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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외선으로 보는 세상

시력한계 극복하는 첨단장비들

액션 영화나 공상과학 영화를 보다보면 종종 하이테크 시대에 걸맞는 최첨단 장비들이 등장하곤 한다. 주인공이나 악당들이 사용하는 무기나 첨단 기계 장비들은 관객의 재미를 더해줄 뿐 아니라 이야기의 극적인 흐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영화에 등장하는 이러한 장비들은 대개 현재의 과학수준에서 가능한 것이거나 머지않아 실현되리라 생각되는 것들이어서, 이를 통해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받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근래 눈에 띄게 자주 등장하는 첨단 장비가 바로 부족한 인간의 눈을 대신 해주는 투시경이다. 어두운 밤에도 사물을 잘 볼 수 있게 해주는 야시경, 적외선을 탐지하여 어둠 속에서도 인간을 감지할 수 있는 적외선 감지기, 또 벽 뒤에 있는 물체까지 탐지할 수 있는 감지장치가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프레데터'에 나오는 괴물의 눈에는 적외선 감지장치가 장착돼 있다. 그래서 어두운 밤이라도 항온동물의 움직임을볼 수 있다.

진흙으로 적외선 막아

우리가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은 태양이나 전등에서 나온 빛이 사물에 반사돼 우리의 시세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은 파장이 3천5백Å에서 7천Å영역인 가시광선의 빛에만 자극을 받는 시세포를 가지고 있다. 만약 우리 눈이 가시광선 영역 밖의 빛을 감지할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다.

만약 적외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 영화 ‘프레데터’(Predator)를 통해 우리는 잠시나마 이런 공상을 현실로 맛볼 수 있다. ‘프레데터’에는 적외선을 감지하는 외계인이 등장해 그의 눈에 비친 ‘적외선으로 보는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그 괴물은 적외선 감지장치까지 눈에 장착했다).

영화에는 외계인 괴물의 눈에 비쳐진 정글과 그 속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인간이나 쥐같은 항온동물은 몸에서 열을 내기 때문에 몸에서 열선인 적외선을 방출한다(옥의 티처럼 변온동물인 전갈도 적외선 감지기에 걸리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서 아무리 어두운 정글에서도 프레데터는 생명체를 발견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인간들은 속수무책으로 외계인 괴물 프레데터에게 잔혹하게 당하고 만다.

적외선을 감지하는 잔인무도한 외계인 프레데터를 맞아 특공대 대장(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은 어떻게 위기를 모면하고 그를 죽일 수 있을까? 여기에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는 진흙을 몸에 바르면 괴물이 자기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진흙은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적외선을 차단해 줄 뿐 아니라, 진흙가루가 미약하게 방출되는 적외선마저 사방으로 산란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흙을 몸에 바른 주인공은 프레데터로부터 무사히 몸을 숨길 수 있게 된다.

또 진흙에 함유된 물분자들은 적외선을 강하게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물분자는 특이하게도 가시광선 영역만 투과시키고 다른 영역의 빛은 대개 흡수한다. 이것은 우리가 수분을 함유하고 있는 지구상의 대부분의 물체를 무사히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눈이 물의 투과영역인 가시광선 영역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물에서 탄생하여 뭍으로 올라왔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기도 한다.

영화 ‘페어게임’(Fair game)에는 물분자가 적외선을 흡수한다는 사실과 관련된 그럴듯한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사업적인 이익을 위해 여변호사(신디 크로포드)를 죽이려는 악당들은 벽 뒤에 있는 사람이 발산하는 적외선까지 감지할 수 있는 민감한 투시경으로 그녀를 위협한다.

그 투시경을 이용하여 호텔에 숨어있는 여변호사와 그를 보호하려는 형사(윌리엄 볼드윈)에게 정확히 총을 겨눈다. 그러나 형사가 샤워를 하자, 적외선 감지기에 그의 모습이 사라진다. 샤워기에서 나온 물분자들이 적외선을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다. 벽 뒤의 사람이 내는 적외선까지도 감지할 수 있는 투시경은 현재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유사시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벽 뒤에 있는 사람을 감지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골격이나 심장박동까지 높은 해상도로 보여주는 감지 장치가 영화 ‘이레이저’(Eraser)에 등장한다. 알루미늄 탄환을 전자파에 실은 EM총에 장착된 투시경이 바로 그것이다. 이레이저에 등장하는 투시경은 벽의 사물은 무엇이든 볼 수 있으며, 사람의 신체도 세밀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현재의 과학기술로 이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벽 뒤에 있는 물체를 높은 해상도로 보기 위해서는 X선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X선은 투과도는 매우 높지만 반사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X선을 쏘게 되면 반사돼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은 거의 없다. 우리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병원에서 X선 촬영을 통해 몸의 내부까지 볼 수 있는 것은 신체에 X선을 쏘고 반대편에 감광필름을 놓기 때문이다. 그러면 뼈같이 투과율이 낮은 영역과 살같이 투과율이 높은 영역이 감광필름을 인화시키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뼈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영화 ‘이레이저’에 등장하는 투시경처럼 감광필름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투과율도 매우 높으면서 반사율도 높아야 하기 때문에 현재까지 알려진 과학적 사실로는 이것은 불가능하다(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르면 반사율과 투과율과 흡수율의 합은 항상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광전효과

별빛만이 반짝이는 숲 속이나 산악 지대에서도 환히 볼 수 있는 야시경은 현재 군대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야시경은 영화에서도 간간히 등장하는데 그 대표적인 영화가 ‘양들의 침묵’(Silence of the Lamb)이다.

‘양들의 침묵’의 마지막 장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지하실에서 변태살인마 버팔로 빌과 FBI 수사요원 클라리스 스탈링(조디 포스터)의 마지막 승부가 펼쳐진다. 버팔로 빌은 야시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칠흙같이 어두운 지하실에서도 그녀를 볼 수 있다. 공포에 떨고 있는 스탈링을 향해 내뻗은 살인마의 음흉한 손길. 그러나 동물같은 육감으로 스탈링은 그를 향해 총을 쏜다.

이 장면은 영화의 절정을 이루는 명장면이다. 이 잊을 수 없는 명장면에서 최첨단 야시경을 통해 비친 스탈링의 공포에 떠는 모습는 극적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야시경은 광증폭기(photo multiplier)라 불리우는 소자의 2차원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광증폭기는 ‘광전효과’를 이용해서 빛 신호를 전기신호로 바꿔 증폭시킨 후에 다시 빛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아인슈타인은 이 ‘광전효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빛이 금속판을 때리면 광전효과에 의해 금속판 속의 전자가 방출된다. 만약 밤하늘의 별빛처럼 아주 약한 빛이 금속판을 때린다면 에너지가 낮은 전자가 방출될 것이다. 이러한 전자에 전기장을 걸어주면 전자는 가속되면서 에너지를 얻게 된다. 이렇게 가속된 전자가 다시 형광판을 때리면, 이 전기신호는 강한 광신호로 바뀌어 우리 눈의 시세포를 자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광증폭기를 2차원으로 배열하면 마치 TV처럼 2차원 공간을 보여줄 수 있게 된다. 이런 야시경만 있다면 밤하늘의 별빛으로도 우리는 세상을 환히 볼 수 있다.

영화 ‘페트리어트 게임’(Patriot game)에는 야시경에 관련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IRA테러집단은 미국 해군사관학교 교수인 잭 라이언(해리슨 포드)을 죽이기 위해 그의 집에 잠입한다. 테러범들은 잭의 집에 전기 공급을 차단해 완전히 어둡게 만든 후 숨막히는 살인게임을 벌인다. 그들은 야시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목표물을 찾을 수 있다. 집안 구석에 숨소리까지 죽이며 숨어 있는 잭의 가족들. 잭은 전기 공급을 다시 원상태로 만든 후에 적을 기다린다. 잭의 일당이 숨어있는 지하실로 테러범들이 들이닥치자 잭은 갑자기 불을 켠다. 그들은 아주 미약한 불빛으로도 사물을 볼 수 있는 야시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한 빛이 들어오자(우리에겐 적당한 빛이었겠지만) 눈에 심한 타격을 입게 된다. 야시경의 원리를 잘 알고 있었던 해군 사관학교 교수인 잭 라이언다운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눈의 부족함을 메우는 과학기술의 다른 면을 본다. 앞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자를 위해 과학은 그들의 눈을 대신해 주기도 하고, 전쟁터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현재 첨단 기술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 1년에 가장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는 분야는 군사기술 분야와 의료기술 분야다.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기술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셈이다. 사람을 살리는 기술만큼 죽이는 기술도 우리에겐 절실한 모양이다. 인간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야시경과 육감 중 어느쪽이 더 빠를까. 버팔로 빌이 스탈링에게 손을 뻗는 '양들의 침묵'의 마지막 장면.
 

199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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