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는 인류의 꿈을 실현하는 우주전사들이 모여있는 곳. 그곳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고다드우주센터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최근 고다드센터를 방문했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 해 말 필자는 NASA 고다드우주센터와 존스홉킨스대학, 우주망원경연구소 등을 둘러 보았다. 이번 여행은 향후 한국에서 자외선망원경 프로젝트가 추진될 것에 대비한 사전조사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길을 떠난 설레임보다 우주개발의 최전방을 밟는다는 비장감이 더 마음에 자리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블룸버그물리천문센터는 홈우드캠퍼스 북쪽에 위치했다. 2층 홀에는 존스홉킨스가 제작해 아폴로 16호에 실어 달에 가져갔던 자외선망원경이 ‘금관총 금관’처럼 모셔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두차례에 걸쳐 홉킨스자외선망원경(HUT)을 띄웠다. 이때 샘 듀런스박사는 셔틀에 직접 탑승해 천체스펙트럼을 촬영했다. 90년과 95년 NASA에서는 우주왕복선에 홉킨스망원경 등 4대의 장비를 싣고서 천체사진을 찍었는데, 이것을 아스트로(Astro) 임무라고 부른다(과학동아 95년 5월호). 특히 아스트로-2는 이론적으로 예측해 왔던 우주 초기의 헬륨을 검출하는 등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 덕분에 자외선천문학은 지금 ‘황금광 시대’를 누리고 있다.
흔히 천문학 하면 집채만한 망원경과 수염난 천문학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우주의 실체는 그렇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주는 쥴리엣 비노슈처럼 천의 얼굴로 나타난다. 감마선, X선, 자외선, 가시광선, 전파 등 우리는 우주의 분장술에 그런 이름들을 붙여주었다. 블랙홀 주변에서는 X선이 나오고, 감마선 폭발을 일으키는 천체도 있다. 뜨거운 가스와 고온의 별은 자외선을 방출하며, 별이 태어날 때와 노쇠할 때 전파와 적외선을 내뿜는다. 의사가 청진기만으로 환자를 진단할 수 없는 것처럼 가시광선만으로 별(또는 은하)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 힘든 까닭은 여기에 있다.
자외선천문학 주가 폭등
그동안 자외선은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관련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함에 따라 자외선천문학의 주가는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목성탐사에서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천문학 전반에 걸쳐 중요한 해답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만큼 그 비중이 커가는 추세다. 이와 함께 군사적인 이용가치도 높다는 것도 이 분야에 투자가 몰리는 이유다.
존스홉킨스에서는 98년에 발사 예정인 ‘퓨즈’(자외선 스펙트럼 관측위성) 계획이 진행 중이라서 건물 곳곳에 진척상황을 소개하는 그림들이 빼곡하게 붙어있었다. 그밖에도 99년 말 허블우주망원경(HST)에 장착 예정인 ‘에이스’ (하늘 전체를 탐색하기 위한 최첨단 카메라)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3대의 전자카메라로 구성되는 에이스는 허블망원경의 효율을 10배쯤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존스홉킨스의 데이비드슨교수는 78년부터 아스트로 계획의 연구책임자로 일해온 거물이다. 그는 마침 허블망원경 관련 회의 때문에 분주했지만, 동양에서 온 햇병아리 천문학자에게 일부러 짬을 내주었다. 그리고 한국의 우주계획에 대해 관심을 나타냈다. 데이비드슨교수와 함께 일하는 크룩박사는 주로 홉킨스자외선망원경의 기술적인 측면에 관해 브리핑했다. 그는 매번 “이것은 아주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고 강조했는데, 그렇게 얘기한 것만 스무가지가 넘었다.
크룩박사는 우리 천문대 건물의 스무배쯤 돼보이는 센터 내부를 안내했다. 덕분에 ‘관계자외 출입금지’ 푯말이 붙은 실험실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0층’(zero-floor)이라고 불렀고, 그 말은 웬지 묘한 쾌감을 자아냈다. 그는 컨테이너 속에 밀봉된 홉킨스자외선망원경과 그 주요부품들을 보여주었다. 덕택에 책에서 그림으로만 보던 정밀기기들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었다.
그곳 0층에서 근무하는 콘라드박사는 로켓 탑재용 망원경과 자외선분광기에 대해 소개했다. 훤칠한 키, 질끈 동여맨 긴 머리에 연신 농담을 섞어가면서 얘기하는 콘라드박사는 97년 봄 헤일-밥 혜성의 스펙트럼을 관측할 계획이라고 했다.
존스홉킨스의 김정욱 교수와 데이비드슨 교수는 이런 말씀을 해주었다. “한국에서 천문학이 잘 되려면 (미국처럼) 국방과학과 손잡아야 한다.”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천체를 촬영하는 극미광 탐지기술이 국방에 응용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외국의 사정을 우주에서 첩보하기 위해선 미세한 신호로 잡아내는 관측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허블을 대체할 차세대
NASA 고다드우주센터가 허블망원경의 ‘중추신경’이라면 우주망원경연구소(STScI)는 그 ‘대뇌’에 비견된다. 블룸버그물리천문센터와 마주보는 스티븐 뮐러 빌딩에 자리잡은 우주망원경연구소는 허블망원경의 연구방향을 설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우주의 신비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다.
여기서는 ‘차세대 우주망원경팀’에서 일하는 임명신박사의 안내를 받았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대형 허블망원경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이 건물에서 일반인에게 출입이 허가된 유일한 장소는 그곳 방문객사무실. 거기에는 허블망원경이 촬영한 사진과 보도자료, 포스터가 선반 수북히 쌓여 있었다. 흑인 아가씨에게 “이걸 정말 다 가져가도 좋으냐”고 묻자 그녀는 “얼마든지!”라고 말하며 웃었다. 차세대 우주망원경. 그들이 노리는 건 그거였다. 사진을 들고간 사람들이 차세대 프로젝트를 위한 자원봉사자가 될 것은 뻔한 이치다.
임명신박사는 허블망원경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과 고다드를 주축으로 차세대우주망원경(NGST) 계획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차세대 기종으로는 지름 8m인 적외선극대화망원경이 예정돼 있고, 약 5억달러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아직 예산을 충분하게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정.
벌써 미국은 수십개가 넘는 천문위성을 띄웠으며, 허블망원경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까지 보유했다. 그럼에도 굳이 차세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피타고라스는 별빛을 두고 ‘천상의 음악’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우리가 가시광선으로 보는 밤하늘은 그 끝없이 화려한 오케스트라 음역 가운데 의미없이 단조롭게 삑삑거리는 ‘B 플랫’음에 지나지 않는다.
허블망원경은 1천2백Å부터 근적외선까지 검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이제는 초기우주와 은하형성 등 우리 사고의 지평을 확장시켜 줄 거대 적외선망원경이 필요하게 됐다. 현재 적외선우주망원경의 지름은 기껏 1m 미만. 이를테면 우주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좀 더 미세하게 들을 수 있는 저음에 강한 ‘우퍼’(저음을 재생해주는 스피커)가 요구되는 것이다. 방문객사무실에는 아직 언론에 배포되지 않은 보도자료가 ‘외부 유출금지’라고 쓰인 쪽지와 함께 놓여 있었다. 발표일자는 그 이튿날로 돼있었다.
고다드우주센터의 클린 룸
고다드우주센터는 NASA의 핵심기관으로 천문학과 지구관측 프로그램을 포함한 무인우주계획을 주도하는 매머드 연구소다. NASA본부 산하에는 11개의 센터가 있는데, 그 가운데 제트추진연구소, 고다드센터, 에임즈연구소 등이 천문학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이곳은 필자의 대학 동창인 이석영 박사가 안내해 주었다. 고다드 내에 설치된 유선 TV에서는 마침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의 임무 수행 광경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머그잔을 든 직원들이 팔장을 낀 채 실황화면을 구경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이번 비행(STS-80)에서는 ‘오르페우스-스파스’(ORFEUS-SPAS)라는 자외선우주망원경을 이용한 천체관측이 주임무였다. 이들은 몇가지 기네스기록을 갱신했다. 먼저 ‘17일 15시간53분’의 비행시간으로 우주왕복선의 최장 비행기록을 깼다. 그리고 61세의 최고령 우주비행사가 탑승했다는 것. 고다드 내 모니터에 비친 지구 상층대기에는 번개가 치고 있었다.
고다드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매릴랜드주 그린벨트 1백50만평 대지 위에 32개 건물과 야생동물 서식지가 있고, 거기서 8천여명의 직원과 그만큼의 계약직 요원들이 일하고 있다. 또 규모에 걸맞는 큼직큼직한 프로젝트들이 수행됐다. 올 97년만해도 SWAS라는 인공위성을 필두로 5개의 천문학(우주과학) 임무가 예정돼 있다. 그 이후에도 2012년까지 41개의 대형 프로그램이 줄서있는 상태.
다음날 아침 이석영박사 방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고 있는데, 거구에 콧수염을 기른 노인이 나타났다. 한눈에 스태커박사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아스트로 임무에 사용됐던 자외선망원경(UIT: 과학동아 95년 11월호)의 연구책임자였다. 스태커박사는 “이 분야의 역사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겠소”라고 말머리를 꺼냈는데, 그 얘기는 두어시간 이어졌다. 과연 그는 걸어다니는 역사책이었다.
허블우주망원경은 지난 7년 동안 천문학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그건 고다드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고다드는 허블의 데이터를 가장 먼저 받아볼 뿐 아니라 그 중추신경에 해당한다. 이 연구소에 설치된 허블망원경 신경망센터는 그 거대한 위성을 제어하고, 데이터를 수신하고, 스케줄을 짠다.
필자가 고다드에 머무는 동안 눈코뜰새 없이 바쁜 팀이 있었다. 97년 2월 11일 디스커버리호에 의해 올려질 허블망원경의 첨단 장비를 테스트하는 그룹이었다. 그 측정장비는 초고감도분광기(스티스)와 근적외선 카메라 및 다중분광기(닉모스)였다. 이 장비들은 허블우주망원경을 위한 2세대 관측기기로 자외선에서 근적외선에 이르기까지의 스펙트럼을 찍을 수 있게끔 설계돼 있다. STS-82라고 명명된 이번 장비교체 작업에서는 7명의 승무원이 9일 22시간 동안 임무를 수행했다(과학동아 97년 3월호).
고다드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초대형 클린 룸을 자랑한다. 필자 눈앞에 펼쳐진 그 거대한 구조물은 잠실체조경기장보다 커보였다. 대형 유리창을 통해 실내가 들여다보이는 방 내부에는 무진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다.
천문대는 오는 여름 과학로켓 3호에 탑재될 X선검출기를 제작하고 있지만, 클린 룸이 없는 탓에 다른 연구소의 것을 빌려쓰는 형편이다. 제작팀이라고 해야 두명. 언뜻 테스트 때마다 장비를 들고 다녀야 하는 두사람이 생각났다.
그곳 책임자인 파인버그박사는 ‘체조경기장’ 아래쪽을 가리켰다. 스티스와 닉모스였다. 두기의 최고급 장비는 은박에 싸인 채 허블망원경 동체를 본딴 에뮬레이터 옆에 놓여 있었다. “저 두가지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정교한 기계”라고 말하는 박사의 말에서 첨탑같은 긍지가 느껴졌다.
NASA 고다드에서는 70년대에 ‘실현 불가능’ 판정을 받았던 월면 자외선천문대 ‘류트’를 계획하고 있었다. SF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주는 거대 실험실이며, 거기에는 미래를 여는 자물쇠가 있다. 못사는 줄 알았던 나라들도 앞다투어 우주기술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다음 세기를 주도할 해답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오는 신호는 모든 스펙트럼을 망라한다. 그 신호를 청취할 있는 첨단기술의 확보 여부는 비단 과학 자체의 가치를 벗어나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제 우주망원경은 일국을 지배하는 철학과 국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됐다.
잘 갖춰진 시민교육 프로그램
고다드 방문자센터 입구에 들어서자 로버트 고다드박사의 동상이 서있었다. 어렸을 적 책에서 봤던, 코트에 멋진 콧수염을 기른 아저씨. 널찍하게 꾸며진 실내에는 머큐리 우주선 실물과 인공위성 시뮬레이션 장치, 자이로 의자 등 나이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적절하게 배치돼 있었다. 견학온 꼬마들이 인공위성과 로켓 모형을 구경하는 품이 무척 진지해 보였다.
이곳에는 다양한 방문자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모형로켓 발사 프로그램과 별관측 행사가 매달 열렸다. 또 교사 대상 프로그램 역시 완벽했다. 슬라이드와 비디오테이프를 복사해주고, 우주선 모형과 실물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는 등. 필자는 교사자료연구실을 나오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의 척박한 현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 왔다.
고생 끝에 워싱턴 DC에 있는 NASA 본부 출판사무국을 찾아냈다. 그곳 자료실 역시 다양한 홍보 및 교육자료들이 쌓여 있었다. 갑자기 장난감이 산더미처럼 쌓인 방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필자는 거기서 예산낭비가 아닐까 싶을 만큼 다양한 자료를 라면박스 가득 싣고 왔는데, 들고오지 못한 것도 적지 않았다. “NASA의 생존전략이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서도 마음이 착잡한건 마찬가지였다. 전시물을 구경하는 초등학생들을 보면서 혼자 말했다. “너희는 너희 눈앞에 보이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겠구나. 우주비행사건, 우주망원경이건 무엇이든지. 너흰 참 복받은 애들이야. 우리 2세는 또 너희가 해놓을 일들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는거니?” 되돌아 오는 비행기 안에서 필자는 우울한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