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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Ⅰ 16, 64메가 D램

범국가적 프로젝트로 진행돼야

정부는 93년까지 2천여억원의 예산을 투입, 차세대 반도체라 부를수 있는 64메가D램을 개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는데···.

손톱만한 크기이면서 한글 1백만자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이 16메가D램. 아직 실용화돼있지 않지만 세계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래의 전략상품이다.

이어 등장할 것이 이보다 기억용량이 4배인 64메가D램.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이 90년대 중반 이전까지 이를 모두 개발한다는 계획을 갖고있다.

세계 각국이 이처럼 한정된 공간속에 무한한 기억능력을 부여하려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얘기하자면 반도체는 미래의 모든 상품에 원자재 역할을 할 것이 예상되고 따라서 그 원자재를 작고 기능성있게 만들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6메가D램, 또는 64메가D램, 나아가 2백56메가D램의 개발 싸움은 단순히 이것 때문에 일어나고 있지만은 않다.

전문가들은 우선 이싸움이 국가간 자존심 경쟁에 의해 촉발됐다고 지적한다. 전자제품의 알맹이를 다른나라에 의존했을 경우 국제경쟁력이 약화될 것이 아니냐는 단순경제논리보다는 이 반도체 레이스에서 뒤진다는 것이 곧 두뇌싸움의 패배를 의미한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도체기술은 고도의 두뇌싸움은 물론 정밀성 순수성 등 각종 주변기술의 발전이 동반돼야 하는 종합기술이기 때문에, 반도체경쟁에서의 패배는 곧 국가전산업의 패배로 직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국운이 걸린 산업으로도 표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다행히 이 경쟁에 뒤늦게 참가하긴 했으나 착실히 제몫을 찾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첨단기술의 대부분이 아직 선진국수준에 크게 못미치고 있거나 모방단계인데 비해 기억(memory)반도체에 관한 한 선진국문턱을 넘어서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기억용반도체 부문에서의 성공을 반도체 전체의 성공으로 비약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기억반도체를 빈 노트에 비유하라면 주문형반도체(ASIC) 등은 백과사전과 같아 그 부가가치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억용반도체도 기술적수준이 대단하고 보다 첨단의 반도체를 만들기위한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내년에 16MD램, 93년에 64MD램
 

4메가D램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우리는 앞으로 3년안에 이의 16배용량을 가진 64메가D램을 개발할 계획
 

우리나라는 내년 3월까지 16메가D램의 시제품을 그리고 2년후인 93년 3월까지 64메가D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개발의 주역은 정부측에서 출연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소 그리고 민간측에선 삼성 현대 대우 금성 등 쟁쟁한 재벌 기업들이다. 또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방대한 기술이 동원돼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과학기술원 한국화학연구소 서울대 등이 참여하게 된다.

미국도 역시 IBM 등 대기업들이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부도 스탠퍼드대학 등을 통한 세마테크계획에 거액을 투자해 범국가적 연구체제를 갖추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주도하고있는 세마테크계획은 군수산업에 필요한 반도체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연간 출연금만 1억달러에 달할만큼 대규모 프로젝트다.

게다가 미국은 세계최대의 컴퓨터회사인 IBM 휴렛팩커드, 그리고 반도체업체인 LSI로직 내셔널세미컨턱터 등 7개기업이 공동전선을 형성, 일본타도를 외치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다. 자유경쟁원칙이 철저히 관철되고 기업간 담합이 제도적으로 봉쇄된 미국에서 그것도 내노라하는 대기업들이 담합, 반도체공동기업을 창설키로 나선만큼 미국의 위기의식은 대단하다는 분석이다.

IBM왓슨연구소의 관계자는 최근 "내년이면 일본이 경악할 일이 생길 것"이라고 밝히면서 "미국은 만들어 낸 반도체를 구매할 대형 컴퓨터기업체들이 즐비한만큼 일본보다 유리한 게 사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결국 그들 스스로가 최대의 반도체 구매자인 점을 십분 활용해 일본을 제쳐보려는 의도인 것 같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의 거센 도전에 일본이 가만있을 턱이 없다.

일본은 지난 77년 이후 기억용반도체분야에서 줄곧 미국을 앞서왔으며 그 정상의 위치를 빼앗기지않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의 통산성은 차세대산업기술개발계획(2백50억원 규모)의 일환으로 16, 64메가D램 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전기(NEC) NTT 등 유수한 일본기업들도 사활을 걸고 반도체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일본에 뒤지기는 했으나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경제권으로 부상하고 있는 유럽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공동참여하는 에스프리트프로젝트(3백억달러규모)에 16, 64메가D램개발을 포함시키는 등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수출 및 기술파급효과
 

ULSI 반도체제조기술은 최첨단시설이 밑받침돼야 한다.
 

이같은 국제적 분위기는 우리나라에서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정부가 최근 마련중인 첨단기술 및 산업발전 7개년계획에 16, 64메가D램 개발이 포함돼 있으며 경제기획원 과학기술처 상공부등 각부처 공동으로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첨단기술개발 및 산업발전을 위한 임시조치법'이 금년 상반기 중 모습을 드러내면 반도체개발은 제도상으로는 범국가적 개발 형태의 모습을 띠게 된다.

또 지난해 삼성의 경우 지금까지 초대규모집적회로(VLSI)단계에서 극초대규모로 기술적 전환을 한다는 의미에서 U(Ultra)LSI연구소를 설립함으로써 16, 64메가D램개발의 도전욕구를 가시화하고 나섰다. 이같은 용어의 변경을 단순한 의지표명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 그동안 개발 또는 제작해 온 1메가D램, 또는 4메가D램과 16, 64메가D램은 숫자상 큰 차이가 없어보이지만 전혀 새로운 기술적 도약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구소 명칭의 변경은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16, 64메가D램에 투입되는 연구개발비의 규모도 국내 어느 프로젝트보다 대규모라는 점에서 그 비장함을 읽을 수 있다.

현재 구상되고 있는 연구비는 93년까지 총 1천9백억원. 민간이 1천3백억원을 투자하고 정부가 6백억원을 지원하도록 돼있다. 64메가D램의 시제품이 나올때까지 투입될 연구인력은 1천4백명선.

정부가 이처럼 국민의 세금을 반도체개발에 투입하려는 것은 첫째 이로인한 수출효과, 그리고 기술파급 효과 및 첨단기술개발 풍토조성 등이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90년대 중반까지 기억용 반도체시장의 20~30%인 30억달러의 수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반도체의 우위력 확보와 함께 컴퓨터 통신 각종 자동화기기의 경쟁력도 자연히 강화될 것으로 예상돼 그 파급력은 막대하다는 것.

정부는 또 자원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고도의 인력과 기술로만 승리할 수 있는 반도체부문을 개척함으로써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첨단기술의 개발의지가 전 산업분야로 파급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외견상 국내 전체산업을 선도해나가면서 상당한 기술발전을 가능케 할 것으로 예상되는 메가D램개발에 어두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1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으면서 설계기술 등 핵심기술획득에는 실패한 원자력산업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집약적이면서 의지집약적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반도체기술에서도 또다른 허장성세가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반도체개발과 관련된 상공부와 과기처의 치열한 영역싸움이 표면적인 문제점으로 드러나다.

전통적으로 기업을 컨트롤 하고있는 상공부는 상공부 산하에 7개 연구기관을 신설, 16, 64메가D램개발을 맡기겠다는 계획이다. 최종 상품단계에서의 유통컨트롤은 물론 기술적 원천까지도 기업을 제어할 수 있는 포진을 갖추겠다는 구상. 이같은 상공부의 계획은 전통적으로 기술적 측면에서 기업과 관계를 맺어온 과기처의 영역을 일거에 흡수해버리겠다는 모습으로 비쳐져 세간에서는 영역쟁탈전으로까지 보여지고 있다.
과기처는 과기처 나름대로 이같은 고지를 고수하기 위해 기존의 출연연구기관을 공동참여시키고 사업단을 구성, 범부처적 연구활동을 벌이라고 제안하는 등 끊임없는 신경전을 펴고 있다.

이같은 부처간의 이견은 특히 재원문제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재원확보력에서 우위를 가진 상공부는 별도로 2조2천억원의 첨단산업발전기금을 운용하겠다고 주장하고, 독자적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과기처는 국방예산의 일부 그리고 정부투자기관의 재원을 긴밀히 연계시키는 이른바 스폰서링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범부처적 의지가 집약돼도 아쉬운 판에 정부 부처간의 이견이 이같이 노골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 반도체개발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반도체개발이 국운이 걸린 것이라면, 또 국민여론이 뭉쳐야할 의지집약적 사업이라면 이제라도 그 의지를 집약하기 위한 보다 개방된 기술전략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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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최수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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