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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 대칭이면 임신가능성 높다

'잘 생긴 아들 이론'과 '좋은 유전자이론' 모두 만족

동물의 암컷과 수컷은 같은 종이라도 신체적 특징이 서로 다르다. 이러한 성적 이형(dimorphism)은 찰스 다윈에 의하여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1차 성징과 2차 성징이다.

2차 성징과 성적 선택
 

성적 선택을 처음 제안한 찰스 다윈.
 

다윈은 수컷의 고환이나 암컷의 난소와 같이 생식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은 1차 성징이라 부르고 이러한 암수의 차이는 자연선택에 의하여 진화된 것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사춘기에 출현하는 남자의 수염처럼 한 쪽 성에만 나타나는 2차 성징은 생식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선택과는 거리가 멀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다윈은 다른 형태의 선택을 제안했다. 성적 선택(sexual selection)이다. 2차 성징은 생존경쟁보다는 성적 선택의 과정에서 진화된 형질이라는 뜻이다.

1871년 다윈이 펴낸 저서에 따르면, 성적 선택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번째의 성적 선택은 암컷을 서로 차지하려는 수컷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일어난다. 사슴의 뿔이나 사자의 갈기는 이러한 과정에서 출현한 형질이다. 사슴의 뿔은 암컷을 얻기 위한 싸움에서 무기로 사용된다. 사자의 갈기는 다른 수컷과 다투는 동안 모가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성적 선택의 두번째 형태는 수컷이 암컷의 관심을 끌어서 짝짓기의 상대로 선택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선택의 대표적인 보기는 공작의 수컷이 지닌 화려하고 긴 꼬리이다. 암공작은 부챗살처럼 펼쳐진 현란한 깃털에 매혹되어 그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 요컨대 공작의 수컷이 생존에 별로 쓸모가 없는 우스꽝스러운 꼬리를 달고 있는 것은 순전히 암컷의 탓이다.

다윈에 의해 수컷 공작이 암컷에게 구애할 때 꼬리를 이용하는 사실이 관찰됨에 따라 공작의 장식용 꼬리는 성적 선택의 상징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윈은 암공작이 긴 꼬리를 좋아하는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다. 더욱이 장식용 꼬리는 생존의 측면에서 수컷에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화려한 빛깔은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쉽고 긴 꼬리는 도망갈 때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공작이 수컷의 화려한 몸치장을 선호하는 이유를 놓고 두 개의 이론이 맞서 있다. 하나는 피셔(Fisher) 또는 잘생긴 아들(sexy-son)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유전자(good-gene) 또는 건강한 자손(healthy-offspring)이론이라 불린다.
 

공작 수컷의 화려한 꼬리.생존에 별 필요가 없지만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화의 산물이다.
 

잘 생긴 아들을 위하여

1930년 영국의 로날드 피셔는 숫공작의 요란한 꼬리가 진화된 이유를 순환논리의 표현으로 교묘하게 설명했다. 암컷이 긴 꼬리를 지닌 수컷을 좋아하는 까닭은 다른 암컷들이 장식용 꼬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때 대부분의 암컷들은 꼬리의 길이를 선택기준으로 삼아 긴 꼬리의 수컷들하고만 짝짓기를 했다. 일종의 유행이었다. 이러한 유행이 못마땅한 일부 암컷들은 일부러 꼬리가 짧은 수컷을 골라서 교미를 했는데, 꼬리가 짧은 아들을 낳게 되었다.

이 아들 새는 어미 새가 유행을 거역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대부분의 암컷들이 긴 꼬리의 수컷을 찾았으므로 짧은 꼬리의 아들 새는 짝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새끼를 독신으로 남기고 싶지 않는 한, 암공작은 꼬리가 긴 수컷을 선호하는 풍조로부터 감히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편 수컷들은 꼬리가 길수록 짝짓기에 유리했기 때문에 더 긴 꼬리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꼬리가 긴 잘생긴 아들을 낳으려는 암공작의 욕망과 성적 매력이 있는 꼬리를 가지려는 숫공작의 노력이 성적 선택 과정에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수컷의 깃털발달과 그러한 발달을 향한 암컷의 성적 선호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바로되먹임(positive feedback)작용을 하게 된 것이다.

마이크를 확성기에 가깝게 두면 확성기에서 나온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되먹임되어서 소음이 나는 것처럼 증폭기능을 보여주는 것을 바로되먹임이라 한다. 바로되먹임에 의해 작은 소리가 반복적으로 증폭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소리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처음에는 장식용 꼬리를 가진 수컷에 대한 암컷의 선호가 우연히 시작된 사소한 유행에 불과했지만 이 유행은 바로되먹임에 의해 수컷의 깃털이 발달하는 속도를 고삐풀린 말이 폭주하듯이 끊임없이 증가시켰다. 말하자면 숫공작의 장식꼬리는 폭주적 진화(runaway evolution)의 산물인 것이다.

정직이 최선의 전략

피셔의 폭주적 진화론은 다윈의 성적 선택 이론을 보강했으나 1970년대까지 40여년 간 많은 생물학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생물의 형질이 환경에 대한 적응의 결과로 유전된 것이 아니라 유행에 의해 진화되었다는 논리에 수긍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많은 학자들은 좋은 유전자 이론을 지지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암공작은 자식들이 짝짓기를 잘하는 것보다는 생존을 잘하도록 하기 위해 길고 화려한 장식꼬리의 공작을 선택한다. 수컷의 장식이 개체의 건강, 체력, 또는 적응력을 가늠하는 잣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공작은 빛깔이 좋은 깃털의 수컷은 건강하므로 그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

그러나 좋은 유전자 이론에는 자기모순적인 약점이 있었다. 공작의 길다란 꼬리는 생존가능성을 높여주는 좋은 형질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깃털은 수컷의 생존에 장애가 된다. 이러한 모순을 재치있게 해결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아모츠 자하비 교수이다. 1975년 자하비는 장애이론(handicap theory)을 제안했다.

장애이론에 따르면, 숫공작의 꼬리가 수컷에게 장애가 되면 될수록 수컷이 암컷에게 보내는 신호는 그만큼 더 정직하다. 왜냐하면 긴 꼬리의 수컷이 장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은 암컷에게 그 수컷이 난관을 극복할 능력이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수컷은 장애로 인한 대가를 치르면 치를수록 암컷에게 자신의 유전적 자질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더 잘 알릴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남보다 더 길고 화려한 깃털을 가진 수컷일수록 더 좋은 유전자를 갖게 마련이다. 따라서 숫공작의 꼬리는 장애가 되지 않을 때보다 장애가 될 때 더 빨리 진화하게 된다. 신체적 장애가 결국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음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반증이 될 수 있다는 자하비의 기발한 논리는 ‘정직이 최선의 전략’ 이라는 격언과 일맥상통한 점이 없지 않다.

제비 꼬리의 대칭성

공작이 장식꼬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잘생긴 아들 때문인가, 아니면 건강한 자식 때문인가. 공작의 깃털이 진화된 이유를 놓고 피셔이론과 좋은 유전자 이론의 지지자들은 티격태격했다. 그런데 두 이론 사이의 해묵은 논쟁을 화해시킬 수 있는 단초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것은 대칭성(symmetry)이다. 1992년 덴마크의 앤더스 묄러는 대칭성을 성적 선택 연구의 주제로 제시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암컷 제비가 짝짓기 상대를 고를 때 꼬리의 크기와 모양을 선정기준으로 삼고 있음을 밝혀냈다. 그러니까 수컷의 꼬리가 길수록 더 선호했을 뿐 아니라 놀랍게도 꼬리가 좌우대칭일수록 더 좋아했다. 대칭적인 꼬리를 가진 수컷은 비대칭적인 꼬리를 가진 경쟁자들보다 신속하게 짝짓기를 하고 더 새끼를 많이 낳았다.

동물의 신체는 자랄 때 좋은 조건에 있었으면 좀더 대칭적이고 나쁜 조건이었다면 좀더 비대칭적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예컨대 영양부족, 질병, 또는 유전적 결함 따위의 문제가 생기면 완벽한 대칭성을 가진 신체가 발달될 수 없다. 대칭성은 동물이 얼마나 제대로 발육했는가를 보여주는 거울인 셈이다. 그러므로 새의 날개나 꼬리와 같은 신체부위는 알맞은 크기로 발달했을 때 가장 대칭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칭성을 깃털 진화의 이론에 결부시켜보면 흥미로운 가정을 할 수 있다. 만일 좋은 유전자 이론이 옳다면, 장식꼬리는 가장 클 때 반드시 가장 대칭적이어야 된다. 왜냐하면 가장 큰 장식꼬리는 가장 좋은 유전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피셔이론이 옳다면, 장식꼬리의 크기와 대칭성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특별히 있을 수 없다. 구태여 관계가 있다면 가장 큰 장식꼬리일수록 가장 대칭적이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알맞은 크기일수록 가장 대칭적이기 때문이다.

묄러는 이러한 전제 하에 제비의 꼬리를 연구했는데, 아주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숫제비의 꼬리는 길면 길수록 대칭적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상관관계였다. 왜냐하면 날개처럼 그 크기가 정상에서 벗어날수록 그만큼 비대칭적으로 되는 것이 일반적인 법칙이기 때문이다. 제비의 날개는 예외적으로 크거나 또는 작을 때 평균적인 크기일 때보다 훨씬 비대칭적이게 마련이다.

묄러는 길면서 동시에 대칭적인 꼬리를 가진 숫제비가 짝짓기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은 좋은 유전자 이론을 지지하는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피셔이론이 옳다면 꼬리가 길수록 더욱 비대칭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긴 꼬리를 유전적으로 가장 우수한 제비만이 감당할 수 있는 장애라고 볼 때, 그 장애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숫제비는 훌륭한 유전자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제비이므로 그 꼬리는 대칭적으로 발육된 것이다. 요컨대 꼬리의 크기와 대칭성은 함께 발달했다. 두 가지 모두 좋은 유전자 덕분임은 물론이다.

묄러는 좋은 유전자 이론의 입증에 만족하지 않고 피셔이론의 지지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꿩, 천인조 등 다섯종의 성적 장식을 연구했다. 그 결과는 두 가지로 나왔다. 제비처럼 한 개의 장식을 가진 종은 좋은 유전자 이론에 해당되었다. 장식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대칭성도 커지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꿩처럼 여러 개의 장식을 가진 종은 대부분 피셔이론의 예측에 부합했다. 장식의 크기가 커질수록 비대칭적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장식물을 가진 새들은 유행에 의한 성적 선택의 산물인 반면에 한가지 장식만을 가진 새들은 그들의 유전적 자질을 과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묄러의 연구는 피셔이론과 좋은 유전자 이론 모두를 맞는 것으로 판정해서 양쪽이 대등하게 만족한 상태에서 오래된 논쟁에 종지부를 찍도록 해주었다.

인간도 균형있는 몸매 선호
 

대칭성이 인간의 성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은 듯하다.한 예로 가슴이 대칭적인 여성일수록 아이를 많이 낳는다는 통계가 있다.
 

대칭성은 새의 성적 선택에만 국한된 요소는 아니다. 사람 또한 관련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균형이 잘 잡힌 여자의 나체를 보면 아름답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좌우대칭을 이루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은 비대칭을 이루는 경우가 드물지만 남성은 대개 왼쪽 고환이 오른쪽보다 낮게 처져서 비대칭을 이룬다.

인체의 대칭성과 성의 관계에 관심이 많은 전문가는 미국의 랜디 쏜힐이다. 쏜힐은 인간 역시 대칭적인 신체나 용모를 선호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람은 단순히 미학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대칭성이 개체의 생물학적 자질, 이를테면 우수한 유전자, 강력한 면역계, 좋은 영양상태, 원기왕성한 생식능력을 갖고 있음을 알려주는 단서이기 때문에 균형잡힌 몸매와 얼굴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신체의 대칭성이 인간의 성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은 듯하다. 1994년 쏜힐은 1백22명의 남자 대학생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가장 대칭적인 신체의 소유자들은 덜 대칭적인 학생들보다 3-4년 먼저 성교를 시작했다. 또한 손, 발, 무릎, 귀 등이 거의 완벽하게 대칭인 학생들은 가장 비대칭적인 남자들보다 2-3배 가량 더 많은 짝짓기 상대를 만났다.

쏜힐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20대 초반인 86쌍의 부부에 대해 대칭성과 오르가슴의 관계를 연구했다. 1995년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남자가 성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상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인들은 평균 60% 정도 오르가슴을 맛본다고 주장했다. 열번 성교하면 여섯번 극치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장 대칭적인 신체의 남자와 잠자리를 한 아내들은 그 수치가 75%까지 올라간 반면에 가장 비대칭적인 남편을 둔 여자들은 30%로 떨어졌다.

그 뿐만 아니라 부인이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시기가 신체의 대칭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남편이 대칭적인 몸을 가진 부부는 거의 동시에 오르가슴을 함께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임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어쨌든 남자의 육체에 잘못 자리잡은 몇십 그램의 살점이 그의 여자가 즐기는 오르가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여자의 경우, 남자 못지 않게 대칭성은 중요하다. 여자의 신체에서 가장 비대칭적인 부위는 유방이다. 두 개의 젖무덤이 대칭을 이룬 여자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뜻이다. 쏜힐에 따르면,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유방을 가진 여자들이 짝젖을 가진 여자들보다 아이를 잘 갖는다. 50여명의 미국 유부녀를 조사한 결과, 자식이 없는 여자들은 가장 비대칭적인 가슴을 가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유방의 원둘레가 30%가량 서로 달랐다. 한편 아이를 가장 많이 낳은 여자들은 가장 대칭적인 가슴을 가졌다. 두 개의 젖가슴은 그 크기가 겨우 5%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남자들이 대칭적인 유방을 가진 여자를 보면 성욕을 느끼는 까닭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이를 잘 낳아줄 상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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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인식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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