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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공포증 10대가 고비

마이클 잭슨도 공포증 환자?

짙은 화장에 선글라스, 밝은 대낮에 검은 우산을 쓰고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얼마전 많은 화제를 몰고 방한공연을 가진 마이클 잭슨 이야기다. 글쎄, 물어보질 않았으니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쯤되면 대인공포증의 소질은 충분히 갖춘 셈이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대인공포증 환자가 많다. 공포증 단계까지는 아니라도 심각한 대인불안을 호소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한국인의 경우 거의 80% 이상이 이런 대인공포증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증상이 있다고 모두 환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대인공포증은 어떤 병일까.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유난히 꺼린다고 알려진 마이클 잭슨.
 

누구나 조금씩은 공포증 환자

대인공포증은 말 그대로 사람을 두려워하는 병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람을 두려워한다기보다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하는 병이다. 사람을 만나거나 남들 앞에 설 경우 얼굴이 붉어지거나 손과 목소리가 떨리고 남의 시선이 지나치게 의식되어 심한 긴장감에 사로잡힌다. 때로는 자신의 시선이 몹시 날카로워 남들이 자신을 피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자신의 얼굴이 이상하게 생겨 남들이 이상하게 본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을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자신만의 결함으로 생각하고 숨기며 고민하는 것이 대인공포증 환자들의 특징이다. 이들은 자신이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까봐 몹시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약간의 대인공포 증상을 가지고 있다.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 엄한 선생님 앞에서 얼굴이 붉어진 기억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또 노래를 부를 때나 수업시간에 발표할 때 떨려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대인공포증 환자들은 좀더 심각하다. 증상이 더 심하다는 것이 아니다. 증상을 대하는 태도, 즉 증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이러한 증상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비정상적인 것이며 남들이 알게 되면 큰일이 날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주 친한 친구는 물론이고 부모조차 감쪽같이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안될 것 같은 이런 증상 때문에 고통받고, 이로 인해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에 큰 지장을 받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

대인공포증의 증상은 단순한 대인긴장이나 얼굴이 붉어지는 적면공포, 목소리나 손이 떨리는 떨림공포에서부터 자신의 시선이나 표정에 문제가 있다는 시선공포와 표정공포, 자신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냄새공포, 얼굴이 못생기거나 이상하게 생겼다는 추모공포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시선·표정·냄새·추모 공포를 가진 환자의 경우 자신의 증상으로 인해 남이 불편해 한다거나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가해의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가해형’ 대인공포증이라고 하는데, 서구에서는 거의 보고가 없고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유교문화권에서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적인 환자의 예를 들어보자. A군(고등학교 2학년)은 원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편이지만 중학교까지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수업시간에 책을 읽는 도중 그만 목소리가 떨리고 말았다. 친구들이 키득키득 웃고 선생님께 핀잔을 받자 더 당황해서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저 교실에서 가끔보는 흔한 광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A군에게는 너무도 창피하고 치명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수업시간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조마조마해져 도대체 학교가기가 두려워졌다. 성적이 떨어지고 점차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나면서 우울증이 동반되고 등교를 거부하기에 이르자 영문을 모르는 부모의 손에 끌려 병원을 방문했다. 물론 지금은 치료를 받고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

뚱뚱해도 걱정 말라도 걱정

B양(대학교 2학년)은 중학교 시절부터 말못할 고민이 생겼다.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는게 문제였다. 좋아하는 선생님 수업시간에 우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 웬지 어색한 느낌이 들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자신의 마음을 남들이 알고 이상하게 여길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이후에는 시선이 불편해서 한 곳에 고정할 수 없었고, 자신이 쳐다보면 남들이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는 느낌을 받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이러니 수업인들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늘 고개를 숙이는 버릇이 생겼다. 겨우 대학을 입학해서 한시름 놓았지만 증상이 좋아지지 않아 혼자 고민하다 용기를 내어 병원을 찾았다. 전형적인 가해형 대인공포증인 경우다.

대인공포증의 발병률은 서구의 경우 약 3-13% 정도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결코 서구에 비해 적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많은 동양의 사회문화적인 배경을 생각할 때 오히려 서구보다 발병률이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강북삼성병원의 경우 신경정신과를 처음 찾는 사람의 약 4-5%가 대인공포증 환자다.

증상의 발생 시기는 다양하다. 어릴 때부터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사춘기 무렵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증상이 시작되는 경우가 60%를 넘는다. 그러다 20대 후반이 지나면서 빈도가 급격히 떨어지지만, 드물게 40-50대에 발병하는 경우도 있다.

왜 사춘기 무렵이 가장 취약한 시기일까. 이 때가 대인관계의 예민성이 가장 높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시기라는 말이다. 흔히 이 시기에는 모든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되었다고 확신하고 자신의 결점이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키가 작아도 고민, 커도 고민이다. 뚱뚱해도 고민, 말라도 고민이다. 온갖 관심이 자신에게 쏠려있어 자신의 사소한 결점도 그냥 넘길 수 없다. 조금만 얼굴이 붉어지고 손이 떨려도 이게 무슨 큰 결점인양 혼자 고민에 빠지는게 바로 이 시기다.

그러나 병원을 찾는 것은 한참 뒤인 대개 20대 초반 이후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즉 사람들과의 접촉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이에 적응하기 어려워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대인공포증 환자는 자신의 증상이 남에게 알려지면 큰일이 날 것처럼 생각한다.그래서 부모나 친구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극복하는 법
 

속으로만 끙끙 앓지 말고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대화를 나누다 보면'공포증'이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다.
 

대인공포증의 치료책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약물치료를 비롯하여 개인정신치료, 집단치료, 최면치료 등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때 환자의 상태나 병의 원인에 따라 적절한 방법이 사용돼야 한다.

그러나 심각한 공포증 단계가 아니라면 스스로의 연습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먼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남들 앞에서 발표할 때는 떨리는 것이 정상이다. 좋아하는 남학생이나 여학생 앞에서 얼굴이 붉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생리적 현상이다. 이런 증상이 생기지 않는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합리적인 생각이다. 정말 이렇게만 생각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다. ‘누구라도 그럴 수 있겠구나’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더 이상 병이 아니다.

둘째는 숨기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한다. 대인공포증 환자들은 숨기거나 안그런 척 가장하는데 명수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게 문제다. 떨려서 죽겠는데 안그런 척 할려니 이게 어디 보통 고역인가. ‘증상이 드러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더 증상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공포증의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떨리고 붉어지는 것이 결코 숨겨야할 결점이 아니라 생리적 현상임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 이것이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핵심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만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정말 그렇구나’ 하고 이해는 되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응용이 안되는 까닭이다. 너무 오랫동안 숨기고 피하는데 익숙해져서 막상 닥치면 또 숨기고 도망가는게 사람의 심리다. 그래서 실제 경험이 중요하다. 피하고 싶은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야 한다. 증상을 보여주겠다고 단단히 각오하고서 평소 대하기 어려운 친구를 불러보고 피하던 모임에도 가본다. 잘 되면 예전보다 마음이 훨씬 편해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경험이 몇번 쌓이고 익숙해지면 정말 자신감이 생긴다. 또한 이 병은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훨씬 상태가 좋아진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스스로 치료가 어렵거나 생활에 큰 지장이 있는 경우라면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병이 오래되면 사회생활도 위축되고 2차적으로 우울증이 동반되는 경우도 많다. 이때는 약물치료나 정신치료도 큰 도움이 되고 비슷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함께 모여서 실시하는 집단치료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우선 나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증상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또 남들을 통해서 자신의 증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생긴다. 이제 집단치료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아보자.

대개 10명 정도의 환자가 모여 주 1회씩, 8주간 치료를 받는다. 초기에는 치료자의 강의가 주로 실시된다. 대인공포증의 원인과 발생 배경, 불안이 왜 생기는지 등에 대해 교육을 받고 앞에서 얘기한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법과 숨기지 않는 태도를 배운다.

다음 단계는 실제 경험을 통해 증상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는 시기다. 자신의 증상을 남 앞에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연습이다. 이런 방법을 ‘역설지향기법’이라고 한다.
더 보여주려고 노력할수록 증상이 줄어드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진짜 증상이 나타나면 광고하는 방법도 쓴다. 떨린다고 광고하고 나면 더이상 떨리는 것을 숨길 필요가 없다. 그 결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무겁게 생각하지 말아야

가해형 대인공포증 환자들은 ‘확인요법’도 사용한다. 정말로 자신의 증상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자신으로 인해 남들이 불편해하는지 확인시킨다. 이런 방법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생각한 것이 잘못됐음을 깨닫게 된다. 이외에도 다른 환자들 앞에서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서 역할연습도 하고, 이 상황을 비디오로 찍어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간도 갖는다.

이런 연습을 통해 점차로 자신감을 얻게 되면 이제 치료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 시기는 증상을 받아들이는 단계다. 증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증상이 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는 상태, 이 상태가 치료가 완료된 상태다. 치료가 끝나고도 월 1회의 모임이 있어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친목도 도모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진다.

대인공포증은 결코 무서운 병이 아니다. 치료가 비교적 쉬운 가벼운 신경성 질환일 뿐이다. 혼자 고민하고 끙끙 앓고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한창 생기있고 꿈이 있을 10대에 더 이상 이 증상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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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신영철 신경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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