들이 고대문명을 건설했다는 주장은 ‘스타게이트’가 처음은 아니다. 요즘 들어 마야 문명이나 이집트 문명이 아틀란티스 대륙의 산물이라거나 우주인들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책인 그레이럼 행콕의 ‘신의 지문’도 ‘스타게이트’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행콕은 기자의 피라미드가 현대의 건축기술로도 짓기 어려운 것으로, 고도의 과학문명이 건축했다는 주장을 편다.

이런 류의 주장을 ‘신비 고고학’이라고 하는데, 1970년대 미국에서 ‘우주 고고학’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해서 대중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폰 대니켄이 주장한 우주 고고학은 지구와 화성 사이에 행성이 있었으며, 여기에 살던 외계인들이 지구를 지배하고, 이들이 피라미드도 건축했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스타게이트’의 신비 고고학적 주장은 옳은 것일까? 기존의 고고학계는 신비 고고학자들의 주장을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일축한다. 고대 점토판 문서나 문자들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결과를 조금이라도 읽어 보았다면, 그런 주장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비록 피라미드의 건축법과 이집트 문명에 대해 모든 것을 해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고고학적인 연구는 그것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피라미드나 이집트 문명에 대해 신비함을 느끼는 것은 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면서 그들의 지적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의 밑변과 높이의 비가 원주율의 반인 1.57이라거나 무거운 석재를 1백50m나 쌓아 올린 것에 대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어떻게 스스로 알아낼 수 있었겠느냐고 의심한다.

피라미드 안에서 죽은 고양이가 썩지 않고 있다거나 무딘 면도날이 날카롭게 재생된다는 사실은 피라미드가 단순히 왕의 무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게 한다. 전기장 촬영을 통해 피라미드의 위 꼭지점에서 에너지 장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알아내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어떤 사람들은 피라미드가 우주 에너지를 내부로 빨아들이는 ‘신비의 공간’이라고 여기고 현대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고대 이집트인들의 유산이 외계인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다.

서양인들은 뉴턴과 데카르트 이후, 합리적인 이성으로 구축한 현대과학이 수천년 전의 고대 동양문명을 설명할 수 없다는 열등감으로 신비 고고학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양의 과학에 대한 그들의 열등감과 우월주의는 동양의 문명이 외계인들에 의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첨성대가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고대 천문대이기 때문에, 외계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서양인들이 주장한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라'를 만나기 위해 '라'의 성전 앞에 도착한 탐사대. 태양신 '라'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서로 다른 패러다임

자연을 기술하는 과학의 패러다임은 어느 것이 더 우수하다고 말하기 힘들다. 고대 동양과학은 현재 서양의 과학과는 서로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 과학문명은 현대과학의 패러다임이 안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문제점들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현대과학이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외계인의 도입은 편리한 방법이지만,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또 서양인들에 의한 ‘동양의 신비화’로 인해, 동양은 그동안 서구 제국주의의 각축장이 되어 왔으며, 부단한 수탈과 착취를 당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신비화가 동양의 참모습을 왜곡시키고 변형시켜왔다는 사실도 기억해 둬야 할 것이다. 신비의 대상은 그 신비가 사라지면 매력을 잃고 버려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 진로 추천

  • 역사·고고학
  • 문화인류학
  • 문화콘텐츠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