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공통의 가진 유인원은 짝짓기 방식이 제각각이다. 오랑우탄은 혼자서 산다. 암컷보다 몸집이 훨씬 큰 수컷은 많은 먹거리가 필요하기 때문 때문에 단독 행동이 불가피 하다. 따라서 오랑우탄 수컷과 암컷은 밀림 속에서 따로따로 행동한다. 수컷은 교미 직후 암컷을 떠나므로 새끼를 돌볼 필요가 없다.
고환과 교미체제의 관계
고릴라는 일부다처의 하렘에서 산다. 수컷 한 마리가 거느리고 있는 암컷의 무리를 하렘이라 한다. 고릴라의 하렘은 3-6 마리의 암컷으로 구성된다. 수컷은 암컷으로 구성된다. 수컷은 뿐만 아니라 자식들을 양육한다.
침팬지는 난교를 한다. 암컷은 발정기가 되면 여러 마리의 수컷과 바른 속도로 연달아 교미를 즐긴다. 암내나는 침팬지 암컷은 하루에 열두 마리의 수컷과 60번 정도 교미를 한다.
유인원의 교미체제는 고환의 크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고환은 정자를 생산하는 수컷의 생식기관이다. 사람의 경우 고환 한쌍의 평균 무게는 약 42.5g 정도 된다. 사람이 고환을 유인원의 고환과 비교해보면, 고환의 크기와 몸무게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사람보다 몸집이 큰 고릴라의 고환이 사람의 고환보다 작은 반면에 사람보다 몸집이 작은 침팬지의 고환의 사람의 고환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몸무게는 2백kg 정도 나가는 수컷 고릴라가 침팬지보다 네배 이상 무겁지만 고환의 무게는 도리어 약 1백10g인 침팬지가 고릴라보다 네배 가량 더 무겁다.
1970년대에 영국 생물학자인 로저 쇼트는 영장류의 고환을 연구하여 두가지 공통점을 확인했다. 하나는 교미를 자주 하는 종일수록 큰 고환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몇 마리의 수컷이 한 마리의 암컷과 일상적으로 교미를 하는 종일수록 특별히 큰 고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암컷 고릴라의 경우 새끼를 낳고서 3-4년 동안 성관계를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시 새끼를 잉태할 때까지 한달에 오로지 며칠 동안만 수태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여러마리의 암컷을 거느린 유능한 수컷일지라도 교미를 자주 할 수 없다. 기껏해야 1년에 서너번 밖에 기회가 없는 것이다. 요컨대 수컷 고릴라는 정액을 많이 사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유인원 중에서 가장 작은 고환을 갖게 된 거이다.
그러나 수컷 침팬지는 수많은 암컷들과 거의 매일 교미를 할 수 있다. 암컷 침팬지 역시 수많은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암컷에게 가장 많은 정자를 주입시키는 수컷이 그 암컷을 임신시킬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다. 따라서 정자를 생산하는 고환이 커지게 된 것이다.
정자들의 한판 승부
고환의 크기를 통해 유인원의 교미체제를 설명한 쇼트의 이론을 사람에게 적용해보면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은 재미 삼아 성교를 자주 하므로 오랑우탄이나 고릴라보다 고환이 크지만 난교보다는 일부일처의 혼인제도가 보편화되었기 때문에 침팬지보다 작은 고환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침팬지 다음으로 큰 고환을 가졌다는 사실은 인류의 조상이 오늘날의 우리보다 훨씬 더 난잡한 성생활을 영위했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난교의 조건하에서 성공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보다 많이 남기려면 번식능력에서 경쟁자를 앞지르지 않으면 된다. 다시 말해서 한 여성이 배란기 동안에 한명 이상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을 경우에 여러 남성이 여성의 질 속에 내뿜어 놓은 정자들은 서로 먼저 난자를 차지하려고 피나는 싸움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정자들 사이의 한판 승부를 정자 경쟁(sperm competition)이라 이른다.
정자 경쟁은 1970년 영국 동물학자인 제오프 파커가 곤충의 교미를 통해 처음으로 개념을 정립했다. 정자 경쟁은 거의 모든 동물의 생식행동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확인되었다. 물고기나 양서류처럼 알이 암컷의 몸 밖에서 수정되는 종에서는 여러마리의 수컷이 암컷 근처에 정자를 방출하면서 정자 경쟁이 시작된다. 난자가 암컷의 생식기관 안에서 수정되는 동물에서는 오로지 암컷이 이중성교(doublemating)를 할 때 정자 경쟁이 일어난다. 암컷이 한 마리 이상의 수컷이 배설해 놓은 정자를 생식기관에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하는 것을 이중성교라고 한다.
사람의 경우 이중성교는 강간, 공공연한 일처다부, 은밀한 일처다부의 세가지 상황에서 발생한다. 강간은 두가지 방식으로 이중성교의 결과를 빚어낸다. 하나는 한 남자와 성교하고 5일이 지나지 않아서 다른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을 경우이다. 정자는 여자의 생시기관 안에서 5일정도 생존 가능하기 때문에 두 남자의 정자는 경쟁을 벌이게 된다. 다른 하나는 패거리에게 윤간을 당했을 경우이다. 하나의 난자를 놓고 여러 남자의 정자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공공연한 일처다부의 상황으로는 매춘과 공동 성생활을 손꼽을 수 있다. 창녀들은 짧은 간격을 두고 여러 사내의 정액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아랫도리는 정자들의 싸움터가 된다. 물론 사내들이 콘돔을 사용할 경우는 예외이다. 공동 성생활에는 티베트에서처럼 형제들이 한 여자를 아내로 공유하거나. 부부들이 서로 합의 하에 아내를 바꿔치기 하거나, 섹스파티(orgy)에서 혼음을 하는 따위의 비정상적인 형태가 있다.
은밀한 일처다부는 대개 여자의 혼외정사나 혼전성교의 경우 해당한다. 유부녀가 외간 남자와 간통을 하거나, 혼기를 앞둔 처녀가 결혼 상대로 물망에 오른 여러 총각과 잠자리를 할 때 정자경쟁은 불가피하다.
카미카제 정자의 뜨거운 동료애
사람의 정자는 그 생김새가 다양한데, 가장 흔한 것은 위에서 보면 달걀모양이지만 옆에서 보면 노처럼 생긴 리와 채찍처럼 길다란 꼬리를 갖고 있다. 크기는 머리가 0.005mm, 꼬리가 0.045mm이다. 정자의 머리에는 남자 염색체의 절반에 해당되는 23개가 빽빽하게 들어 차 있다. 정자가 여자의 질 속에 배출되면 수많은 정자들은 대오를 이루면서 꼬리를 사용하여 목표물인 난자를 향해 함께 헤엄친다. 수영 속도는 분당 3mm이다. 한번 사정할 때 정액은 평균 3mL이며, 이 안에 2억-5억 마리의 정자가 들어 있다.
정자들은 자궁의 목부분, 즉 자궁경부에 있는 점액을 뚫고 자궁속으로 나아간다. 이 점액은 끈적끈적한 덩어리이기 때문에 정자들이 뚫고 지나가기가 무척 힘들다. 따라서 겨우 2백 마리의 정자가 난자의 세포막에 도달한다. 이들은 머리에 들어 있는 효소를 방출하여 난자의 세포막을 녹인다. 궁극적으로 억세게 운이 좋은 한 마리가 난자 안으로 들어가면 정자는 용해되고 유전물질만 남게 되어 수정이 된다. 바로 그 순간에 난자의 세포막에는 재빠른 변화가 일어나서 다른 정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 재빠른 변화가 일어나서 다른 정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 정자와 난자의 염색체가 융합된 수정란이 분열을 개시하면 새로운 생명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정자는 얼핏 보아서 모두 정상적인 것 같지만 정액에는 수정에 부적합한 비정상적인 정자가 의외로 높은 비율로 섞여 있다. 머리가 두 개이거나 꼬리가 두 개인 정자가 부지기수이다. 사실상 정상적인 정자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불량품이다.
생물학자들은 임신에 부적합한 정자들을 쓸모 없는 자연의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자들이 모두 반드시 수정능력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이론이 나왔다. 1988년 영국의 생물학자인 로빈 베이커와 마크 벨리스는 비정상적인 세포가 정자 경쟁과 수정의 전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입증한 카미카제 정자(kamikaze sperm)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자는 맡은 역할에 의해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난자와 수정하는 능력을 가진 극소수의 정자이고, 다른 하나는 동료 정자가 수정에 성공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 스스로 희생하기 때문에 제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카미카제(神風) 특공대원에 비유되는 대다수의 정자들이다.
카미카제 정자에는 봉쇄정자와 살상정자의 두 종류가 있다. 봉쇄정자는 난자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목에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고 다른 남자의 정자가 여자의 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장벽을 만든다. 불량품 정자들은 못생긴 머리를 함께 조아리거나 기형의 꼬리를 휘감아서 질의 입구를 봉쇄하는 마개를 형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마개는 일그러진 모양으로 죽은 정자들이 엉겨붙어 굳어진 것이다. 짝짓기 후에 정자들이 암컷의 질을 봉인하는 교미 마개는 초파리, 뱀, 박쥐, 원숭이 등 대부분의 동물에서 발견되었다. 교미마개는 일종의 정조대인 셈이다. 한편 살생정자들은 여성 생식기의 내부를 배회하면서 다른 남자의 정자를 수색하고, 스스로 분비하는 매우 치명적인 효소를 사용하여 경쟁자를 섬멸하거나 무력화 시킨다. 요컨대 카미카제 정자이론에 따르면 정자들은 분업을 통해 경쟁자를 물리치는 고도로 진화된 전략을 갖고 있다.
남자들이 수음하는 이유
1990년 베이커와 벨리스는 정자 경쟁이 인간의 진화에 영향을 미친 증거로 남자가 정자의 수를 조절하여 사정하는 능력, 남자의 수음행위, 여자의 오르가슴을 제시했다.
이들은 정상적인 성생활을 영위하는 여러 쌍의 부부들을 골라서 남자들에게 성교를 하는 동안에 콘돔을 착용시켜 정액을 수거했다. 분석결과는 남자가 방출하는 정자의 수가 성행위의 여건, 이를테면 상대여자에 대한 신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정사를 나눈 뒤에 상대를 가까이 두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부부일수록 같이 지낸 시간에 반비례해서 그만큼 남자가 방출한 정자의 수가 줄어든 반면에, 정사 후에 오랬동안 떨어져 있던 여성이 혹시 외갓 남자와 놀아났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 남자일수록 많은 정자를 내뿜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남자들이 정자 경쟁의 적신호를 눈치챘을 때에는 물량작전으로 경쟁자를 격퇴하기 위해 성교 동안에 정자의 수를 조절하여 사정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베이커와 벨리스는 정재 경쟁이론으로 수음행위가 함축한 생물학적 의미의 설명을 시도했다. 남자의 수음은 정자를 낭비하므로 생식에 보탬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남성이 탐닉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생물학자들이 풀지 못한 수수께끼의 하나였다. 남자들은 대개 3일 가량 성교를 하지 않으면 수음으로 성욕을 해소하기 마련이다. 수음을 하고 1-2일 지나서 성교를 하면, 수음을 하지 않고 성교를 했을 때보다 더 적은 수의 정자를 내놓는다.
그러나 여자의 몸 안에 유지되는 정자의 수에는 큰 차이가 없음이 확인되었다. 다시 말해서 수음직후 성교시에 방출된 정자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정자보다 특별히 경쟁력이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정자가 남자의 몸안에 보존되는 기간과 관련이 있다. 정자는 남자의 생식기관에 저장되는 기간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성교 도중이건 수음을 통해서 이건 사정될 때 오래된 정자부터 먼저 방출되고 싱싱한 정자는 보존된다. 수음직후 사정된 정자가 경쟁력을 갖게 된 까닭이다.
정자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항상 젊은 정자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성교를 오랫동안 모살 경우에 정자 경쟁의 끊임없는 위협에 직면한 사내들은 노쇠한 정자를 내버리고 싱싱한 정자를 상비하기 위해 수음을 하는 도리 밖에 없다. 베이커와 밸리스의 논리에 따르면 수음이 반드시 백해무익한 몹쓸 짓만은 아닌 성싶다.
오르가슴으로 정자 빨아들여
정자 경쟁이론은 여자의 오르가슴이 진화된 이유를 독특하게 설명한다. 남자가 내놓은 정자의 일부는 플로백(flowback)으로 빠져나간다. 정액과 여성의 분비물이 혼합된 하얀 구슬을 플로백이라 한다. 사정 후 30분쯤 지나서 주로 소변을 볼 때 3-8개의 구슬이 질 밖으로 나온다. 원숭이, 토기, 참새 등 포유류와 조류의 암컷은 모두 플로백을 내놓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람의 플로백에는 정자의 3분의 1가량이 들어있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정자가 플로백으로 많이 빠져나가서 여자의 몸속에 조금 밖에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 베이커와 벨리스는 프로백에 포함되는 정자의 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오르가슴을 적시했다.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먼저 오르가슴에 도달하거나 또는 전혀 절정감을 느끼지 못한 경우에는 비교적 적은 수의 정자를 보유한다. 그러나 남자가 사정하는 순간, 또는 그 후에 여자가 극치감을 맛보면 비교적 많은 정자를 몸에 지니게 된다. 오르가슴에 이르면 자궁 내부의 압력이 상승하여 질에 있는 정액을 더 많이 자궁안으로 빨아들이기 때문에 정자가 몸 속에 많이 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중성교를 했을 경우 여자가 정자 경쟁의 심판 노릇을 할 수 있다. 한 남자와는 오르가슴을 만끽해서 그의 정자를 몸 속에 많이 보유하고, 다른 남자와는 건성으로 성교를 해서 그의 정자가 대부분 플로백으로 나가게 하면 정자의 수가 많은 쪽이 자신의 난자를 수정시킬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여성의 오르가슴은 정자 경쟁이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진화에도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1996년 베이커박사는 카미카제 정자이론을 일반대중에게 널리 알릴 목적으로 '정자 전쟁'을 펴냈다. 다양한 상황의 성행위를 세밀하게 묘사하여 베스트셀러가 되긴 했지만 우리나라 같았으면 외설시비의 도마에 오를 소지가 없지 않은 이 책에서, 베이커는 1980년대 후반에 영국에서 태어난 어린애의 4%가 정자 경쟁을 통해 임신된 것으로 추정했다. 25명에 한명 꼴의 아이가 그들 어머니의 생식기안에 들어와 있는 다른 사내의 정자를 친부의 정자가 물리친 덕분에 잉태되었다는 의미이다. 이중성교가 흔한 나라의 이야기일테지만 우리나라의 남자들 역시 정자 경쟁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자손을 퍼뜨릴 수 없는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하는 불길한 통계는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