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모의 사용흔적과 꽃가루·숯의 분석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
고고학과 현미경-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나 실은 최근의 학문세계의 흐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아주 오래된 옛것을 탐구하는데 최신의 장비가 동원된다는 사실이 흥미롭거니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 힘을 합쳐 하나의 진리를 찾아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수천~수만년 전의 유물·유적을 발굴, 조사를 기초로 하는 고고학의 연구에 현미경이 쓰인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 최근에는 현미경중에서도 주사전자현미경(Scanning Electron Microscope)이 놀랄만한 분석능력을 발휘, 태고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밝혀내주기에 이르렀다.
여러 단면의 관찰이 가능
주사전자현미경의 용도로는 우선 구석기시대의 연모를 관찰하는데 유용하다. 즉, 석기나 동물뼈로 된 연모로 보이는 유물이 발굴됐을 경우, 이것이 의도적으로 제작한 연모인지 아닌지, 그리고 연모라면 어떤 작업에 쓴 것인지를 현미경 관찰로 판별해내는 것이다.
이같은 쟁점은 사소한 것 같지만 고고학 연구에서는 큰 의미를 갖는다. 의도적으로 연모를 만들었다면 당시 인간의 진화단계를 엿볼 수 있는 것이고, 그 연모의 용도를 분석해보면 문화수준이나 생활습관까지도 알아볼 수 있기 때문. 예를 들어 몇도 각도로 연모를 사용했는가, 나무를 깎는데 쓰였는가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벗기는데 썼는가 등등에 따라 원시인의 행위를 복원, 생활모습을 추리할 수 있는 것이다.
주사전자현미경의 보다 큰 위력은 수십만년전의 기후를 알아내기 위한 숯이나 꽃가루분석을 훌륭히 수행한다는 점에 있다.
나무는 사람들이 땔감이나 집짓는데 사용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이용하는 대상물이므로 유적지를 발굴하면 숯의 형태로서 쉽게 발견된다. 그런데 숯은 3개의 단면으로 돼있는데, 보통의 현미경으로는 제대로 관찰하기가 힘들다. 수종(樹種)에 따라 3단면에서의 세포의 배열이나 형태 등이 다르게 나타나므로 해부학적 특성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주사전자현미경이 필요하다. 이때 속(屬)까지의 수종판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수종이 밝혀지면 이를 토대로 당시의 기후를 유추해낼 수 있는 것이다.
숯이 인위적 행위의 결과라면 꽃가루는 자연 그대로의 것이기 때문에 기후분석에 더욱 신뢰성을 준다. 고고학분야에 '꽃가루학'이 있을 정도.
꽃가루에는 나무꽃가루 풀꽃가루 홀씨(균류)꽃가루 등 3종이 있다. 어떤 꽃가루가 어떤 비율로 검출되는가에 따라 당시의 기후조건을 밝혀내는데 결정적 자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80년대 부터 국내외 학계에 도입돼
우리나라 고고학계에서 주사전자현미경이 처음 사용된 것은 충북 청원군의 '두루봉제2굴'과 단양의 '상시1그늘' 유적에서 출토된 연모와 꽃가루들을 분석했던 경우로서 1984년경이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두루봉제2굴에서 뼈연모로 보이는 것들이 출토됐는데, 이를 주사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인위적으로 떼어낸 흔적과 사용으로 인해 닮은 흔적이 확인돼 뼈연모로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또 숯과 꽃가루가 대량으로 나와 이를 관찰, 분석해본 결과 참나무속 오리나무속 소나무 등이었음을 알아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1982년 미국 켈리포니아대학 '클라크'교수가 충북 제원군의 '점말동굴'에서 나온 뼈연모를 연모가 아니라고 부정, 학계의 논란거리가 된 적이 있으나 나중에 주사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본 결과 오류였음이 밝혀진 적도 있다.
세계고고학계에서 주사전자현미경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80년 미 일리노이대교수 '로렌스 킬리'에 의해서였다. '킬리'교수는 주사전자현미경을 이용, 석기를 관찰했는데, 연모의 사실여부는 물론, 사용흔적은 통해 용도를 밝혀내는데까지 진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전자현미경의 사용에는 적지않은 어려움도 있다. 자주 문제가 되는 것중의 하나가 관찰대상물체의 크기가 1㎝ 정도로 작아야 하므로 시료를 잘라 관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사전자현미경의 경우는 관찰을 위해 시료를 금속막(膜)으로 입혀야 한다.
앞서 언급한 두루봉출토 뼈연모의 경우는 유물의 음각(陰刻)틀을 떠서 틀(mould)을 관찰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때 미세한 부분까지도 그대로 떠낼 수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데, 대개 천연고무인 라텍스(latex)를 적당히 묽게 만들어 쓰고 있다. 천연고무는 물과 섞일 수 있는 수성(水性)이어서 농도를 적당히 조절해준다면 대상 물체에 물이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세한 부분까지도 스며들어가 정확한 틀을 떠낼 수 있다.
또 한가지 문제점은 사용하는데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주사전자현미경 1컷 찍는데 3만원이 든다는 것. 충북대 생물학과의 장비를 협조받아 이용해왔으나 본격적인 연구를 하려면 독자적으로 장비를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교수에 의하면 아직까지는 주사전자현미경을 이용한 고고학 연구가 일반화되고 있지는 않으며, 그 연구수준도 깊이있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는 것. 아뭏든 첨단의 과학장비로 인해 우리는 과거의 모습들을 하나 둘씩 엿보게 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