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대륙의 러시아 땅에 조용히 자리잡은 바이칼은 지구상에서 가장 깊고, 깨끗한 호수로 알려져 있다. 가장 깊은 곳은 1천6백73m이고 물의 투명도는 40m로 세계 최고이며 넓이는 남한의 1/3이다. 그 속에 담긴 물은 지구 담수량의 1/5이나 된다.
바이칼의 겨울 평균 기온은 영하 20℃ 정도. 호수가 꽁꽁 얼어붙어 자동차가 지나가도 끄덕없다. 11월에서 3월사이 얼어붙은 바이칼호수 위로 러일 전쟁 때는 임시철도까지 설치했다고 한다. 필자가 방문했던 1월에도 두께 1.5m의 얼음이 시원한 길을 만들어줬다. 결빙과 해빙을 반복하면서 만들어낸 얼음 조각들이 겨울 바이칼 풍경의 진미를 보여준다.
바이칼 호수 주변의 사람들에게 호수는 삶의 터전이다. 얼음에 두 개의 구멍을 뚫어 양쪽에서 그물을 잡아 당겨 고기를 잡는데, 이 기술은 그들만의 노하우다. 그들이 잡는 고기의 이름은 ‘오물’. 바이칼에서만 사는 생선으로 지금은 어족 보호를 위해 허가 받은 사람만 잡을 수 있다. 91년부터 3년간 북한에서 김일성을 위해 어부를 파견시켜 잡아가기도 했을 만큼 고급어종으로 소문이 나 있다.
바이칼은 4월 중순부터 해빙되기 시작해 6월부터는 수영도 가능하다. 바이칼에서 수영을 하면 늙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 그만큼 그곳 사람들은 바이칼을 거룩하고 신성한 물로 여긴다. 호수 4백m 아래는 수만년 동안 다른 물과 섞이지 않은 태고의 순수한 물이 그대로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바이칼을 호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바이칼을 바다라고 부른다. 사람이 다른 것은 다 만들어도 못 만드는 것이 물이다. 영원히 샘솟는 생명의 물을 품고 있는 바이칼은 그래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시베리아인들만의 자원이다.
바이칼호수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큰 섬, 올혼섬을 찾아 나섰다. 올혼섬의 주민은 주로 몽골 계통의 브리야트인이다. 비록 러시아 땅이지만 올혼섬에서는 우리를 꼭 닮은 동양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얼굴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사는 모습은 거의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 그대로다. 올혼이라는 말은 브리야트말로 ‘건조하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아 목축에 적합하다. 그래서 올혼섬의 주민들은 소와 양을 키우거나 오물을 잡으며 생활한다. 올혼섬도 점차 도시로 떠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서서히 빈집들이 늘어가고 있다.
브리야트인들은 많은 신을 가지고 있고 샤머니즘을 믿는다. 아직까지 샤머니즘에 의지하고 있는 브리야트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곳은 올혼섬의 최북단에 있는 ‘호보’라는 곳이다. 호보는 바이칼의 장쾌한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소다. 바이칼의 모든 신성함을 한 몸에 간직한 이곳에 오면 누구나 대자연의 위력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바이칼에도 공해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르쿠츠크에서 동남단으로 바이칼을 끼고 돌아 3시간 정도 달리면 공업도시 바이칼스크가 나온다. 바이칼스크가 가까워지면서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공해산업인 플라스틱 재료를 생산하고 있는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 때문이다. 이 공장은 1963년부터 하루 3교대로 24시간 내내 가동되고 있다. 이 공장은 1987년 바이칼 보호법에 따라 정화 시설을 갖추기도 했지만 바이칼 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은 계속되고 있다.
홀러드는 3백개 이상의 하천이 하나로 모여 호수를 이룬 바이칼은 ‘풍부한 호수’라는 이름 그대로 풍요로운 곳이다. 이곳에 서식하는 희귀 동식물만도 2천여종이나 된다. 바이칼은 살아있는 진화 박물관인 셈이다.
바람의 방향은 하늘의 기분에 따라 바뀐다. 그러나 지금 바이칼에 부는 바람은 다르다. 생명의 바람과 훼손의 바람이 동시에 불고 있다.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