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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에 몰려 신곡 중단한 벅스

다운로드 안되는 스트리밍 서비스 불법인가

“저희 매장에는 음반을 사기 전에 그 음반을 들을 수 있는 기계가 있습니다. 손님들은 들어보고 안 좋으면 안삽니다. 1시간 내내 들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무료 스트리밍 기계겠죠? 벅스가 유료화되면 이것도 한번 듣는데 얼마씩 받아야 하는 건지…. 참 아리송합니다.” 음반매장을 경영하고 있는 한 주인의 말이다.

벅스(주)는 2000년 2월 설립된 이래 약 3년 동안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현재 가입회원 수가 1천4백만명에 육박하는 명실공히 세계 1위의 음악사이트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런데 최근 벅스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지난 7월 3일 SM엔터테인먼트, 소니뮤직, YBM서울음반 등 13개 음반사와 한국음원제작자협회는 벅스를 상대로 음반복제 금지 등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낸 것. 가처분 신청은 정식 본안 소송을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판결이 날 때까지 발생할 손해나 위험을 막기 위해 법원에 강제 명령을 요구하는 법적 절차다.

서울지법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10월 1일 “벅스는 음원을 컴퓨터 파일 형태로 복제해 서비스해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내렸다.

음반 디지털 변환, 복제권 침해인가

스트리밍 서비스는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음악 파일을 시간대별로 쪼개어 차례로 내보내는 방식이다. 곡이 끝나면 사라지는 일회용이기 때문에 파일이 사용자의 컴퓨터에 다운로드되지 않는다. 따라서 스트리밍 서비스는 파일 복제가 아니라는 것이 벅스의 입장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음반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는 것 자체가 복제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음반제작사쪽 주장을 받아들였다. 음반을 컴퓨터 파일로 변환하는 것은 창작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요는 저작물이므로 작사·작곡·편곡자가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저작권을 갖는다. 또 직접 가요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 가요가 탄생하기까지 도움을 준 사람인 저작인접권자에게도 권리가 부여된다. 즉 연주자나 가수는 실연권, 음반제작사는 복제권이라는 저작인접권을 갖는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청취자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방송’이기 때문이다. 방송국에서는 저작권자 또는 저작인접권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일단 음악을 튼 다음 나중에 정산한다. 벅스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방송과 유사하다는 입장이다. 텔레비전 수신기가 변형된 형태의 서비스라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디지털 방송의 경우에도 음반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저작권법에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시간대에 서비스되는 것을 방송으로 구분해 놓고 있다. 이에 따라 음반제작사들은 사용자가 아무 때나 마음대로 선택해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방송이 아닌 ‘전송’이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가요의 저작권자 및 저작인접권자에게 허락을 받은 후에 서비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작권자의 권리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실연자의 권리는 한국예술실연자단체연합회에서 각각 대행한다. 즉 사업자가 모든 작곡자와 가수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저작권자와 실연자들의 권리를 위임받은 이들 단체와 협상을 한다. 벅스는 이 두 단체와 합법적으로 계약을 체결해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다.

9천3백29곡 서비스 중지


최근 서울지법은 벅스에 최신곡 스트리밍 서비스를 중단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진은 7월 9일 여의도 63빌딩에 서 한국음반산업협회,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음원제 작자협회 회원과 가수들이 디지털음원 무단 사용에 대한 입장을 밝힌 기자회견 장면


국내 음반제작·기획사는 8백개가 넘는다. 이들이 복제권을 신탁하도록 한국음원제작자협회(이하 음제협)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제 전체 가요 중 약 20%의 복제권만이 신탁된 상태다. 게다가 히트곡의 대부분을 보유한 메이저 음반사들은 음제협에 가입조차 돼있지 않다.

몇몇 음반사 및 음제협은 음반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는 것 자체가 복제권 침해에 해당되므로 벅스는 각 곡에 대해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벅스를 제외한 다른 스트리밍 사이트는 대부분 서비스 유료화를 단행했다.

유료화하지 않으면 협상하기 어렵다는 음제협과 아직 무료 서비스를 고수하고 있는 벅스 간 충돌로 결국 사용자는 벅스 사이트에서 최신곡을 들을 수 없게 됐다. 벅스 사이트에 접속하면 “안타깝지만 서울지방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을 존중해 10월 15일자로 벅스가 서비스 중인 21만 여곡 중 ‘전사의 후예’ 등 9천3백29곡의 서비스를 중지하기로 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볼 수 있다.

서비스와 콘텐츠 아우르는 지혜 절실

아무리 좋은 곡을 만들고 불러도 누군가가 들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음악을 만든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음악을 알리고자 한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인터넷에서 음반을 홍보해준다는 점에서 방송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벅스의 입장이다.

어떤 가요를 듣고 마음에 들어 음반을 사려고 하면 나머지 곡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구입을 보류하기도 한다. 사용자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좋아하는 곡을 음반을 구입하지 않고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음제협은 협상 없이 무료로 음악을 들려주는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업체들을 불법이라고 규정한다. 또한 일각에서는 무료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는 사용자의 경향을 지적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 네티즌은 “음악의 질이나 가수의 역량을 핑계로 공짜 심리를 합리화시키는 것은 억지밖에 안되는 행동이다.” 라는 의견을 남겼다.

음제협에 따르면 2000년 4천1백여억원이었던 음반 시장이 2003년 현재 1천여억원 정도로 급감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이 무료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처음 제공하기 시작한 벅스에게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많다. 뮤직비디오와 같은 비주얼 영역이 증가했고, 젊은 세대들이 모바일 음악 서비스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CHL의 벅스 측 대리인 표종록 변호사는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의 발달을 법이 막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비디오가 나왔던 초기에도 영화 관련 저작권자들이 들고 일어났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상황에 맞게 법이 재해석된 사례가 있다”면서 “저작권자는 자신들의 권익이 침해받을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기술을 만든 사람과 그 기술의 기반이 되는 콘텐츠를 제공한 사람들 사이의 이익을 조정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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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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