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패키지의 대거 등장과 전문 유통업체의 설립, 불법복제보다 정품을 구입해야 한다는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이루어진 한해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컴퓨터, 정확히 PC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컴퓨터가 국내에 등장했던 80년대초에는 컴퓨터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모니터에서 표현되는 글자며 계산들은 누가 보아도 묘한 매력을 주었다.
하지만 컴퓨터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고 방식이 우리와는 달랐다. 때문에 컴퓨터와 대화하는데 불편함을 느끼게 됐고 우리식의 표현이 무엇보다도 요구됐다. 그리하여 비록 컴퓨터가 서양의 문물이지만 이를 우리식으로 접목시키려는 노력들이 하나둘씩 탄생하게 됐다.
국산화라는 대전제 아래 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게 됐는데 이러한 노력은 주로 하드웨어적인 측면에 많은 비중을 두었던 경향이 있다. 하드웨어 개발에는 많은 투자와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 하드웨어를 실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소프트웨어다. 그간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은 하드웨어의 종속적인 면이 강했다. 때문에 소프트웨어가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미약했다. 그러나 이제 소프트웨어 산업이 산업의 한갈래로서 그 위치를 차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자리메꿈이 올해에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올해 소프트웨어 시장의 규모는 당초 예상했던 1백억원보다 50% 신장된 1백50억원 규모로 소프트웨어 산업 종사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4천억원에 이르는 하드웨어 시장 규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상대적으로 약한 원인은 그간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이 하드웨어 위주로 발전돼 소프트웨어는 특정 하드웨어에 덤으로 붙는 당연한 서비스 정도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91년은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이 새롭게 변화한 시기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겠으나 90년도에 컴퓨터 유통산업이 어느 정도의 위치를 다지게 됨에 따라 소프트웨어에 유통이란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소프트웨어산업에서 유통개념은 소프트웨어의 패키지화, 정품유통의 정착, 개발업체의 상품화의욕 고취라는 기본적인 목표를 중심으로 다져지기 시작했다.
한편 소프트웨어 생산면에서는 89년 9월 1일 컴퓨터 프로그램법이 등장한 이래 지난 8월까지 6천80건이 등록돼 개발이 활발함을 보여주고 있다.
등록된 프로그램 중에는 응용프로그램이 3천3백41건으로 55%, 시스템 프로그램이 2천7백39건으로 45%를 차지해 응용프로그램의 개발이 활발했다. 그리고 응용프로그램 중에서 사무관리용이 1천6백51건으로 높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의 개발은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91년 국산소프트웨어 산업을 보면 다양한 종류가 개발됐다는 것과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기 위한 유통점이 활성화됐을 뿐만 아니라 그간 소프트웨어 산업의 저해 요인중의 하나인 불법복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것도 커다란 변화로 들 수 있다.
그러면 91년도의 국산 소프트웨어 산업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초보자용 대거 선보여
소프트웨어 하면 가장 많이 꼽는 것이 워드프로세서 스프레드시트 데이터베이스 등 사무자동화 3총사다. 최근 들어 이러한 경향을 탈피해 실제 업무에서 활용될 수 있는 관리프로그램들이 등장했으며 초보자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선보였다. 그러면 각 분야별로 선보였던 특징적인 소프트웨어들을 알아보자.
업무용 소프트웨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워드프로세서는 지난해에 버전업되어 나왔다가 초기에 버그를 발견, 수정한 후 다시 발표됐던 한글1.51판이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한글은 그래픽기능이 첨가돼 그래픽 소프트웨어에서 저장된 그림을 프린트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한글외에도 사임당 백상워드프로세서 등 그래픽지원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해 워드프로세서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사무용 소프트웨어로는 단연 디베이스(dBASEⅢ+)가 선두를 차지한다. 그래서 디베이스를 이용하기 위해 한글표현 방식을 많이 연구해 오던 중 한글 데이터베이스 제품들이 탄생했다. 한글 데이터베이스는 공개소프트웨어와 상업용이 몇종류 나와 있다. 공개소프트웨어인 델타는 통신을 통하여 보급됐고 자료관리 2.0등은 상업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스프레드시트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로터스가 여전히 강세를 보였는데 이를 한글화한 로터스버전 2.2K가 발표됐다. 그리고 로터스의 아성을 깨고자 등장했던 퀴트로 프로도 한글화돼 그래픽지원이란 막강한 기능으로 국내 스프레드시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또 한가지 올해 스프트웨어의 특징은 2차원 3차원 그래픽이 가능하고 애니메이션 기능까지 첨가한 그래픽 소프트웨어가 많이 발표된 것인데 국내 제작용은 거의 2차원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업무용 그림 그리기 기능을 강화한 것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하나그림 한메그림그리기 크레파스 그리고 그래픽 에디터로 경북대학교 학생들의 작품인 '하늘'등이 있다.
BBS 프로그램「호롱불」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컴퓨터 통신에 대한 관심도 증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통신용 소프트웨어가 등장했다. 초기의 통신이용자들은 외국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한글문제를 고심하면서 많은 에뮬레이터들을 만들어 냈다. 한토크나 인토크 컴토크 한울 보스토크 등은 PC 통신초기에 사용됐던 에뮬레이터들이다.
계속되는 버전업을 통해 현재 4.3판까지 나와있는 '이야기'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통신용 소프트웨어라는 확고한 위치를 다지고 있다. 이외에도 '슈퍼세션'이 셰어웨어로 등장하기도 했다.
통신에 대한 관심 증대에 따라 사설 BBS도 증가돼 BBS호스트프로그램도 개발됐다. 그동안 사용됐던 BBS 호스트프로그램은 외국의 것에다 한글을 단순하게 이식시킨 형태였다. 그러나 올해들어 한국형 BBS 호스트가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중 '호롱불'은 네트메일이라는 새로운 기능이 부가됨으로써 새로운 BBS 문화를 형성했다.
운영체제(OS)는 다른 응용소프트웨어에 비해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개발되는 것으로 다른 응용프로그램에 비해 개발이 어렵다. 최근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각광받고 있는 가운데 한글 윈도즈의 발표는 많은 기대감을 주었다. 특히 그래픽 사용자 환경에서 한글 구현의 성공은 그동안 한글과 그래픽 소프트웨어 사이의 마찰로 인해 발생하였던 문제점들을 일소시킬 수 있을 것이며 자유로운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해줄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하나의 새로운 소식은 한국형 도스인 K-DOS가 탄생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운영체제를 갖추기 위한 노력중의 하나이며 세계시장을 목표로 꾸준한 개발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전문유통업체 등장
그간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기반이 미약한 관계로 활성화되지 못했던 소프트웨어 유통점들이 하나 둘씩 탄생한 것도 올해의 큰 특성으로 들 수 있겠다. 이러한 유통점들은 대기업 및 중소업체 등이 전문적인 분야를 구축하면서 탄생했다.
이들 유통점들은 소프트웨어 전문유통업체와 종합유통업체 등으로 나눌 수가 있다.
소프트웨어 전문유통업체로는 포스데이타와 일본 소프트뱅크의 합작회사로 자체매장 없이 도매에만 주력하고 있는 SBK, 직영매장을 통한 소매 대리점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소프트라인, 소프트웨어 검수방식을 도입하고 있으며 도매와 직영매장을 통한 소매를 겸하고 있는 F1등이 있다.
종합유통업체로는 소프트웨어 유통의 방향제시를 목표로 한메한글 등을 자체브랜드로 상품발굴해 성공을 거둔 삼테크, 소프트웨어사업부분을 강화해 양판점 형태의 토털 솔루션 차원의 소프트웨어 사업을 추진중에 있는 선경유통등이 있다. 그외에도 오랜 하드웨어의 유통경험을 바탕으로 한 아프로만 마이크로랜드가 있다.
그리고 주요 소프트웨어 개발지원 업체로는 워드퍼펙 솔로몬 로터스의 대리점으로서 국내 개발업체를 지원하고 있는 삼성데이타시스템, 소프트웨어 사업본부를 독립채산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브랜드사의 대리점을 겸하고 있는 삼보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사와 폭스소프트웨어사 로터스사와 각각 공급계약을 맺은 인포텍 트리콤 대우 등이 있다.
한편 금성소프트웨어 큐닉스데이타시스템 등 개발전문업체들이 유통사업에 진출했으며 한국통신의 소프트웨어센터, 용산상가 하드웨어업체들이 공동 출자하는 한국소프트웨어센터의 설립 등이 추진되고 있어 소프트웨어 유통산업의 활성화가 기대된다.
하드웨어 의존 탈피해야
올해는 그간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 성장의 걸림돌 중의 하나였던 불법복제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온 한 해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기를 부여한 것은 미국 사무용 소프트웨어연합회(BSA)의 불법복제 국내 단속으로 단속 실시후에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계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찌보면 이들의 조사활동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불법복제의 온상이란 오명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하였다. 이제는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며 이에 따라 소프트웨어 시장도 확대시켜야 할 것이다.
많은 사용자들이 '국산소프트웨어를 직접 구입해 사용해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의 사용자가 애국심이 적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 즉 사용자는 사용하기 편리하고 또 보다 사용자에게 가까운 소프트웨어를 선택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남들이 이것을 하니까 우리도 해봐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발전의 걸림돌이 되었던 것을 살펴보면 우선 재무구조의 취약성, 짧은 역사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상품화에 대한 낮은 인식도, 기술개발 자금의 부족, 민간연구기관의 부족, 정책적인 지원의 미약 등을 들 수 있겠다.
이와같이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부족한 상태에서 소극적인 소규모 중소업체에 의해 이끌려 왔다. 이제 국산 소프트웨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좁은 시각보다는 넓은 세계시장을 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사용자들에게만 요구해야 할 것들이 아니다. 이것은 정부나 기업 사용자들이 공동으로 짊어져야 할 의무이다.
그러므로 기술개발, 인력양성 지원제도, 전문단지의 조성, 수용창출 등을 목표로 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상으로 아직까지 유아기적 형태를 지닌 국산 소프트웨어의 현황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2천년대 소프트웨어산업 5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선 개선되고 보충되어야 할 점들이 많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관련기관의 적극적인 기반이 조성된다면 전망은 밝을 것이다. 올해와 같은 풍성한 수확(?)을 계속적으로 창출해 나간다면 내년부터는 안정 성장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소프트웨어 산업은 하드웨어 의존적인 것이 아닌 독자적인 산업으로 인식되어야 하고 소비자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컴퓨팅 환경을 구성하려면 소프트웨어 구입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소프트웨어 중심의 컴퓨팅 환경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2천년대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투자비율이 동등하게 이루어져 자연스럽게 첨단기술을 이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