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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호르몬의 정체를 밝힌다

잘못된 통념 많아

체내에 극미량 존재하는 이 내분비선은 어떤 일을 하나?

일반인의 호르몬에 대한 개념은 추상적일 때가 많다. 그 이유는 신체내에 존재하는 호르몬의 양이 극미량이어서 과거에는 호르몬의 측정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분비학은 단지 현상을 기술하는 수준이었다. 성장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면 거인증이 생기고 성호르몬이 부족하면 성기능저하가 온다는 등의 단편적이 지식이 전부였다.

그러나 1960년대에 개발된 방사면역측정법(radioimmunoassay)을 활용, 신체내에 존재하는 극미량의 호르몬까지 측정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내분비학의 개념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측정기법이 우선 확보되어야

성장호르몬은 성장기에 키를 크게 하는 작용만 있다는 잘못된 통념을 예로 들어보자. 또 성장호르몬만 있으면 모든 성장과정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생각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만일 성장호르몬이 성장에만 관여한다면 성장이 정지되는 20대 후반에는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정지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장호르몬은 일생동안 지속적으로 분비된다.

이로써 성장호르몬은 성장뿐만 아니라 성장이외의 신체대사과정에도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키가 크기 위해서는 성장호르몬 외에 갑상선호르몬과 성호르몬 등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 예컨대 성장호르몬이 정상일 때에도,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생기면 난장이가 된다. 이처럼 개개의 호르몬에 의한 신체의 변화는 호르몬분비에 대한 정확한 동태를 파악한 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호르몬의 농도는 혈액 1ml당 1${0}^{-6}$(㎍)~1${0}^{-12}$(pg) 정도의 극미량이다. 이렇게 소량의 호르몬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기법은 내분비학 발전의 첫 단계다. 현재 방사면역측정법이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고, 효소면역측정법도 일부에서 응용되고 있다.

방사면역측정법은 이론적으로 별 문제가 없으나 측정물질의 특이성과 예민도 때문에 국내에서는 그리 활발하게 응용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 집중적인 투자를 한다면 현재의 국내기술로도 얼마든지 개발이 가능한, 가치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호르몬의 분비이상이란 과다분비증과 결핍증을 합해서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성장호르몬이 과다분비할 때에는 거인증, 갑상선 호르몬이 넘치면 갑상선기능항진증이 생긴다. 치료방법은 분비세포를 수술로 제거해 버리는 것이 최선이다.

이와는 반대로 호르몬의 결핍에 의한 증세들도 수없이 많다.

성장호르몬이 부족하면 왜소증, 갑상선호르몬이 부족하면 점액수종, 인슐린이 부족하면 당뇨병에 걸리게 된다. 호르몬이 부족하면, 부족한 호르몬을 적절하게 투여함으로써 정상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순수한 호르몬을 대량 얻을 수만 있다면 많은 내분비질환을 치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중 성장호르몬은 사람의 뇌하수체로부터 직접 추출, 임상에 적용해 보았으나 곧 폐기처분되고 말았다. 순수한 호르몬을 추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는 유전공학적 방법을 이용, 비교적 순수한 성장호르몬을 생산하고 있다. 인슐린은 소나 돼지의 췌장에서 추출한 뒤 순수정제해 당뇨병환자의 치료에 쓰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된 인슐린도 당뇨병환자에게 널리 투여되고 있으며, 순도를 더욱 높이는 기술개발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성장호르몬과 인슐린의 생산에 유전공학적기법을 도입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국내에서도 몇년 전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상당한 기술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사람에게 직접 사용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순수하게 호르몬이 분리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경제성이 있을 만큼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져야 한다. 관련 학자들은 앞으로도 몇 단계를 더 거쳐야 비로소 임상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호르몬결핍을 해결하는 또 하나의 획기적인 치료법은 호르몬분비세포를 이식하거나, 호르몬을 만드는 유전자를 세포에 삽입시켜 호르몬분비를 유도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연구는 현재 국내에서도 동물실험을 통해 시도되고 있으나, 아직은 초보단계다. 필자는 이러한 시도가 첨단 생명공학의 발전계기를 마련하는 매우 중요한 연구라고 생각한다.
 

성장호르몬의 과잉분비에 의한 얼굴모양의 변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준다.


수용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내분비학(호르몬) 연구의 1차목표는 호르몬의 농도측정과 부절절한 호르몬을 적절하게 조절해주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의 연구는 각각의 호르몬들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세포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규명하는 작업이다.

피속에는 수십~수백종의 호르몬들이 순환한다. 이처럼 많은 호르몬들이 순환하지만, 호르몬과 접하는 모든 세포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세포는 오직 특정한 호르몬에만 반응한다. 이 현상을 호르몬에 대한 세포의 특이성(特異性, specificity)이라 한다.

이런 특이성이 생기는 이유를 밝히는 일도 내분비학의 중요한 과제중 하나다. 예를 들어 인슐린은 신체의 모든 세포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인슐린과 결합반응을 할 수 있는 특수한 단백질을 세포표면에 갖고 있는 세포에만 작용한다.

세포표면에 있는 특수한 단백질을 호르몬수용체(受容體, receptor)라고 한다. 수용체는 일정한 주파수만을 인지하는 안테나와 같다. 수용체는 국내에서 비교적 일찍부터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온 분야중 하나다. 호르몬과 수용체의 결합과정은 물론이고 수용체의 세포내 위치, 수용체의 분해, 수용체의 재순환과정 등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수용체를 분리·추출해 수용체의 구조적 성상, 생화학적 변화를 밝히는 연구도 활발하다. 또한 수용체단백질의 합성을 조절하는 인자에 대한 연구도 심도있게 진행되고 있다.

호르몬의 수용체는 호르몬의 종류에 따라 세포표면에 있을 때도 있고, 세포질 또는 핵내에 있을 수도 있다. 예컨대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수용체는 세포질에 있고, 갑상선호르몬의 수용체는 핵내에 있다. 세포질 또는 핵내 수용체는 유전자 조절메커니즘을 밝히는 핵심적인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어 현재 생명과학의 중요한 연구분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 분야에 꾸준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큰 진전은 없다.
일단 호르몬이 수용체에 포착되면 세포내에 다양한 2차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일련의 2차적인 세포내 변화는 복잡다기하고, 세포에 따라서 반응양상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잘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분야임에는 틀림없다.

호르몬이 세포막과 결합하면 세포막의 투과력이 변하고, 세포내에 2차전달매개체가 형성된다. 2차전달매개체는 세포질내에 있는 효소 등을 자극 또는 억압해 세포의 생물학적 반응방향을 결정해 준다. 실례로 스테로이드호르몬과 갑상선호르몬 등이 세포질수용체나 핵내수용체와 결합하면 유전자를 자극 또는 억제, 세포내의 효소와 같은 단백질의 합성을 조절하는 것이다.

내분비기능, 쉽게 말해 호르몬의 기능은 실제로 매우 다양하다. 첫째로 신체내의 내적 환경(internal mulieu)의 항상성을 유지해 준다. 둘째 성장과 발육을 질서있게 조화시키며 셋째 생식세포형성, 성교, 수정, 태아의 영양공급과 같은 전반적인 생식활동을 유지시켜 준다.

생명체는 단세포에서 차츰 발전해 수많은 세포를 가진 유기체로 되고 다시 세포 상호간의 유기적인 정보전달을 통해 하나의 통일된 통합체가 된다. 이 유기적인 정보의 전달을 수행하는 몸안의 대표적인 기관이 바로 신경계와 내분비계다. 과거에는 신경계와 내분비계는 서로 별개의 기능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지만, 상호간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뿐 아니라, 발생학적으로 그 기원을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특히 각종 호르몬의 조직분포를 확인하는 면역학적인 방법이 개발되면서 호르몬으로 생각되던 물질들이 엉뚱하게도 신경조직에서 발견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신경전달체로도 중요한 역할을 함이 확인됐다.


신경계와 내분비계는 같은 「뿌리」

내분비기능의 사령탑이라고 할 수 있는 뇌하수체전엽은 시상하부의 신경조직과 연결돼 있다. 시상하부에서 나오는 성장호르몬분비자극호르몬, 성장호르몬분비억제호르몬, 생식호르몬자극호르몬분비촉진호르몬, 갑상선자극호르몬분비촉진호르몬 등은 신경자극 전달체로 작용할 뿐 아니라, 호르몬분비조절 물질로도 활약한다.

신경계와 내분비계가 연결돼 있다는 개념은 생리현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래서 내분비계에 이상이 있을 때 정신신경증세가 흔히 동반되고, 정신신경질환자가 내분비이상증을 보일 때가 허다한 것이다.

특히 신경내분비학은 중추신경계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커다란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국내에서도 대규모 연구를 곧 시작할 계획이다.

생식활동을 유지시킨다는 점도 호르몬의 중요한 역할중 하나다. 성선(남자는 고환, 여자는 난소)에서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을 분비함으로써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유지된다는 생각은 생식기능의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너무 단순한 논리다. 고환과 난소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성선자극호르몬이 고환과 난소를 적당히 자극해주어야 한다.

또한 성선자극호르몬은 분비량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다. 뇌하수체의 상부에 있는, 뇌조직의 일부인 시상하부의 분비물질에 의해 분비가 조절되는 것이다.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이 호르몬을 성선자극호르몬분비촉진호르몬이라고 한다.

사춘기 때 2차성징이 완성되려면 시상하부의 중추신경이 충분히 발달해야 한다. 그래야 뇌하수체와 성선 등의 성숙이 뒤따르게 된다. 따라서 중추신경계질환이 있거나, 뇌손상이 후유증이 남아 있으면 2차성징이 아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시각장애나 정서적 장애가 심하면 2차성징발현이 지연된다. 반대로 텔레비전을 자주 접하면 사춘기가 더 빨리 온다는 보고도 있다.
 

유즙분비·성선(난소와 고환)기능을 조절하는 뇌하수체와 시상하부^A 시상하부 B 뇌하수체 C 고환 D 난소 DA 도파민 FSH/LH 성선자극호르몬 GnRH 성선자극호르몬분비 촉진호르몬 PRL 유즙분비자극 호르몬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미쳐

시상하부나 뇌하수체의 기능장애로 불임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산부인과적인 이상이 없을 때는 시상하부나 뇌하수체의 이상유무를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한다. 현재 피임을 목적으로 시상하부나 뇌하수체 기능을 일시적으로 차단시키는 방법도 개발중이다.

뇌에서 분비된 물질이 멀리 떨어져 있는 난소나 고환을 어떻게 자극할까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뇌에서 분비된 물질은 일단 피속으로 흘러들어가서 혈액순환을 하게 된다. 몸안을 순환하던 물질이 성선에 도달하게 되면 뇌하수체 분비물과 특이하게 결합하는 수용체와 결합한다. 그러면 성선이 자극된다.

호르몬을 연구하는 내분비학은 일반적으로 오해하고 있듯이 눈에 보이는 외형적 분비물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세포에서 생산된 물질이 혈액속으로 방출돼 피속을 돌아다니다가 자신과 요철(凹凸)이 맞는 수용체가 있는 세포를 자극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때 세포에서 생산된 물질이 바로 호르몬이다.

뇌하수체에서 분비된 성선자극호르몬은 고환 또는 난소를 자극해 발달시킨다. 고환에서 생산되는 남성호르몬은 신체를 남성답게 만들어 준다. 강건한 근육, 턱에 나는 수염, 생식기의 발육과 같은 외형적인 남성다움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남성다움까지도 이끌어주는 것이다. 정신적인 남성다움이란 남성의 사회적인 처신, 여성을 대하는 남성다움 등을 말한다. 남성호르몬은 중추신경계에 있는 남성호르몬수용체와 결합, 정신적 남성을 만들어준다.

마찬가지로 여성호르몬은 난소에서 분비된 다음 신체의 전신을 골고루 여성답게 발달시켜준다. 그리고 생식에 필요한 기관을 발육시키고, 생식에 적절하도록 항상 유지시켜 준다. 월경주기에 따른 배란과 수정 및 착상과정, 그리고 태아로 성숙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많은 호르몬들이 동적인 연결을 갖기 때문에 아직도 이해되지 못한 부분이 허다하다.

지금까지 호르몬의 연구현황과 각 단계에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문제의 초점들을 점검해 보았다. 호르몬의 세포내 반응을 정확히 규명하려면 단백질생화학, 세포막생리, 면역학, 유전자구조, 유전자재조합기법, 생물학적인 반응, 호르몬간의 상호작용 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처럼 많은 분야의 학문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비로소 이 분야의 연구에 새 기원을 맞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갑상선호르몬 분비의 이상으로 갑상선이 비대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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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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